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Person Who Keeps The Naturalness

'재미마주' 대표, 그림책 작가 이호백

만약 대형 서점의 한 평대에서 재미마주의 책을 찾으려면 눈을 크게 뜨고 샅샅이 살펴야 할 것이다. 여기저기 튀는 책들 속 어딘가에 파묻혀 있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재미마주의 그림책은 그만큼 복잡하지도, 전략적이지도, 자극적이지도 않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재미마주의 책을 찾아내고, 빠져들고, 떠다니는 이미지의 바다 안에서 즐겁게 헤엄친다. 출판사를 운영하는 이호백 작가는 어린이에게 제한 없이 다양한 이미지를 만나게 해주는 것이 그림책의 몫이며, 그런 책을 만들기 위해 이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한다. 긴 대화가 끝나고 머릿속에 남은 세 가지 단어는 자연스러움, 이미지, 그리고 어른이다.

INTERVIEW

이호백 | 출판사 '재미마주' 대표, 그림책 작가

작업실로 초대해주셔서 설레는 마음으로 왔어요. 한적하고 좋네요.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

요즘은 그냥 놀고 있죠(웃음). 사실은 작가로서, 출판사 대표로서 둘 다 일이 꽤 있으니까 뭐 하나 집중 못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거의 1인 출판 시스템으로 운영하다 보니 그렇게 되네요. 그림책 출판사는 무한정 규모를 키울 수가 없어서 작게 움직이는 법을 터득해나가고 있어요. 한편으로는 제가 꼭 하고 싶었던 작업들을 짬짬이 해보려고 노력 중이고요.

 

작가나 출판사 대표도 좋지만 저는 어딘가에서 본 ‘그림책 만드는 아저씨’라는 수식어에 정감이 가더라고요.

사실 그림책이 아니라 ‘어린이책 만드는 아저씨’예요. 저는 작가라는 말이 아직도 익숙하지 않아요. 어디서든 작가라고 불리긴 하겠지만 제가 만든 책들을 보면 아직 그렇게 말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작가는 창작에 올인할 수 있어야 하는데, 제 책들은 다 궁여지책으로 만든 거거든요. 모두 우연히 나온 것들이죠. 정말 몰입해서, 오롯이 작품을 만든 적이 한 번도 없어요.

 

그렇다기에는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와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이 좋은 성과를 얻었잖아요.

《도대체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도 궁여지책이긴 마찬가지예요. 그 해에 책이 너무 안 나왔어요. 영업부에서 신간을 내달라고 하는데 계약한 작가들한테 전화해보니까 진행이 하나도 안 됐더라고요. 그런데 집에 와보니 제가 밤마다 낙서한 것들이 보였어요. 그게 바로 토끼 그림들이었죠. 물론 작업 자체가 쉽진 않았어요. 그림책을 내기에는 장수가 모자라서 새로 그려야 하는 부분이 있었거든요. 그려놓은 컬러 그림이 여섯 장밖에 없어서 중간중간에 흑백으로 그리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한 달 만에 책이 나오게 됐죠. 그런 작가가 세상에 어디 있어요, 순 엉터리지(웃음). 《뉴욕타임스》 2003 최우수 그림책으로 선정되어서 평을 봤더니, ‘흑백과 컬러가 교차하는 오묘한 편집’이라고 써 있더라고요(웃음).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네요. 《세상에서 제일 힘센 수탉》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이 책은 제 이야기와 이억배 화가의 그림이 합쳐져서 만들어졌어요. 책 뒤표지에 있는 그림이 이억배 화가가 책 나오기 전부터 그려놓은 그림인데, 그 그림을 보는 순간 저에게 수탉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이 불현듯 떠올랐어요. 언젠가 장인어른을 보면서 수탉 같다고 생각한 적이 있거든요. 우리 장인어른이 가부장적인 옛날 분이신데, 한편으로는 순진하고 어린이 같으세요. 한번은 저희 가족이 파리에 살았을 때 아이를 보러 오셨는데, 이탈리아에서 모자를 샀다면서 흥겹게 모자를 써보시더라고요. 모자의 챙과 옆얼굴, 모자를 잡는 팔과 손, 전체적인 이미지가 한 마리 수탉 같았어요. 그 이미지를 장인어른의 삶에 빗대어 아이에게 옛날이야기처럼 들려주곤 했어요. 이억배 화가에게 그 닭 이야기를 책으로 내보자고 제안했는데, 술 먹는 장면도 나오고 흔한 얘기가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는지 조금 고민하더라고요. 그러다가 결국 자기 할아버지 생각이 난다면서 같이 작업하게 됐어요.

