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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짓기의 기술
BOOK
《나를 닮은 집짓기》, 《9평 하우스》
A Skill To Build A House
집짓기의 기술
한 여자가 태어나 처음으로 집을 짓는다.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꿈꾸는 행복이 담긴 그런 집을. 《나를 닮은 집짓기》는 행복하기 위해 집을 짓는, 고통스럽지만 뿌듯한 과정에 관한 이야기다. 이 책과 함께 읽은 《9평 하우스》는 9평으로 된 작고 네모난 상자 같은 집을 짓고 사는 사람들에 관한 책인데, 어떤 집을 짓고 싶은지 상상할 때면 나는 늘 9평 하우스 같은 집을 떠올리곤 한다.
한때 나는 건축이나 인테리어 책을 많이 읽었다. 그 당시에 나는 집 짓기와는 하등 관련이 없는 변두리 가정주부의 삶을 살고 있었다. 내가 사는 집은 인테리어라고 부를 만한 것도 없는 그냥 아파트이거나 남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을 낡고 어두운 단독주택이었고, 그래서 누군가가 대체 왜 그런 책을 읽고 있느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는 법이다. 그때 나는 내 삶을 바꾸고 싶었다. 그리고 삶을 바꾸는 데는 집이라는 공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비로소 깨달았던 것이다.
남들처럼 아파트에 살지 않고 소중한 돈과 시간을 투입해서 집을 지을 결심을 하게 된 것은 남이 만든 공간에 나를 끼워 넣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 드는 집에서 내 뜻대로 살고 싶다는 열망 때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이런 면에서 주택 설계란 단순히 방 개수나 복도의 길이, 화장실의 위치를 정하는 것 이전에 그 집에서 어떻게 살기를 원하는가에 대한 총체적인 계획도라고 볼 수 있다. 어떻게 살고 싶은가. 그 답이 먼저 나와야만 어떤 집을 지을지에 대한 계획도 정교화할 수 있다. 집짓기는 그 전과는 다른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어떻게 다른 삶인지 구체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물이 그릇의 형태에 따라 모양 지어지듯 어떤 집에 사느냐에 따라 생활이 달라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
– 박정석, 《나를 닮은 집짓기》 중에서
작가 박정석이 쓴 책 《나를 닮은 집짓기》는 아마 한국에서 출판된 집 짓기에 관한 책 중 가장 사적이고 또 신랄한 고백서일 것이다. 사람들은 대개 집 짓기에 환상을 품고 있고 집 짓기에 관한 이야기들 역시 그 환상을 아름답게 덧칠하기 마련인데, 이 책은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는다. 책을 다 읽고 나면 내가 집을 한 채 짓기라도 한 듯 어깨가 쑤실 지경이다. 집 짓는 건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하지만 그만큼 흥미진진하고 재미있는 책이기도 하다.
막 중년이 된 여자가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고 싶다는 어린 시절부터의 꿈을 이루기 위해 강원도의 한 도시에 땅을 사 집을 짓기 시작한다. 동물을 사랑해 ‘둘리틀’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남편은 서울에서 밤낮없이 일을 하고, 그녀 홀로 펜션과 모텔방, 여인숙을 전전하며 집 짓는 남성들의 거친 세계에서 고군분투하는 것이다.
집짓기를 하다 보면 지금 하는 공사가 세상에서 제일 중요한 일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집짓기만이 아니다. 지금 몰두하고 있는 뭔가가 점점 커져서 작은 머릿속을 가득하게 채울 때가 있다. 평정심, 예의, 부끄러움, 다른 어떤 생각도 들어올 틈이 없을 정도로 빼곡하게. 하늘을 올려다보라. 낮이면 별이 없겠지만, 흐린 밤이어도 별이 안 보이겠지만, 마침 운 좋게도 맑은 밤하늘이라면 드넓은 우주 여기저기서 반짝이는 무수한 별들이 보일 것이다. 무한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우리는 찰나처럼 짧은 시간에 살다 가는 티끌 같은 존재들이다. 그런 티끌이 화장실 배관 때문에 악을 쓰고 있다니, 코미디가 따로 없다.
