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 The Fermata

멈추고 머무르고 떠나가는 삶의 정거장에서
페르마타 최혜진·윤권진

부부는 마흔 언저리에 집을 지었다. 서울 중심지에서 1시간 반 남짓 떨어진 시골. 밭 하나, 비닐하우스 한 채가 있고 계곡이 흐르던 300평 농지. 언젠가 작은 농막 하나 짓고 유유자적하기를 꿈꿨지만 생각보다 빨리 현실이 되었다. 계곡 물을 흙으로 덮고 돌을 쌓아 담을 만들었다. 마당 한 면에 아내가 좋아하는 수국을 빼곡히 심었고 폐컨테이너에 고재를 붙여 남편의 오두막도 만들었다. 부부가 만든 브랜드 ‘페르마타’의 의미처럼 느리고 한가하게 손을 더하느라 3년째 미완성인 집. 어쩌면 둘은 이곳을 끝내 미완으로 남겨둘지 모르겠다. 푸르른 세계에서 기쁨과 위로를 주고받다가도 때가 되면 훌쩍 떠나고 싶으니. 그러니까 지금의 정류장에서 그저 오늘 하루를 잘 보내면 될 일이다.

어제와 오늘,

내일이 다른 하루

Still Life
형태 목조주택
거주 3년 
나이 3년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문을 여니 잠시 다른 세상으로 들어온 거 같아요. 집을 좀 둘러봐도 될까요?

혜진: 멀리서 오신다고 수고하셨어요. 대문을 거쳐 집 안으로 들어오면 보이는 이곳이 거실 겸 주방이에요. 친구들이 놀러오면 거의 이 테이블에 앉아 이야기를 나눠요. 통로를 지나면 제가 동물들과 뒹구는 휴식공간이 있어요. 이 집을 오픈하우스처럼 구성할 기회가 올까 봐 거실과 분리를 해뒀죠. 2층은 씻고 잠자는 실주거 공간이고 밖에는 마당과 오두막이 있어요.

 

와, 푸르른 나무와 꽃이 둘러싼 오두막이라니. 누구나 마음속으로 뚝딱 지을 수 있는 나무집 하나를 품고 살잖아요.

권진: 저희도 오두막을 만드는 게 꿈이었어요. 본채를 짓고 1년쯤 뒤 폐컨테이너를 알아보다가 소개를 받아 싸게 샀어요. 고재를 붙여 만들었어요. 컨테이너를 고를 때는 창문을 중요하게 봤어요. 여기가 앞뒤로 창문이 있어 개방감이 좋잖아요. 이곳에서 저는 목공 작업을 주로 해요. 남은 나무로 불을 지펴 고구마도 구워 먹고 종종 라면도 끓여 먹어요.

 

바삐 움직이며 환영해 주는 강아지 두 마리가 있네요. 초록 눈의 고양이도 보이고요. 이 집에 사는 이들을 소개해 주실래요?

권진: 저는 패션 브랜드이자 편집샵 ‘페르마타’에서 패턴을 만드는 윤권진이고, 최혜진의 남편이에요. 취미로 스쿠버다이빙 강사를 하고 킨츠기라고 깨진 유리 도자기 붙이는 일을 좋아해요. 가구나 소품 등 손으로 만드는 걸 즐기고요.

혜진: 페르마타에서 디자인을 하는 최혜진이에요. 같이 사는 러시안블루 고양이는 미유예요. 처음 페르마타를 시작할 때 저희에게 왔어요. 스트레스가 많을 때였는데 집에 와 미유를 보면 피로가 풀렸어요. 저희 부부의 첫 가족이에요. 그다음 우리에게 온 강아지는 유기견 몽구였는데 얼마 전 아파서 갑작스럽게 하늘나라로 갔어요. 검은색 강아지는 일레븐이에요.근처 세븐일레븐 앞에 떠돌길래 유심히 봤는데 주인을 못 찾아서 저희가 키우게 되었어요. 그래서 이름이 일레븐이지요.곁에 있는 올리브는 청주 유기견 센터에 있던 친구인데 저희가 데려오면서 함께 지내고 있어요.

일터가 서울에 있잖아요. 어떻게 여기서 살게 된 거예요?

혜진: 한남동 페르마타 매장이 원래 저희가 살던 가정집이었어요. 겉모습은 평범한 다세대 주택이었지만 내부가 정말 아름다웠어요. 재개발이 들어간다고 해서 저희가 그 공간을 고쳐 쇼룸으로 써보기로 했어요. 이전 페르마타 매장이 좁은 편이어서 큰 공간이 필요했거든요. 그때 이 땅을 알게 되면서 타이밍이 잘 맞았어요. 일터가 서울에 있어 결단을 못 내렸지만 예전부터 마음 한편에는 시골에 내려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근데 이렇게 빨리 꿈이 이루어질 줄 몰랐어요.

