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하루는 점에서 시작됐다. 길이라는 선을 따라 걷고 또 걷다가 다시 점으로 돌아왔다. 그 점을 ‘집’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았다. 늦여름 멜버른 태양은 오후 여덟 시가 되어야 졌다. 여섯 시에 집에 돌아와 바스락거리는 이불 위에 누워 낮잠을 잤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바람, 적당한 햇살이 감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낮잠 자던 열 살 즈음의 오후 세 시를 떠올리게 했다. 그건 낮잠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위였다. 잠에서 깨면 근처 마트에서 산 수박을 썰어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나무 도마 위에 난 칼자국, 책장에 꽂힌 책, 냉장고에 붙은 메모에서 반갑게 인사하고 헤어진 어제의 누군가가 떠올랐다. 우리는 멜버른에 네 개의 집을 두고 매일 점에서 선을 그었다. 그리고 네 개의 점에서 선으로 이어진 그 동네를 여기에 기록했다.
BRUNSWICK 브런스윅
‘로컬’이라는 단어에는 단어 그대로의 뜻 외에도 다양한 의미가 담겨 있다. 크게 분류하자면 ‘지역과 친화적인’, ‘아는 사람만 아는’, ’현지인이 좋아하는’ 등으로 나눌 수 있겠다. 브런즈윅은 앞의 세 가지 의미를 모두 포괄한다는 점에서 로컬 라이프를 즐기기 좋은 곳이다. 또한 멜버른 근교를 중점적으로 여행하고 싶을 때 거점으로 삼기 좋다. 이탈리아 이민자들의 역사가 있는 브런즈윅에는 특유의 따뜻하고 정감 있는 분위기가 가득하다. 또한 이탈리아 식료품점, 지중해와 아랍 음식을 즐길 수 있는 식당이 훌륭하다. 처음 왔다면 라이곤 스트리트Lygon Street나 시드니 로드Sydney Road를 중심으로 먼저 돌아보는 것을 추천한다.
Words & Photography Lee Hyuna
Green Refectory
A. 115 Sydney Rd, Brunswick T. +61 3 9387 1150
3박 4일의 짧은 여행이라도, 한 달간의 긴 여행이라도 여행자에게는 ‘단골 가게’가 필요하다. ‘그린 리팩토리’는 근처의 학생들부터 주민, 여행자들까지 부담 없이 즐겨 찾는 카페다. 커피와 함께 간단한 식사나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데, 여러 가지 메뉴가 빼곡하게 들어찬 쇼케이스가 인상적이다. 스시 롤, 넉넉한 크기의 케이크, 햄버거와 샌드위치, 푸짐한 브런치 메뉴(‘Breakfast Stack’이 인기 있다)까지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즐길 수 있다. 또한 채식주의자를 위한 메뉴도 훌륭하다. 다만 현금 계산만 가능하니 미리 현금을 챙겨야 한다.
Monk House Design
A. 102 Lygon St, East Brunswick H. monkhousedesign.com T. +61 3 9381 1191
‘몽크 하우스 디자인’은 호주와 세계의 디자이너 브랜드 의류를 취급하는 작은 편집숍이다. CBD와 브런즈윅 두 곳에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브랜드를 선정하는 기준은 좋은 품질과 몸을 압박하지 않는 편안함, 해가 지나도 계속 입을 수 있는 클래식함이다. 다양한 브랜드가 공존하지만 군더더기 없고 잔잔한 유머가 흐르는 유연한 분위기다. 의류뿐만 아니라 도자기, 액세서리, 책, 홈웨어 등 가짓수는 적지만 선별된 소품 또한 만나볼 수 있다.
Nowhere Special
A. 253 Lygon St
만약 누군가 일요일에 멜버른에 도착해 금요일에 떠난다면, 이곳에는 갈 수 없다. ‘노웨어 스페셜’은 오직 토요일 오전 열한 시부터 오후 네 시까지만 운영하는 작은 팝업 숍이다. 건물 계단 입구에서 독립출판물과 잡지, 옷과 음악과 관련된 물건을 판매한다. 색다르고 독특한 예술, 천진난만하고 즐겁게 다가갈 수 있는 예술에서 영감을 받는다. 누구도 신경 쓰지 않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하는 분위기가 치기 어리기보다는 제법 완성된 모습으로 진열돼 있다. 건물에는 밴드 연습실이 있어 문을 여는 날에는 악기를 멘 사람들이 많이 오간다.
