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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가 부부의 책갈피
뜨거움과 차가움, 단단함과 무름, 익숙한 것과 낯선 것들. 빛이 무언가를 통과할 때 생겨나는 두 개의 이름과 그 둘의 다름과 다시, 그들을 하나로 부름직한 이름에 대해서.
그의 이야기
시인 기형도는 그 유명한 “사랑을 잃고 나는 쓰네”란 구절로 시작하는 <빈집>이란 시의 말미에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라고 적은 적이 있다. 스무 살쯤 처음 그 표현을 읽었을 때 나는 스스로 그 구절을 충분히 이해했다고 믿었다. 아니, 처절하게 내 마음 같다고 여겼을지도 모르겠다. 스무 살은 그렇게 이해 불가능한 것들이 없는 나이이기도 하니까, 하고 변명도 해보지만, 마흔에 접어든 나에게 저 표현은 평범한 스무 살이 진정으로 이해하기엔 난해한 종류의 것이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차갑게 식어버린 무언가를 경험하기 위해서는 어떤 정돈된 감각이 필요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자신이 품었던 열망의 내용을 알아볼 시선이 동반되어야 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의 스무 살은 그렇지 못했다. 무엇이 뜨거운 것인지를 분간하지 못했고, 어떤 종류의 냉담을 체험하기에는 스무 살의 몸은 늘 혼란스럽고 과장된 착각 속에 잠겨 있었던 거 같다.
폐업한 온천에 / 몰래 들어간 적이 있어 // 물은 끊기고 / 불은 꺼지고 // 요괴들이 살 것 같은 곳이었어 / 센과 치히로에서 본 것처럼 // 너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 도시에는 사람들이 살지 않는다 / 다들 어디론가 멀리 가버렸어 // 풀이 허리까지 올라온 공원 / 아이들이 있었던 세상 // 세상은 이제 영원히 조용하고 텅 빈 것이다 / 앞으로는 이 고독을 견뎌야 한다 / 그렇게 생각하면 / 조금은 마음이 편해진다 // 긴 터널을 지나 낡은 유원지를 빠져나오면 / 사람들이 많았다 // 너무 많았다
– 황인찬, <부곡>
더 이상 내 것이 아닌 열망들아, 라고 적고 차갑게 식은 감정과 관계와 사물과 음악에 대해 생각한다. 그러고 보면 열망으로 가득 차야만 삶이라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삶은 열망이 아니라 어떤 종류의 시시함과 차가움을 동시에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조금씩 배웠다. 조용하고 텅 빈 시간, 혹은 버티고 견뎌야 하는 고독의 시간이 대부분의 삶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란 쉽지 않다. 그리고 그 시간은 뜨겁기보다 차가우며 깊은 의미로만 채워져 있기보다는 시시하고 사소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내가 좋아하는 한 선생님은 당신의 글에서 삶의 메마름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곤 했다. 선생님은 삶의 메마름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거나 삶의 어두움으로부터 억지로 벗어나려 할 때 우리의 정신이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고 진단하고는 했다. 더불어 삶의 메마름을 이해할 때 비로소 삶에 대한 사랑과 공경의 감각을 알게 된다고도 알려주셨다. 저 금언은 내가 삶에서 곤란을 겪을 때마다 나를 잡아주는 말이 되어주곤 한다. 어쩌면 저 말 덕택에 나는 덜 성마른 자가 되었을지도 모르겠다.
어느 책에선가 나무들의 나이테가 보여주는 단순한 사실은 우리가 통과하는 시간이 겹겹의 모양을 하고 있다는 점이라고 쓰인 것을 본 적이 있다. 나는 그 구절을 읽으면서 우리가 통과한 시간들은 뜨거운 시절과 차가운 시절이 번갈아 만들며 단단한 겹을 이루고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 생각을 한 뒤로는 가끔 내 삶에 불만이 가득 차오를 때마다 지금은 차가운 시간인가, 아니면 잘못 뜨거운 시간인가를 따져보고는 했다. 그러고는 이 시절 뒤에는 다른 시절이 올 거라고, 그것이 또 둥근 나이테를 만들어나갈 거라고 내 멋대로 떠올리기도 했다. 그래도 그런 방식의 사고가 나를 조금은 안심시켰고, 나는 더 큰 실망을 하지 않는 쪽으로 나의 삶을 조금 이동시킬 수 있었다.
시간이 빛과 같다면, 그 빛이 저 뜨거운 시절과 차가운 시절 사이에서 움터 나오리라. 오랜 시간을 품어냈다는 것은 그만큼 질적으로 다른 시간들을 겪어냈다는 말이며 또한 어떤 시간들을 견뎌냈다는 말이기도 할 것이다. 얼마 전에는 우연히 지나다 본 드라마에서 한 배우가 중저음으로 이런 대사를 또렷하게 말해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왜냐하면 정확한 표현을 얻지 못하던 내 마음속의 생각이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 같은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요즘말로 ‘띵언’이라고 할 만한 그 대사는 이렇다. “견디세요! 상황은 변합니다.”
그녀의 이야기
우리 집에는 벽시계가 없다. 지금 우리 집으로 이사 온 지 8개월 정도가 되었는데 주인의 게으름이 시계 구입을 차일피일 미뤘기 때문이다. 이사 오기 전 집에는 성인 손바닥보다 약간 큰, 뒤집어진 사다리꼴 모양의 벽시계가 있었다. 아기가 태어나고 무럭무럭 자라 걷기 시작한 후에 집 안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그 시계를 장난감 자동차처럼 밀며 거실 바닥을 돌아다니는 통에 그 시계의 존재를, 그것을 오래 잊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빈티지 시계. 1960년대 독일의 어느 마을에서 만들어진 후에 2018년 초입 한국의 어느 소도시 한 가정의 벽에서 운명을 다해버린. 장난감을 빼앗겨 우는 아이를 뒤로하고 시계를 고이 제자리에(!) 모셔두면서 이것을 다시 살릴 수 있을까, 살려야만 할까 생각한다.