권진: 알고 지낸 분이 전원생활을 오래 하셨는데 이사 갈 땅을 알아보신다고 하셔서 같이 다녔어요. 마땅한 땅이 나타나서 선생님이 먼저 이곳에 오시고 저희가 1년 뒤에 와서 이웃으로 살아요.

 

여기는 원래 비어 있는 땅이었어요?

권진: 밭 하나와 비닐하우스 하나가 있고 옆에 계곡이 흐르고 있었어요. 남향이고 주변이 선산에 둘러싸여 있었죠. 난개발될 수 없는 땅인데다 프라이빗하게 딱 두 채만 들어갈 수 있는 구조라서 조용하게 지내기 좋겠더라고요. 5-10미터 푹 파인 계곡을 덤프트럭 가득 흙을 가져와 메우고 땅을 만들었어요. 농지는 분할된 택지가 아니다 보니 직접 지역을 만들어야 해요.

혜진: 처음 땅을 보러 왔을 때 기운이 다른 곳을 볼 때와 달랐어요. 저는 직감을 믿거든요. 좋은 기운이 느껴져서 여기가 내 보금자리가 되면 좋겠다 싶었어요.

 

어떤 집을 짓고 싶었어요?

혜진: 저희는 외국에 출장을 가도 일만 끝나면 시골로 가요. 전원생활을 동경했어요. 그런데 시골 생활 하시는 분들에게 물어보니 우리나라의 전원생활이 다 비슷비슷하더라고요. 마당에 조금의 여유도 없이 농사를 짓거나 텃밭을 가꾸죠. 그걸 보며 틀에 박힌 전원생활을 할 거면 그냥 서울에 살고 탈피해서 내 마음대로 쉴 수 있다면 시골 생활을 해야지 생각했어요. 프랑스에 갔을 때 파리 주변에 오래된 고성을 사서 전원생활을 하는 친한 디자이너의 집에 방문한 적이 있어요. “잡초를 왜 힘들게 일일이 뽑아? 밀어버리면 되지.” 무리하지 않고 심플하게 생각하더라고요. 파리에서 일하다가 주말에 시골로 내려와 지낸대요. 도시를 떠나 쉬고 즐기는 게 시골생활의 모토지, 집안일을 하는 게 목표가 아니라고 했어요. 지금 저희집보다 더 넓고 내추럴한데도 여유 있는 모습을 보고 우리도 자연과 함께 쉴 수 있는 집을 만들어보자 용기를 냈어요.

권진: 처음 땅을 만들 때부터 동네 분들이 조언을 많이 해주셨어요. 푸르른 잔디를 심고 있으면 “이렇게 하면 잡초 뽑다가 너희 죽는다.” 하시고, 잔디와 잡초가 같이 크는 걸 보시곤 “제초제를 써야 한다.”고 하시고. 근데 그러긴 싫더라고요. 지금도 앞마당이 다 잡초예요. 뭐가 정답인지 아직 모르겠어요.하지만 우리가 24시간 집만 위해 살 수는 없거든요. 포기할 건 포기하고 살다가 불편한 게 생기면 그때 바꾸면 되니까요.개선해 나가는 것도 재미있잖아요.

집을 짓기까지 얼마나 걸렸어요?

권진: 목조주택이라 건물을 올리는 건 3개월 만에 했어요. 근데 땅을 가꾸는 게 보통 일이 아니더라고요. 덩그러니 집을 지어놓고 꽃을 심고 나무를 심고, 주변을 하나하나 더하는 시간이 꽤 걸렸어요. 사람 시켜서 하는 건 늘 어려워서 정말 어려운 부분만 기술자분에게 부탁해요. 우리 손으로 꾸역꾸역하다 보니 아직도 미완성이에요.

 

그래서 더 주인과 닮은 집 같아요.

혜진: 그렇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사실 더 내추럴한 공간을 원했어요. 저는 입체적인 구조를 좋아하는데 건축가분이 심플한 스타일을 선호하셔서 곡선 형태로는 안 된다는 애길 많이 들었어요. 예산도 자꾸 올라갔고요. 가장 우려한 건 건축가 마음도 제 마음도 아닌, 이도 저도 아닌 집이 나올까 하는 점이었어요. 믿고 맡기든 내 의지대로 밀고 나가든 해야하는데 그 간극을 좁히는 게 힘들었어요. 다음에 집을 지으면 더 잘할 수 있을 거 같다가 그 고생을 또 해야 하나, 고개가 저어지기도 해요.

 

이 아름다운 집에 아직 이름이 없다니 아쉬워요. 우리는 집과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집에 이름을 붙이려 여기에 왔거든요(웃음). 어떤 이름을 붙여주면 좋을까요?