All Day Donuts
A.12 Edward St, Brunswick H. alldaydonuts.com T. +61 3 8060 6664
줄곧 흑백 영화를 보다가 온갖 색이 잘 정돈된 웨스 앤더슨 Wes Anderson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 바로 ‘올 데이 도넛’의 첫 느낌과 닮았다. 브런즈윅의 한적한 주택가에 자리 잡고 있는 이곳에서는 패션푸르츠 커드를 곁들인 커피맛 도넛, 초콜릿 커스터드가 있는 만다린 글레이즈드 도넛 등 이름만으로도 군침이 도는 도넛을 맛볼 수 있다. 맛의 비결은 당연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전 공정을 셰프가 맡는 것이다. 반죽을 만드는 것부터 데커레이션까지 말이다. 맛은 물론 휴양지에 온 듯한 인테리어 덕분에 덩달아 기분이 들뜨는 곳이다.
CBD 센트럴 비즈니스 디스트릭트
공항에서 나온 여행자들에게 멜버른의 첫인상은 아마 CBD(Central Business District)에서 처음 결정될 것이다. 흔히 시티라고 불리는 CBD는 멜버른의 중심지로 활기가 가득한 곳이다. 고층 빌딩과 19세기 건축물이 조화롭게 자리하고 있다. 또한 골목길로 여행하라는 말이 있는 도시답게 넓고 좁은 골목마다 카페와 갤러리, 책방 등 성격이 다른 다양한 공간이 사이좋게 들어서 있다. 구역이 크지 않아 여유롭게 걸어 다니기에도 무리가 없지만, 시내 곳곳을 직사각형으로 순환하는 무료 트램City Circle Tram을 이용하면 발품을 줄일 수 있다.
Words & Photography Lee Hyuna
Sun Moth Canteen & Bar
A. 28 Niagara Ln, Melbourne H. instagram.com/sunmothcanteen T. +61 3 9602 4554
높은 벽돌 건물 사이, 기다란 골목길을 따라가면 직사각형 모양의 작은 간판이 보인다. 골목길 중간에 숨어 있는 이곳은 내추럴 와인와 수제 맥주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바이다. 낮에는 커피와 간단한 식사 또한 가능하다. 이곳은 나방Sun Moth이라는 말에 어울리게 늦은 밤 열한 시까지 문을 연다. 이곳에 들른다면 첨가제를 빼고 효모를 사용해 자연 그대로 발효시킨 내추럴 와인을 마셔보길 바란다. 잔을 앞에 놓고 있으면 기분 좋은 맛과 적당한 고요가 덤으로 주어지는 곳이다.
No Order Market
A. 193/187 Elizabeth St, Melbourne H. instagram.com/noordermarket T. +61 3 9600 0459
‘노 오더 마켓’은 인도네시아의 다양한 색과 패턴에 영감을 받아 자연적인 옷과 침구를 만드는 ‘SUKU’, 언더웨어 브랜드인 ‘베이스 레인즈Base Range’, ‘플리츠 플리즈Pleats Please’, ‘바오 바오Bao Bao’, ‘마리엠 나르시 자데Maryam Nassir Zadeh’ 등의 브랜드를 취급하는 ‘쉬프팅 월즈Shifting Worlds’가 모인 하나의 편집 매장이다.
옷과 액세서리뿐만 아니라 출판물, 도자기, 향수와 스킨케어 제품까지 노 오더 마켓의 가치에 부합하는 것을 선별해서 판매한다. 스티븐 클락의 작품도 선반이나, 테이블, 조형물로 곳곳에 자리하고 있어 찾아보는 재미가 있다.
