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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이 있는 생활
정아우세의 법칙
마른 가지 끝에서 새로 어린잎이 돋아나듯 인생에서도 새로운 일을 시작하게 되는 때가 있다. 무게중심이 달라지고 자세가 바뀐다. 안 쓰던 팔다리의 근육에 힘을 잔뜩 주면서 새로운 균형을 찾아간다. 정아의 계절. 무엇이 자라고 또 무엇이 달라질까.
올해는 일력을 쓴다. 일력을 쓰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매일의 일들을 실수 없이 해나가기 위해서다. 아침을 먹는 동안 뜯어낸 어제의 일력 뒷장에 오늘 날짜를 쓰고 상하 두 칸으로 나눠 해야 할 일의 목록을 간단히 써 내려간다. 위에는 수업과 번역과 원고 등 밥벌이와 관련된 일을 쓰고, 아래에는 분리수거, 설거지, 빨래, 청소 같은 집안일을 적는다. 마친 일은 V로 표시한다. 그날의 모든 항목에 V가 표시되는 뿌듯한 날도 있지만 다 하지 못해 다음 날 일력 뒷장으로 넘어가는 일도 많다. 요즘은 주로 아래 칸의 일들이 그렇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이런 방식으로 촘촘히 일정을 관리하지는 않았다. 주간 스케줄러에 굵직한 일들만 쓰고 나면 나머지는 하던 대로 몸을 움직이면 될 일이었다. 오랫동안 비슷한 방식으로 생활해 왔기 때문에 하루 일과를 계획하고 수행해 나가는 일은 오직 의지의 문제일 뿐 별다른 어려움은 없었다. 그런데 지난 몇 년 시간을 쓰는 방식이 달라졌다. 일의 우선순위와 중요도도 바뀌었다. 읽는 사람에서 쓰는 사람으로 무게중심이 옮겨 갔기 때문이다. 꾸준히 글을 써본 경험이 별로 없는 나에게 규칙적인 마감은 전력을 다해야 하는 일이 되었다. 글 쓰는 일 말고 다른 일은 통 못 하는 날이 생겼다. 집 안은 수시로 엉망이 되었고 생활도 뒤죽박죽되었다. 빨래와 설거지와 분리수거가 쌓여갔고 약속을 잡거나 외출하는 일도 줄어들었다. 산책도 운동도 건너뛰고 오직 책상 앞에 앉아 쓰지 못하는 글 때문에 끙끙 앓았다. 그러는 동안 목 디스크가 생겼고 가까운 이들의 원망을 자주 샀다. 도대체 네 마감은 언제 끝나는 거냐며. 나도 괴로웠다. 쓰는 일은 아무래도 체질이 아닌 것 같았다.
그런데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몇 해를 보내는 동안 쓰는 마음이 조금씩 달라졌다. 아침에 일어나 열어본 메일함에서 가끔 새로운 원고 제안이나 청탁을 발견하면 기뻤고, 어떻게든 송고를 마친 밤이면 이 어렵지만 재미있는 일을 계속하고 싶다는 생각에 설렜다. 여전히 밀린 두 번째 칸의 항목들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나는 답장을 보냈다. “고맙습니다. 마감일에 원고 보내드리겠습니다.” 어째서 이렇게 대책도 요령도 없이 구는 걸까. 그런데 이유가 있다. 글쓰기가 지금 내 인생의 ‘정아’라서 그렇다.
정아頂芽는 식물의 줄기, 혹은 가지의 맨 끝에 나는 싹의 이름이다. 생장점이 있는 정아에서는 다른 싹의 성장을 막는 옥신이라는 성분이 분비되기 때문에 식물의 힘은 정아로 집중된다. 그래서 정아를 제거하면 아래쪽에서 자고 있던 잠아潛芽들이 깨어나 새로운 줄기와 가지가 만들어진다. 위로 자라는 성질을 가진 정아 하나가 제거되면 그 옆에서 좌우로 성장하는 측아側芽들이 동시에 발육을 시작해 줄기 하나는 둘, 혹은 셋으로 늘어난다. 식물의 이런 특성을 ‘정아우세의 법칙頂芽優勢, Apical Dominance’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때때로 정아를 제거하는 이유가 된다. 로즈메리나 라벤더 같은 허브를 키울 때 여러 줄기 끝에 새순이 동시에 올라오면 끝마디를 한 번 싹 잘라주는 것이 그런 이유다. 이런 방법으로 새순에 몰려 있던 힘을 식물 전체에 골고루 나눌 수 있기 때문이다. 식물이 갑자기 시들거나 기력이 쇠했을 때,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야 하거나 갑작스러운 성장으로 힘에 부치는 것 같을 때도 줄기 끝의 새잎들을 잘라주면 식물의 회복에 도움이 된다.
