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OUND REVIEW

영화 속을 여행하는

AROUND REVIEW

영화 속을 여행하는
섬에 대한 안내서

영화 속에서 제주는 슬픈 섬이다. 특히 제주의 역사를 품고 있는 영화라면 더욱 그렇다. 정치적 이해관계로 희생된 선량한 죽음들. 제주의 자연은 모든 걸 알고 있다. 태풍 속에서도 고요한 미끄럼틀은 아버지와 아들, 단 둘만의 섬이다. 기억을 전하는 교감의 섬이다. 서울 속 무인도 밤섬은 유쾌한 섬이다. 유쾌하나 씁쓸하고, 씁쓸하지만 따뜻한 섬이다. 그곳에서 사람과 사람이 만날 때 그들은 서로의 안부를 묻는다. 우리는 각기 다른 세 개의 섬 영화를 보고 각자의 섬을 생각하기로 했다. 영화 속 섬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

태풍이 지나가고, 2016
유년의 섬, 할아버지와 아버지와 아들의 미끄럼틀

이현아

“태풍이 지나가고 지진도 온단다.”

어린 시절의 기억을 하나하나 떠올려보는 일은 즐겁다. 조금 괴로운 기억들도 그러려니 넘길 수 있는 것이 지난 시절의 힘인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가끔 어릴 때의 일을 천천히 떠올려 본다. 생일 때마다 할머니가 만들어줬던 수수 팥떡의 맛, 명절을 쇤 후 떠나는 친척을 바라보며 아빠가 피우던 담배 냄새, 좋아하는 친구의 뒤에서 자전거를 타던 날의 공기, 그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헤아리면 괜시리 부자가 된 듯한 기분이 든다.

<태풍이 지나가고>의 주인공 료타는 문학상을 수상하며 주목받은 작가였지만, 지금은 추리 소설을 쓴다는 명목으로 흥신소에서 사설탐정으로 일한다. 아내와는 이혼했고 한 달에 한 번 아들을 만난다. 여전히 소설을 쓰고 싶지만 경륜장에서 애써 번 돈을 날리고 출판사에서 제의한 만화 각색 원고를 쓰는 일엔 자존심이 상하는 어른이다. 야구하는 아들에게 가장 비싼 스파이크를 선뜻 사주기 어렵고, 모스버거에 가는 게 최고의 외식인, 아이가 되려 아빠를 걱정하게 하는 그런 어른.

오랜만에 아들을 만난 날, 그는 어머니가 사는 아파트에 찾아간다. 시간이 되어 아내가 아이를 찾으러 오지만 때마침 휘몰아치는 태풍으로 오랜만에 하룻밤을 같이 보내게 된다. 그는 잠에서 깬 아들을 아파트 놀이터의 미끄럼틀에 데려간다. 태풍은 몰아치지만 미끄럼틀 안은 섬처럼 고요하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단 둘이 아들과 미끄럼틀 안에서 과자를 까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되고 싶은 어른이 ‘아직은’ 되지 못한 아빠가 해줄 수 있는 말은, 자기는 야구 선수는 못될 거라는 아들에게 할 수 있는 말은, 되고 되지 않고는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무수히 망각되는 기억 속에서 아들에게 자기가 받았던 기억의 유산을 물려주는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여러 차례의 태풍이 지나간 후 아들은 모스버거나 좋은 스파이크보다 미끄럼틀 안의 기억을 더 소중히 여기게 되지 않을까.

비념, 2012
바람이 울고 있는 섬에서 

김건태

“아저씨, 우리 인간이 이렇게 살아가는 게 아니지요.”

제주 4·3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하여 1948년 4월 3일에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진압 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비념>은 바로 그 4·3사건에 희생당한 사람들을 기억하는 영화이다.

