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상상하는 모든 것들을
아티스트 박연경
연경은 자신을 산만한 사람으로 여긴다.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찍고 물건을 만들고. 계속해서 무언가를 해내는 그녀의 산만함 속엔 자신에 대한 믿음이 단단히 쌓여 있었다. 코어가 튼튼한 사람은 흔들리지 않고 다채롭게 변화할 수 있는 법이다.
유튜버, 아트 디렉터, 모델, 화가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지고 있어요. 연경 님을 어떻게 소개하면 좋을까요?
다양한 일을 하다 보니 저를 어떻게 소개해야 할지 늘 고민이 많아요. 특정한 직업보다는 그냥 계속해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스물여덟 살 박연경이라고 소개하고 싶어요.
어떤 걸 만들고 있나요?
‘아요미ayeomee’라는 브랜드를 운영하면서 가방이나 지갑처럼 제 그림을 담은 오브제를 만들고 있어요. 화가로서 작품을 만들기도 하면서 반경을 넓혀가고 있죠. 제가 하는 모든 작업을 통틀어 저 자신을 만들어가고 있다고 생각해요. 뭘 만들던 타인의 간섭이나 개입 없이 저 자신을 표현하고 있어요.
‘아요미’ 뜻이 궁금했어요.
사실 조금 유치한 뜻이 담겼는데요. 처음 SNS를 시작하면서 닉네임을 고민하다가 ‘Awesome’과 제 이름 ‘Yeonkyung’의 스펠링을 조합해서 ‘ayeomee’로 부르기로 한 거예요. 그때는 정말 멋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거든요(웃음).
단순한 의미였군요. 아요미는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사람들이 대부분 그림을 작품으로 여기고 어렵게 접근하면서 쉽게 소유하지 못해요. 그림을 감상하는 건 쉽지만 구매나 소장으로 이어졌을 때 그 과정이 매끄럽지 않다고 느껴왔고요.그림을 업으로 삼은 이상 이런 소비의 벽이 앞으로 제 창작 생활과 경제 활동에 장애물이 될 거라고 생각했죠. 조금 더 편하게 사람들에게 다가갈 방법을 고민하면서 아요미를 오픈했어요. 그림을 단순히 작품으로만 두기보다는 더 다양한 시선으로 해석하고 오브제를 만들어 그 안에 새겨 넣기로 한 거죠. 그림을 사는 행위가 비싼 취미나 수집 활동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싶었어요. 생활과 밀접한 물건에서 작품을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아요미예요.
공감해요. 저도 소비자로서 유난히 작품 소비에 벽이 있다고 느껴왔거든요. 화가로서 작품 가격을 책정하는 일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궁금해요.
어려운 일이죠. 제 작품의 가격을 정할 때 처음엔 크기를 기준으로 나눠볼까 생각했는데요. 각각의 작품에 들인 시간이 다르고 쏟아부은 감정의 양도 다른데 어떻게 그 가치를 따질 수 있을까 싶어요. 곧 진행할 전시 오픈이 2주 정도 남았는데 사실 아직도 가격을 못 정했어요. 작품 하나하나가 너무 아까운 마음이에요. 과연 팔 수 있을까요(웃음)…? 그림에 제 일부가 담겼다는 생각에 점점 더 마음이 무거워지네요. 그래도 생계가 달린 일이니 팔아야겠죠.
작품을 아끼는 마음이네요. 그림은 언제 처음 시작했나요?
중학교 1학년 때였는데, 당시에 제가 공부를 너무 안 해서 성적이 심각하게 안 나온 적이 있어요(웃음). 선생님이 부모님 사인을 받아 오라고 하시는데 도저히 못 보여드리겠더라고요. 결국 위조 사인을 했다가 들켜 버렸어요(웃음). 반나절 정도 가출했다가 돌아왔는데 엄마가 저를 말없이 어딘가로 데려가시더라고요. 그때 처음 화실에 갔어요. 도착했을 때 산속에 있는 정신병원인 줄 알고 엄청 겁에 질렸던 기억이 나요. 엄마가 매주 다니시던 화실이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엄마는 제가 그림을 그리면서 마음의 안정을 찾길 바라셨던 것 같아요. 그때부터 지금까지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됐죠.
시작이 드라마틱했네요(웃음). 최근에 그림 스타일이 바뀐 것 같았어요. 예전에는 무채색의 어두운 톤으로만 그렸다면 이제는 다양한 색을 표현하고 있죠. 변화 계기가 있었나요?
