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하루는 점에서 시작됐다. 길이라는 선을 따라 걷고 또 걷다가 다시 점으로 돌아왔다. 그 점을 ‘집’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어색하지 않았다. 늦여름 멜버른 태양은 오후 여덟 시가 되어야 졌다. 여섯 시에 집에 돌아와 바스락거리는 이불 위에 누워 낮잠을 잤다. 열어놓은 창문으로 들어오는 적당한 소음과 적당한 바람, 적당한 햇살이 감나무 아래 평상에 누워 낮잠 자던 열 살 즈음의 오후 세 시를 떠올리게 했다. 그건 낮잠이라고 부를 수 있는 행위였다. 잠에서 깨면 근처 마트에서 산 수박을 썰어 늦은 저녁을 먹었다. 나무 도마 위에 난 칼자국, 책장에 꽂힌 책, 냉장고에 붙은 메모에서 반갑게 인사하고 헤어진 어제의 누군가가 떠올랐다. 우리는 멜버른에 네 개의 집을 두고 매일 점에서 선을 그었다. 그리고 네 개의 점에서 선으로 이어진 그 동네를 여기에 기록했다.
FITZROY & COLLINGWOOD 피츠로이 & 콜링우드
서로 이웃하는 피츠로이와 콜링우드는 젊고 예술적인 분위기가 느껴지는 동네다. 이 두 지역은 지난 30여 년간 멜버른의 예술과 문화를 지원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멜버른 도심의 북쪽인 이곳은 원래 대규모 이주민이 거주했던 곳으로, 동부나 남부의 교외 지역보다 ‘더 위험한’ 지역으로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도시에 대한 접근성과 저렴한 임대료 덕분에 많은 갤러리와 공연장, 개성 있는 가게가 들어서며 새롭고 문화적인 이벤트를 위한 완벽한 공간이 되었다.
안타깝게도 현재의 피츠로이와 콜링우드는 멜버른에서 가장 비싼 교외 지역 중 하나이다. 멜버른의 인구가 늘어나면서 이곳의 임대료도 올랐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행스러운 사실은, 이곳에서 여전히 훌륭한 갤러리와 음악 공연장(토트 호텔) 그리고 가게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Words & Photography Kim Hyewon Advise Adam Stone(Director of LON Gallery)
Vintage Garage
A. 318 Smith St, Collingwood H. vintagegarage.com.au T. +61 3 9417 2120
스미스 스트리트에는 빈티지 숍이 여럿 있다. ‘빈티지 개러지’는 그중 양과 질에서 가장 돋보이는 빈티지 숍이다. 모자와 가방 같은 액세서리와 의류는 물론, 컵과 화병 같은 자잘한 가정용품까지 두루 갖췄다. 더욱 좋은 것은, 숨겨둔 ‘매의 눈’을 발동하지 않아도 마음에 드는 바지나 셔츠 하나 정도는 찾을 수 있다는 점이다. 1980년대 외화 속으로 여행을 온 것 같은 기분은 덤이다.
Happy Valley
A. 294 Smith St, Collingwood H. happyvalleyshop.com T. +61 3 9077 8509
‘해피 밸리’는 다양한 서적과 디자인 상품을 판매하는 숍이다. 단순한 편집숍을 넘어서 이들은 자신이 판매하는 상품을 ‘선물’이라고 표현한다. 우리가 이곳에서 알맞은 선물이나 완벽한 선물에 영감을 주는 책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멜버른과 호주에서 만들어진 상품을 다양하게 보유하고 있어, 여행의 기념이 되는 물건을 구매하기에 적절하다. 그중 추천하는 것은 진중한 무화과 향의 ‘메이드 인 멜버른’ 향초다.