제주에 내려가기 전 가수 장필순의 영상을 봤다. 그녀는 故 노무현 대통령을 기리는 무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치를 잘 모릅니다. 참 좋은 사람이었다. 그리고 또 그 사람이 우리같이 세상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따듯한 것을 많이 남겨주지는 않았나.” 그녀의 말이 참 오래 남았다. 나 역시 정치는 잘 모른다. 알려 할수록 골치가 아프고, 추악하고, 어쩐지 열정적인 활동가로 보이는 게 꺼려져 외면하는 편이었다. 하지만 우연한 기회에 들른 4·3평화공원에서 시간을 보내고 난 뒤 나는 그동안의 무관심이 부끄러웠다. 그곳에는 외면해왔던 커다란 사건, 이데올로기, 누군가가 누군가를 죽이는 행위, 살려달라고 말했지만 기어코 죽어버린 무고한 사람들의 역사가 있었다. ‘희생자’라는 말로 성스럽게 포장했지만 하나하나의 끔찍한 죽음들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영화는 시종 차분하다. 조금씩 움직이는 제주의 풍광을 담고 자주 한 곳에 멈춰 사라진 것들을 바라본다. 빈방 열어둔 창문에서 불어온 바람, 그 바람으로 비닐봉지가 날린다. 나무에서 떨어진 배와 쓰러진 플라스틱 의자. 촛불이 깜빡이는 밤. 제주의 뱀. 제주의 개구리. 제주의 흙. 그 바닥을 뒹구는 제주의 조랑말. 제주의 안개. 안개 속 나무. 눈 쌓인 풍경. 푸른 오름. 바람이 불고 풀벌레가 우는 다랑쉬오름. 그곳에서도 사람이 죽었다. 제주의 지도를 펼쳐놓고 하나하나 점을 찍으면 그곳은 지금 제주의 아름다운 풍경이자 그날 죽어간 사람들의 참혹이다.

93세 한신화 할머니는 4·3사건 당시 폭도로 몰려 1년 형을 받았다. 4살 난 아들을 데리고 배에 태워져 육지로 갔다. 그녀는 맞아서 피로 옷이 다 젖었다. 허공에 손을 묶인 채 허우적댔다. “살려주세요. 바른말 할게요. 살려주세요.” 그녀는 살았다. 그리고 93세가 되어 이렇게 말한다. “올 땐 아긴 일러벌고이 고아원에가 떼어내고난 어망그리워 죽어빗서(돌아올 땐 아기는 잃어버리고 고아원에다 떼어놓고 나뒀는데 엄마가 그리워 죽어버렸어).” 그녀는 아이를 잃고 가족을 잃고 혼자서 다시 제주로 돌아왔다. 

언젠가 아버지와 아침 식사를 할 때였다. 그날은 2009년 초였고, 등 뒤에 켜둔 미니 텔레비전에서는 용산에서 일어난 경찰과 시위대의 충돌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별생각 없이 젓가락을 놀리며 고등어 가시를 발라내는데 아버지는 시위대의 폭력성에 분노하며 장기화된 시위로 인한 경제 손실을 걱정했다. 나는 감정적으로 받아쳤다. 아버지는 법치와 자본주의 아래 지켜야 하는 일들에 대해, 나는 생계를 위해 화염병을 던지는 이들의 아우성을 이야기했다. 우리는 싸우고 또 싸웠다. 일관된 주제와 중재 없는 토론은 배설과 같았고, 식어버린 고등어는 딱딱해졌다. 그러나 우리가 열을 내며 싸운 한 시간 동안에도 어디선가 사람은 죽고, 불에 타 죽어버린 사람들은 돌아올 수 없다. 죽어버린 사람을 앞에 두고 누가 무게를 매기고 색깔을 칠하고 가격표를 붙일 것인가. 우리에게는 그럴 만한 권한이 있는가. 너는 폭도인가? 너는 폭도의 가족인가? 그런 질문은 가능한가. 겨울 새벽 타오른 여섯 사람의 죽음과 그날 제주에서 ‘토벌’당한 삼만여 명(당시 제주 인구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인원)의 죽음들이 가여워 나는 무엇을 말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

영화는 비념(무당 한 사람의 굿)으로 시작해 비념으로 끝난다. 떠나버린 사람을 기리며, 그의 물건들을 태우며, 남은 사람들은 주술을 외운다. 무고하게 죽은 사람들의 영혼은 모두 어디로 갈까. 혼령처럼 불씨가 날린다. 여전히 제주에는 많은 바람이 불고, 그곳에서 나무는 가지를 스치며 운다.

김씨표류기, 2009
우리 모두 표류하고 있다 

이자연

“이 순간만큼은 세상에 아무도 없는 달과 같아요. 나의 기분은 달의 중력처럼 가벼워지죠. 세상이 이대로 멈추었으면 좋겠어요. 6분의 1만큼 가볍게 살 수 있도록 말이에요.”