어쩌면 언젠가부터 이 사회에서 더 이상 새로운 무엇을 생산하고 그것에 합당한 용도 이상으로 이야기를 붙여 값을 매긴 다음에 소비를 부추기는 일이 불가능해지자, 사회는 ‘오래된 것’과 ‘매력’이라는 두 단어를 반복해서 사람들 귀에 대고 속삭이고 있는 게 아닐까. 오래된 것, 더 오래된 것, 유일한 것, 더 유일한 것. 그런 것들을 어떻게든 팔기 위해서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말했을 때 어떤 반감이 생겨나는 것 또한 사실이다. 사물에 깃들어 있는(혹은 실제로 묻어 있는) 세월의 흔적 같은 것, 그 얼룩의 가치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가. 사물이 갖는 아우라를 그것의 영혼이라고까지 추켜세우고 싶지는 않지만, 그것이 사물에 관해 어떤 것도 이야기하지 못한다고 잘라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나는 오래된 것만이 가지고 있는 가치를 믿는다. 그 가치를 아우라 같은 추상적인 명사로 뭉뚱그려 말하는 게 주저될 뿐이다. 오래된 것은 말 그대로 지금 여기의 풍경과 감성에서 빗겨나 있는 것, 이제 와 ‘새것’으로 치부할 수 없는 것, 그렇다고 미래에 올 것이라고 장담할 수도 없는 것들 가운데에 있다. 아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기름을 먹이고 세련된 포장지로 말끔하게 포장을 해도 새것이 될 수 없고, 몇 날 며칠을 닦지 않아 먼지가 두텁게 쌓여도 헌것이 될 수 없는 그런 것. 그것은 언젠가 우리가 지나온 어떤 시간 속에 남겨진 것, 똑같은 모습으로는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없는 것, 그런 의미에서 오늘의 나를 예상치 못하게 자극하고, 그렇게 나의 시간에 제동을 걸고, 그리하여 나를 지금에 붙박이게도 하는 그것이다.
내 마음속에 영원히 남은 뉴욕제과점의 모습은 그와 같았다. 24시간 국밥집에 들어간 나는 옛날로 치자면 2번 테이블이 있던 곳쯤 돼 보이는 자리에 앉아 국밥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텔레비전도 옛날 그 받침대에 놓여 있었고 바닥 무늬도 그대로였으며 나무 장식의 천장도 마찬가지였다. 내 눈길이 닿는 모든 곳에서 나는 우리 가족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어린아이였다가 초등학생이었다가 걱정에 잠긴 고등학생이었다가 자신만만한 신출내기 작가였다가 빙수 판매 신기록을 세운 대학생이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더 이상 고개를 들고 실내를 바라볼 수 없었다. 이윽고 국밥이 나왔고 나는 내내 고개를 숙이고 국밥을 먹었다. 국밥은 따뜻했다. 나는 셈을 치른 뒤, 새시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역전 거리의 불빛들이 둥글게 아룽져 보였다.
-김연수, <뉴욕제과점>, 《내가 아직 아이였을 때》 중에서
‘나’는 자신을 먹이고 키워준, 부모님의 빵집이 사라진 자리에 새로 들어선 식당에서 따뜻한 국밥을 먹고 거리로 나와 둥글게 아룽져 보이는 불빛을 보며, 자기의 어린 시절과 현재의 거리를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견주어 보면서 인생을 생각한다. 이 이야기가 누군가의 마음에 자국을 남긴다면 아마도 지금 없는 채로 계속 있는, 과거의 나를 살찌우고 지금의 나를 울게 하는 ‘뉴욕제과점’을 저마다 간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어린 시절 나에게는 크리스마스트리가 있었다. 물론 온전히 내 것이라고 할 수만은 없는 그것은, 젊은 시절 아빠와 엄마가 어린 자식들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서 어디에선가 구입하고 장식한 가짜 나무였다. 교회도 다니지 않았지만 성탄절 즈음에는 집에 있는 전축에서 늘 캐럴이 흘러나왔고(영구와 땡칠이 버전부터 이름을 알 수 없는 피아노 연주곡 버전의 캐럴까지), 전야에는 산타 할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양말에 끼워 넣고 머리맡에 고이 둔 후에(꼭 잠이 든 후에야 산타 할아버지가 온다는 부모님 말을 철석같이 믿은) 아이들은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며 두 눈을 꼭 감았다. 초저녁부터 불을 끈 어두운 방 한구석에 알록달록 오색 꼬마전구를 두른 크리스마스트리가 반짝반짝 빛나던 밤이 있었다. 오래된 것이라는 말과 함께 나는 오래전 그 밤, 천장을 보고 누워 쿵쾅대던 마음을 스스로 다독거리던 그날, 눈을 감아도 빛나던 그 불빛을 기억한다. 그 불빛은 30여 년 전 점멸했지만, 지금 여기를 여전히 빛내고 있으므로. 올해 크리스마스에는 촛불을 후 불어 끄는 것을 좋아하는 아기를 위한 트리를 장만할 생각이다. 거기에 모진 바람이 불어도 끄떡없이 빛나는 것들을 걸어주고 싶다.
글 김나영, 송종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