혜진: 음… ‘스틸 라이프Still Life’가 어떨까요? 이 단어에는 두가지 의미가 있잖아요. ‘여전히 삶은 계속 흐른다’와 ‘정물. 감정이 있거나 정이 깃들어 있다.’ 여기에 살면서 집은 정물화처럼 멈춰있지만 여전히 우리의 삶은 계속 흐른다는 걸 느껴요.함축적인 이름이 마음에 들어요.

스틸 라이프에서 보내는 일과가 궁금해요.

권진: 주중엔 서울에 머물고 일주일 중 2-3일은 여기서 지내요. 3년을 왕복 출퇴근을 하다가 일이 많아지면서 두 달 전 페르마타와 가까운 곳에 조그마한 방을 얻었거든요. 아직은 3일 이상 머물기 힘들지만 3일을 지낸다면 하루는 집안일을 하고 나머지 이틀은 쉬려고 해요. 여기선 아침 6시쯤 눈이 떠져요.빛이 워낙 좋거든요. 낮에는 마당 일을 하고 밥 먹고 좀 쉬다가 어둑어둑해지면 2층에서 영화를 보거나 책을 읽고 킨츠기를 해요. 2층에 거실과 침실, 제 작업 공간이 있어요.

혜진: 한남동 주택에 살 땐 아침에 힘이 없고 밤에 일이 잘되는 올빼미 성향인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새소리를 들으며 기쁘게 일어나요. 거실에서 밥을 먹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 외에는 각자의 시간을 보내요. 저희는 성격과 관심사가 달라요. 영화고르는 취향도 다르거든요. 저는 1층 소파에서 동물들과 뒹굴며 쉬거나 강아지들과 산책을 하며 휴식해요. 집을 지을 때는 공간을 나눌 생각이 없었는데 부부 14년 차가 되니까 자연스럽게 그렇게 되었어요. 각자 채워지지 않으면 함께여도 채워지지 않는 거 같아요. 내가 행복해야 상대도 행복하게 해줄 수 있으니까요.

 

시간과 계절의 변화를 느끼며 사니까 어때요?

권진: 자연이 주는 게 이렇게 큰 줄 몰랐어요. 일 기계처럼 눈뜨면 일하고 해 지면 자고, 계절의 변화를 잘 몰랐거든요. 벚꽃이 필 때, 여름 피서철, 가을, 추운 겨울. 큰 덩어리의 차이만 알았는데 이제는 세밀한 계절의 변화를 알아채서 마당을 둘러볼 때도 시간이 꽤 걸려요. 예사로 보이는 게 없어요. 계절이 너무 빨리 흘러가는 거 같아요.

혜진: 자연은 거짓말하지 않아요. 작년에는 블루베리가 하나도 안 열렸는데 올해는 너무 많이 열렸어요. 제가 정성을 쏟고 원하는 걸 해주면 그대로 보상해 줘요. 그러니 과정이 헛되지 않죠. 처음에는 잡초랑 구분을 못 해서 뽑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인터넷에 검색해 보곤 했는데 어느덧 꽃 이름도 많이 알게 되었네요. 길 가다가 누가 “이 꽃 이름이 뭐예요?” 물으면 대답이 술술 나와요. 좋아하니까 자연스럽게 습득이 되더라고요. 어제와 오늘이 다르고, 내일도 다를 거라는 기대를 안고 살아요.

이곳에 살기 전 거쳐 온 공간들도 궁금해요.

혜진: 광주에서 지내다가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회사에 취업해서 친척 집에서 지냈어요. 불편해서 조그마한 오피스텔을 얻었는데 잠만 자는 공간이라 만족스럽지 못했어요. 그 돌파구로 결혼을 선택한 건지도 몰라요. 혼자 좁은 집에 살 때보다 조금 나은 곳에서 살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이 있었어요.저희 부부의 첫 집은 시댁 근처 아파트였어요. 페르마타를 시작하고 샘플 선생님과 가깝게 지내려고 신사동 빌라로 들어갔어요. 이동하는 시간을 놓치고 싶지 않을 만큼 열정적이었거든요. 샘플실 바로 위에 살다가 한남동 주택으로 옮겼어요.나름 일과 생활 공간을 분리한다고 했는데 한 공간에 있다 보니 24시간 일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어요.

권진: 한남동 주택에 마당이 있었어요. 마당을 경험하면서 지금의 삶을 꿈꾸게 되었죠. 아파트 살다가 바로 전원생활로 삶의 단계를 뛰어넘기는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아파트요? 지금의 자연스러운 생활을 보면 아파트에서의 삶이 상상되지 않아요. 주택 생활은 어땠어요?

