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udio Book

최강희 ㅡ 배우

한입 가득 음식을 밀어 넣고 냠냠 먹는 것도, 썰지 않은 김밥을 한 손에 쥐고 우걱우걱 씹는 것도, 풍선껌을 한 통 가득 입에 넣고 오물오물 혀를 굴려 풍선 부는 것도, 미처 다 씹지 않은 음식물을 한쪽에 두고 또 다른 음식을 밀어 넣어 함빡 먹는 것도, 최강희에겐 재미이자 사랑에 다름 아니다.

사랑엔 많은 언어가 있지만
상대의 끼니를 챙기는 게 사랑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재미가 끼니, 끼니가 재미

강희 씨 집에 초대받은 순간부터 지금까지 설렜어요(웃음). 티브이에서 보던 거랑 똑같은데, 향도 나고 훨씬 따듯한 느낌이에요. 반려묘 ‘우리’가 가장 먼저 반겨주네요.

와, 우리가 되게 좋아하네요. 최근에 취재 때문에 외부 사람이 몇 번 집에 왔는데 우리 반응이 각양각색이더라고요. 며칠 전엔 몇 명 오지도 않았는데 어딘가에 콕 박혀서 얼굴도 안 보여줬고, 티브이 촬영 때는 스태프가 꽤 많았는데도 자연스럽게 돌아다녔거든요. 우리 나름대로 기준이 있는 것 같은데 오늘은 냄새도 맡고 잘 돌아다니네요.

 

환대받는 거 같아서 기뻐요. 라디오 최강희의 영화음악들으면서 왔는데 그래서인지 내내 같이 있는 기분이에요. 매일 새벽 5시 15분에 일어난다고 하셨지요. 11시엔 라디오 하러 가실 테고 오늘처럼 인터뷰하는 날도 있을 것 같아요. 하루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어요?

최근 한 달은 그간 해오던 거랑은 완전히 다르게 살았어요. 얼마 전 예능 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 출연하고 부쩍 관심을 받고 있는데요. 대중은 저를 좋게 봐주는 것 같지만 주변 사람들한테는 걱정을 많이 샀어요. 제 모습이 좀 불안정해 보였는지 검사받아 보자는 권유도 있었고, 병원 소개해 주는 지인도 있었거든요. 푹 쉬고 좀 자라는 이야기를 워낙 많이 들어서 요즘은 5시 15분 기상 알람도 끄고, 운동도, 예배도 쉬고, 한 달 동안 아무것도 안 하는 생활을 해봤어요. 근데 똑같더라고요(웃음). 새벽형 인간이라 5시쯤 되면 저절로 몸이 깨요. 푹 자든 그렇지 않든 낮잠 자고 조는 것도 똑같고요. 원래 루틴은 5시 15분에 일어나서 새벽 예배를 갔다 운동하러 가는 거였어요. 그사이 졸리면 30분 정도 자기도 하고요. 저는 ‘호랑이 트레이너’로 알려진 양치승 관장님 헬스장에 다니는데요. 운동 끝나면 관장님이 맛있는 걸 해주시거든요. 그거 먹고 부랴부랴 급히 라디오 하러 가는 게 일상이었지요. 라디오 끝나면 영어 공부를 하기도 하고, 친구를 만나기도 해요. 제일 좋아하는 일과는 라디오 끝난 낮에 한가하게 극장 가서 영화 보는 거예요. 라디오 하는 CBS 건물 바로 옆에 메가박스가 있거든요. 일주일에 이틀 정도는 교회 사람들 챙기면서 시간을 보내요. 아, 요즘엔 금요일마다 유튜브 촬영도 하고요.

 

유튜브 채널 나도최강희! 저도 챙겨 보고 있어요. 여러 직업을 체험하고 주변 사람들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콘텐츠가 참 좋더라고요. 동네 사람들 다루는 편에서 “우리 동네 대흥동!” 하고 소리치는 거 보면서 ‘이렇게 동네를 공개해도 되나.’ 걱정하기도 했어요. 한편 그 모습이 강희 씨 같아서 반갑기도 했고요.

우리 아래층 카페에서 우연히 만나 같이 올라왔잖아요. 보셨죠? 새하얀 옷을 위아래로 차려입고 카페에 들어가도 아무도 말 걸지 않고, 아무 일도 안 생기는 거(웃음).

 

그러고 보니 저만 깜짝 놀란 것 같기도 해요(웃음). 물병 두 개에 음료를 한가득 포장하셨죠.

오늘은 특별히 손님이 오시니까 오전에 미리 물병을 맡겨 두었어요. 물병에 담아서 포장하면 쓰레기도 안 나오고 따라 마시기도 좋을 것 같아서요. 어떤 걸 좋아하실지 몰라서 커피랑 차 두 종류로 준비했어요. 하나는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는 요즘 제가 즐겨 마시는 아이스 자몽허니블랙티예요.

