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unfamiliar heaven

낯선 천국에서

BOOK & MOVIE 〈차갑고도 푸른, 천국보다 낯선

At the unfamiliar heaven

낯선 천국에서

자신이 태어나서 자라고, 매일을 살아가는 장소를 이방인의 눈으로 보는 일이 과연 가능할까? 유디트 헤르만의 소설 〈차갑고도 푸른〉의 아이슬란드 여자는 그런 일을 경험하고, 짐 자무쉬의 영화 〈천국보다 낯선〉의 주인공들은 자신의 나라 미국의 이방인이 되어 미국 땅을 배회한다.

내가 요즘 지겹도록 떠들고 다니는 이름은 유디트 헤르만이다. 요즘 나의 책 추천 리스트에는 늘 유디트 헤르만의 책이 포함되어 있다. 독일 작가인 그녀는 몇 권의 소설을 펴냈는데 우리나라에 번역된 책들 중 대부분이 절판되었다. 슬픈 일이다. 하지만 딱 한 권, 《단지 유령일 뿐》이라는 책은 아직 구할 수 있다. 이 칼럼을 읽고 유디트 헤르만에게 관심이 생기셨다면 구할 수 있을 때 이 책을 샀으면 좋겠다. 정말 아름다운 책이다. 장담할 수 있다. 여러 번 거듭 읽어도 좋다. 이것 역시 장담할 수 있다.

그녀가 좋아하지 않는 것은 아이슬란드에 대해 얘기하는 것이다. 자제력을 잃어버릴 정도의 감동과 적절한 표현을 찾으려는 노력, 경치가 관광객들에게 끼칠 수 있는 심리적 효과. 그녀는 아이슬란드에 대해 말하길 원치 않고, 도대체 어떻게 여기 사는 걸 견뎌 내는지 설명하는 것도 싫어한다. 관광객들은 아이슬란드를 좋아하지만 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들은 여기서 살 수 없고 요니나는 어떻게 이 태도를 이해해야 하는지 모른다. 관광객들이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 두면 그녀는 온순하게 그녀가 알고 있는 것을 그들에게 보여 준다. 관광객들에게 보류해 두는 것도 없고 숨겨 놓는 장소도 없다. 단지 동참할 수 없을 뿐이다. 그녀는 관광객들이 보는 것처럼 이 섬을 볼 수 없다. 감동할 수가 없다. 그런데 이레네와 요나스가 처음으로 그걸 바꾸어 놓았다. 

– 유디트 헤르만, 〈차갑고도 푸른〉 중에서

유디트 헤르만의 작품집 《단지 유령일 뿐》에 실린 단편은 모두 여행에 관한 이야기다. 그녀는 늘 여행에 관해서, 여행하는 사람들에 관해서, 이동에 관해서 쓴다. 그중 〈차갑고도 푸른〉의 배경은 아이슬란드다. 눈과 불과 얼음의 땅.

아이슬란드 여자 요니나는 외국 관광객을 위한 가이드 일을 한다. 어린 딸이 하나 있는데 아이 아빠가 떠난 후 남자친구인 마그누스와 셋이서 함께 살고 있다. 마그누스는 조용하고 침착하고 예의 바르지만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다. 요니나는 그런 마그누스를 사랑하면서도 종종 그와는 영원히 가까워질 수 없을 것 같은 불안감에 사로잡히곤 한다.

어느 날 마그누스가 베를린에 머물 때의 친구인 이레네가 아이슬란드에 온다. 얌전한 모범생 같은 이레네와 함께 등장한 요나스는 마그누스와는 정반대의 남자다. 열정적이고 감상적이며 머릿속에 떠오른 것을 모조리 바깥으로 표출하는 남자. 요니나와 마그누스, 이레네와 요나스. 네 사람은 며칠 동안 함께 시간을 보내는데, 그러는 동안 요니나는 점점 자신의 고향을 이레네와 요나스의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신비롭고 아름다운, 경탄이 절로 나오는 땅. 모든 것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땅.