혜진: 어린 시절부터 아파트에만 살아온걸요. 균일화된 구조인지도 인식하지 못했어요. 주택 마당에서 빨래를 하고 수건을 탈탈 터는 기분이 참 좋았어요. 첫 봄에 수국을 심었을 때도 기억에 남아요. 친구가 회사를 쉬고 놀러 와서 함께 ‘벚꽃엔딩’ 노래를 들으며 즐겁게 심었어요. 행복한 기억이 영화 장면처럼 남아 있어요.

권진: 이웃들과 교류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슈퍼 아주머니와 매일 안부를 묻고, 아래층에 사는 분과는 비밀번호도 텄어요.퇴근하면 우리집으로 와 같이 맥주를 마시고 안방에서도 함께 지냈으니 가족 같았죠(웃음).

둘이라서

할 수 있는 일

두 분이 만든 의류 브랜드 페르마타는 이탈리아어로 ‘정류장’, ‘천천히 느리게’라는 뜻이에요. 페르마타의 옷과 꼭 닮은 집을 보니 자연스럽고 편안한 삶을 지향하는 듯해요.

혜진: 맞아요. 하고 싶은 걸 하며 나답게 살고 싶어요. 어릴 때 삶의 모토가 하루살이였어요. 오늘을 위해 모든 에너지를 쏟고 어디든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떠도는 삶을 좋아해요. 호기심이 많아서 낯선 곳에 갈 때 가장 나다운 모습을 발견하거든요. 새로운 곳에 가면 나의 낯선 모습을 발견하고 과거의 모습도 만나게 돼요. 제가 가장 두려운 건 삶에 너무 지쳐서 호기심이 없어져 버릴까 하는 거예요. 궁금한 게 없어지면 저도 사라질 거 같아서, 너무 애쓰며 살지 않으려고 노력해요.

권진: 저는 결혼하기 전까지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하자는 마음으로 살아왔어요. 혜진이를 만나고 생각이 바뀌었어요.그렇게 살다가 늙으면 뭘 할 수 있을까, 살아 있기는 할까? 삶은 변수가 너무 많잖아요. 전에는 새로운 기계를 접해보는 것만 좋아했다면 이제는 시작하는 일에 겁을 안 내는 사람이 되었어요. 삶 전체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고 내 쓸모를 찾아가며 지금처럼 살고 싶어요.

 

두 분의 첫 만남, 기억나세요?

권진: 친동생이 소개를 해줬어요. 동생 여자친구가 혜진이의 사촌이었어요.

혜진: 서울 갓 올라와서 회사에 다니며 바쁘게 살 때였어요.사촌이 스시를 사준다고 해서 갔는데 그 자리에 남편이 있었어요. 사실 그때 남편 모습은 기억이 안 나요. 스시만 먹다 왔나 봐요(웃음). 남편 동생과 제 사촌은 저희 둘을 만나게 해주려고 계획하고 그 자리에 저를 부른 거더라고요.

권진: 셋이야. 나까지.

혜진: 그래(웃음)? 오빠도 함께 계획한 거였어? 나만 몰랐네.

 

계획은 잘 진행되었어요(웃음)?

권진: 다음에 또 보려고 만남을 만들었죠.

혜진: 그때 전 남자친구가 군대 가고 헤어져서 슬퍼할 때라(웃음).

 

자연스럽게 결혼으로 흘러간 거예요?

권진: 2년 정도 사귀고 제가 좀 밀어붙였어요. 대기업에 다니고 있었는데 학자금 나올 때 빨리 아이 낳고 대학에 보내는 전형적인 가장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혜진: 스물일곱에 결혼했어요. 저희 부모님은 딸을 늦게 결혼시키고 싶으셔서 왜 이렇게 일찍 하느냐,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해도 된다고 하셨는데 시댁에서 서둘렀어요. 아버님이 곧 퇴직한다고 어서 결혼하라고 하셨는데 아직까지 회사를 다니세요(웃음).

 

어린 나이였지만 결혼은 인생의 중요한 과제잖아요. ‘이 사람과 결혼해야겠다’ 마음먹은 일이 있었어요?

권진: 저는 틀에 박힌 삶을 살았고 전형적인 성장기를 거쳤는데 혜진이의 자유로운 면이 좋았어요. 서로 잘 맞는다 안 맞는다는 생각도 못 해봤어요. 너무 좋아하니까 좋은 면만 보고 그 모습에 끌려서 결혼을 하고 싶었어요.

혜진: 저희 세대에는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좋으니까 결혼을 했어요. 사랑하는 사람과 같이 사는 것. 그게 결혼이었어요. 서울에서 혼자 지내다 보니까 누군가가 곁에 있어주면 힘이 되겠다, 부모님이 가정을 이루고 사는 모습을 봐왔으니 저렇게 하면 되지 않을까, 했어요. 함께 잘 살아갈 거라는 믿음도 있었고요.

 

권진 대표님은 다른 일을 하다가 결혼 후 이직한 거예요?