 

이억배 화가와 마찬가지로 아빠나 할아버지가 생각났다는 후기가 많더라고요. 이 책에 ‘한국 최초 IBBY 우수도서선정’이라는 타이틀이 있는데, 어떤 이유로 선정됐는지 궁금해요.

짧은 그림책이지만 이 안에 사람들이 살아가는 희로애락의 모습이 다 들어 있다는 게 선정 이유였어요. 탄생, 성장, 힘겨루기… 그리고 암탉과 수탉의 관계도 있고요. 단순히 늙은 수탉에게 힘을 주는 이야기나 가족 간의 우애에 관한 이야기로 받아들일 수도 있지만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봐도 좋을 것 같아요. 아이들은 이런 책을 보면 삶의 드라마를 느껴요. 이 책을 재미있어 하는 이유는 큰 교훈이 있어서가 아니라 풍부한 이미지를 담고 있기 때문일 거예요.

그런데 어른들은 책의 그림보다 내용에 비중을 두고 읽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안타깝지만 그래요. IBBY 선정위원 중 한 분이 저에게 그런 말을 했어요. 책을 심사할 때는 글을 자세히 읽지 않고 주로 이미지를 본다고요. 이 책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이게 닭 얘기인지 사람 얘기인지 물어보면 닭 얘기라고 대답해요. 아이들 눈에 닭은 닭이니까요. 그런데 어른들에게 책을 보여주면 사람 얘기라고 하는 거죠. 살아가면서 많은 이데올로기의 영향을 받고, 어릴 때 받았던 입시 교육의 잔상이 아직 남아 있는 것 같아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게 아니라 자기 가치판단에 편한 쪽으로 해석하는 거죠.


이미지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건 좀 씁쓸한 이야기네요.

쉽게 말하면 그림책은 별거 아니에요. 책이 보여주는 다양하고 풍요로운 이미지, 그리고 빠져드는 재미, 그 안에서 벌어지는 다이내믹 같은 게 재미있는 거죠. 그런데 우리는 의식적으로 유식해보이려는 강박이 있는 것 같아요. 독자들도, 평론가들도, 만드는 사람들조차도요. 그런 게 아쉬울 때가 있어요.

 

산업미술을 전공하셨는데, 그림책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셨어요?

모든 생각이 중학교 때 싹튼 것 같아요 그때 제가 글 쓰는 걸 참 좋아했어요. 문학소년이었죠. 학보사에 제 글이 실리기도 했고요. 그때 학보사에 가서 제가 본 책이 편집부 학생들이 직접 손으로 그리고 동판해서 만들어졌다는 걸 알았어요. 책은 사람이 만든다는 걸 알게 된 거죠. 책 너머에 사람이 있다는 걸요. 그리고 또 하나, 중학교 선생님의 남편분이 그래픽 디자이너였어요. 상업 일러스트와 광고 작업을 하는 분이었는데, 그 집에 놀러 갔다가 그런 분야가 있는 걸 처음 알았어요. 미술이라고 하면 정물화나 석고 데생 이런 건 줄 알았는데 전혀 다른 세계가 있는 거예요. 그 이후에 내내 머릿속에 그걸 품고 있다가 미대에 가게 됐어요.


아, 그 시기쯤 토미 웅거러의 책을 보고 충격을 받으셨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제가 80년대에 대학을 다녔는데 마침 그때가 전 세계적으로 그림책 전성기였어요. 어린이책 역사에 중요한 책들이 많이 나왔고요. 대학교 때 매형이 일본에서 《달 사람》, 《세 강도》 같은 책과 반전 포스터들이 있는 토미 웅거러 화집을 사다 주셨어요. 책은 분명 강도에 관한 이야기인데 제가 미술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도 이 사람이 도대체 왜 이렇게 그림을 그렸는지 알 수가 없더라고요. 나중에 파리에 있는 서점에 갔을 때에야 그런 예술적인 책들이 다 어린이책이라는 걸 알게 됐죠. 어린이책이라고 해서 내가 생각하던 상업적인 것만 있는 게 아니구나, 하면서 그런 책을 만드는 출판사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낸 첫 그림책이 《쥐돌이는 화가》죠?