이레네는 여행안내 책에서 읽은 내용을 들려준다. 기원전 325년에 아이슬란드를 묘사한 울티마 툴레, 가장 멀리 떨어진 북쪽에 대한 얘기다. “내가 여기서 바로 그렇게 느끼고 있어. 모든 것에서 떨어진, 가장 멀리 떨어진 땅.” 그녀의 말에 “그러니 또 가장 가까운 곳이기도 하지.”라고 요나스는 소리친다. 요니나는 이런 표현을 생전 처음 듣는데, 이 모든 것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른다. 그녀는 늘 그렇듯, 이런 것들이 우습고 유치하고 순진하다고 생각하지만 이레네와 요나스의 열광을 방해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그리고 이 열광은 사실 그녀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키며, 잠시나마 그녀를 설득시키기도 한다. 처음으로 그녀는 연기에 휩싸인 화산과 물길이 치솟는 나라에 산다는 느낌이 든다. 모든 질문이 하나의 답으로, 해독할 수 없는 답으로 이어지는, 그런데도 그것으로 충분한 나라. 

– 유디트 헤르만, 〈차갑고도 푸른〉 중에서

어느 순간 요니나는 요나스를 사랑하게 된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어버린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요니나는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요나스는 요니나의 마음을 모른다. 그녀가 사랑에 빠진 것을 마그누스는 알고 있을까. 알면서도 모른 체하는 걸까. 이레네와 요나스가 독일로 돌아간 후에도 요니나는 여전히 그들을 기억한다. 1년이 지나 요니나는 더 이상 그들을 생각하지 않게 되지만 요니나와 마그누스의 사이에는 여전히 그들이 있다. 그들이 아이슬란드에 두고 간 모든 것들이.

아주 짧고 아름다웠던 낭만의 시간을 요니나가 잊어버린 것은 아니다. 그녀는 잊어버리지 않았고, 오히려 아주 똑똑히 기억해 원하기만 한다면 모든 것이 한꺼번에 떠오른다. 일주일 동안의 일 하나하나가. 요나스의 허리띠에 있던 소비에트 연방의 별, 왼손에 끼고 있던 이레네의 타원형의 월장석 반지, 성에가 낀 커다란 병에 담긴 탱자 맛이 나는 앱솔루트 보드카. 북쪽으로 향하는 순환 도로 어느 분식점에서 우유 대신 설탕을 넣은 마그누스의 커피, 함께 시간을 보낸 넷째 날의 일기 예보, 눈사람 두 명이 싸우는 것을 그린 어린 수나의 그림, 그리고 요나스의 눈동자 색깔, 녹색, 진녹색, 동공 주위의 작고 노란 원. 그녀는 하나도 잊어버리지 않았다. 단지 더 이상 생각하지 않을 뿐이다.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지고 무기력해지기만 한다. 

– 유디트 헤르만, 〈차갑고도 푸른〉 중에서

유디트 헤르만의 문장들은 모호하고, 무슨 말을 하는 건지 잘 모를 것 같기도 하다. 나는 거의 끊어지거나 나뉘지 않는 그 문장들을 음악을 듣는 기분으로 읽는다. 조금 어려운 재즈 연주곡을 들을 때의 기분과 비슷하다. 굳이 이해하려 하지 않는다. 그저 마음으로 느낀다. 리듬을 타고 조금 더, 조금 더 깊이 내려가 보려고 애쓴다. 내 안에 있는 검고 끈적한 무언가를 향해서. 어딘가 먼 곳, 어쩌면 아프리카 대륙에서 온 나의 유전자 조각을 향해서. 인간이 본질적으로 품을 수밖에 없는 외로움과 고통과 슬픔과 악한 것, 때로는 기쁨과 즐거움과 선한 것을 향해서. 욕망과 자제력을 향해서. 