권진: 네. 연구원이었을 때는 열심히 살았지만 내 삶이 만족스럽진 않았어요. 새벽에 출근하고 늦게 끝나는 게 싫었거든요. 이 일은 안 하고 싶은데 뭘 할지 정해둔 건 없었어요. 지금도 고마운 게 혜진이가 고민도 안 하고 하기 싫으면 그만두라고 했어요. 정 하고 싶은 게 없으면 홍대에서 같이 와플을 팔자는거예요.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너무 편하더라고요. ‘그래. 싫어하는 일 힘들게 할 필요 있나. 다른 일 하면 되지.’ 정말 큰 용기를 얻고 퇴사를 했죠.

혜진: 그때 와플에 빠져 있었거든요(웃음). 제가 그런 성격이에요. 평생 해야 하는 일인데 하기 싫은 일을 어떻게 해요?

페르마타도 좋아서 시작한 일이겠네요.

혜진: 의류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었는데 근무 여건이 열악했어요. 옷을 좋아하니까 계속 일은 했는데 상하 관계도 엄격하고 업무 강도가 높아서 언젠간 자유롭게 일하며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어요. 그즈음 정부에서 지원하는 파리 기성복 박람회의 디자이너로 발탁이 되었어요. FW, SS 두시즌 을 한국에서 준비한 뒤 페르마타라는 이름을 걸고 외국에 나가 제 옷을 좋아하는 바이어들을 만났어요. 그곳에서 정말 많은 걸 배웠어요. 국적도 나이도 다르지만 패션이라는 공통된 꿈을 가진 여러 디자이너들을 알게 되었거든요. 삶의 태도와 취향이 비슷한 우리는 자석처럼 끌려 서로 관심을 가지고 응원해 주었어요. 호기심이 많은 제가 옷뿐만 아니라 공간, 라이프 스타일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되었죠. 옷은 단순히 입는 행위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옷 뒤에 가려진 우리에 대해 많은걸 말해주는 이미지예요. 그게 이어져서 페르마타를 표현하는 저만의 공간도 꿈꾸게 되었어요.

 

혼자 페르마타를 꾸려가다 권진 대표님이 합류한 거예요?

혜진: 맞아요. 처음 한 두해는 혼자 준비하고 출장도 다니다가 너무 힘들어서 남편에게 도움을 요청했어요. 남편은 체계적이고 분석적인 이면에 예술적인 성향이 있거든요. 저는 특정 부분만 섬세한 편인데 남편은 전체적인 면에서 까다롭고 예민해요. 구조화하고 만드는 거 좋아하니까 패턴사를 하면 잘 맞을 거 같아서 제안했어요. 제가 잘 아는 패턴 실장님에게 부탁해 사제로 일을 배웠고 이후에 페르마타로 들어와 함께 일하고 있어요.

권진: 패턴을 만드는 일이 일종의 도면 작업이에요. 수학을 좋아해서 수치로 옷을 잡아 구체화하는 일이라 적성에 잘 맞았어요. 근데 일의 구조상 디자이너와 패턴사는 사이가 좋을 수 없어요. 일하면서 엄청 싸웠어요.

 

주로 어떤 걸로 다퉜어요?

권진: 디자이너가 추상적으로 상상한 걸 주면 패턴사는 그 느낌을 구체화해야 해요. 작업상 안 되는 게 있는데 납득시키기가 어려웠어요.

혜진: 상상으로는 충분히 가능한데, 패턴사는 안 된다고 해요. 저는 옷을 만들 때 디테일과 실루엣의 발란스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머릿속으로 상상하던 저만의 느낌을 잡아 피팅을 하면서 사이즈와 디테일을 계속 수정해요. 단 1-2밀리미터라도 안으로 들어가면 라인이 훨씬 예쁜데 남편은 그 2밀리미터가 티가 나겠냐, 다른 사람은 알까, 그건 네 만족이라고 하죠. 어쨌든 이 옷을 만들고 싶고 결과가 나와야 하니 싸울 수밖에 없어요. 저는 디자이너 마음에 들 때가 디자인의 파이널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시간에 무딘 편이긴 하지만 마음에 안 들어서 마무리를 못 짓는 건데 끝맺으라고 압박하면 너무 힘들어요.

권진: 어느 시점에서 끝내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일이 진행되는데 혜진이가 못 놓는 거예요. 뒤로 몇 개의 디자인이 기다리고 있어서 적당히 끊으라고 하죠. 저는 대충 한 거 아니냐는 혜진이의 말이 속상했어요. 늘 최선을 다하지 절대 대충 하지 않거든요.