– 박정석, 《나를 닮은 집짓기》 중에서
집 짓기는 돈을 주고 통째로 누군가에게 맡기지 않는 이상, 한정된 예산과 빠듯한 일정으로 꾸릴 수밖에 없는 이상, 고행 그 자체다. 처음부터 끝까지 계획대로 되는 일이 없다. 도면을 그리는 것부터 내가 원하는 집을 지어줄 설계사무소와 건축사를 만나는 일, 그들에게 나의 (그들이 생각하기에는 허황되거나 초라한) 계획을 납득시키는 일, 기초 공사와 철근 콘크리트 공사부터 시작해서 미장, 지붕, 도장, 위생설비까지 난관의 연속이다. 콘크리트 공사가 끝난 창틀에는 분명 설계도에는 없던 볼썽사나운 장식이 달려 있고(설계사무소 소장의 미적 취향과 자부심), 변기와 세면대는 욕실을 휑하게 만들 정도로 사이좋게 붙어 있으며, 분명 투명 유리로 해달라고 신신당부를 한 집의 모든 유리창에는 초록색 유리가 끼워져 있다. 심지어 그녀가 없는 사이에 사람들은 전봇대를 마당 한가운데에 우뚝 세워두기까지 했다. 이 모든 일 앞에서 건축주인 작가는 머리끝까지 화가 치솟다가 악을 쓰며 싸우다가 결국 포기했다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자신의 의지를 끝까지 관철한다. 하지만 이긴다고 해도 한 톨만큼의 승리감도 느낄 수 없다는 게 이 싸움의 본질이다. 집 짓기가 뭐라고. 집이 대체 뭐라고.
우리 집을 짓기 위해 몇 명의 사람들이 동원되었더라. 그렇게 많은 숫자의 사람들이 온전히 나 한 명을 위해서 무언가를 해 주었던 적이 지금껏 또 있었던가. 우리 집.
둘리틀과 내가 여태 소유한 어떤 물건도 이렇게 크고 근사하지는 못했다. 나는 그 흔한 휴대전화조차 남의 것을 물려받아서 썼다. 뭔가 갖고 싶다는 생각을 마지막으로 한 게 대체 언젠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소소한 쇼핑욕구 같은 건 말라버린 지 오래였다.
그런데 저 집은, 저 집만은 꼭 짓고 싶었다. 지금 바로 저 모습으로 어떻게든 짓고 싶었다.
우리가 계획한 그대로였다. 단순하고, 소박하며, 불필요한 부분은 보이지 않았다. 마당에 잔디를 깔고 나무를 좀 심으면, 그러면 지금보다 훨씬 더 아름다워질 것이다.
완성된 집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천천히 심호흡을 했다. 오랜 시간에 걸쳐 피를 말려가며 완성한 예술 작품을 눈앞에 두고 모든 창조자가 한 번쯤 느꼈을 법한 괴상한 충동, 즉, 집을 홀랑 불태워 버리고 싶은 욕망에 몇 초간 시달렸지만 곧 극복했다.
– 박정석, 《나를 닮은 집짓기》 중에서
결국 집은 완성되었다. 몸과 마음은 만신창이가 되었다. 하지만 드디어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집이 생겼다. 그녀가 원하던 바로 그, 조금은 모자라긴 하지만, 아무튼 바로 그 집이.
오래전 어느 날 나는 한 공인중개사 사무실에 앉아 아파트 전세 계약을 준비 중이었다. 공인중개사 아주머니는 우리에게 27평 아파트를 세놓고 이사 갈 주인에게 물었다.
“어디로 이사 가시려고요?”, “건너편 32평으로요.”, “아니, 왜?” 집주인은 비밀 이야기라도 하듯 목소리를 낮추었다. “우리 애가 친구네 집보다 좁다고 자격지심 느끼는 것 같아서.”
