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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라는 숲과 재능이라는 나무
부모라면 누구나 갓 태어난 작고 말랑말랑한 아기를 안고서 이 아이가 커서 어떤 사람이 될까 생각해 보는 순간이 있습니다. 아이의 반짝이는 면을 발견하고 북돋워 주리라, 최선을 다해 아이를 지원해 주는 부모가 되리라. 고소한 냄새가 나는 아기 뺨에 얼굴을 비비며 다짐하곤 하죠. 아이의 재능을 적절한 시기에 발견하고 꽃 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부모의 사명이라고 생각하기도 해요. 실제로 주위에서 김연아에게 스케이트를 내밀어 주지 못하는 엄마, 조성진에게 피아노를 만나게 해주지 못하는 아빠가 될까 봐 걱정하는 다정한 부모님들을 많이 봅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 꼭 뭔가 잘해야만 할까요? ‘재능’이라는 단어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를 한번 돌아보는 건 어떨까요. ‘아이라는 숲’과 ‘재능이라는 나무’에 대한 저의 생각을 들려 드릴게요.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많습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해요. 아니 잘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요? 인간으로 태어나 재능이 없기란 참으로 쉽지 않습니다. 다만 내가 가진 재능을 재능이라고 인식하지 않거나 인식하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첫째, ‘인식하지 않는’ 이유는 순위로 매겨지지 않는 재능을 재능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회적 경향 때문입니다. 재능은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이에요. 언어나 스포츠, 악기를 잘하는 것만 재능이 아니라 남의 마음을 잘 읽고 사람을 잘 챙기는 것, 공기놀이를 잘하는 것, ‘한 입만’을 차단하기 위해 혈육이 문 닫고 몰래 끓여 먹는 라면 냄새를 잘 맡는 것도 모두 재능인 거죠. 하지만 우리는 그동안 먹고살기 힘들어서 그랬는지 돈이 되는 재능만을 재능으로 생각하고, 그것도 순위권에 들어야만 안심하곤 했습니다. 우리는 재능이라는 단어를 굉장히 납작하게 인식합니다. 좋은 재주와 능력을 사회적 합의의 영역에 두는데, 그 합의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이죠.
둘째, ‘인식을 못 하는’ 이유는 우리가 놓인 시공간의 다양성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상 프로게이머의 재능을 가지고 고려시대에 태어난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고, 카리브해의 열대 섬나라에서 태어난 관계로 평생 얼음 구경을 하기 힘든 무수한 김연아와 웨인 그레츠키Wayne Gretzky가 지금도 작열하는 태양 아래 땀 흘리고 있을지도 몰라요. 재능은 꼭 사회적인 것은 아니지만, 사회적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장소에 따라 가능성이 드라마틱 하게 제약받기도 하고, 재능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시간의 궤적에 따라 엄청난 재능으로 밝혀지기도 하죠. 어찌 됐든 사회적 합의에 따른 재능의 리스트는 끊임없이 꼬물거리며 변합니다.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든 인식하지 않는 경우든 다소 슬프긴 합니다. 나의 재능을 인정받고 거기에 몰입하는 일은 대체로 즐겁고 기쁘니까요. 하지만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며 쪼그라드는 아이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듭니다. ‘그래요, 백 번 양보해서 재능이 없다고 칩시다. 없으면 안 되나요?’ 우리 아이에게 시대가 가치를 두는 재능이 딱 들어맞게 있다면 그건 축복이겠지만, 아니면 또 어떤가 싶습니다. 재능을 인식하든 못 하든 아이는 자신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아이는 ‘삶’을 살아가야 하는 존재이지 꼭 ‘재능을 인정받고 발현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존재는 아니니까요. 재능은 인생의 충분조건도 필요조건도 아닙니다. 오히려 ‘재능’이라는 단어에 갇히면 삶이 고단하고 공허해집니다.
아이의 재능을 살려주는 것이 지상 최대의 과제가 되어 있는 현실을 우리는 차근히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부모의 가장 중요한 사명은 아이의 재능을 찾아 키워주는 일이 아니라, 성인이 될 때까지 안전한 둥지를 만들어주는 일입니다. 재능은 부차적인 영역이고요. 재능과 상관없이 자기 인생을 충만하게 살 수 있도록 격려해 주는 것이 어른의 역할이고, 남의 재능을 질투하며 내 인생을 허비하기보다는 적은 것을 가지고도 풍요롭게 살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팔을 뻗어주는 것이 부모의 일입니다. 우리가 보아야 할 것은 아이 자체이지, 아이의 재능이 아니잖아요. 그러므로 저는 ‘아이라는 숲’을 두고 ‘재능이라는 나무’만 보는 걸 경계해야 한다고 믿습니다. 부모가 숲을 봐야 아이가 무엇을 잘하는지에만 몰두하지 않고 아이라는 존재를 온전하게 볼 수 있을 것이고, 그래야 아이도 부모가 기대하는 모습에 맞추느라 뒤틀린 나무로 살지 않게 될 테니까요. 김소연 시인은 《마음사전》에서 ‘중요’와 ‘소중’을 구별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소중은 궁극이고 중요는 방편이라고 해요. 예를 들어 돈은 너무 중요한 나머지 소중하다는 착각을 일으킨다고, 우리는 중요한 것들의 하중 때문에 소중한 것들을 잃는 경우가 많다고 시인은 말합니다. 아이의 재능은 중요하지만, 소중한 것은 아이죠. 재능이 중요한 나머지 그 하중 때문에 소중한 아이를 잃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우리 곁의 작은 인간들은 ‘영재’보다는 ‘아이’가 되어야 하고, ‘재능 있는 인간’보다는 그냥 먼저 ‘인간’이 되어야 합니다.
