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hared And Growing Mind

채소 교환 일기 : 작가 무과수 X 오송민

모름지기 교환 일기란 마음이 통하는 친구 사이에 오가는 것이다. 상대의 하루를 경험하고 나의 오늘을 내어주는 일. 그 사이엔 단단한 믿음이 필요하다. 무과수와 오송민은 푸릇푸릇한 채소를 주고받으며 그 믿음을 키워 가기로 했다. 어느새 서로를 채소 친구라고 부르며 오랜 시간을 함께한 것처럼 틈새를 빚어간다. 햇볕이 쨍하게 내리쬐는 주말의 한낮. 우린 어느 시장에서 장을 보고서 녹색 가득한 공원으로 향했다.

시금치 나눠 줄까요?

시작은 시금치를 나눠 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인테리어 앱 ‘오늘의집’의 에디터 무과수와 쇼핑몰 ‘원파운드’의 송민은 어느 날 남는 채소를 교환하고 일기를 쓰기로 약속했다. 술에 취해 알딸딸한 상태로 계획한 일기는 어느새 빼곡히 채워져 가고 있다. 시금치를 받고 토마토를 건네주는 시간. 주고받은 채소를 들고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 한 끼의 식사를 차리는 시간. 그 과정은 단순히 요리하는 시간을 넘어 채소를 건네준 마음을, 그 사람을 생각하게 한다. 이 교환 일기는 사라져 가는 나눔에 관한 이야기다. 송민과 무과수의 일기 사이엔 멀어져 가던 ‘이웃’이라는 단어가 스며 있다. 넘치는 것은 덜어내고 부족한 부분은 채우는 야무지고 알찬 교환의 현장. 오늘, 그 순간을 쫓아본다.

채소 교환이라니, 예스러우면서도 기발한 발상이에요. 이 교환 일기의 시작이 궁금해요.

송민: 처음에 저희 둘은 친한 사이가 아니었어요. 일 때문에 알게 된 사이였죠. 항상 SNS로 소식만 확인하고 있었는데 늘 저와 비슷한 성향을 가진 친구라고 생각했어요. 소박한 면이 있고 스스로 재미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요. 매체가 아니라, 실제로 보는 모습이 궁금했어요. 생각만 하고 있다가 제가 먼저 메시지를 보낸거죠. 만나자고(웃음).

무과수: 어색하게 처음 만나서 술을 마셨어요(웃음). 둘 다 요리를 좋아하니까, 채소 이야기가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언니도 저도 요리를 좋아하지만 바쁘다 보면 재료를 방치해 둘 때가 있어요. 버리는 게 더 많을 때도 있고요. 그런 부분이 아쉽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교환하자고 약속한 거예요. 따지고 보면 사는 동네가 먼 것도 아닌데, 바꿔서 나눠 먹고 그것도 기록으로 남겨보자 해서 처음 만난 날 시작하게 됐어요.

 

술에 취해서 한 약속이었군요(웃음). 첫 교환 날이 궁금해지는데요.

송민: 일단 취한 상태로 교환 일기를 쓰자고 약속했는데, 막상 다음 날이 되어보니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를 몰랐어요(웃음).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지는 않았거든요. 어쩌지, 하고 있는데 갑자기 시금치를 주고 싶다면서 먼저 연락이 왔어요. 단순하게 “시금치 나눠 줄까요?” 하는 말에 마음이 가벼워지더라고요. 기분 좋은 메시지였어요. 그러고선 남산에서 취기가 없는 어색한 상태로 만난 거죠(웃음). 남산 길을 걷다가 벤치에 앉아서 처음 채소를 교환하면서 앞으로 이 일기를 통해서 뭘 하고 싶은지 서로 생각을 나눠봤어요. 이왕 시작하는 거 다른 사람들도 함께할 수 있게 프로젝트명도 만들고 나중에 다 같이 모여서 1인 가구를 위한 달란트 시장처럼 만남의 모임을 하면 어떨까 하는 여러 가지 계획이 세워졌죠.

무과수: 언니가 원파운드에서 자체적으로 옷을 만들기도 하니까, 관련 굿즈도 함께 만들어 보면 좋겠다 하는 생각도 했어요. 이 모든 걸 둘이서만 나누고 좋아하는 게 아니라, 더 많은 사람이 함께 즐기고 널리 알려지길 바라는 마음에 계속 아이디어가 오갔어요. 단순히 채소를 교환한다는 것이 아니라 ‘나눈다’는 데 의미를 두기로 한 거죠. 여기엔 이웃이라는 개념도 있고 사라져 가는 어떤 것들을 다시 상기시키는 힘이 있어요. 요즘 사람들도 실은 바라왔지만 쉽게 이루지 못한 만남을 채소 교환을 통해 함께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친하지 않은 사이에 일기를 교환하는 일이 어려웠을 것 같아요. 조금 어색하기도 하고요(웃음).