혜진: 제가 하는 일은 항상 시간과 결과가 비례해요. 많이 생각할수록 더 좋은 게 나와요. 패턴을 만드는 건 합리적이고 프로세스를 완벽하게 끌고 가야 하는 일이라는 걸 처음엔 몰랐어요. 남편이 제가 생각한 것보다 빨리 작업을 마무리 짓더라고요. 나름 스마트하게 일을 한건데 대충 한 거냐고 해서 진짜 많이 싸웠어요. 남편이 힘들어서 수시로 사표 쓴다고 했어요(웃음).

자주 싸우면서 ‘이것만은 지키자’ 하는 것도 생겼어요?

혜진: 패션 디자인을 공부할 때 패턴을 배운 적이 있어서 제가 아는 부분을 패턴사처럼 이야기하면 남편이 기분 나빠해요. 왜 남의 영역을 침범하냐며 전문 분야는 전문가에게 맡기래요.

권진: 저는 “이거 안 팔릴 거 같은데?” 이런 말 하면 안 돼요(웃음).

혜진: 작업지시서를 드로잉 해서 주면 고개를 갸우뚱할 때가 있어요. 표정만 봐도 기분이 나쁜 거예요. 저는 오래 고민해서 이렇게 만든 건데 말이죠. 지금은 서로의 영역을 넘나들지 말기로 하고 잘 지켜요.

 

타인과 생활하다 보면 이해하기도 공감하기도 어려운 일이 참 많아요.

권진: 저희는 대화법도 달라요. 저는 ‘아’ 하고 먹으라면 ‘아’하고 먹는 스타일이에요. 손에 얹어주면 이해하는 스타일인데 혜진이는 말의 넓이가 엄청 넓어요.

혜진: 저는 직감적으로 움직이는 성향이에요. 그래서 체계적인 과정보다는 처음과 마지막에 떠오르는 순간의 직감과 감정이 중요해요. 제가 상상이 풍부하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데 남편과 싸우면서 알았어요. 일을 할 때 머릿속에 수백 가지의 생각이 있다 보니 말하는 스타일도 추상적인가 봐요. 이것저것 마음 편하게 시도해 보라고 넓게 말하는 건데 남편은 정확하게 지시해 주는 걸 좋아해요. 근데 저는 그렇게 대화를 해본 적이 없어요. 한 번은 제 말을 남편이 다르게 받아들여서 둘이 블랙박스까지 찾아본 적이 있어요(웃음).

권진: 정확하게는 제 주장이 맞았어요.

혜진: 제 의도는 그게 아니었거든요. 뉘앙스와 분위기라는 게 있잖아요. 순간 화가 나서 단어 하나를 딱 그렇게 사용했는데 그걸로 판단해 버리더라고요. 앞뒤 정황을 보면 제 말이 맞고 그 단어를 사용했냐 안 했냐를 보면 남편 말이 맞고 그래요.

 

타협점을 찾았나요?

권진: 이런 일이 계속 반복되니까 우리가 진짜 문제가 있나 생각한 적이 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성격이 달라서 일어난 갈등이에요. 혜진이가 나를 곤란하게 하려는 게 아니라 저런 성향으로 태어난 사람이라고 생각하니까 이해가 되더라고요. 나쁜 의도로 말한 게 아니라는 걸 믿으니까 듣는 대로 판단하지 않으려 해요.

혜진: 서로의 성향 차이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렸어요. 넓게 말하는 제 성격 때문에 오해를 불러일으킨다는 걸 알고 되도록 정확하게 말하려 노력해요. 예전에는 머리를 거치지 않고 말했다면 오해할 수 있으니 확실히 말하려고 노력하죠.

 

삶의 대화는 어때요?

권진: 지금까지의 트러블은 모두 일의 대화예요. 삶의 대화에서는 부딪치지 않아요. 삶까지 그랬다면 너무 힘들었을 거 같아요.

혜진: 같이 일하기 전에는 한 번도 안 싸웠어요. 저희가 일하면서 의견 충돌이 있는 걸 보고 주변에서 연애할 때도 이렇게 싸웠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싸운 적 없고 너무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같이 일해보고 깜짝 놀랐어요. 너무 달라서요.

그럼에도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고 노력하게 하는 힘은 무엇일까요?

혜진: 음… 사랑?

권진: 하하하하.

혜진: 뱉고 보니 창피하네요(웃음). 살아가고자 하는 방향이 같아서일까요? 지금은 페르마타에 애정을 쏟고 있지만 저희는 언제든 놓을 수 있을 때 놓자는 생각이에요. 항상 즐거운 마음으로 스스로에게 진실된 옷을 만들고 싶거든요. 디자인하면서 시간에 쪼이고 심리적으로 힘들어 푹 내려앉을 때도 있어요. 제 생각과 결정에 따라 페르마타의 앞날이 변하니까요. 자신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 극단적인 말을 해도 남편이 곁에서 함께 버텨줘요. 저의 선택을 믿게끔 배짱과 힘을 주고, 하기 싫으면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주죠.