곧 열리는 전시의 주제가 ‘상상 속 식물도감’이에요. 거의 1년 동안 준비했는데 중간에 잘 풀리지 않던 시기가 있었어요. 집중도 어렵고 답답한 마음이 들어서 이것저것 새로운 재료를 시험해 보다가 다양한 색을 바탕으로 꽃을 그리기 시작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던 건 아니에요. 사람은 살면서 너무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경험하잖아요. 기억과 동시에 망각을 함께 하고요. 오늘 처음 봤다고 해도 과거에 봤던 건지도 모르죠. 그런 맥락에서 제 머릿속에 떠오르는, 상상하는 모든 것들이 사라지지 않고 제 무의식으로 남는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쌓인 것들을 표출하는 게 제가 그리는 결과물이에요. 그림 스타일이 변한 것 같지만 새로운 걸 만든 건 아니겠죠.
전시가 기대되네요. 여러 직업을 소화하면서 얻은 인사이트가 남다를 것 같은데, 사물을 바라보고 소비하는 기준은 어떨지 궁금해요.
소비를 잘 안 하는 편인데 그럼에도 제 눈길을 끄는 건 색이에요. 블루를 좋아해서 그런지 쨍한 것부터 탁한 것, 맑은 블루까지 다양한 파란색 물건이 많아요. 사실 요즘엔 사물보다 음식 소비에 관심이 많아졌어요. 예전엔 겉모습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서 피부 관리에도 많은 돈을 투자했고, 아트 디렉터로 일할 때는 현장에서 남들에게 만만해 보이지 않을 옷들을 많이 샀는데(웃음), 이제는 운동과 건강한 식단에 투자하기 시작했어요.
어떤 계기가 있었나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엄청나게 많은 술을 마시는 데 돈과 시간을 썼어요. 거의 한 달에 이틀 빼고는 꼭 술을 마신 것 같아요(웃음). 원래 잘 마시기도 하고 친구들과 보내는 시간을 너무 좋아했거든요. 그런데 어느 순간 매일 취해서 정신이 몽롱해진 제 모습을 인지했어요. 그 길로 바로 술을 끊어야겠다 결심하고 PT를 등록했죠. 먹는 음식도 채소 위주로 바꾸고 명상도 시작했고요. 저 자신을 지키려는 마음이 생긴 것 같아요.
많은 변화가 생겼네요. 그림 스타일부터 생활 습관까지 뭐든지 느끼는 게 있으면 바로 실행하는 추진력이 있는 것 같아요.
저의 장점 중 가장 좋아하는 점이에요. 진심으로 다가오는 게 있으면 바로 밀어붙이는 성격인데 여러 직업을 소화하는 데도 도움이 돼요. 전 제가 산만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요. 누군가는 산만함을 고쳐야 하는 성격이라고 하지만 저는 제가 가진 산만함을 믿고 행동하는 편이에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좋은 속도감과 리듬감을 주기도 하고요.
연경 님의 산만함은 사실 에너지였네요. 모든 일을 프리랜서로 소화하고 있는데 경제 활동이 일정하지 않다는 점에서 오는 불안감은 없나요?
오히려 반대인 것 같아요. 여러 일을 하면서 다양한 수입 통로가 생겼고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 있어요. 오늘 그림이 팔리지 않아도 아요미에서 수입이 잡힐 수 있으니까요. 원래 불안감을 잘 느끼지 않는 성격이기도 하고요(웃음).
대단해요. 저는 월급쟁이여도 돈에 관련해서는 매번 쫓기는 기분이 들거든요. 사고 싶은 것도 너무 많고(웃음).
저도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에요. 예전에는 무조건 아끼자는 마음이었다면 요즘은 당장 내가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는데, 나 자신을 진심으로 달랠 수 있는 일이면 써보자고 생각해요. 그렇다고 막 쓰는 게 아니라(웃음) 제 취향과 일치한다면, 그게 정말 나를 위로한다면 과감히 써보는 거죠. 사실 전에 분홍색 바지를 충동적으로 사고 후회한 적이 있어요. 옷장을 열었는데 무채색 옷들만 있어서 갑자기 컬러풀한 옷이 필요하다고 느낀 거죠. 평소에 사지 않았던 이유가 있었을 텐데…. 그 이후로 제 취향을 잘 믿어 보기로 했어요. 나한테 없는 거라면 내가 원하지 않는 거구나, 하고 생각하면 쓸데없는 소비 욕구가 절제되더라고요.
취향을 믿는다는 말이 좋아요. 마지막 질문으로 행복한 상상을 해볼까요. 지금 당장 100억이 생긴다면 어디에 쓰고 싶어요?
와 너무 좋네요. 만약에 생기면 제가 10억을 드릴게요.
10억씩이나요? 욕심이 없군요! 감사히 받을게요(웃음).
그래도 넘칠 만큼 남으니까요(웃음). 나머지 돈으로 전원주택을 짓고 그 안에서 창작 활동을 하는 친구들과 살고 싶어요. 서로 재능을 나누고 성장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