무과수: 그럴 수 있죠(웃음). 그런데 오히려 저는 친하지 않아서 더 좋은 시작이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아직도 서로 알아가는 중이고, 처음엔 어색했지만 좋아하는 게 같아서 자연스럽게 대화가 잘 통했거든요. 관계를 이뤄가는 과정이 즐거웠죠. 앞으로도 이런 나눔이 일상 속에서 편하게 이뤄지길 바라고 있어요. 날짜를 정해서 만난다든가 약속을 해놓고 만나고 싶지는 않아요. 처음 시금치를 나눈 날도 갑자기 연락이 오간 거였거든요. 그런 게 동네 이웃이고 자연스러운 만남이니까요. 우리는 이런 만남을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점을 알리고 싶어요.

교환 현장을 지켜보니까 더 와닿아요. 서로 채소만 교환하는 게 아니라 좋은 에너지를 주고받는다는 느낌이 들어요.

무과수: 언니를 통해서 미래의 저를 프리뷰로 보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있어요. 서로 삶을 대하는 태도나 가치관이 닮은 구석이 많거든요. 저보다 앞선 시간에 있는 언니를 보면서 제가 살아가는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확인해요. 사실 저희는 나이 차이가 꽤 나는 편인데, 서로 친구라고 생각해요(웃음). 언니가 먼저 “우린 채소 친구야.”라고 했을 때 더 이 관계를 더 가깝게 느끼게 됐어요. 우리는 나이가 아니라 취향으로 만났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과는 하지 않았던 대화를 나눌 수 있기도 하고요.

송민: 제 또래 친구들과는 조금 다른 방향의 이야기를 할 수 있어서 좋아요. 덕분에 일상을 보는 시각이 달라졌고 취향과 가치관, 나눔이나 관계에 대해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되었어요. 나이를 떠나서 서로가 좋아하는 게 같고 생각이 같아서 이런 재미있는 시간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채소 교환 일기를 쓰면서 배운점도 있을 것 같아요. 일상에 변화도 있겠고요.

무과수: 채소를 좋아한다고 하면 비건이라고 보는 경우가 많은데요. 저는 고기도 좋아하고 한쪽으로 고정된 식생활을 하지는 않아요. 하지만 채소 교환 일기를 통해서, 조금 더 건강한 식단으로 바꿔가는 과정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실제로 이 프로젝트를 계획하면서 인생이 더 재미있어졌어요(웃음). 여러 가지 더 큰 꿈을 꾸게 됐고, 왠지 모를 의욕도 생겼고요.

송민: 단순하게 냉장고를 열었을 때 행복한 마음이 들어요. 예전에는 소시지 같은 가공식품이 쌓인 모습만 보다가 이제는 채소로 인해서 싱그러운 풍경이 생긴 거죠. 또 냉장고에 채소가 잘 보관되어 있다는 건 삶을 잘 관리하고 있다는 증거라는 걸 알게 됐어요. 독립하기 전에는 당연한 거라,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몰랐거든요. 채소를 요리하기 시작하면서 조금 더 차원이 높은 요리를 시도해 보고 있다는 점도 달라진 부분이에요.

 

여러모로 삶에 긍정적인 힘을 주는 교환을 하고 있네요. 마음을 나눈다는 것에 대해 좀 더 묻고 싶어요. 단순하게, 나누는 일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무과수: 무언가를 선물할 때 너무 많은 배려로 선뜻 전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상대방의 취향을 고려하는 것도 좋지만 단지 주고 싶은 그 마음에 집중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받는 사람도 생소한 것이라도 일단 받아들여 보는 태도가 필요하고요. 그래야 진짜 교환이 이뤄지는 거니까요. 한 번도 요리하지 못한 채소를 받았을 때 모르는 거라고 피하기보다는 도전해 보자는 마음으로 만져보는 거죠. 이런 관점에서 보면 교환은 존중의 과정과도 같아요. 상대의 무언가를 받는 일은 내가 모르는 그 사람의 세계를 경험하는 것과도 같으니까요. 아주 넓은 관점에서 교환은, 두 사람의 세계가 합쳐지는 거라고 볼 수 있겠죠. 더 많은 사람이 이런 기회를 넓혀가면서 서로 존중한다면, 건강한 식탁을 넘어서 건강한 관계를 열어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송민: 나눔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늘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의 첫 장면을 생각해요. 주인공들은 한 골목에 사는 이웃이고, 서로에게 전하는 음식이 계속 돌고 돌면서 나중에는 더 많은 반찬이 쌓이는 장면이죠. 그 장면을 보면서 누군가와 가까이 살면서 나눠 먹으며 지내면 좋겠다고 늘 생각했어요. 그렇게 친근한 친구, 이웃이 필요하다고 느낀 거죠. 요즘은 드라마에서 느끼던 감정을 채소 교환 일기를 통해서 받을 수 있어서 좋아요. 나눔은 삶을 더 나아지게 하고 새로운 친구를 만들어주는 일이에요.무과수: 나눴을 때 소진되는 게 아니라 풍성해지는 점도 중요한 것 같아요. 나눌수록 다채로워지는 거. 늘 놀랍고 매력적인 점이에요.