LON Gallery
A. 21 Easey St, Collingwood H. longallery.com T. +61 411 404 136
쓰레기통 사이에서 옷을 벗고 누워 있는 여인(이 그려진 입간판)을 발견한다면, 그것이 ‘론 갤러리’로 들어가는 입구다. 론 갤러리는 비영리 독립 갤러리와 상업 갤러리 사이의 ‘격차 해소’를 목표로 두 친구가 합심해 만든 갤러리이다. 아티스트의 작품을 전시하며 상업 갤러리처럼 이를 판매하고 수익을 분배하지만, 아티스트를 독점하지 않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공간은 작지만 멜버른의 젊고 개성 있는 예술가들을 만날 수 있다.
• Bus Projects A. 25–31 Rokeby St, Collingwood H. busprojects.org.au T. +61 3 9995 8359
‘버스 프로젝트’는 2001년 시작된 멜버른에서 가장 오래된 독립 갤러리 중 하나이자 다양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예술가 단체다. 회화, 설치 미술, 공연 등으로 멜버른 예술 문화의 다양성에 기여한다.
Lune Croissanterie
A. 119 Rose St, Fitzroy H. lunecroissanterie.com T. +61 3 9419 2320
커피와 크루아상은 아침을 깨우기에 적당한 조합이다. 오전 여덟 시부터 입구 밖까지 줄이 늘어서는 ‘룬’은, 현재 멜버른에서 가장 유명한 크루아상 전문점이다. 캐리어를 끌고 온 여행자부터 정장 차림의 직장인까지, 주민과 이방인에게 두루 사랑받는 장소다. 창고를 개조해 넓은 공간을 자랑하지만 앉아서 먹을 수 있는 테이블이 많진 않다. 투명한 유리 벽 안으로 보이는 중앙의 키친이 가장 많은 공간을 차지하기 때문이다. 기본 크루아상부터 팽 오 쇼콜라, 제철 과일과 크림을 넣은 데니시 그리고 각종 크러핀 등 다양한 메뉴가 있지만, 일찌감치 품절되는 메뉴가 많다.
Mina-no-ie
A. 33 Peel St, Collingwood H. minanoie.com T. +61 3 9417 7749
헬싱키 ‘카모메 식당’의 멜버른 버전이라고 할까나. 멜버른 속 작은 일본 같은 ‘미나노이에’는 일본식 요리와 가벼운 샌드위치 등을 맛볼 수 있는 카페이자, 일본에서 만든 식기와 소품을 엄선해 선보이는 편집숍이다. 소바나 미소국을 곁들인 런치 플레이트 등 익숙한 요리가 반갑다. 미나노이에는 빛으로 가득 찬 공간이다. 넓은 문과 창으로 들어오는 햇볕이 따뜻해 계속 앉아 있고 싶다. 나무로 만든 긴 테이블에서는 가족과 함께 브런치를 즐기면 좋겠다.
• CIBI A. 45 Keele St, Collingwood H. shop.cibi.com.au T. +61 3 9077 3941
미나노이에가 있기 전, 시작은 ‘치비’였다(주인이 같다). 치비는 일본어로 ‘꼬마’나 ‘작은 것’을 의미한다. 카페 치비의 규모는 작지만 사려 깊게 디자인된 상품과 정갈한 일본 음식으로 알차게 채웠다. 분위기가 중요하다면 미나노이에를, 음식이 중요하다면 치비를 추천한다.
ST KILDA 세인트 킬다
멜버른 중심에서 남쪽으로 약 6킬로미터 떨어진 세인트 킬다에는 공원과 해변 그리고 맛있는 음식이 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의 제일 한가롭고 평화로운 해변 마을을 떠올릴 수도 있겠다. 그러나 거리를 따라 들어선 석조 저택과 해변이 내려다보이는 호텔 등, 세인트 킬다는 한때 가장 세련된 교외 지역 중 하나였으며, 현재는 일요일마다 열리는 ‘세인트 킬다 에스플러네이드 아트 & 크래프트 마켓St Kilda Espla-nade Arts & Craft Market’을 찾은 사람들과 트램을 타고 해변에 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Words & Photography Kim Hyewon
Miss Jackson
A. 2/19 Grey St, St Kilda H. missjackson.com.au T. +61 3 9534 8415
커다란 간판도 화려한 대문도 없다. 가게 안으로 들어서기 전까지 이곳이 맞나 하는 의심이 간다. 작은 뜰이 있는 가정집을 개조한 ‘미스 잭슨’은 맛있는 커피와 세계 곳곳을 누빈 셰프의 요리를 맛볼 수 있는 카페다. 이곳의 셰프이자 제빵사인 질린Jillene이 네팔 카트만두에서 요리했던 경험이 음식에 묻어난다. 판매하는 모든 음식은 기본적인 소스부터 이곳에서 직접 만들며, 빵 또한 매일 아침에 굽는다. 미스 잭슨에서는 음식만큼 숙취해소에 좋은 칵테일 블러드 메리Bloody Mary가 유명하다.