 

삶의 가치관이 잘 맞는 거죠?

권진: 큰 줄기는 맞아요. 잔 줄기가 안 맞아서 그렇죠(웃음).한 방향으로 같이 가는데 저는 직진하는 스타일이고 혜진이는 왔다 갔다 돌아가는 스타일이에요.

혜진: 결국엔 같이 가요. 그 길을 가는 방식이 다른 거죠. 남편은 집안일도 완벽하게 하고 해야 할 일을 다 하고 쉬는 성격이고, 저는 중간중간 제가 하고 싶을 때 하는 성격이에요. 그래서 저희는 일뿐만 아니라 집안일도 역할을 다 나눴어요. 화단은 꽃 가꾸길 좋아하는 제가 관리하고 잔디는 남편 담당이에요. 화단에 난 잡초는 제가 뽑고 잔디에 난 잡초는 남편이 관리해요. 자기 일을 각자의 방식으로 하는 거죠.

 

혹시 이런 생각도 해봤어요? 내가 그때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어떻게 살고 있을까?

권진: 누군가 만나서 결혼했겠지만 이런 삶은 아니었을 거예요.회사 나오고 싶을 때 와이프가 동의하지 않았다면 회사에 찌든 삶을 살았겠죠. 아이 빨리 낳고 교육에 올인하며 살고 있지 않을까요?

혜진: 저는 결혼을 안 했을 거 같아요. 그놈이 그놈이다 하면서(웃음). 왜 한 나라에 뼈를 묻어야 하지? 떠돌아다니며 살았을 거 같아요. 자유로운 삶을 늘 상상만 하고 있어요.

 

성격이 달라서 좋은 점도 있을 거예요. 혼자서는 할 수 없지만 상대가 움직여준 덕분에 할 수 있게 되는 것들도 있잖아요.

혜진: 저에게 페르마타의 존재가 그래요. 제가 디자인한 페르마타 옷을 남편이 패턴 떠준다는 게 저에게는 좀 남다른 의미가 있어요. 남편이 도와줘서 페르마타가 편집숍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었고요. 저는 옷이 좋아서 디자인을 하는 사람이었지 쇼룸을 열고 바잉하고 돈을 번다는 꿈을 한 번도 꿔본 적이 없어요. 남편의 펌프질이 없었으면 페르마타의 12년은 없었다고 생각해요. 돈 관리나 바잉할 때 필요한 문서 작업도 남편이 관리해요. 이윤을 남기려 따지며 디자인하는 건 저에게 너무 스트레스예요. 남편이 아니었다면 소소하게 좋아하는 것만 했을 거예요.

권진: 저지르는 건 혜진이가 하고 수습은 제가 해요. 12년이니까 나름 체계도 생겼죠.

 

전원생활도 서로가 있어서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혜진: 그렇네요. 혼자 산다고 생각했으면 이런 집을 짓지도, 편리하게 관리하지도 못했을 거예요.

권진: 저는 이렇게 예쁘게 살진 못했을 거예요.정리해 보면 지금의 일과 생활 모두 두 분이 함께여서 잘 이뤄갈 수 있는 거네요?

권진: 아, 그렇게 정리가 되는 건가요(웃음)?

혜진: 와, 우리 천생연분이다(웃음). 제가 다음 생에는 만나지 말자고 했는데.

 

여가시간에 함께 하는 취미도 있어요?

혜진: 유일하게 같이 하는 취미가 요가예요. 일주일에 두 번씩 한 지 2년이 넘었어요. ‘지금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내 선택이고 고통도 내 선택이다. 하지만 고통과 나를 분리하면 된다.’는 걸 몸과 마음으로 배우고 있어요. 남편이 화가 많고 예민한 성격인데 요가를 마치고 나면 순한 양이 돼요.

권진: 근데 며칠 못 가요(웃음). 요가를 하면 완벽하게 하려고 짓누르던 것들이 벗겨진 느낌이에요. 정말 좋아서 매일 아침에 요가와 명상을 하고 싶은데 아직은 일주일에 두 번으로 만족하려고요.

 

요즘 두 분을 설레게 하는 일이 있어요?

혜진: 페르마타 중층 공간에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어요. 옷은 상업적인 성격이 강해 표면적이기도 하고 한순간 하찮고 허무해지기도 해요. 그래서 옷뿐만 아니라 페르마타를 표현하는 다른 방식의 무언가를 해보고 싶어요. 옷이 페르마타의 배경이 될 수도 있고 주인공일 수도 있는 거죠. 그 연결고리가 되는 아티스트들의 클래스들도 진행했는데 코로나19 때문에 중단된 상태예요. 8월에 새롭게 꾸민 공간을 선보이고 싶은데 미흡할 거 같고 10월에는 보여드릴 수 있을 거예요.