그때도 그 말이 참 의아했고 지금도 의아하다. 나는 아이가 같은 말을 하면 “세상엔 집 없이 사는 사람도 있어.”라고 말하는 매정한 엄마다. 그 집주인은 나보다 좋은 엄마였는지도 모른다. 낡고 춥고 작은 단독주택에서 살 때 우리 아이들이 내게 물어본 적이 있다.
“엄마, 우리 집은 가난해?”, “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가난한 것 같아서. 우리 집은 너무 오래됐잖아.”, “뭐, 가난할 수도 있고 부자일 수도 있지. 그래도 난 이 집이 좋은데?”
내 아이들이 이런 나에게서 태어나 작고 낡은 집에 대한 콤플렉스를 안고 자란다면 글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집의 크기로 자신의 가치를 재단하다니, 미안하지만 그런 가치는 가치라고 치지도 않는다. 문제는 자기가 사는 곳을 좋아할 수 있느냐, 없느냐일 뿐. 아파트에 살건 주택에 살건, 넓은 집에 살건 좁은 집에 살건 그런 건 상관없는 게 아닐까. 좋아하지도 않는 장소에서 살아가는 인생이야말로 불행한 인생이 아닐까.
9평 하우스는 분명 크지 않다. 그렇지만 “여기로 돌아오면 편안해진다.” 가즈히로 씨와 유키 씨는 그렇게 입을 모은다. 있어야 할 곳에 물건을 정돈할 수 있다. 이 정갈하고 단정한 느낌이 좋다. 자신들은 이러한 공간을 갖고 싶었다고 지금도 새삼 생각한다.
“우리 가족에게는 이 집이 딱 알맞아요.”
– 하기와라 유리 외, 《9평 하우스》 중에서
《9평 하우스》는 딱 9평짜리 네모난 상자 같은 집과 그 집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에 관한 책이다. 오래전 한 건축가가 자신과 가족을 위해 지은 9평짜리 2층 집에서 착안해 현대의 건축가들이 이 집을 개량한 버전으로 판매한다. 창고처럼 반듯하고 네모난 집의 모양을 좋아하는 나는 이 9평 하우스가 단번에 마음에 들었다. 나도 9평 하우스처럼 내 손길이 구석구석까지 미칠 수 있을 정도로 작은 집을 좋아한다.
크고 멋진 집이 아니라 작고 단순한 9평 집을 선택한 사람들은 이 집에서의 삶에 대해 이야기한다. 처음에는 너무 좁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9평을 기본으로 옆으로 증축할 수 있는데다 살아보니 실은 집이 그렇게 넓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는 이야기. 전면이 통유리로 개방되어 있어 집이 훤히 들여다보이는 쪽이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런 이야기들.
아이들이 고등학생 정도로 성장하면 이 집에서의 생활은 어떻게 될까요?
앞일은 예상할 수 없어요. 고작 5년이 한계지요.
맞아요. 그렇지 않으면 그때 움직일 수 없지요.
먼 장래의 일을 지금 생각한다고 해도, 그때가 되어보지 않으면 막상 모르잖아요. 그러니 처음부터 안채에 방을 만드는 것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때가 닥칠 때까지 이대로 쭉 살다가 아이들이 아무래도 방을 갖고 싶다고 말할 때 생각해보려고요.
(중략)
어쩌면 20년 후에는 부모 요양이 시작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그렇게 앞날의 일까지 생각하며 살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지금 지내기에 좋은가 아닌가를 더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싶어요.
그런 식으로 단순하게 생각하는 게 좋아요. 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 같아요. 집을 짓는 시점에서 자신의 노후까지 생각하는 사람도 있더군요. 집을 짓는 것은 한 세대의 과업이라고 믿어버리는 거지요. 집을 ‘최후의 거처’ 쯤으로 생각하나보네요. 앞으로는 아이들이 살면 되고 이 집이 너무 좋다는 사람이 계속 이어서 살아주어도 좋고요. 무엇보다 얽매이지 않는 게 좋잖아요.
