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s A Skill, Too

예술도 기술입니다
아티스트 이랑

약속 시각에 맞춰 문을 열었더니 “모시모시” 하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장난스럽게 인사하는 목소리인 줄 알았는데 이랑이 일본인과 통화를 하고 있다. 유창한 일본어 솜씨로 국경을 넘나드는 그의 직업은 아티스트. 예술에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지 않는 문화·예술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가 택한 키워드는 ‘자영업자’다. 이제 우리는 인정해야 한다. 재능이 분출하는 예술가도 기술을 사용하는 노동자라는 것을. 음악도, 공연도, 글쓰기도, 그림도, 영상 연출도 기술 없이는 할 수 없는 고도의 노동이라는 것을. 좋아서 하는 일에도, 당연히 돈은 필요하다.

오늘도 바쁘시군요. 디저트를 좀 사 왔는데… 점심 드셨어요?

아니요. 우리 이거 먹어요. 정말 하얗고 예쁘네요. 보드랍고 예뻐요. 드셔보세요. 어서 드셔보세요. 딸기가, 아유, 정말 예쁘네요. 부드럽고 예쁘네요.

 

정말 부드럽고 예쁘네요(웃음). 작업실에 오랜만에 다시 왔어요. 요즘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우리 고양이 준이치 간병하고, 드라마 보고…. 해야 할 것도 많은데 요즘 일하기가 너무 싫어요. 질문지 보면서 ‘요즘 집에 있는 게 제일 좋은데, 어떡하지?’ 생각했어요. 일하기가 싫어요.

 

그럼 오늘은 일하는 게 싫은 이야기를 해볼까요(웃음). 요즘 하루 루틴이 어때요?

준이치 간병 전과 후가 너무 달라요. 간병 전이면 일어나자마자 작업실에 와서 일하고, 집에 가서 자고, 다시 일어나서 작업실에 오고, 일하고… 그랬거든요. 근데 지금은 준이치 주사시간, 약 시간, 밥시간을 맞춰야 하니까 패턴이 많이 달라졌어요. 준이치 상태가 안 좋으면 집에 오래 있어야 하거든요. 그래도 요샌 준이치 상태가 많이 나아져서 행복해요.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행! 복!

 

정말 행복해 보여요, 진짜 행복할 것 같고요.

준이치가 아프기 시작하고 활기가 많이 사라졌어요. 대부분 누워서 지내죠. 하루에 23.5시간은 자는 것 같아요. 그래도 얼마 전에 흉수가 없어지고 건강을 제법 되찾았는데요. 아주 최근엔 옥상 산책도 시작해서 너무 기뻐요.

 

그 이야기, 《어라운드》 정기구독자에게만 발송되는 ‘어라운드 페이지’에도 실려 있죠. 이 기사 읽고 더 많은 사람이 정기구독하면 좋겠네요(웃음).

러게요(웃음). 그동안 저는 집은 잠자는 공간으로만 사용했거든요. 근데 올해 준이치 때문에 집에 많이 머물게 되면서 집이 진짜 좋다는 걸 느꼈어요. 사람들이 왜 집에서 안 나가는지 알겠더라고요.

 

이전에 몰랐어요?

몰랐어요.

 

작업실 나오는 게 좋았어요?

아니요. 나와야만 하니까 나왔어요. 일이 많아서 하루라도 쉴 수 없었거든요.

 

요즘은 준이치 때문에라도 일을 줄이고 있나 봐요.

줄이기도 했고, 줄어들기도 했어요. 코로나19로 공연 관련 일은 현저히 줄어들었죠.

 

줄인 일은 어떤 거예요?

가르치는 일이나 강연 같은 거요.

 

그럼 수입도 줄지 않아요?

많이 줄었죠.

 

어떡해요?

그냥 있어요(웃음). 제가 일을 엄청, 미친 듯이 많이 해놔서 한동안은 괜찮을 것 같아요. 어느 정도로 열심히 했냐면, 3-4년 가량 거의 기억을 상실할 정도로 바쁘게 보냈거든요. 이 때가 언제고, 저 때가 언젠지 전혀 기억이 안 날 정도로 뒤죽박죽이에요. 그때 열심히 번 돈을 저축해 놨어요. 지금은 그걸로 준이치 치료비를 충당하고 있죠. 사실 수익보다 지출이 더 많은 상황인데요. 저축한 돈이 있어서 그래도 잘 지내고 있어요.

