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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콕의 이토록 다양한 시장들
BANGKOK
MARKETS
방콕의 이토록 다양한 시장들
백화점이나 쇼핑센터 대신 시장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방콕은 천국 같은 곳이다. 주말 밤마다 빈티지 야시장이 곳곳에서 열리고, 플리마켓은 또 얼마나 다양한지. 지역시장이 동네마다 크게 열리고, 배를 타고 구경하는 수상시장도 이색적이다.
작고 고요한 마을의
수상시장
태국으로 패키지여행을 왔던 사람들이라면 한 번씩 가보았을 담넌사두억Damnernsaduak 수상시장. 날마다 대규모의 관광객이 들르는 수상시장이니만큼 규모도 크고 사람도 어마어마하게 많이 모인다. 관광객 일색이라 별로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지만, 배를 타고 활기찬 시장의 모습을 구경하는 것이 나쁘지만은 않다. 담넌사두억 수상시장에 이미 다녀온 적이 있다면 또 다른 수상시장을 추천하고 싶다.
바로 랏마욤Latmayom 수상시장이다. 태국 친구를 통해 알게 된 이곳은 토요일만 열리는 방콕 외곽지역의 작은 시장이다. 어마어마한 배들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며 시장을 돌아보는 풍경을 기대했다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관광객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과일이나 룩친(태국식 어묵 간식) 같은 것들을 파는 몇 척의 배가 물 위에 떠 있을 뿐이다. 대신 가격이 정말 저렴해서 과일을 사기 위해 일부러 들르는 방콕 사람들도 많다. 선착장에서 1인당 150바트 정도를 내고 원하는 보트를 골라 타고 다닐 수 있는 담넌사두억 수상시장과는 달리 이곳은 2~30분 마다 도착하는 보트를 타야 한다. 그마저도 사람들이 꽉 찰 때까지 출발하지 않지만 비용은 1인당 50바트 정도로 저렴하다. 시장을 지난 보트는 작고 고요한 마을로 서서히 움직인다.
강 주변에 늘어선 수상가옥을 구경하며 가다 보면 작은 박물관에 도착한다.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규모가 매우 작은 2층짜리 티크 나무 가옥이다. 아기자기하고 오래된 소품들로 꾸며진 집인데, 태국의 가정집을 경험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구석구석 돌아보며 시간을 보내기에 좋다. 물론 박물관 입장은 무료다. 그저 7~80년대 태국에서 유행했던 군것질거리나 장난감 따위를 판매해서 수익을 낸다. 고양이가 그려진 껌을 선물용으로 몇십 개나 샀는데, 3천 원이 채 안 되는 금액이었다.
그다음 선착장은 전통적인 방법으로 향을 만드는 곳이다. 아카시아 꽃잎 모양의 작은 석고 알에 향을 일일이 입히고 엮어서 장식을 만드는데 매우 아름다웠다. 보통 태국에서는 진짜 아카시아 꽃잎을 엮은 장신구를 차에다 걸어두는데, 사고가 나지 않도록 보호해달라는 불교신앙의 의미도 있고 아카시아 꽃향기가 방향제 역할을 톡톡히 해주기 때문이다. 꽃으로 이러한 장신구를 만드는 것은 많이 보았지만 특이하게도 석고를 이용해 만든 장신구는 처음이었다. 몇 개의 가게들을 구경하고 나면 처음에 배를 탔던 곳에 내려준다. 1시간 정도의 짧은 여행이지만 아기자기한 동화 속 마을에서 지내다온 듯한 기분이 든다.