호락호락하지 않은 사회적 합의 때문에 재능은 인간의 능력 중에서 극히 일부만을 가리키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일부의 능력만 가지고 인간이 온전하게 살 수는 없습니다. 미적분을 쉽게 푸는 아이가 친구 사귀기를 극히 어려워할 수도 있고, 이름난 피아니스트가 그 놀랍도록 섬세한 손으로 자기 입에 넣을 변변한 먹을 것 하나 제대로 만들지 못할 수도 있잖아요. 저는 제 아이가 한 가지 능력에 올인하느라 찌그러지기보다는 인간으로서 필요한 능력들을 골고루 갖추고 배워나가는 아이이기를 바랍니다. 앞에서 사회적 합의에 따른 재능의 리스트는 끊임없이 변한다고 말했죠. 어차피 아이가 살 세상은 (오늘내일하는 이 환경이 허락해 준다면) 현재의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찰 겁니다. 가치를 인정받지 못할지도 모르는 한두 가지 능력에 올인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살아가는 데 필요한 다양한 기술들을 든든히 배워두는 편이 더 좋지 않을까요.
재능보다 중요한 것은 인간으로서의 행복입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재능이 없어도 우리는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합니다. 재능이 없는 아이는 불행할 거라는 기괴한 도식부터 버려야 한다고 생각해요.
어쩌다 보니 독일에 살고 있습니다. 사람 사는 곳이 다 거기서 거기라 좋은 점도 있고 나쁜 점도 있지만, 제가 독일에서 특히 좋아하는 부분은 누구나 인정하는 재능이 없어도 인간의 삶이 충분히 행복하고 충만할 수 있음을 알고 있는 사회라는 점이에요. 독일 아이들도 재능을 찾아 꽃피우는 행복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것만이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김나지움(주로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하는 학교), 레알슐레(주로 기술자나 공무원을 양성하는 학교), 하우프트슐레(직업교육을 위한 학교) 중에서 자신에게 맞는 학교를 선택하게 되어 있는데요. 대체로 성적순으로 진학하게 되지만, 점수가 차고 넘쳐도 기쁘게 레알슐레를 선택하는 아이들이 있고, 아이가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서 레알슐레나 하우프트슐레를 권하는 부모들이 있습니다. 한국 학교를 시찰하다가 서울대에 몇 명 붙었는지 자랑하려고 내건 플래카드를 보고 깜짝 놀란 핀란드 교육 관계자가 말했다죠. “저희는 ‘우리 학교에는 낙오하는 학생이 없습니다’라는 플래카드를 내겁니다.”라고요. 능력을 신봉하고 더욱 강고하게 능력주의를 구축하고자 하는 우리 사회가, 다른 방향으로도 눈길을 주고 고민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재능의 여부와 상관없이 인간은 자기 몫을 하며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 특정한 능력이 없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것을요.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성장입니다. 우리는 아이의 성공을 바라는 부모인가요, 아이의 성장을 바라는 부모인가요. 그런 의미에서 재능 역시 성공보다는 성장과 연결되는 개념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할리우드의 전문가 50퍼센트가 당신은 재능이 없으니 포기하라고 한다면 뭐라고 하겠냐고 묻자, 마릴린 먼로가 대답했습니다. “설사 100퍼센트가 나에게 재능이 없다고 해도, 그들 모두가 틀렸을 수도 있잖아요.” 재능이 전문가의 진단이나 사회적 합의의 영역에 있는 것을 거부하겠다는 멋진 대답이죠. 존 레논도 막심 고리키도 입을 모아 말했습니다. 근본적인 재능은 자신이 뭔가 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그러므로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뭔가 잘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잘하지 않아도 충분히 잘 살 수 있다고. 재능은 능력보다는 신념에 가까운 것이니 자신을 믿어 보라고. 그렇게 차근차근 성장해 가라고요.
에디터 이다은
글 이진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