맞아요. 지금의 비룡소가 있기 전 민음사에서 나온 책이에요. 말씀드렸듯이 저는 그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이 아니에요. 그러다 보니까 그동안 낸 책들을 보면 좀 창피하기도 해요. 시간이 있었으면 더 잘했을 텐데, 하는 부분들이 많아요. 《쥐돌이는 화가》도 그래요. 생각을 오랫동안 숙성시키기는 했지만 그림은 이틀 밤만에 뚝딱 그린 거거든요(웃음). 이 책은 우리 아이가 어릴 때, 아이가 자기가 그린 그림을 설명하는 모습을 보고 깜짝 놀라서 시작된 이야기예요. 어른들은 아이의 그림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는데, 하나하나 들어보니 디테일한 이유가 있더라고요. 아이들은 자기 생각을 그림으로 옮길 수 있는 자발성이 있는데 우리가 미술교육이라는 명분 아래 그걸 못 그리게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이러니한 거죠. 그래서 저는 우리 아이가 무언가를 그리고 좋아하는 걸 지지해주고 싶었어요. 할 수 있는 게 뭘까 곰곰이 생각하다가 아이 그림들을 벽에 걸어주었죠.


갤러리처럼요?

그렇죠. 또, 아이들은 미술관에 가면 자기 방식대로 즐기고 상상하기 때문에 미술관에 데려가는 게 미술을 가르치는 것보다 오히려 좋은 교육이라는 이야기를 한 권에 담은 거예요. 다 제 경험을 옮긴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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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편집장님의 여섯 살짜리 아들이 《토끼 탈출》을 너무 좋아한다고 해요. 장면 하나, 상황 하나에서 재미를 느끼는 것 같다고요. 그 얘기를 듣고, 어떤 방식으로든 즐거움을 느낀다면 그림책 안에서 꼭 교훈 같은 걸 얻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이들에게는 그렇게 자기만의 감동을 느낄 수 있는 여지를 주어야 해요. 부모가 미리 무언가를 규정해놓고 ‘이 책은 이런 의미가 있는 책이야.’라고 말한다면 아이들은 호응은 할지언정 감동은 가져가지 못할 수 있거든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박인경 작가가 그림을 그리고 제가 글을 쓴 《바람과 물과 빛》이라는 책이 있어요. 자연을 표현한 추상적인 그림들에 제가 글만 달아 펴낸 건데 내용은 이런 식이죠. “나는 본래… 물이었다. 하나였고, 여럿이었다. 부서지는 바람이었고, 바람을 가두운 산이었다.” 무척 추상적인 그림에 짧은 글이잖아요? 어른들은 아마 이 책이 어린이들에게는 아주 어려운 화집처럼 느껴질 거라고 판단할 거예요. 그런데 저는 이런 낯선 이미지들을 보는 행위 자체가 좋다고 생각해요. 쉽게 접할 수 있는 티브이 만화나 캐릭터 책만 보다 보면 아이들의 상상력은 어른들이 생각하는 ‘어린이다운’ 세계에 멈춰버릴 거예요.

 

어린이들이 그런 책에서 무엇을 볼지 궁금해지네요.

어떤 독자가 후기를 남겨줬는데, 네 살짜리 딸에게 ‘아이가 이해를 할까?’ 의심하면서 책을 읽어줬대요. 몇 번을 다시 읽어달라고 하기에 이 책이 왜 좋으냐고 물어봤더니 그러더래요. 이 책 보면 엄마랑 산에 온 것 같다고. 신기한 게, 박인경 작가가 진짜 산속에 사는 할머니거든요. 파리 근교의 산속에 있는 아틀리에에 살면서 자연을 그리는 모습을 아이가 어렴풋이 본 거예요. 그 말 한마디에 92세 노인과 네 살짜리 아이가 딱 만난 거잖아요. 아이들 무시하면 안 돼요(웃음). 이런 예만 봐도 아이들에게 책 속에 드러나지 않는 작가를 느끼게 해주는 게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어요.