Gallery Funaki
A. 4 Crossley St, Melbourne H. galleryfunaki.com.au T. +61 3 9662 9446
‘갤러리 푸나키’는 멜버른의 골목길에 숨어 있는 작은 주얼리 갤러리다. 좁은 정사각형 공간에 오른쪽은 벽면 전시, 왼쪽은 주얼리 캐비닛으로 나뉜다. 화려한 주얼리를 다루는 대신 공간 자체는 아주 단순하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 공간을 갤러리라 부를 수 있는지 의문이 든다면, 캐비닛의 서랍을 열어보면 된다. 서랍을 열 때마다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호주, 유럽, 뉴질랜드의 아티스트들이 만든 예술품으로서의 주얼리를 발견할 수 있다. 수많은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작은 공간으로, 1년에 적어도 6회의 개인 혹은 그룹 전시를 열고 있다.
Supernormal
A. 180 Flinders Ln, Melbourne H. supernormal.net.au T. +61 3 9650 8688
플린더스 레인은 일부러 찾아가고 즐기고 싶은 북적북적함이 있는 곳이다. ‘슈퍼노멀’은 멜버른의 스타 셰프인 앤드류 매코넬Andrew McConell의 레스토랑으로 늘 사람이 많아 예약은 필수다. 홍콩과 상하이에서 머물렀던 그의 접시는 아시아 음식의 영향을 받았다. 하지만 단순히 흉내를 내는 데 그치지 않고 새로운 미각을 깨워준다. ‘아는 음식인 것 같은데’ 하면서 먹었다가 ‘이게 무슨 맛이지?’ 하는 궁금증을 자아내며 감탄하게 되는 식이다. 메뉴에 있는 김치나 떡볶이 또한 일품이다.
Pussycat Black
A. 105 Therry St, Melbourne H. pussycatblack.com T. +61 488 225 959
푸시캣 블랙은 호주, 멜버른에서 만들어진 디자인 제품을 선별해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마치 멜버른의 색채를 집약해놓은 듯하다. 편안한 매무새가 돋보이는 옷, 심플한 도형을 콘셉트로 한 주얼리와 수제 비누, 도자기 등 개성이 강한 제품들이 이곳 안에서 조화롭다. 멜버른에서 만든 제대로 된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곳이다. 또한 푸시캣 블랙이 있는 퀸 빅토리아 마켓 앞 테리 스트리트Therry Street에는 요리책 서점 북스 포 쿡스Books for Cooks, 발이 편하지만 디자인도 놓치지 않는 래디컬 예스Radical Yes!, 마켓 레인 커피 등이 나란히 자리하고 있다.
Chin Chin
A. 125 Flinders Ln, Melbourne H. chinchinrestaurant.com.au T. +61 3 8663 2000
호주에서는 특별한 자국의 음식을 찾기 힘든 대신, 수준 높은 아시안 요리나 퓨전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친친’은 멜버른에서 가봐야 하는 레스토랑 리스트에 늘 꼽히는 태국 레스토랑이다. 하루를 풀어놓기 위해 오는 손님이 많은 만큼 음식과 함께 다양한 종류의 칵테일을 함께 즐길 수 있다. 혼자 혹은 둘이 온 손님보다는 여러 명인 경우가 많아 시끌벅적하고 흥겨운 분위기이다. 가벼운 대화, 한담을 뜻하는 ‘Chin Chin’이라는 이름이 무엇보다 잘 어울리는, 문턱 낮은 레스토랑으로 지하에는 ‘고고 바GoGo Bar’가 있어 식사 후 바로 이동할 수도 있다.
피츠로이에 있는 조Zoe의 집. 에어비앤비Airbnb를 통해 만난 이 집은 스튜디오처럼 꾸며진 침실, 넓은 뒷마당으로 이어지는 부엌, 취향이 보이는 책과 그림이 있는 넓은 거실 등 곳곳이 쉼을 위한 장소였다. 잠시 동안 멜버른의 집이 되어준 이곳의 빨간 대문을 볼 때마다 우리는 기분 좋은 안도를 느꼈다. 특히 가장 햇살이 종일 들던 밝은 욕실에서 목욕하던 시간은 여행 중 가장 반짝였던 순간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