방콕의 도시 농부를 위한
파머스 마켓
서울의 마르쉐@처럼 방콕에도 도시 농부를 위한 마켓이 한 달에 두 번 열린다. 방콕 파머스 마켓Bangkok Farmers Market. 집에서 기른 유기농 채소와 과일부터 직접 구운 빵과 잼, 손으로 만든 작은 물건을 판다. 이를테면 향초나 비누, 자수를 놓은 옷, 애완견을 위한 비누 같은 것들이다. 물건을 고르다 판매자들의 얼굴을 보면 하나같이 자신감에 차있다. 애정을 듬뿍 담아 만들었다는 것이 표정에서도 느껴진다. 한 켠에는 간단한 음식과 음료도 판매하고, 장소에 따라 작은 공연을 하기도 한다. 음악과 맛있는 음식이 있으니 피크닉을 온 것 같은 느낌도 든다. 마켓에서 좋은 에너지를 얻을 수 있어 나도 한 달에 한 번은 꼭 방문하고 있다.
사실 파머스 마켓의 판매자가 되기 위한 과정은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파머스 마켓은 단순히 판매자를 모집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농작물 혹은 판매할 물건에 대한 깊은 이해와 자부심을 가진 사람을 찾고 있다. 홈페이지에서 아주 긴 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농작물이나 물품을 생산하게 된 계기와 과정, 제작과정에 대한 이해, 앞으로의 목표까지 적어야 하고, 물건을 제작하는 모습도 사진으로 상세하게 찍어서 제출해야 한다. 1차 서류접수를 통과하더라도 면접이 남아있다. 파머스 마켓은 소비자와 유기농 생산자를 연결하여 건강한 생활을 위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기 때문에, 판매자 선정 과정이 까다로운 것이다. 파머스 마켓의 판매자가 되면 판매자들끼리 정기적인 만남을 통해 아이디어를 교환하며, 깊은 유대감을 가지고 서로의 제작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마치 하나의 협동조합 같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워크숍도 진행하는데, 현재는 유기농 빵 만들기와 핸드메이드 오카리나 만들기가 진행 중이다.
방콕의 플리마켓
방콕은 플리마켓을 사랑하는 도시이다. 아직 온라인 쇼핑몰이 활성화되어있지 않아서 개인 생산자들이 물건을 팔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가 플리마켓이기 때문이다. 태국도 점점 개인 브랜드와 생산자가 늘어나는 추세인데, 플리마켓에 가면 로컬 디자이너의 창의적이고 독특한 제품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다. 비가 수시로 내리는 우기(5월~10월)에는 실내 플리마켓이, 건기(10월~3월) 때는 실외 플리마켓이 많다. 건기가 시작되는 10월이 되면 방콕에서는 일주일에 2~3개 이상의 플리마켓이 열린다. 그 규모와 분위기가 기대 이상으로 훌륭하기 때문에 이 기간에 방콕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는 플리마켓에 가볼 것을 추천한다.
더 그레이트 아웃도어 마켓
The Great Outdoor Market
조그마한 항구였던 샌프란시스코의 피어Pier가 쇼핑센터로 바뀌고, 어촌 지역인 런던의 도크랜드Dockland가 새롭게 탈바꿈하는 것처럼, 방콕에서 항만 시설이 있는 지역을 방콕의 도크랜드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그레이트 아웃도어 마켓을 기획하는 사람들은 방콕의 항만시설이 있는 흉물스러운 선착장을 완전히 바꾸어놓았다. 티피텐트와 흰색 천막, 꼬마전구만으로 아름다운 플리마켓을 꾸민 것. 찾아가기 매우 어려운 곳에서만 마켓이 열리는데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주로 건기 시즌에 비정기적으로 열리므로 미리 일정을 체크하는 것이 좋다.
H. thegreatoutdoormarket.tumblr.com
윈터 마켓 페스트
Winter Market Fest
일 년에 딱 한 번, 겨울에만 열리는 플리마켓이 있다. 매년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즈음이면 윈터 마켓이 열린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수쿰빗 소이 77번 안쪽, 산 삼란San Samran 다리 위에서 열리는 윈터 마켓은 들어서는 순간 그 분위기에 완전히 매료되고 만다. 방콕의 잘 알려진 브랜드를 비롯해 작은 개인 브랜드까지 다양하게 참여하며, 다리를 건너가면 유명한 푸드트럭 몇 대가 모여있다. 한쪽에서는 아트 워크숍과 가족들을 위한 놀이 공간도 조성되어 있다.