이미지를 어떻게, 얼만큼 받아들이냐는 어른이 아니라 아이가 결정할 몫인 거네요.

책을 이해한다는 개념 자체가 잘못된 거예요. 그냥 만나게 해주는 거죠. 어떻게 해서든 새로운 걸 찾아주는 게 그림책의 몫이에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림책이 상업적으로 잘 가공된 것이어야 한다고 잘못 이해하고 있어요. 제가 생각하는 좋은 어린이책은 모든 장르의 좋은 이미지를 가깝게 보여주는 책이에요. 그림책 안에 정답이 있는 게 아니라 그걸 계기로 새로운 상상을 하게 될 수 있기를 바라요. 네 살 때 이런 걸 본 아이들은 커서도 추상적인 이미지를 자유롭게 즐길 수 있겠죠. 그런 다양한 그림 체험의 공간이 어린이책 안에 있어야 해요. 모든 걸 다 기획하고 치밀하게 메시지를 넣으면 아이들이 상상할 여지가 너무 없어요. 저에게는 어떤 여지가 있는 그림들이 더 와닿아요. 제가 만든 책들 역시 그런 부분에서 결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그래서인지 작가님의 책을 읽고 나면 그냥 재미있었다는 느낌, 어떤 단편적인 이미지들이 많이 남는 것 같아요.

가끔 사람들은 ‘책’이라는 이유로 너무 위대한 걸 기대하는 것 같아요. 책도 기호식품이거든요. 아이들이 보고 재미있어하면 그만이에요. 그 안에 건강함이 있다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어른들이 책에서 교훈을 찾아주려고 할수록 뜻대로 안 돼요. 아이들이 그렇게 커주지 않잖아요(웃음). 정말 좋아하는 책을 고를 수 있는 선택의 폭이 넓었으면 좋겠어요. 어떤 특별한 아이는 다른 친구들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걸 좋아할 수 있으니까요. 그런 식으로 우리가 다양성을 제공해줘야 해요.


재미마주에서 책 한 권을 내기까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무엇인지 궁금해요.

일단은, 토탈리티라고 할까요? 왜 그런 얘기 있잖아요. ‘전체는 부분의 합 이상이다.’ 작가들이 출판사에 보내오는 작품들을 보면 부분은 좋은 것들이 많아요. 내용과 그림도 괜찮고 편집 방향도 얼추 잡히는데, 그걸 전체로 합쳤을 때 풍겨오는 게 마음에 다가오지 않으면 책으로 만들어지지 않는 거예요. 예를 들면, 맞선 상대가 외모, 성격, 직업 등 좋은 조건을 두루 갖췄는데도 밥 한 끼 같이 먹고 나니 매력이 떨어지는 경우 있잖아요. 물론 매력이라는 건 추상적이고, 어디에 있는지 밝히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해요. 하지만 그런 게 정말 있어요(웃음). 부분은 좀 모자라더라도 왠지 뭔가가 더 느껴진다거나,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싶다거나 하는 마음이 들면 돼요. 사실 이런 마인드는 상업 출판에 전혀 안 맞는 건데(웃음), 이렇게 20년 동안 하다 보니까 다른 걸 못 하게 된 것 같아요.


초등학교나 도서관에서 어린이 독자들과 꾸준히 만나고 있으시잖아요. 사진 속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어요. 어린이들과 만나면 무슨 이야길 나누세요?

책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죠. 그런데 놀라운 건, 성인을 대상으로 강의할 때는 기억나지 않던 예전 일들이 아이들과 이야기를 나눌 때 자꾸 떠오른다는 거예요. 아, 이거 우리 아이랑 놀던 건데 하면서요. 제가 겪은 토끼 이야기를 해주면 아이들이 깊이 빠져들어요.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서 자기들끼리 하는 말을 엿들으면 주제가 다 토끼예요(웃음). 제가 어린이 개그맨이 되는 거죠. 어른들은 항상 재미없는 얘기만 하는 존재라고 생각했을 텐데, 책에 관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니까 아이들이 재미있어하는 것 같아요. 아이들은 책만 봐서는 이 책을 사람이 만들었다는 생각을 못 해요. 저를 만나면서 작가가 뭔지 알게 되고, 신기해하죠. 매번 느끼는 건데 아이들은 언제나 진지하고, 본질을 보려고 해요. 어떤 주제로든 아무 장벽 없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존재는 어린이뿐이에요.


