Be Concentrate Your Body

나를 잘 돌보는 일 : 작가 황혜원

《요르가즘》에서 먼저 만난 황혜원 작가는 거침없고 솔직한 사람이었다. 그런 사람이 고요함의 상징과도 같은 요가를 어떤 식으로 수련하는지 궁금증을 안은 채 그녀와 마주앉았는데, 대화를 이어가면서 내 좁은 시선은 서서히 허물어졌다. 요가에 어울리는 형용사는 고요함보다는 솔직함이다. 그녀는 타인이 아닌 자신에게 솔직하기 위해 매일 수련하고 있었다. 창가로 들어오는 해가 그녀의 곧은 등을 비출 때, 내 몸과 마음에 요가가 필요했던 순간들이 어렴풋이 스쳐갔다.

요가만이

줄 수 있는

5년 전인가. 3개월 동안 요가 센터에 다닌 적이 있다. 인생을 통틀어 가장 열심히, 꾸준히 운동한 기간이었다. 매일 시간표에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수업 중 하고 싶은 운동을 골라 참여하는 방식이었는데, 내가 주로 듣는 건 요가, 필라테스, 발레핏 세 가지였다. 그중에서도 요가, 요가 중에서도 ‘아쉬탕가’라는 부드러운 이름의 요가를 좋아했다. 많으면 스무 명 남짓한 회원들이 일정한 간격을 두고 매트 위에 정갈하게 앉으면 두 손을 모아 ‘나마스테’ 하고 인사를 나눈다. 그다음 50분 동안은 선생님이 읊는 리듬에 맞춰 끊임없이 몸을 움직인다. 아니다. ‘끊임없이’보다는 ‘끊김 없이’가 더 맞는 표현이다. 잠깐 몸을 수그렸다 펴는데도 팔과 다리는 정해진 순서와 위치대로 움직여야 한다. 한 동작씩 이어 나갈 때마다 뜻대로 움직이지 않는 몸을 원망하며 마음속으로 꾸역꾸역 숫자를 세다 보면 어느새 몇 번의 시퀀스가 끝이 난다. 이상하게 그게 좋았다.

운동이라면 그저 걷기만을 고집하는 내가 그 시간을 좋은 기억으로 남긴 이유는 요가만이 줄 수 있는 어떤 ‘느낌’ 때문이다. 여럿이 있어도 눈을 감으면 금세 혼자가 되는 느낌, 그 시간에 집중하려 애쓸 때 저절로 잡념을 떨치는 느낌. 땀을 흘리고 몸이 풀리면서 몸과 마음이 같이 짜릿한 기지개를 켜는 느낌, 그 느낌들이 꽤 즐거웠기 때문이다.

조금은 쉬운

요가 이야기

수년 전 잠깐의 경험만으로 알게 된 요가의 매력은 거기까지다. 그 이후 요가는 남의 일이 되었고, 내 안의 쓸데없는 생각을 스스로 비워내는 일도 좀처럼 없었다. 최근 집에만 있는 날이 많아지면서 요가를 떠올렸다. 가만, 요가를 다시 제대로 해보려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그게 동작만 따라해서 되는 게 아니라 호흡과 자세를 가다듬고 몸과 마음을 수련하는 거라던데. 그런 거창한 것 말고 나는 그냥 나를 돌보고 싶은 것뿐인데…. 망설이던 때, 야릇한 제목의 책 한 권이 불쑥 말을 걸었다.

《요르가즘》은 작가가 “범접할 수 없는 숭고한 이미지의 요가에 대한 허들을 낮추고 싶”은 마음으로 유쾌하고 솔직하게 써 내려간 요가 에세이로, 수련과 수업을 병행하면서 겪은 일상적인 일들과 그 안에서 얻은 깨달음으로 채워져 있다. 작가는 현대미술을 전공하고 몸으로 무언가를 표현하고 싶은 욕구를 실현하기 위해 요가 강사가 되었는데, 강사가 된 이후에는 글을 쓰고 싶어 에세이를 출간했다. 과감한 제목은 “자신의 몸과 마음에 최대한 집중하고 과감하게 찾아내고 솔직하게 표현해서 ‘절정’을 향해 포기하지 않아야만 끝내 느낄 수 있”다는 점이 오르가즘과 비슷하다는 생각에서 지었다.