권진: 요즘 모든 신경이 다 거기에 있어요. 그 공간에 넣을 장롱을 만들어 달라고 해서 고재 문짝 두 개로 만들었어요. 아직 뚜껑도 없고 바닥도 없지만 혜진이의 상상을 잘 살려보려고 해요. 여름 시골집에 있을 법한 장롱의 느낌으로 속에 이불도 있고 잠옷도 걸려 있는 모습을 떠올리며 만들고 있어요.

 

언젠가 훅 떠날 수 있다고 했잖아요. 그때는 무슨 일을 하고 싶어요?

권진: 막연히 상상한 건데 다 버리고 작은 시골 바닷가에 산다면 저는 스킨 스쿠버 강사를 하고 혜진이는 에어비앤비를 하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혜진이가 새로운 사람들을 좋아하니까 맞이하면서 같이 친하게 지내면 재미있겠다고요.

혜진: 여행을 많이 하고 좋아하는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싶어요. 오랜 시간 준비해서 보여주는 게 아니라, 혼자 아침에 시작해서 저녁에 끝낼 수 있는 일을 얽매이지 않은 장소에서 하고 싶어요. 그리고 골동품 가게도 해보고 싶어요.누군가 사용하고 아끼던 물건의 오래된 매력을 보물처럼 발견해 보고 싶어요.

 

그때가 되면 스틸 라이프는 누구에게 물려주고 싶어요?

혜진: 강아지 좋아하는 수의사 부부요. 전원생활을 꿈꾸는데 현실과 조건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하고 있어요. 돌아올지 아닐지 알 수 없지만 스틸 라이프를 돌봐주겠다고 마음껏 떠났다 오라고 했어요.

 

우리는 사랑하고 신뢰하고 상처받고 치유하는 법을 배우며 어른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두 분도 가족을 통해 스스로 성장했다 느끼는 순간이 있나요?

권진: 싸우는 횟수가 준 걸 보니 어른이 된 거 같아요. 이해의 폭도 넓어지고 노련하게 헤쳐 나가요. 그리고 부동산 계약할 때 어른이 된 거 같아요. 부모님과 같이 하던 일을 우리끼리 가서 순조롭게 계약을 할 때 그런 감정이 들어요.

혜진: 남 탓을 하지 않게 되었어요. 지금의 일과 결혼 생활이 오롯이 제 책임이라는 걸 알았어요. 관계나 일이 의도대로 되지 않았을 때도 스스로 감당해야 해요. 전원생활도 제 몫이에요. 부모님은 왜 힘들게 살려고 하는지 이해를 못 하셨지만 제가 원해서 선택한 일에 책임지고 있어요. 동물과 함께하는 일상도 저를 성숙하게 만들어요. 예전에는 아이들이 아프거나 도움이 필요할 때 뭘 해줘야 할지 몰랐다면 지금은 적절한 도움을 주려고 노력해요. 사랑과 책임감, 어쩌면 제 만족일 수도 있지만 베푸는 사랑의 힘을 알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끝까지 이 아이들을 잘 보살피고 싶어요.

따로 또 같이,

부부의 공간

권진의 물건

1 필리핀 수경 필리핀에서 산 수경인데 사람이 나무로 직접 만든 거래요. 아까워서 쓰지는 못하고 있어요.

2 식물 온실 식물을 키우기 적절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할 수 있는 식물 온실을 만들었어요.친구들의 시들해지는 식물도 이곳에 입원하면 본래의 생기를 찾아요.

3 몽구 인형 얼마 전 하늘나라로 간 몽구를 생각하면서 며칠 동안 만들었어요. 많은 에피소드가 있어 여행을 가도 챙겨가는 애장품 중 하나예요. 몽구를 아직 묻어주지 못해 식탁 옆 서랍장에 유골을 뒀는데 사진을 보며 종종 이야기를 해요

혜진의 물건

테라코타 토기 외국에 출장 갔을 때마다 조금씩 사 온 토기예요. 모로코에 여행 갔을 때도 너무 마음에 들어서 다른 건 다 포기하고 토기 서너 개만 캐리어에 담아 온 적도 있어요. 옛 물건에 대한 호기심이 저를 사로잡아요. 손으로 만든 느낌, 가공하지 않은 질감과 색감을 좋아해요.

빈티지 저울 지금은 돈 주고 살 수 없는 것들 중에 특히 저울을 좋아해요. 무게 재는 걸 좋아하는 건 아닌데 저울 모양이랑 시대가 느껴지는 나무 재질, 흙의 느낌이 좋아요. 이건 4-5년전에 프랑스 친구와 함께 가서 산 건데 프랑스에서도 드문 모양이래요. 이야기가 있는 물건을 특히 좋아해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