다른 출판사에 비해 그림책을 내는 주기가 길다고 들었어요.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출간 계획을 잡아놓기는 하는데 그게 잘 맞는 경우가 별로 없어요. 작가나 일러스트레이터, 아니면 제가 직접 그림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는데 책마다 진행 주기가 다 달라요. 개인 사정도 있고요. 계약을 하고 나서도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지 않은 게 있으면 또 연구하고, 그러다 보면 6개월, 1년이 금방 가요. 저는 책을 항상 이런 리듬으로 만들어왔어요. 상업적인 기획을 따로 하는 데 익숙하지 않아서 우연히 사람들을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어, 이런 작업 한번 해보고 싶은데?’, ‘이 사람이랑 같이 해보면 좋을 것 같은데?’ 생각이 들면 시작하게 되는 거죠. 1년에 많아야 4~5권을 내왔는데 지금은 시장 상황이 많이 바뀌었어요. 1년에 20권 정도 내지 않으면 출판사의 존재 가치가 흐려지는 것 같아요. 이제 그런 시대가 됐기 때문에 여러 가지 모색을 해봐야죠.


신간을 많이 내야 한다는 조급함도 생길 것 같아요.

저도 책을 빨리 내려고 해봤는데 잘 안 돼요. 억지로 하려다 보니 자연스럽지 않더라고요. 가제본 해놓고 1년씩 묵혀두는 책들도 있어요. 안 낸 게 아니고 못 내는 거예요. 완벽주의라기보다는 고칠 게 눈에 보이는데 그냥 낼 수가 없네요.

‘재미마주 책에는 모자람은 있을지언정 뜬금없거나 억지스러운 것, 가식적인 것은 보이지 않는다.’고 하셨어요.

네, 그런 마음으로 책을 내고 있어요. 예를 들어 젊은 사람들이 어플로 시켜 먹는 배달 음식 중에서 제가 보기에는 조미료 범벅인 것들이 있거든요. 이미지도 마찬가지예요. 완전히 상업성으로 무장된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해요. 평소에 기록하는 우연한 아이디어들을 토대로 되도록 자연적인 흐름으로 만들어가고 싶어요.


지금까지 하신 이야기들이 ‘자연스러움’이라는 한 단어로 귀결되는 것 같아요.

음식엔 유기농이란 표기가 있지만, 이미지는 그 경계가 다 무너져버렸어요. 가공이 나쁜 건 아니지만 영리하기만 한 책이 너무 많다는 게 아쉬워요. 어떤 여운, 향기 같은 게 없는 거죠. 아무리 인기 많은 작가라도 모든 사람이 좋아할 수는 없잖아요. 누군가는 알려진 정보에 의해 좋다고 생각하는지도 모르고요. 사람들마다 진짜 좋아하는 게 따로 있을 거예요. 물론 그 취향만 가지고 출판사를 운영하기는 쉽지 않아요. 출판사는 많이 팔리는 책을 만들어야 하니까요. 그런데 저는, 제가 정한 자연스러움의 경계를 보호하고 싶어요. 모자람은 있을지언정 억지는 없도록. 독자들에게는 어떤 가공보다 그 책이 갖고 있는 느낌을 전달하는 게 훨씬 중요하다고 믿어요.


그런 확고한 소신이 독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달되면 좋겠어요. 해외 반응은 어떤가요? 매회 볼로냐아동도서전에 참여하신다고 들었는데요.

볼로냐에서 계약이 많이 성사되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그곳에 가면 요즘 어린이책 분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보고 우리 책에 대한 평도 들어볼 수 있어요. 해외에서 우리 책을 내게 된 것도 다 거기서 사람들을 만난 덕분이에요. 요즘 나오는 책들을 보면 트렌디함이 많이 잦아든 것 같긴 해요. 그런 점에서 재미마주의 책은 미래에 더 가까이 가 있는지도 몰라요. 그래서 지금 나오고 있는 우리 책들은 아마 몇 년 뒤에 관심을 더 받을 것 같아요(웃음).