H. instagram.com/sansiriplc
메이드 바이 레거시
Made by Legacy
브루클린 스타일의 빈티지 마켓을 매년 정기적으로 열고 있는 메이드 바이 레거시 마켓. 방콕의 웬만한 빈티지 숍들이 모두 판매자로 참여하는 마켓으로 그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작은 소품부터 가구와 조명, 의류와 신발 등 빈티지와 관련된 분야별 제품들을 다 갖춰 놓았다.
H. madebylegacy.com
내가 만든 물건을
직접 팔아보는 일
어느 날 지인으로부터 태국 NGO단체에 물품을 기증하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물품은 모두 동대문이나 백화점 브랜드로 납품되는 여성복 중에 판매되지 못한 재고품들이었다. 정기적으로 방문하던 파타야의 보육원에 기증을 해야겠다 싶어 물건을 받아보니, 사이즈도 작고 디자인이 너무 화려해서 기증을 하기에는 어려워 보였다. 하지만 어떻게든 돕고 싶은 마음에 물품을 판매하여 재정을 마련해보기로 했다. 한국에서 온 의류라면 태국 사람들이 좋아하지만 그렇다고 집 앞에 내놓고 팔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래서 플리마켓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늘 구경만 하던 플리마켓에서 판매를 한다는 생각에 기분이 들떴다. 신청서를 보내고 참여승인 메일을 받았다. 의류와 함께 직접 만든 소이 캔들도 판매하기로 했다. 태국에서는 아직 소이 캔들이 유행하지 않아서 소이 왁스를 구하기가 어려웠지만, 어렵게 소이 왁스 판매처를 알아냈다. 20킬로그램 단위로 판매하던 터라, 어마어마한 양의 소이 왁스가 배달되었다. 친구들과 날을 꼬박새워서 캔들을 만들었다. 왁스는 어렵게 구했지만, 오일은 다행히도 쉽게 구할 수 있었다. 태국산 에센셜 오일은 많은 국가로 수출될 만큼 품질과 향이 좋고 가격도 저렴했다.캔들과 기증받은 물품을 가지고 플리마켓에 참여했다.
처음 보는 소이 캔들과 태국 사람들이 선호하는 ‘Made in Korea’ 의류를 저렴하게 내놓았더니 반응이 뜨거웠다. 게다가 구매자들 중에는 한국 교민들도 많았다. 나는 주변 가게에서 물건을 사느라 오히려 돈을 더 쓰게 되었고, 서로 물물교환을 하기도 했지만 마켓에 참여하면서 친구들을 많이 사귀게 되었다. 옷을 기증해준 업체도 여전히 정기적으로 물품을 보내주고 있다. 태국으로 배송을 받기에는 배송료가 너무 비싸서 태국에 방문하는 친구들이나 지인들에게 부탁해서 물건을 가져와야 하지만, 다들 좋은 취지로 도와주고 있다. 현재는 내가 좋아하는 빈티지 야시장에 가게를 마련해 주말마다 물품을 판매하고, 수익금의 전액은 NGO단체에 후원하고 있다.
방콕의 플리마켓은 단순히 물건을 사기 위한 공간보다는 축제를 즐기기 위한 공간으로서의 의미가 더 크다. 한국에서는 상점들만 있는 플리마켓이 많지만 방콕의 플리마켓에는 음식이 절대 빠지지 않는 것이 바로 그 이유다. 다양한 플리마켓을 다니다 보면 마켓의 성격에 맞게 옷을 입고 오는 사람들이 많은데, 예를 들면 윈터 마켓에는 크리스마스 니트를 입은 서양인들이 많았고, 빈티지 마켓에는 빈티지 원피스나 중절모에 멜빵을 맨 사람들이 눈에 뜨인다. 의상을 갖춰 입고 사람들 틈에 섞여 맛있는 음식을 먹고 즐기다 보면, 단순한 플리마켓 그 이상의 즐거움과 재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에디터 정혜미
글·사진 김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