 

저축하는 기준이 있었어요?

수익이 고정적이지 않아서 딱히 기준은 두지 않았어요. 준이치 나이가 많으니까 언젠가 큰돈을 써야 할 거라는 각오를 늘 하고 지냈거든요. 그래서 지출보다 수입이 더 많도록 계속 일을 많이, 열심히 해왔죠. 근데 저 같은 프리랜서 예술인이 저축할 정도로 돈을 번다는 게 쉽지가 않아요. 게다가 제가 하는 예술은 대중예술도 아니잖아요. 솔직히 저도 제가 대단하다고 생각해요(웃음). 저축할 정도로 남기려면 몸이 부서져라 일해야 하거든요. 저는 한 달 중 하루도 안 쉴 때가 많아요. 거의 일 중독이죠. 눈 뜨고 바로 작업실에 오지 않으면 너무…불안했어요.

 

어떤 점이 불안했어요?

언제 일이 없어질지 모르니까요. 거절하면 다음이 없을 수도 있거든요. 근데, 단가가 다 낮아요. 미팅은 많은데 미팅엔 페이가 없고, 인터뷰도 무료고…. 저를 홍보하는 일도 스스로 해야 하고, 일정도 알아서 조율해야 하는데 그걸 혼자 하려니까 일이 정말 많아요. 게다가 코로나19 이전에는 일본에서 하는 일이 한 달에 한 번꼴로 있었는데, 떠나기 전에 준비하거나 비자 받는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외국어로 이것저것 준비도 해야 하고…. 거의 미친 듯이 일해야만 다 해낼 수 있었어요. 전부 뒤섞여 있으니 정신이 없죠.

정말 많은 일을 하고 있잖아요. 언젠가부터 본인을 ‘자영업자’ 혹은 ‘제조업자’라고 말하게 되었다고 했어요. 뮤지션, 영상감독, 작가… 등으로 소개하는 것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사실 저는 저를 ‘아티스트’나 ‘예술가’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근데 그렇게 말했을 때 제가 하는 일을 인정받지 못하거나 노는 사람으로 취급받는 경우가 많았어요. “와서 노래 좀 불러봐.”라는 말을 정말 많이 들었거든요. 저도 보통의 노동자랑 똑같아요. 제 일을 하면 제대로 돈을 받아야 해요. 그래야 생계를 유지하니까요. 그런 인식을 심어주고 싶어서 표현을 계속 바꾸었어요. “저는 제조업자입니다.”, “자영업자입니다.”, “1인 기업입니다.”…. 이런 식으로 이야기하다 보니 제대로 수급이 되기 시작하더라고요.

 

어? 수급이 돼요?

네. 명칭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요청하신 건에 대해서는 이렇게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하고 업무용 말투를 사용하면 돈을 지불해야 한다는 인식이 생기더라고요. 장난처럼 제안했다가 제 답장을 받고 정식으로 다시 제안해 주시는 분도 있고, 가볍게 생각한 거라면서 제안을 철회하는 분도 있어요. 형식을 갖추면 상대방의 태도도 달라진다는 걸 깨닫고 오피셜 메일 주소도 따로 만들었어요. 개인 메일로 보이지 않아야 좀더 업무 제안들이 제대로 형식을 갖추어서 오거든요. 이렇게 분위기만 잡아놔도 가벼운 메일이 확실히 걸러지는 것 같아요.

 

지금 몇 개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한번 세어볼까요? 일단 뮤지션, 영상감독. 보험설계사 일도 하고 있고, 에세이 작가, 소설 작가, 그림 작가, 가르치는 일….

 

으아, 끝이 없을 것 같아요. 지금 나열한 건 직업이에요?