 

물병 받자마자 흰 바지에 아메리카노 ‘철철철’ 다 흘리셨잖아요. 엘리베이터에서는 릴레이처럼 찻물을 쏟고. 집에 올라오자마자 바지 빨래 대잔치였죠(웃음).

오늘 차림에 맞춰 머리도 길게 풀고 온 건데, 집에 오자마자 옷 갈아입는 바람에 스타일링한 보람이 없어졌어요. 이따 사진 찍을 때 뭐가 더 잘 어울리는지 봐주셔야 해요(웃음).

 

물론입니다(웃음). 나도최강희 ‘동네 두 바퀴’ 편 보면서 지금 사는 동네를 참 좋아한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좋아하는 동네 김밥집 사장님을 인터뷰하기도 했죠. 그때 가게에 오가는 손님들이랑 자연스럽게 이야기 섞는 모습이 인상 깊었어요. 

원래 동네를 좀 누비고 다니는 스타일인데, 혼자 사는 게 처음이라 이 동네에 더 애정을 품게 돼요. 특히 김밥집 촬영 땐 ‘김밥’이란 공통 주제가 있으니까 더 할 말이 많았고 편하기도 했어요.

 

그 콘텐츠 재미있게 봤는데, 김밥을 안 썰어 드신다고요?

통째로 들고 우걱우걱 씹어 먹는 게 좋아요(웃음). 다들 어릴 때 그렇게 먹지 않았나요? 엄마가 집에서 김밥 싸주시면 고소한 냄새를 참을 수가 없어서 썰기도 전에 통째로 들고 먹곤 하잖아요. 저는 시골 애처럼 뭐든 원초적이고 자연적인 게 좋아요. 나무가 있으면 올라가 보고 싶고, 돌담이 보이면 기어오르고 싶고 그래요. 실제로 어릴 때는 그렇게 지내기도 했고요. 한창 술 마실 땐 기분 좋아지면 길바닥에 앉아서 맥주랑 과자를 먹기도 했어요. 프링글스랑 맥주, 잘 어울리잖아요(웃음). 저는 제가 영화 같은 이미지 속에 있기를 바라요. 그런 상황 속에 놓인 제 모습이 좋아서요.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운동 끝나고 양치승 관장님이 해준 떡볶이 먹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어요. 통째로 조리된 어묵을 그대로 씹어 드시고, 기다란 떡볶이도 입안 가득 담고, 물도 벌컥벌컥 드시더라고요. “나는 내가 복스럽게 먹는 게 좋아.”라고 이야기하기도 했죠.

저도 예쁘게 먹을 수만 있다면 예쁘게 먹고 싶어요. 근데 예쁘게 먹는 건 저한테 어울리지 않더라고요. 또, 저는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해주는 게 좋아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2001) 같은 애니메이션에서 애들이 우걱우걱 먹는 장면 자주 나오잖아요. 그런 모습 보면 힐링되지 않나요? 제가 그런 모습으로 누군가 차려준 음식을 먹는다면 음식을 만든 사람도 좋아할 거란 걸 아니까 더 복스럽게 먹고 싶어져요. 제가 이 사람이 해준 떡볶이를 입안 가득 넣고, 어묵을 더 먹고 싶어서 입안 가득한 데다 또 넣는 모습을 보면 얼마나 기분이 좋을까 싶은 거죠. 서로 한 번 더 웃게 되기도 하고요.

강희 씨가 만든 음식도 우걱우걱 먹어요?

저… 요리 못해요(웃음). 자취하면서 이제 요리 좀 해보자, 해서 밥통을 샀는데요. 저건 그냥 밥통일 뿐이에요.

 

그럼 평소에 식사 어떻게 하세요?

저는 먹는 것에 예민하지도, 까다롭지도 않아요. 누가 주는 거면 다 먹어요. 챙겨주는 언니들이 많아서 받아오는 음식도 잘 먹고, 냉장고에 유통기한 임박한 거 있으면 그것부터 꺼내 먹고. 있는 걸 다 잘 먹으니까 냉장고가 거의 비어 있는 편이에요. 근데 또 누가 챙겨주지 않고, 냉장고에도 먹을 게 없으면 안 먹기도 해요. 음식은 누가 챙겨주면 먹고, 아니면 마는 거!

 

세 끼를 제때 챙겨 먹는 스타일은 아니군요.

저한테 ‘끼니’라는 개념은 없는 것 같아요. 오히려 밥은 재미가 있느냐 없느냐의 문제예요. 재미가 있겠다, 싶으면 먹거든요. 이를테면 ‘지금 오다리랑 갈배 사이다 먹으면 재미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면 나가서 사 먹어요. ‘편의점에서 삼각김밥에 컵라면 먹으면 재미있겠다.’ 같은 생각도 종종 하고요. 편의점 옥수수만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어도 맛있고 재미있잖아요. 이렇게 음식에서 오는 재미도 있는데요, 사실 저한텐 같이 먹는 사람의 재미가 가장 커요. ‘지금 누구랑 뭘 먹으면 맛있겠다.’라는 생각이 들면 그 친구한테 연락해요. 보통은 재미를 따라 식사를 챙기는 편이죠.