Linden New Art
A. 26 Acland St, St Kilda H. lindenarts.org T. +61 3 9534 0099
잔디가 깔린 작은 정원을 지나 하얀 저택 안으로 들어선다. 빅토리아 시대에 지어진 2층 저택에 자리 잡은 ‘린든 뉴 아트’는 1986년 문을 연 현대 미술 갤러리이다. 호주와 세계 각국의 현대 미술 전시를 연다. 대표적인 전시로 1990년부터 매년 진행하는 ‘린든 포스트 카드 쇼Linden Post Card Show’가 있는데, 멜버른과 호주 아티스트들의 작품엽서로 제작해 전시하는 것이다(이 엽서는 언제든 이곳에서 구매할 수 있다). 이 외에 작가와의 만남 같은 대화 프로그램도 진행한다.
St Kilda Beach
A. Jacka Blvd, St Kilda
‘세인트 킬다 비치’는 멜버른 도심에서 가장 가깝고도 유명한 해변이다. 야자수가 있는 고운 모래 해변으로, 이곳에서 한낮의 여유를 즐기는 멜버른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을 살짝 엿볼 수 있다. 평일 오전 열 시에도 모래사장에 앉아 일광욕을 즐기거나 책을 읽는 젊은이, 아이와 함께 산책로를 걷는 가족들을 마주친다.
Luna Park
A. 18 Lower Esplanade, St Kilda H. lunapark.com.au T. +61 3 9525 5033
조르주 멜리에스의 영화 <달세계 여행>이 떠오른다. 눈코입이 그려진 달, 더군다나 그 입으로 사람들이 들어가는 ‘루나 파크’를 바라보니 말이다. 루나 파크는 1912년에 개장한 작은 규모의 놀이공원이다. 100년 전 만들어진 이 공원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즐겁다. 입장하지 않고 밖에 서서 관람차나 롤러코스터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나간 시절의 향수가 자극된다. 물론 지극히 이국적인 풍경이지만.
Scout House
A. 161A Fitzroy St, St Kilda H. scouthouse.com.au T. +61 3 9525 4343
‘스카우트 하우스’는 주인인 올랜도 메시티Orlando Mesiti가 프랑스와 벨기에, 네덜란드 등지에서 수집한 빈티지 소품과 함께 가구 및 램프 등 가정용품을 판매하는 편집숍이다. 아름답고 실용적인 것 사이에서 그가 선택한 오래되고 새로운, 다양한 제품들을 구매할 수 있다. 멜버른과 호주 각지에서 디자인된 향초와 비누 제품도 찾을 수 있다.
Mainly Jazz Records & Books
A. 94 St Kilda Rd, St Kilda T. +61 3 9534 1173
당신이 재즈 마니아라면 들러볼 만하다. 쉽게 열리지 않는 나무 문을 힘껏 밀고 들어서면 작은 내부 공간에 가득 들어찬 LP와 CD, 카세트테이프 그리고 책들이 보인다. 물론 다 재즈와 관련된 것들이다. ‘깔끔함’, ‘정돈됨’ 등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공간이지만, 이런 곳일수록 발견하는 기쁨이 더욱 크다는 것을, 우린 이미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