그러나 요가가 있는 한 ‘덜 불행’할 것이다. 지금 이 수련으로 쟁여둔 든든한 보험금을 타먹으면 되니까. 그렇다고 요가가 행복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행복에 있어서는 그 무엇도 보장할 수 없을 것이다. 행복이나 깨달음은 제자리 뛰기 같은 거라 도달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 《요르가즘》 중에서

 

그녀는 불행에 대비해 자신을 돌보는 방법으로 요가를 택했다. 긴 호흡으로 몸과 마음을 가다듬으며 중심을 잡아갔다. 그녀라면 내가 요가에서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쉽게 설명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중하기, 솔직하기, 돌아오기

요즘 요가원 문이 닫혀 있다고 들었어요.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처음 휴가를 얻게 된 거라 사실 좋아요(웃음). 올해 강사 생활 5년 차인데 한 번도 휴가가 없었거든요. 대강 강사를 쓸 수도 있지만 제 수업을 들으러 오시는 회원님들을 두고 자리를 비운다는 게 마음이 안 좋더라고요. 그래서 대강을 해본 적이 없어요. 요즘 시국은 뒤숭숭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집에서 작업하고 수련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아요.

 

축하드려야 하는 거 맞죠(웃음)? 요가원 나갈 때는 주로 어떤 수업을 하세요?

아쉬탕가, 하타, 빈야사 수업을 해요. 모두 전통 요가인데, 해와 달이라는 뜻의 하타가 제일 큰 범주예요. 그 안에 아쉬탕가와 빈야사가 있어요. 빈야사는 흐른다는 뜻으로 모든 동작이 연결되어 있어요. 강사 재량으로 힐링 빈야사, 파워 빈야사라고 이름 붙여 시퀀스를 조절할 수 있죠. 초보자에게는 쉽게, 숙련자에게는 어렵게 난이도를 조절해요. 아쉬탕가도 흐르는 듯이 동작을 취하는 방식이라서 아쉬탕가 빈야사라고도 부르는데요. 빈야사와는 다르게 강사 재량으로 바꿀 수 없는 고정 시퀀스가 있어요. 

《요르가즘》에는 아쉬탕가의 프라이머리 시리즈 중에서도 어렵지 않은 부분만 떼서 넣었어요. 음, 하타는 가르칠 수 없는 부분이라고 말하기도 해요. 치유에 가깝거든요. 아쉬탕가는 육체적인 움직임에 초점을 맞추는 반면 하타는 명상 위주로 눈을 감거나 한 동작을 오래 취하는 방식으로 수업해요. 같은 동작이라도 스스로 난이도를 조율할 수 있어요. 흐르지 않고 오래 머물면서 내 몸을 느낄 수 있는 시간으로 가는 거죠.

 

하타와 아쉬탕가 중 뭘 더 좋아하세요?

아쉬탕가를 좀더 좋아하는 편이에요. 하타가 명상으로 육체를 깨우는 과정이라고 하면 저는 아쉬탕가를 육체를 깨워서 명상으로 가는 도구로 사용해요. 육체를 계속 쓰다 보면 잡념이 사라지니까 자연스레 명상이 되죠. 그런 점에서 바쁜 현대인에게 아쉬탕가가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번잡스러운데 바로 명상으로 들어가는 게 말처럼 쉽지 않거든요.저도 잠깐 요가 센터 다녔을 때 아쉬탕가 수업을 들었어요. 너무 힘든데 동작 따라 하느라고 한 시간이 금방 가더라고요. 그게 아쉬탕가의 매력이에요. 처음 하시는 분들은 대충 따라 하고 그냥 넘어가는데 계속 하다 보면 조금씩 나아지거든요. 대충대충, 매일매일, 될 때까지 하는 게 재미죠.

 

책에서 본인의 ‘똘끼’를 몇 번 언급하셨는데요(웃음). 직접 뵈니 똘끼라기보단 무척 밝은 에너지가 느껴져요. 

제 안에 여러 가지 성격이 있는 것 같아요. 대학에 다니다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사회의 인격이 새롭게 생기잖아요. 처음에 강사를 한다고 했을 때 주위 사람들이 ‘네가 요가를 한다고? 강사를 한다고?’ 하면서 웃고 그랬어요. 정말 이 일을 해도 되나 싶었는데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맞춤 인격이 생기더라고요. 그런 다양한 성격들을 적재적소에 잘 사용하는 게 재미있어요.

 

요가 하는 사람들은 모두 정적일 거라는 막연한 편견이 있었는데, 그렇지도 않은 것 같네요.

전혀요(웃음). 저도 처음엔 그럴 거라고 생각했어요. 요가 시작할 때 유명하신 분들 많이 찾아다녔는데 그분들도 다 똑같더라고요. 직장 생활에 찌들고, 경쟁하고…. 환상을 가지면 사람이 거기 갇히는구나, 그런 생각도 했어요. 저도 친구들이랑 있을 땐 말을 가리지 않고 막 내뱉다가도 수업할 때나 들을 땐 사람들에게 말이 잘 들리도록 목소리와 말투를 바꿔요.

일상의 ‘나’와 요가 할 때의 ‘나’가 바뀌는 거예요?