직업이죠. 직업인데… 음, 모르겠네요. 정리할수록 혼란 속에서 일하고 있다는 생각만 들어요. 제 음악 말고 다른 사람 음악에 참여할 때도 있고, 의뢰받아서 노래를 만들기도 하고, 글도 연재해야 하고, 마감 알림도 계속해서 오고, 단행본 작업에 제 앨범 기획, 영상 준비…. 그야말로 카오스예요. 여기 보시면 모니터에 포스트잇이 많이 붙어 있는데요. 전부 다 해야 할 업무거든요. 처리할 때마다 포스트잇을 하나씩 떼고 있어요. 스케줄 표 보고, 빼먹은 거 없나 체크하고, 메일 계정 세 개 확인하고, 다이어리 체크하고, 문자·라인·카톡 보고, 선행할 일부터 헤아리고…. 근데 매일매일 하루 안엔 끝낼 수 없을 만큼 업무량이 많기 때문에 늘 불안해요. 그래서 눈 뜨자마자 작업실로 출근하게 되는 거죠.

 

일이 없어서 고민인 프리랜서도 있는데, 일이 계속해서 들어오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요?

저도 일이 없을 때가 많았어요. 그래서 일을 먼저 제안하기 시작했죠. 출판사에 “이 책 어때요?” 하고 먼저 기획을 제안하고, 강의하고 싶다고 커리큘럼을 짜서 어필한 거죠. 제안한다고 100퍼센트 바로 받아들여지는 게 아니니까 열심히 홍보하고, ‘일 찾고 있다.’고 이야기도 많이 하고…. 세상 사람들이 저를 아예 몰랐을 때는 무료로 공연하면서 저를 알리는 데 힘썼어요. 지금은 SNS로 좀더 수월하게 어필할 수 있지만, 저는 다 발로 뛰어다니면서 홍보해야 했죠.

노동의 목적에는 자아실현, 자금 마련, 가치 창출 등 다양한 이유가 있을 텐데요. ‘일하는 가장 핵심적인 이유’가 뭐예요?

돈이죠. 벌어야 저도 준이치도 먹고사니까.

 

돈은 많을수록 좋을까요?

많을수록은 잘 모르겠고, 사는 데는 돈이 어느 정도 필요하니까 그 정도 돈이 떨어지지 않는 게 중요하다고 봐요. 저는 사회생활을 마이너스에서 시작한 사람이에요. 학자금 대출로 빚이 많은 상태에서 수입은 전혀 없는 상태로 대학을 졸업했으니까요. 그때부터 불안했어요. 학자금 대출 이자도 내야 하고, 월세도 내야 하고, 준이치 밥도 사야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유난히 문화예술계열 종사자들에게 열정페이나 재능기부를 요하는 일이 많아요. 왜 이런 문화가 생기게 된 걸까요?

예술을 유흥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아요. 코로나19 시대를 돌아보면 확실히 알 수 있어요. 재난 상황에선 가장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중단하잖아요. 코로나19로 수익이 줄었을 때 사람들이 생활에서 무엇을 가장 먼저 뺄까요? 먹고 자는 건 뺄 수 없지만 취미로 다니던 학원은 끊거나 운동을 취소할 순 있겠죠. 여기 예술도 포함되는 거예요. 제일 먼저 끊어내는 요소인 거죠.

 

예술가의 밥줄이 끊기는 거네요.

그렇죠. 근데 예술을 끊는다고 해서 격리 생활에서 예술이 존재하지 않느냐 하면 그렇지 않죠. 음악 듣고, 영화 보고, 티브이 보는 거 다 예술이잖아요. 사람들은 침체 상황일수록 음악에서, 책에서 견디는 힘을 얻는데, 이걸 만드는 예술가는 재난상황에서 제대로 살아갈 수가 없어요. 딜레마가 생기는 거죠.

 

그래서 가격이 더 중요해지는 것 같아요. SNS에 ‘나의 가격테이블’을 공개한 적이 있죠. 문화·예술 영역은 돈으로 수치화하기 어렵다는 생각이 드는데 어떤 기준으로 금액을 책정했어요?