나는 지나치게 울적한 이야기는 좋아하지 않는다. 굳이 책을 읽으면서까지 마음이 어두워지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유디트 헤르만의 이야기는 어둡고 대책 없어 보이지만, 실은 숙명적인 어둠을 품고서도 안간힘을 써서 밝은 곳을 향해 나아가려는 이들의 이야기다. 그리고 나는 그런 이야기를 통해 구원을 받는 느낌이다. 그렇다. 좋은 이야기에는 언제나 ‘구원’이 있다. 

그래서 헤르만의 책을 읽고 나면 머리는 가벼워지고 마음은 묵직해진다. 머리가 무거워지고 마음은 가벼워지거나, 머리도 가벼워지고 마음도 가벼워지거나, 머리도 묵직하고 마음도 무거워지는 이야기와는 다르다. 이렇게 훌륭한 작가가 여기에서는 왜 이렇게 인기가 없는지 잘 모르겠다. 아무리 못해도 최소한 내 책보다는 훨씬 더 많이 읽혀야 하는 책이다.

짐 자무쉬의 오래된 영화 〈천국보다 낯선〉을 오랜만에 다시 봤다. 뉴욕에서 도박이나 하며 세월을 보내는 젊은이 윌리의 집에 헝가리에서 온 사촌 에바가 도착한다. 윌리와 에바는 열흘 정도 내키지 않는 동거를 하게 된다. 좋게 보면 쿨하고 나쁘게 보면 매사에 시큰둥한 윌리와 에바는 가까워질 듯 가까워지지 않는데, 곧 에바는 오하이오의 숙모네 집으로 떠난다. 그리고 1년 후, 사기 도박도 지겨워진 윌리는 친구 에디와 함께 에바를 만나러 오하이오로 간다.

햄버거 가게에서 일하던 에바는 그들을 반기지만 여기는 춥고 썰렁하고 할 일이라곤 없는 동네다. 윌리와 에디는 곧 플로리다로 떠나기로 결정한다.

따뜻한 날씨, 하얀 모래,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 아름다운 바다. 그들은 그런 것들을 기대하며 납치라도 하듯 에바를 데리고 간다. 하지만 플로리다 역시 오하이오만큼이나 황량한 곳이다. 심지어 그들이 묵는 싸구려 모텔에서는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윌리와 에디는 도박을 하다가 가진 돈을 모조리 잃고, 혼자 방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도 짜증스러워진 에바는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가 낯선 남자한테서 느닷없이 돈 꾸러미를 받는다. 모자 때문에 사람을 착각한 것이다. 에바는 편지와 돈의 일부를 남기고 짐을 싸서 공항으로 떠나고 윌리와 에디는 그녀를 쫓아 달려간다. 

다시 보니 밋밋하고 황당무계한 줄거리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깊이 없음’ 때문이라는 걸, 더 이상 젊지 않은 나는 깨닫는다. 이들의 삶에는 깊이가 없다. 윌리와 에디와 에바는 깊이 자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답지 않은 농담이나 주고받고 쿵푸 영화를 보고 담배를 태우고 밤새 TV를 쳐다본다. 청소도 설거지도 요리도 하지 않는다. 진지한 관계를 원하지도 않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을 생각도 없고, 가족들의 일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다. 그런 삶이 그들에게는 쿨한 것이니까. 그런 깊이 없는 삶이.

미국에 산 지 수십 년째인데도 헝가리 말만 하며 관절염에 걸려 절뚝거리는 할머니, 거리 한구석에 서서 벌벌 떨며 공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화난 얼굴의 남자. 그것이 그들이 아는 바깥세상의 전부다. 그러니 깊이가 있어 봤자 뭐하겠는가. 그들은 미국 사회의 하층민이거나 이방인이고, 그들에게 허락된 삶은 진저리 치게 추운 겨울날 아침 공장으로 출근하거나 관절염에 걸린 채 늙어가는 일 뿐일 텐데. 그렇다면 최대한 이 세상의 표면에서 살아가자. 호수 위에 언 얼음이 깨지지 않도록 가볍고 매끄럽게 스케이팅하는 것처럼.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결심한 것인지도 모른다. 