성격도 그렇지만 몸 상태도 달라지는 것 같아요. 사람이 밖에서 일할 땐 교감신경을 켜놔야 한대요. 하루 종일 교감신경을 켜고 있다가 자고 일어나서 또 켜는거죠. 그걸 반복하다보면 스트레스가 올라가요. 폭식을 하거나 싸우거나 울거나 무기력해지는 것들이 다 교감신경을 너무 오래 켜두고 있기 때문인 거죠. 그런데 요가를 할 때 계속 호흡을 하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돼서 밸런스가 맞춰져요. 가끔은 수련하다가 혼자 울 때도 있어요. 수련하다 보면 감정에 되게 솔직해지거든요. 그런 시간이 좀 필요한 것 같아요.

 

외부 활동보다 혼자만의 시간을 통해서 에너지를 얻는 편인가요?

혼자 있을 때나 사람들을 만날 때나 에너지를 얻는 비중은 비슷하고, 똑같이 중요해요. 혼자 있는 시간은 수련하고 작업하고 영화 보고 글 쓰면서 에너지와 영감을 모을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시간은 그걸 공유하고 확장할 수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하죠. 두 가지가 연관되어 있어요. 스스로 충족하지 못하고 외부 요인으로 채우려고 하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가 될 수밖에 없으니까요.

 

집에서 혼자 수련하는 걸 ‘셀프 수련’이라고 한다고요. 요즘은 어떤 셀프 수련을 어떻게 하고 계세요?

요즘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명상을 해요.

 

눈 감고 가만히 앉아 있는 그 명상이요?

네. 앉아서 숨쉬는 거요. 수업 때도 늘 하는 얘긴데, 떠오르는 생각을 구름이라고 생각하고 없애려고 하지 말고 들어가려고도 하지 말고 가만히 두면 돼요. 그럼 생각이 이어지지가 않아요. 막상 제가 하려고 하면 또 어렵긴 하지만요(웃음). 명상할 때는 가만히 있어야 하니까 몸이 되게 근질근질해요. 스스로 고문하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움직이고 싶은 마음이 올라갈 때까지 10분 정도 명상을 하고, 자연스럽게 몸이 풀리도록 오전에 이런저런 활동을 하고 나면 오후에는 수련을 하고 싶어질 수밖에 없어요. 

 

‘수련’이라고 하면 왠지 어려운 동작을 갈고닦는 모습이 떠올라요.

요가에서는 도전하면서 수련하는 걸 아주 중요하게 여겨요. 수업이 아니라 수련을 하는 강사의 세계가 있거든요. 그들은 새로운 아사나(Asana, 요가 동작)를 시도하고, 한 아사나를 더 깊게 들어가고, 고난도 아사나를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기뻐하고 좌절해요. 물론 창조적인 시도는 좋은 것 같아요. 새로운 걸 시도할 때 뇌에 시냅스가 많이 생긴대요. 안 쓰던 근육도 쓸 수 있고요. 그런데 사실 잘 모르겠어요. 저는 개인적으로 승마도 하고 싶고 스쿠버다이빙도 하고 싶고, 되게 하고 싶은 게 많거든요. 인간의 관절과 인대의 한계를 넘어서면서까지 위험하게 도전해야 하는지, 그게 정말 고행의 수련인지, 그 문제에 대해서는 아직 답을 못 내리겠어요. 7-8년 정도 더 수련해 봐야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은 맹목적으로 따라 하고 싶지도 않고 부정하고 싶지도 않은 그런 시점이에요.

 

무조건 따르지 않는 용기를 내는 것도 마음에 중심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 같아요. 같은 맥락에서 “지금 여기, 타인은 없다. 오롯이 나뿐이다. 내가 해내건 못하건 상관없다. 나만이 알 수 있다.”는 구절이 떠올라요. 타인과 비교하지 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잖아요.

타인과 나를 비교하지 않는 건 불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인간 본성이 그런 것 같아요. 바로 옆에 타인이 있고, 누군가 자꾸 나를 평가하는 상황이면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죠. 다만, 그때 어디에 포커스를 맞추느냐가 중요해요. 스스로 주변 환경을 차단하고 호흡에 집중하기 위해 노력해야 해요. ‘난 숨 쉴 거야, 숨 쉴 거야.’ 하고요. 아쉬탕가를 할 때도 ‘이따 저녁에 뭐 먹지?’부터 시작해서 잡념이 계속 들어오는데, 호흡에 집중하면 정신이 다시 돌아와요. 이건 초보자와 숙련자 모두에게 해당돼요. 한 동작을 취하면서 잡념이 들어오면 못하는 사람만 호흡이 흐트러지는 게 아니라 잘하는 사람도 호흡이 흐트러져요. 자기가 잘한다고 느끼는 순간에 자만하면서 에고가 올라오면 그 감각에 취해서 잘못된 자세를 취하거나 통증이 오는 걸 잘 못 느끼거든요. 그 감각을 중간으로 맞추는 게 참 어려우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이에요. 매 순간 스스로 집중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수련이라고 하나 봐요.