매체마다 다르겠지만 여태 제가 해온 잡지 화보 촬영엔 페이가 없었어요. 하지만 현장에 있던 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의상팀, 포토그래퍼 같은 스태프는 일당을 받거든요. 그래서 아는 에디터 언니한테 스태프 페이를 물어보고 그 일당에 맞춰서 제 가격도 정했어요. 지면에 실리면 홍보되니까 좋은 거 아니냐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요. 스태프도 크레딧에 이름이 실리는걸요? 근데 저와 달리 일당을 받잖아요. 왜 저만 페이가 없는지 알 수가 없는 거죠. 제가 잡지에 써달라고 요청한 것도 아니고, 매체 측에서 이 기획에 이랑이 맞겠다고 생각해서 섭외한 거잖아요. 그래서 스태프 페이에 맞춰서 제 가격도 정했어요. 그 정도 주는 곳도 있고, 아주 드물게는 그보다 많이 주는 경우도 있고, 그보다 깎는 경우도 있어요. 전화로 인터뷰하고 반값에 하자는 매체도 있고요(웃음). 무슨 돈이냐면서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말라고 역정 내는 경우도 있어요.

 

문화·예술 영역에서 유난히 페이에 대한 인식이 박한 것 같아요.

맞아요. 저도 기술을 사용해서 글을 쓰고, 음악을 하고, 공연을 하는 거거든요. 매 순간 예술성과 재능에 취해 있는 게 아니에요. 기술을 총동원해서 무대에 집중하고, 수년을 고민해서 음악을 만드는 건데 예술가라면 ‘삘’에 취해 있다가 갑자기 영감이 샘솟는 줄 아는 거 같아요. 심지어 그렇게 생각하는 아티스트들도 많아요. ‘내 기분에 취해서 나를 보여주면 되겠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있거든요. 근데요, 예술도 거래예요. 이 거래가 완성되려면 내가 정확하게 해내야만 해요. 한번은 일본에서 인터뷰를 하는데 인터뷰어가 그러더라고요. 제가 감정에 취해서 몸을 떨며 노랠 부르는데 그게 인상적이었대요. 근데 그거 다 기술이거든요. 연기예요. 제가 어떻게 음악을 만들던 그 순간의 감정 그대로 매번 공연을 하겠어요. 만들던 당시의 기분과 감정을 불러오는 기술을 쓰는거예요. 근데 제 대답을 듣고 인터뷰어가 실망하더라고요.

 

어쩌면 예술가를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해서 보통의 노동자처럼 돈을 받는다는 사실에 반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아유, 맞아요. 근데 아티스트 중에서도 ‘난 재능이 많은 예술가니까.’ 마인드로 뭘 하든 사람들이 자신을 봐줄 거라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물을 마셔도, 소리를 질러도 봐줄 거라고 믿는 거죠. 그들도 저도 스스로 ‘아티스트’라 말하지만, 그들은 저를 비난해요. 너무 장사꾼처럼 군다고요. 저는 그런 식으로 비난받은 적이 정말 많아요. 근데 전 그럴 때마다 어리둥절해요. 그럼 당신은 공연하고 돈 안 받아요? 이건 엄연한 거래예요.

 

그런 거래를 통해 모아온 돈은 어떻게 사용하고 있어요? 예산관리를 하나요?

저는 고정 수입이 없기 때문에 예산 관리를 하기는 좀 어려워요. 대신 지출 관리를 하죠. 가계부를 보면서 내가 줄일 수 있는 게 뭔지 살피는 거예요. 적금을 들 때도 풀어놓을 수 있는 파킹 통장과 깰 수 있는 적금 통장 같은 걸 나누어서 만들어요. 2년은 안 써도 될 것 같은 돈으로 주식을 하고, 호흡이 긴 적금도 들고요. 또 어느 정도는 유동성 있게 현금화도 할 수 있어야겠죠. 효율적으로 분배하는 게 중요해요.

자본주의 사회에선 어쩔 수 없이 돈이 있어야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것 같아요. 돈이 없어서 못 해본 아쉬운 경험 있어요?

한 달 정도 파리에 있는 친구한테 간 적이 있는데, 돈이 없어서 지내기가 좀 힘들었거든요. 그때 시장에서 뭘 엄청나게 주워 먹었어요.