성장이 끝난 것 같은 인생의 가지 끝에서도 새로운 잎이 자라는 시기가 있다. 처음 하는 일에는 으레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든다. 새잎을 잘 키워보기로 했다면 이미 자란 줄기와 가지와 묵은 잎들을 돌보는 일에는 잠시 소홀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분명 시간이 지나면 뒤죽박죽 불안정해 보이던 일상에도 새로운 규칙이 만들어진다. 확실히 해를 거듭할수록 마감하는 요령이 조금씩 늘고 있다. 종일 전력투구하거나, 망한 것 같은 기분으로 날짜 가는 걸 걱정하지는 않는다. 한 편의 글을 쓰는 데 시간이 얼마나 필요한지, 못 쓸 것 같은 기분을 며칠쯤 느낀 뒤에야 첫 문장을 시작할 수 있는지 이제는 조금씩 알아가고 있다. 그러니 곧 찾아올 평화로운 날들을 기다리며 올봄에는 망한 베란다를 본다. 지금쯤 봄꽃으로 만발해야 할 3월의 베란다가 통째로 무덤이 되었다. 죽은 것인지 아직 나지 않은 것인지 모를 구근들과 겨우 싹을 틔운 봄꽃들 사이에 버리는 흙과 뜯지 않은 흙이 뒤엉켜 있고, 한파에도 미처 들여놓을 새가 없이 방치되던 무화과나무와 올리브나무가 기특하게도 무사히 월동해 새잎을 부지런히 내는 중이다. 그리고 이 혼돈 속에 홀로 우아하게 빛나는 내 사랑 은방울이 있다. 전에 없이 마감이 몰려 우왕좌왕하는 와중에도 은방울 뿌리를 사두는 것만은 잊지 않고 있던 것이다.
지난 글에서 잠깐 소개한 나의 식물 스승이자 동지인 G씨가 어느 봄 은방울 뿌리 한 촉을 선물해 주었다. 구근도 아닌 것이 어디서 줄기와 잎을 잘라먹고 남은 것 같은 손바닥만 한 뿌리였는데, 심어 놓고 보름이 지나자 작은 싹이 하나 올라왔다. 그리고 한 달에 걸쳐 천천히 잎과 꽃이 피었다. 딱 명이를 닮은 세로 결의 끝이 뾰족한 이파리 두 장이 나는 동안 꽃대도 함께 올라왔다. 그리고 열 송이 남짓의 희고 둥근 종 모양의 꽃이 꽃대 아래쪽에서부터 하나씩 폈다. 꽃이 다 필 무렵 위로 솟아있던 꽃대는 무지개처럼 휘어졌고 그 아래로 올망졸망 매달린 꽃들이 봄바람에 흔들거렸다. 아름다웠다. 바람에 꽃이 흔들릴 때마다 종소리가 나는 것 같다가 어린아이의 웃음소리가 나는 것도 같았다. 이듬해부터 내 손으로 은방울 뿌리를 샀다.
그리고 올해는 내가 산 뿌리를 G씨의 집에서 함께 심고 나누어 가졌다. 올해는 은방울 싹이 올라오는 데 열하루가 걸렸다. 그리고 나흘 뒤 꽃대가 맺혔다. 쌀알보다도 작은 꽃망울이 촘촘히 맺힌 꽃대를 보는 순간 마음에는 이미 꽃이 만개했다. 유난히 잎이 작고 꽃의 기세가 두드러져 시선은 온통 꽃대로 향했다. 모두 열세 송이의 꽃이 피었고 13의 아해가 모두 피는 데는 딱 열흘이 걸렸다. 무사히 개화가 시작되면 내 바람은 이제 마지막 꽃이 필 때까지 첫 꽃이 지지 않았으면 하는 것인데, 올해는 인내심 강한 첫째가 막내를 잘 기다려줬다. 해마다 꽃송이의 수도 개화하는 속도도 달라서 어느 해에는 꽃이 몇 송이 안 되는가 하면 어느 해에는 마지막 꽃이 너무 늦게 펴서 이미 먼저 핀 것들은 져버렸다. 아예 꽃대가 올라오지 않을 때도 있으니 올해는 척박한 식물 생활의 와중에 얼마나 운이 좋은지.
그러고 보면 은방울 뿌리를 내 손으로 처음 사던 봄, 내 관심은 온통 식물 생활에 쏠려 있었다. 종일 베란다에서 분을 갈고 새 꽃을 심었고, 틈만 나면 동네 화원에 들러 더 살 게 없나 보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온라인 식물 상점을 돌아다녔다. 볕 좋은 날이면 베란다가 꽉 차도록 들여놓은 화분들을 해 드는 자리로 이리 놓았다 저리 놓았다 하며 보냈다. 내 인생의 정아가 식물이던 때였다. 이쯤 되니 아마도 정아의 다른 이름은 사랑인 것인지도.
지난여름 조카들의 집 베란다에서 강낭콩이 자랐다. 열 살 큰 조카의 학교 관찰일지 숙제였다. 아파트 베란다라고는 하나 동쪽으로 난 2층 집이어서 콩과의 식물이 자라기에는 일조량이 턱없이 부족했다. 예상대로 강낭콩은 아이의 지극정성에도 비실비실 웃자랐다. 하루는 베란다로 교과서를 들고 나간 조카가 책에 실린 강낭콩 덩굴 사진과 제가 키우는 것을 한참 번갈아 보더니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내가 사랑한단 말을 너무 많이 했나….”
아, 광합성은 몰라도 사랑은 아는 귀여운 녀석. 아이도 아는 것이다. 아무리 사랑이라도 넘치면 탈이 난다는 것을.
그러니 정아가 우세해도 사는 일은 늘 과유불급이다. 쓰는 일에 매몰되어 있는 동안에도 의식 한편에서는 무너진 생활의 균형을 다시 맞추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못 할 것을 알면서도 일력 뒷장에 두 번째 항목을 쓰는 일을 포기하지 않는다.
이것은 지금 내가 올라탄 것이 고정된 닻이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평행을 이루어야 할 시소라는 것을 아는 일이고, 기울어진 곳에 서서 비어 있는 반대쪽을 향해 팔과 다리를 뻗어보는 일이다. 무의미한 것 같아도 결국 이런 시간이 쌓이면 언젠가는 정돈된 집에서 마감을 하는 날도 올 것이다. 물론 그때가 되면 내 가지 끝에서는 이미 새로운 정아가 싹트고 있겠지만 말이다.
글·사진 무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