회원들과 함께 수업하는 데서 얻는 부분도 클 것 같아요.

맞아요. 책 서문에도 썼지만 회원들이 저를 진짜 강사로 만들어 주셨다고 생각해요. 저는 원래 유연한 편이라서 남들은 몇 년 동안 수련해야 하는 자세도 금방 성공하고는 했어요.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다는 생각이 있어서 요가에 대한 욕심도 별로 없었고, 오히려 감각의 미묘한 차이나 호흡을 알아가는 게 더 재미있었어요. 강사 생활을 시작할 무렵에는 뻣뻣한 사람, 골반이 틀어진 사람 등 상태가 모두 다른 회원들을 각각 어떻게 가르쳐야 하는지를 잘 몰랐어요. 자격증을 취득할 때 그런 실질적인 내용을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에 따로 워크숍을 찾아다니고 해부학을 공부했죠. 수업을 하면서 배운 걸 적용하고 회원들이 점점 바뀌는 걸 보면서 얻은 게 많아요. 

회원들 중엔 어머님들이 많으신데, 저를 딸처럼 여기시고 감정 표현도 솔직하게, 자주 해주세요. 수업 끝나면 그날 수업에서 좋았던 부분을 꼭 말해주시고, 락앤락에 갓김치도 담아 주시고, 떡도 주시고, 별의별 걸 다 주세요(웃음). 요구르트 하나, 사탕 하나라도 자기가 가진 걸 나누는 마음이 대단한 거잖아요. 어찌 보면 부담스러울 수도 있는데 저는. ‘이 분이 나한테 고마운 감정을 표현하고 싶어 하는구나.’ 하고 감사하게, 소중히 받아요. 저한텐 이런 감정적인 교류가 정말 소중해요. 그게 살아 있는 보람 같아요. 예술에서는 각자의 취향에 따라 호불호가 나뉘잖아요. 그런데 요가 수업은 하다 보면 회원들의 몸과 감정이 변하는 걸 제가 그대로 느껴요. 그때 느끼는 감정은 개인 작업을 할 때와는 또 다른 결이에요. 

 

요가를 하면서 삶의 가치관이 달리지기도 했나요?

요가를 통해 삶의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몸과 마음이 준비된 것 같아요. 진짜 가치관을 바꿀 수 있는 건 언어라고 생각해요. 우리 내면에는 부정적인 단어가 긍정적인 단어보다 더 많이 내재되어 있어서 가만히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면 부정적인 생각에 잠식될 수밖에 없대요. 다채롭게 언어를 구사할 줄 알면 그런 감정을 이겨낼 수 있겠죠. ‘허무주의’와 ‘낭만적인 허무주의’는 다르잖아요. 건강한 몸과 마음이 기본이 되어야 긍정적인 언어를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요가는 꼭 거쳐야 하는 과정이에요.

 

인생에 요가만큼 작가님을 행복하게 하는 것들이 있다면요?

(반려묘 ‘야’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행복이요?

 

‘야’인가요(웃음)? 

지금 3년째 키우고 있거든요. 볼 때마다 저도 모르게 “왜 이렇게 귀엽지?” 이 말이 나와요. 반려동물은 사람에게 무한한 애정과 신뢰를 주잖아요. 야는 가끔 삐치고 새침데기같이 굴 때도 있고, 심지어 중얼거리면서 욕할 때도 있지만 제 눈에는 너무 예쁘고 사랑스러워요. 또 하나의 행복은 일상에서 뭔가 사소한 걸 발견해서 사유를 확장하는 일이에요. 요즘 뉴스에 ‘사망’이라는 글자가 많이 나오잖아요. 어느 날 제가 그걸 ‘사랑’이라고 잘못 본 거예요. 그때 ‘사망, 사랑 한 끗 차인데 사랑이 없으면 사망한 상태가 아닐까? 내 몸과 마음을 사랑해 주지 않고 방치한다면 죽은 상태가 아닐까?’ 하고 생각했어요. 어떻게 보면 말장난 같은데, 이런 작은 일을 포착해서 생각하고, 그걸 확장해서 그림을 그리고 글 쓰는 걸 좋아해요. 

 

요가와 글쓰기와 ‘야’와 일상의 작은 순간에서 행복을 찾는 작가님, 앞으로는 어떻게 살아갈 예정인가요?

앞으로는 글을 더 쓸 거예요. 《요르가즘》 리뷰 중에 다음 책이 기다려진다는 말이 더러 있더라고요. 그런 글을 볼 때마다 너무 기뻐요. 새로운 일을 경험해보고 글로 나누는 일을 계속 해나가고 싶어요. 사람들과 언어로 계속 소통하는 게 즐거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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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