 

채소 교환 일기는 앞으로 어떤 방식으로 이어질까요? 상상해 보면 어때요?

송민: 이 교환 일기는 1년 동안 계속하기로 했어요. 봄부터 겨울까지 사계절을 충분히 다 느껴보자는 마음으로요. 다음 해에 모든 게 끝나 있을 땐 우리가 어떤 관계가 되어 있을까 궁금하네요. 그때 인스타그램 피드를 살피면 <리틀 포레스트>(2014)처럼 계절에 맞는 채소 요리들이 쌓여 있지 않을까, 상상하기도 해요. 보기만 해도 뿌듯할 것 같아요. 교환하면서 나눈 이야기들과 채소를 요리하던 과정들까지 하나하나 떠오를 거예요.

무과수: 1년이라는 시간을 건강하고 아름답게 채웠구나 하고 느낄 수 있다면 좋겠어요. 매일 정신없이 살면서 시간이 참 빨리 간다고 말하는데, 일기를 모아 보면서 우리가 계절을 잘 느끼려고 노력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을 바라고 있어요. 저희는 앞으로도 채소 교환 일기를 더 널리 알리려는 계획을 조금씩 세우고 있어요. 그렇다고 무조건 좋은 거라고 강요하고 싶지는 않고요. 그저 우리가 이렇게 나눠보았다는 것, 이렇게 해보니 일상에 어떤 가치를 얻었다는 것을 알리는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천천히 만들어 가보고 싶어요.

 

이제 마지막 질문이에요. 오늘 교환한 채소로 어떤 요리를 할 예정일까요?

송민: 남편이 삼겹살을 좋아해서(웃음) 미나리랑 함께 먹으면 좋을 것 같아요. 버섯도 같이 굽고요.

무과수: 언니가 구이 요리를 한다면, 저는 쪄 먹어 볼래요(웃음).

송민의 채소 일기

시금치 프리타타

교환 첫날, 그녀는 나에게 혼자 사는 사람에게 한 단은 너무 많다며 시금치를 조금 나누어 주었다. 나는 딱 이맘때만 먹을 수 있는 짭짤이 토마토 몇 개를 주었다. 4월의 남산, 우리는 이렇게 첫 번째 교환 일기를 시작했다. 시금치는 나에게로 와서 프리타타가 되고 나의 토마토는 그녀의 아침 식사가 되었다. 프리타타는 이탈리아식 오믈렛. 버터나 올리브 오일에 좋아하는 채소를 넣고 볶다가, 달걀물을 부어 오븐에 굽거나 프라이팬에서 겉은 바싹하게 속은 촉촉하게 익힌다. 우리가 늘 먹는 달걀찜과 비슷한 요리다. 받은 채소를 어떻게 요리할까, 정성 들여 생각해 보고 나의 채소가 다른 사람에게는 어떤 일상이 되는지 지켜보는 시간은 무척 즐거웠다. 무언가를 나누며 사는 일. 삶에 꼭 필요한 일은 아니지만 이렇게나 작고 귀여운 일을 시도해 본다는 건, 언제나 기분 좋은 시작이다.

무과수의 채소 일기

파프리카 오일 샐러드

파프리카는 색감이 참 예쁘지만, 장을 볼 때 매번 뒷순위로 밀려나 사지 않곤 했다. 엄청나게 좋아하지도 않을 뿐더러 딱히 꼭 먹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송민 언니가 건네준 노란 파프리카와 예상치 못하게 마주해 버렸다. 고민하다 본연의 맛과 더 친해지기 위해 오일 샐러드를 만들었다. 올리브 오일, 후추, 소금, 설탕만 있어도 만들 수 있고 레몬이나 식초가 있다면 새콤함과 상큼함을 더할 수 있다. 비율은 따로 없고 먹어보면서 넣었다. 어떤 맛이 부족한지 음미하면서 추가하는 과정을 통해 맛에 대해 스스로 깨우치게 된다. 전날 밤 미리 재워둔 샐러드를 꺼내 그릇에 담으니 보기만 해도 예쁘다. 토마토, 오이, 파프리카를 골고루 담아 한 입. 신선하면서도 새콤달콤한 맛. 파프리카와 조금 더 친해진 기분이다. 언니가 건네준 토마토와 청경채는 어떻게 먹어볼까나.

채소를 교환하기로 하고 따로 정해진 약속도 없어 그렇게 또 시간이 흐르던 어느 날. 장을 보다 언니가 생각나서 불쑥 문자를 보냈다. “언니! 저 시금치 샀는데 오늘 좀 가져다 줄까요?” 그렇게 시작된 우리의 채소 교환 일기. 오가는 채소를 보면서 나는 왜 사라져 가는 것들이 하나둘 떠올랐을까. 이웃, 마음 그리고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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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김지수

포토그래퍼 유래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