‘사람이나 배 따위가 물 위에 떠서 정처 없이 흘러감.’ 국어사전에 ‘표류’를 찾아보면 제일 먼저 나오는 뜻풀이다. 남자 김 씨는 한강에 투신자살 시도했으나 불행 중 다행으로 한강에 있는 밤섬에 표류하게 되었다. 아무도 살지 않는 그곳은 무인도. 쉽고 빠른 무이자 대출을 갚기는 쉽지 않았고, 일은 고달팠으며, 사랑은 부질없이 떠나갔다. 후회와 자기 연민을 넘어 분노로 치달은 그는 삶에 미련이 없었다. 연 이자율이 얼마고, 원금이 얼마라고 확인시켜주는 대출상담원이 묻는다. “고객님, 알아들으셨나요?” 그리고 남자 김씨가 대답했다. “네. 덕분에 확실히 용기가 생겼습니다.” 

그랬던 그였는데 눈을 떠보니 생전 관심도 없던 밤섬에 갇혀있다니. 흙먼지에 까맣게 뒤덮인 그는 강 건너편으로 SOS 신호를 보낸다. “여기 사람 살려요! 살려주세요! 여기 사람이 갇혀있습니다!” 애먼 목소리는 공허하게 귓가를 맴돌기만 한다. 심지어 배터리가 간당간당한 핸드폰으로 119에 구조 요청을 해보지만 일종의 장난 전화로만 여겨지고 만다. 아무도 구제해주지 않는 인생. 믿어주지 않는 인생. 한강으로 들어오기 전과 다를 바 없다. ‘목적이나 방향을 잃고 제자리를 찾지 못함.’ 국어사전에 두 번째로 나오는 ‘표류’의 뜻풀이다. 

혹시 하는 마음으로 한강을 헤엄쳐 거슬러 올라가 보려고도 해 본다. 하지만 수영을 하지 못하는 그는 뿌연 물줄기 속에서 허우적대기만 한다. 아득히 아버지가 보인다. “야, 팔을 저어봐. 남들 다 하는데 넌 왜 그게 안 되냐?” 아버지가 사라진 자리에 면접관들이 남자 김 씨를 바라보고 있다. “토익이 700점밖에 안 돼요? 나이가 좀 있네요?” 허우적허우적. 그리고 얼마 전 이별을 고한 여자친구의 차가운 모습. “나 나쁜 년인 거 알아. 근데 자기야, 못된 거랑 무능한 거랑 뭐가 더 나쁜지 알아?” 허우적허우적. 아니다, 어쩌면 애초부터 구원이란 것이 없었는지도 모르는 인생이었는지도.

그런 그를 처음으로 발견한 것은 여자 김 씨였다. 그녀는 방 안에서만 지내는 히키코모리. 3년째 작은 방안에서 모든 것을 해결하고 있는데, 여기에는 아무도 모르지만 엄격한 철칙이 존재한다. 기상은 아빠 출근 후 오전 8시. 하는 일이라고는 새로운 인생을 설계하기 위한 ‘미니홈피 꾸미기’, 자기 계발은 ‘미니홈피 파도타기’. 모든 일정이 끝난 뒤에 자신만의 취미생활은 길고 커다란 망원경을 이용하여 달 사진을 찍는 것. 매일 달의 모습을 찍는 그녀는 말한다. “달을 찍는 이유는 달에 아무도 없기 때문이에요. 아무도 없으면 외롭지 않으니까요.” 

섬에 갇힌 한 남자와 자기만의 섬을 만든 여자. 이들은 모두 표류하고 있다. 각자의 섬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지한 두 김 씨는 한 명은 돌을 모아서, 또 한 명은 편지를 보내며 신호를 주고받는다. ‘Help’가 ‘Hello’가 되는 과정은 결국 서로의 안부를 묻는 일(How are you? I’m fine, and you?)이 되고, 말미에는 서로의 존재를 묻는 일(Who are you?)이 된다. 자기 밖으로 타인의 안위를 살피면서 그들은 섬 밖으로 얼굴을 내민다. 표류는 언젠가 정착이 되기 마련인 셈이다. 

두 김 씨는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이름이 밝혀지지 않는다. 영화 속에서만 볼 수 있는 특정한 누군가가 아니라 우리 중 표류를 하고 싶고, 하게 되었고, 할 수밖에 없는 어느 아무개 씨를 가리키고 있기 때문일지 모르겠다. 나는 이따금 표류하고 싶다. 어느 누군가의 발자국도 남지 않은 곳으로 혼자 달랑 남겨지고 싶다. 그리고 지독하게 외로워 지쳐갈 즈음에는 누군가가 조용히 다가왔으면 좋겠다. ‘How are you?’라는 질문을 넌지시 건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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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건태

포토그래퍼 안가람 글 김건태 이현아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