흑백으로 촬영한 이 영화 속 미국의 풍경은 마치 프레스기로 납작하게 누른 것처럼 밋밋하다. 색이 없으니 세상도 활기와 생기를 잃은 듯하고, 그저 이상할 정도로 좁고 썰렁하고 춥게만 느껴진다. 이런 풍경이 바로 윌리와 에디와 에바의 눈에 비친 미국일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땅인데도 영원히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낯선 땅. 천국보다 낯선 땅. 

그의 진짜 표정은 열려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친절하다. 얼굴은 좁고 사내아이 같으며, 윤곽이 또렷하고 아름답고, 그 어떤 것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어쩌면 입이 조금 어린애 같고, 안경 뒤에 있는 눈은 아주 작고, 자주 눈살을 찌푸리고, 눈빛은 텅 비어 있으며 주의 깊지 않다. 단지 가끔 그의 얼굴이 보기보다 차갑고, 공격적이며, 권위적이고, 단호하고 냉정해 보이는데, 그가 물에서 나오거나 잠을 잘 때 그걸 볼 수 있지만, 솔직히 그가 이 냉정함을 감추고 싶어 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 차가움에 그녀가 거부감을 갖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끌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낯선 사람의 차가움, 어쩌면 수천 년 동안 같이 지낼 수 있지만, 끝내 속내는 알 수 없는 그런 차가움이다. 얼음같이 차가운 사실, 차갑고도 푸른 사실. 이레네는 아이슬란드의 이 관용구를 아주 좋아했다. 

– 유디트 헤르만, 〈차갑고도 푸른〉 중에서

유디트 헤르만의 이야기에는 늘 장소가 중요하다. 그녀는 아는 것 같다. 인간과 그가 서 있는 장소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차갑고도 푸른〉은 사랑하는 이가 있는 한 여자가 다른 남자를 그리워하면서도, 지금 곁에 있는 남자를 여전히 사랑하고 또 그에게 낯선 감정을 느끼는 이야기다. 동시에 그것은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그녀의 땅,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따뜻한 날씨, 하얀 모래, 비키니를 입은 여자들, 아름다운 바다. 그들은 그런 것들을 기대하며 납치라도 하듯 에바를 데리고 간다. 하지만 플로리다 역시 오하이오만큼이나 황량한 곳이다. 심지어 그들이 묵는 싸구려 모텔에서는 바다도 보이지 않는다. 윌리와 에디는 도박을 하다가 가진 돈을 모조리 잃고, 혼자 방에서 그들을 기다리기도 짜증스러워진 에바는 모자를 쓰고 밖으로 나갔다가 낯선 남자한테서 느닷없이 돈 꾸러미를 받는다. 모자 때문에 사람을 착각한 것이다. 에바는 편지와 돈의 일부를 남기고 짐을 싸서 공항으로 떠나고 윌리와 에디는 그녀를 쫓아 달려간다. 

다시 보니 밋밋하고 황당무계한 줄거리의 이 영화가 흥미로운 이유는 바로 ‘깊이 없음’ 때문이라는 걸, 더 이상 젊지 않은 나는 깨닫는다. 이들의 삶에는 깊이가 없다. 윌리와 에디와 에바는 깊이 자체를 거부하는 것처럼 보인다. 시답지 않은 농담이나 주고받고 쿵푸 영화를 보고 담배를 태우고 밤새 TV를 쳐다본다. 청소도 설거지도 요리도 하지 않는다. 진지한 관계를 원하지도 않고, 열심히 일해서 돈을 모을 생각도 없고, 가족들의 일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다. 그런 삶이 그들에게는 쿨한 것이니까. 그런 깊이 없는 삶이.