– 하기와라 유리 외, 《9평 하우스》 중에서
집 짓기는 두려운 일이다. 과정 자체도 그렇지만 잘못된 위치에 뚫은 창을, 부족한 전기 콘센트를, 이상한 방 배치를 평생 감내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해보라. 지난날의 과오를 끌어안고 평생 회개하며 살아가는 죄인의 심정일 것만 같다. 게다가 나는 쓸데없이 예민해서 수평이 잘 맞지 않는 선반을 보면서도 하루 종일 우울해하는 사람이 아니던가. 어쩌면 나는 완공 직전 심장마비로 죽을지도 모른다. 아니면 완공된 후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되거나.
우리가 지난가을 춥고 추운 단독주택을 떠나 이사 온 집은 산자락에 붙어 있다. 차도 들어올 수 없는 막다른 골목 좁은 언덕길을 힘겹게 올라야 닿는 볼품없이 낡은 빨간 벽돌 빌라. 아무리 긍정적으로 보아도 좋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그 빌라 1층에 자리한 우리 집의 가장 넓은 방(이 방을 거실로 만들었다)에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 온통 산의 풍경이다. 정말로 산에 딱 붙어 있어서 산에서 자란 꽃나무가 우리 집 창문에 닿을 정도다. 산의 풍경은 건물의 풍경과는 달리 계절마다 변한다. 겨울은 앙상하지만 상쾌할 정도로 깨끗한 풍경이 펼쳐지고, 봄은 온통 연두색과 노란색, 분홍색으로 따뜻한 숄을 덮은 듯하다. 이제 여름이 오면 눈이 시릴 정도로 푸른 초록의 바다가 나타나겠지. 이런 풍경을 매일 바라볼 수 있다니, 이보다 더 큰 호사를 누리기도 힘들 것 같다.
집을 지을 때 건축주는 수많은 것들을 고려하겠지만 궁극에 놓인 것은 행복이다. 집짓기뿐만이 아니다. 우리 인간이 행하는 모든 일들이 그렇다.
– 박정석, 《나를 닮은 집짓기》 중에서
우리의 다음 집은 어떤 집이 될까. 아마도 강원도의 작은 시골집이 될 것이다. 우리는 늘 꿈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그 일들은 대개 이루어지는데, 그것은 우리의 의지나 능력 덕분이 아니라 아주 오랫동안 소중히 간직해온 꿈은 이루어지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꾸는 꿈은 늘 현실에 맞게 수정되고 또 수정되기를 멈추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랫동안 꾸는 꿈은 결국 어느 순간 그 사람의 인생 자체가 되기 때문이다. 그저 꿈을 꾸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의 인생 전체가 그 꿈을 향해 조금씩 나아가고 있기 때문이다.나는 작은 집에서, 낮게 엎드린, 조금도 눈에 띄지 않는 작은 집에서, 평화로운 매일매일을 보내고 싶다.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사랑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시간을 보내다 그 작은 집처럼 낡아가면서 결국 이 세상을 떠나고 싶다. 이렇게 내가 생각하는 행복은 늘 집과 관련이 있고, 집을 짓는다는 것은 각자의 소박한 행복을 구현하는 일이다.
나를 닮은 집짓기
박정석ㅣ시공사
집이 필요한 단계부터 집을 완성하기까지 건축주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았다. 집은 살아가는 사람의 취향이 그대로 묻어나는 공간이다. 자기만의 집을 짓는 일의 본질을 조금씩 되새겨볼 수 있다. 결국 집에 관한 이야기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까’에 관한 이야기로도 연결이 된다.
9평 하우스
하기와라 유리 외ㅣ다빈치
저자 하기와라 유리는 지난 50여 년의 경험을 바탕으로 작은 집에 대한 새로운 기준과 원칙을 제시한다. 9평의 작은 집에서 자기 삶을 꾸려가는 방식으로 제안하는 것이다. 9평 하우스에 실제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생생하게 담아서 이해를 돕는다.
글 한수희
일러스트 김지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