 

음식을 맛으로 즐기지 않아요?

네. 맛보다는 재미! 그래서 풍선껌 좋아해요. 집에 항상 있는 것 중 하나가 풍선껌이에요. 한 번 먹기 시작하면 무조건 통째로 먹죠. 하나씩 하나씩 까서 한 통을 다 먹고, 신나게 풍선 불고, 딱딱해지면 뱉고, 또 먹고 싶어지면 한 통 다 씹고, 한참 불다가 딱딱해지면 뱉고. 아, 저 자다가도 많이 먹는 편이에요.

 

자다가요?

네(웃음). 그래서 양치를 언제 해야 할지 잘 모르겠어요. 유전인 것 같기도 해요. 아버지가 저 어릴 때 항상 머리맡에 미제 과자들을 두셨어요. 지금이야 쉽게 살 수 있지만 그때만 해도 오레오가 귀했거든요. 머리맡에 잔뜩 두고 주무셨는데, 자다 말고 일어나서 드세요. 드시다 말고 영화를 보기도 하고, 바로 주무시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자다 말고 일어나서 뭐 드셨어요?

귤이요. 귤 진짜 많이 까먹어요. 그걸 먹으려고 일어나는 건 아닌데요, 눈뜨면 눈뜬 김에 뭔가 먹어야지 싶어져요. 먹다 뭔가 보고 싶으면 볼 걸 틀어놓고 보다 잠들기도 하고, 먹자마자 그냥 자기도 하고요.

 

자다 일어난 김에 목 축이는 거랑 비슷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가 봐요. 저는 물보다 귤 먹는 걸 좋아해요. 수분 섭취도 과일로 하는 편이에요. 물은 마셔야 피부가 좋아진다고 하니까 챙겨 마시기는 하는데요, 재미는 없어요.

 

이번 호 주제어가 ‘식탁 위에서’예요. 가장 이야기하기 쉬운 ‘맛집’부터 얘기해 볼까요? 나도최강희에서 소개해 주신 ‘롤앤롤김밥’도 궁금해요.

이따 같이 가요. 제가 김밥 사드릴게요. 음… 그럼 맛집 추천 한번 해볼게요! 《AROUND》 독자들이 좋아할 것 같은 곳인데요. 술 좋아하시면 자양동에 있는 ‘신춘’! 사장님이 알려지는 걸 싫어하셔서 포털사이트에서 정보를 다 지웠어요. 지도 앱에서 리뷰도 못 보게 해놨고, 검색하면 분식집으로 분류될 텐데 술집이에요. 영화 후아유(2002)에서 조승우 씨가 부른 노래 만든 분이 사장님이세요. 고고70(2008) 음악감독도 하셨고요. 저녁 5시에 문을 여는데 재료를 딱 적당량만 사 와서 다 떨어지면 영업을 끝내요. 떡볶이도 맛있고, 튀김도 일품이에요. 술은 일본에서 맛보고 사장님 마음에 든 술이 있으면 가지고 와서 판매하고, 언더록 주류도 많아요. 아, 아이스크림에 시나몬 가루 얹어 주시는 게 진짜 맛있는데, 옛날엔 메뉴에 있었는데 지금은 사라졌거든요. 해달라고 하시면 해주실 거예요. 알려지는 거 싫어하시는데 막 추천하고 있네(웃음).

 

개인적으로 떡볶이랑 튀김은 최고의 안주라고 생각해요(웃음). 밥 먹기 좋은 식당도 추천해 주실래요?

광진구에 ‘날일달월’이라고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생식 식당이 있어요. 생채소를 썰어서 내놓으시는데요. 쌈이랑 같이 나와요. 쌈에 채소를 싸 먹는 거죠. 근데 채소가 너무 맛있어서 아무 조리 없이 쌈만 싸 먹어도 맛있어요. 사장님이 항상 단정하고 정갈한 차림으로 웃고 계시는데, 음식이 나오면 “진지 드세요.” 하시거든요. 그 말이 정말 듣기 좋아요. 소품도 전부 자연 친화적이에요. 재생지를 잘라서 올려놓고, 빵도 돌로 구워서 빵집에서 사 먹는 거랑은 느낌이 완전히 달라요. 암 환자와 식사할 일이 있어서 처음 가게 됐는데 제 몸과 마음도 건강해지는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어요. 음료도 정말 맛있는데… 아, 콩물! 콩물 꼭 드셔 보세요.

더 많은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AROUND Club에 가입하고 모든 기사를 읽어보세요.

AROUND는 우리 주변의 작은 것에 귀 기울이고 그 안에서 가치를 발견합니다.

에디터 이주연(산책방)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