미국에 산 지 수십 년째인데도 헝가리 말만 하며 관절염에 걸려 절뚝거리는 할머니, 거리 한구석에 서서 벌벌 떨며 공장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화난 얼굴의 남자. 그것이 그들이 아는 바깥세상의 전부다. 그러니 깊이가 있어 봤자 뭐하겠는가. 그들은 미국 사회의 하층민이거나 이방인이고, 그들에게 허락된 삶은 진저리 치게 추운 겨울날 아침 공장으로 출근하거나 관절염에 걸린 채 늙어가는 일 뿐일 텐데. 그렇다면 최대한 이 세상의 표면에서 살아가자. 호수 위에 언 얼음이 깨지지 않도록 가볍고 매끄럽게 스케이팅하는 것처럼. 어쩌면 그들은 그렇게 결심한 것인지도 모른다. 

흑백으로 촬영한 이 영화 속 미국의 풍경은 마치 프레스기로 납작하게 누른 것처럼 밋밋하다. 색이 없으니 세상도 활기와 생기를 잃은 듯하고, 그저 이상할 정도로 좁고 썰렁하고 춥게만 느껴진다. 이런 풍경이 바로 윌리와 에디와 에바의 눈에 비친 미국일 것이다.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는 땅인데도 영원히 이방인이라는 느낌이 들게 하는 낯선 땅. 천국보다 낯선 땅. 

그의 진짜 표정은 열려 있지 않다. 하지만 그는 친절하다. 얼굴은 좁고 사내아이 같으며, 윤곽이 또렷하고 아름답고, 그 어떤 것도 눈에 거슬리지 않는다. 어쩌면 입이 조금 어린애 같고, 안경 뒤에 있는 눈은 아주 작고, 자주 눈살을 찌푸리고, 눈빛은 텅 비어 있으며 주의 깊지 않다. 단지 가끔 그의 얼굴이 보기보다 차갑고, 공격적이며, 권위적이고, 단호하고 냉정해 보이는데, 그가 물에서 나오거나 잠을 잘 때 그걸 볼 수 있지만, 솔직히 그가 이 냉정함을 감추고 싶어 하는지 어떤지는 알 수 없다. 그 차가움에 그녀가 거부감을 갖는 건 아니다. 그렇다고 끌리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낯선 사람의 차가움, 어쩌면 수천 년 동안 같이 지낼 수 있지만, 끝내 속내는 알 수 없는 그런 차가움이다. 얼음같이 차가운 사실, 차갑고도 푸른 사실. 이레네는 아이슬란드의 이 관용구를 아주 좋아했다. 

– 유디트 헤르만, 〈차갑고도 푸른〉 중에서

유디트 헤르만의 이야기에는 늘 장소가 중요하다. 그녀는 아는 것 같다. 인간과 그가 서 있는 장소는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차갑고도 푸른〉은 사랑하는 이가 있는 한 여자가 다른 남자를 그리워하면서도, 지금 곁에 있는 남자를 여전히 사랑하고 또 그에게 낯선 감정을 느끼는 이야기다. 동시에 그것은 아이슬란드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다. 그녀의 땅, 아이슬란드. 아이슬란드가 아니었다면 이 이야기는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되었을 것이다.

단지 유령일 뿐
유디트 헤르만ㅣ민음사

여행 이야기로 이루어진 일곱 편의 단편 소설을 묶어 기이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드러낸다. 정확한 단어를 사용하지 않아도 감정의 흐름을 그대로 담은 일화들이다.〈차갑고도 푸른〉을 통해 아이슬란드 특유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다.

천국보다 낯선
짐 자무쉬ㅣ1984

뉴욕 빈민가에 사는 윌리에게 어느 날 사촌 에바가 찾아온다. 처음엔 그녀를 불편해하지만 그녀가 떠날 즈음, 아쉬움을 숨길 수 없다. 1년 후 친구 에디와 함께 에바를 만나기 위해 무작정 떠나고, 그를 기다리는 것은 형언하기 힘든 어떤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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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한수희

일러스트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