 

네?

시장이 열렸다가 장사를 끝내면, 조금 상한 과일이라든지 못판 음식을 상인들이 전부 버리고 가거든요. 그럼 그 시장 주변에 노숙자나 돈이 없는 사람들이 서성이다가 점포를 접고 떠나면 비둘기처럼 달려와서 쓸어 모아요. 큼직한 바구니에 수북하게 쌓아 갖고 가는 거죠. 한 종류만 너무 많이 담으면 다른 사람이랑 교환하기도 해요. 버려진 음식을 한 번 주워담으면 일주일은 먹고살 수 있어서 굳이 사 먹지 않아도 끼니를 해결할 수 있게 되죠.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소비도 좀 편히 할 수 있게 된 거네요.

근데 저는 물욕이 극한으로 없어요. 어떻게 아무것도 사지 않을 수 있냐고, 무섭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로 물욕이 없죠. 저는 사람들이 어떤 물건을 사고, 어떤 취향을 가졌는지 보는게 재밌지 제가 그걸 가지고 싶진 않아요. 어쩌다 갖게 돼도 저한테 소중하고 그렇진 않더라고요.

 

돈으로 하고 싶은 경험도 없어요?

음… 저는 돈이 없어서 가질 수 없는 물건 때문에 숭배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싫어요. 터무니없이 경외하는 마음이 생기는 게 싫은 거죠. 누군가 ‘이게 그렇게 좋대!’라고 해서 직접 사용했을 때 감흥이 있던 적이 거의 없어요. 경험해 봐도 저한테는 많은 게 그저 그렇더라고요. 대신 내가 가진 돈으로는 누릴 수 없다고 생각하는 곳에 가 보는 건 좋아요. 명품 숍에 한번 들어가 본다든지… 하는 거요. 저는 여행지에서도 비싼거 파는 데 꼭 들어가 보거든요. “이건 뭐예요?”, “이건 얼마예요?”, “입어봐도 돼요?” 거기 있는 사람들이 저를 무시하건 말건 경험은 좋은 것 같아서 꼭 한 번씩 들러 보는 편이에요. 그런 경험들은 일부러 찾아서 많이 해봤고, 거기서 욕심이 더 생기지 않는 걸 보면 확실히 물욕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의 이랑은 물욕이 없지만, 미래의 이랑은 어때요? 우리는 안정된 노후를 위해 저축하잖아요.

저는 미래를 계획하는 편은 아니에요. 애초에 상상이라는 걸 잘 못 하나 봐요. 제가 생각하는 미래는 준이치의 삶이 끝나는 날까지만이에요. 그 이상은 모르겠어요. 제가 살고 싶어 할지도 모르겠고요. 다른 건 몰라도 준이치의 미래는 보장해 줘야하니까, 그게 제 책임이니까 딱 그 정도 삶만 생각하고 있어요.

 

이랑의 미래는 준이치네요.

저는요, 준이치가 살아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일하고 싶어요. 제가 이렇게 정신없이 일하는 오롯한 이유예요.

《좋아서 하는 일에도 돈은 필요합니다》
이랑 | 창비

그녀와의 대화는 준이치로 시작해서 준이치로 끝이 났다. 그녀에겐 돈도, 삶도, 미래도 전부 준이치로 수렴된다. 세상엔 돈보다 귀중한 게 분명히 있다. 그건 무엇보다 가치 있고, 우리 삶에서 없어선 안 될 것들이다. 이랑에겐 ‘욘욘슨’이라는 노래가 있다. “내 이름은 욘욘슨 위스콘신에서 일을 하죠 그곳 제재소에서 일하고 있죠” 이랑은 이 노래를 이렇게 바꿔 부른다. “내 이름은 이랑님 망원랜드에서 일을 하죠 그곳 한켠 책상에서 일하고 있죠” 그녀가 매일 바지런히 일하는 이유는 준이치를 향한 책임과 애정 때문이리라. 열심히 일하는 이랑을 보고 있으니 준이치가 내일도 거기 있어 주기를 간절히 바라게 된다. 우리는 좀더 오래, 준이치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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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