국내 창작 그림책과 민속 문화가 담긴 그림책들을 되살리려는 노력도 보여요.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를 지키려는 노력도 있지만 어린이들이 우리 민속화와 무속화를 볼 기회가 없을 것 같아서 만들었어요. 문화적 가치가 높은 것보다는 서민의 정서가 묻어 있는 그림이 많은데, 그런 그림들이 이미지로서 무척 흥미로울 수 있거든요. 옛날 그림만의 느낌이 있으니까요. 그런 의무감을 갖고 가회박물관이라는 민화 박물관과 협업해서 만든 시리즈예요. 같은 이유로 50~60년대 어린이책을 재출간하는 프로젝트도 진행했어요. 전쟁 후에는 그림책을 만들 여건이 안 되니까 언어에 의존해야 했어요. 그래서 동시가 발달했고, 동시만 편집하면 심심하니까 화가들에게 삽화를 그리게 했죠. 그 표지와 삽화가 아주 예술적이에요. 요즘 그림책에서는 못 느끼는 예술성이죠. 전 세계적으로 주류는 상업적인 방향이지만 자기만의 스타일이 있는 아티스트들이 그 위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미지보다 더 큰 영역이 있는 거니까요.


상업성에 치우친 책들에 대해 우려하시는군요.

저는 그걸 한마디로 ‘시스템 출판’이라고 말해요. 모든 게 산업화되니까 먹고 살기 위해 시스템을 다루는 법을 배우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경험상 꼭 그렇게 해야만 먹고살 수 있는 건 아니더라고요. 주인이 직접 요리를 하는 아주 훌륭한 식당도 있잖아요. 가격은 조금 비싸게 받지만 미셰린도 달고요. 말하자면 저는 그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시스템이 맞지도 않고, 노하우도 없으니까요. 하지만 책 하나를 완성하는 방법은 잘 알고 있죠. 저희 책을 보시는 독자들 나름의 각성도 있기 때문에 계속 이 방식을 고수하게 돼요.


‘재미마주 문화학교’도 운영하고 있으시죠. 참여하시는 분들에게 무슨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지 궁금해요.

그림책만 즐긴다기보다는 그걸 계기로, 오히려 그림책을 버리고 아이들과 더 큰 예술을 즐기면 좋겠다는 마음이에요. 예술이 어렵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을 긁어주고 싶기도 하고요. 제가 아는 선에서 어린이책이나 그림책이라는 장르는 존재하지 않아요. 칸딘스키가 ‘예술은 시대의 자식’이라고 말했듯이 우리가 아는 그림책은 시대의 산물인 거예요. 그 예술은 또 과거 예술의 자식들이고요. 그림책 안에 담겨 있는 여러 가지 이미지는 그림책에만 존재하는 게 아니고 파인 아트나 일상에도 존재해요. 문화학교에서는 그런 이미지들을 보는 법에 대해 함께 이야기 나눠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재미마주는 어떤 출판사인가요?

어쩌다가 재미마주 책을 보게 되면 그 독자는 첫 계단을 오른 거예요. 그리고 또 다른 책을 보면 두 번째 계단을, 그렇게 세 번째 네 번째를 올라요. 한 번 계단을 오른 사람들은 아마 끝까지 가고 싶어할 거예요. 독자들이 그 계단이 또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해주시니까 제가 새 책을 만드는 거고요.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렇게 길고 오래가는 출판사로 남고 싶어요. 저는 그것밖에는 모르고, 그래서 그 안에 우리의 가치를 보존할 수 있는 방식이 있어요. 우리 책은 낱권의 책보다는 출판사로 기억해주시는 분들이 많은데 그건 더디더라도 재미마주 책이라는 존재를 느껴주시는 분들이 있다는 의미겠죠. 그런 분들을 위해서라도 자연스러움을 지키고 싶어요.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그림책이 어린이를 위한 것인지 어른을 위한 것인지’ 묻는 질문이 무의미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맞아요. 그 두 가지를 재는 것보다는 어떤 어른인지가 중요해요. 어린이와 함께 사는 어른이 안목을 갖고 예술을 즐기는지 아닌지 말이에요. 예술을 즐긴다면 당연히 어린이책을 살 때 예술적인 관점으로 고르겠죠. 어린이가 안목이 있어야 어린이책 시장의 질이 높아진다는 건 말이 안 돼요. 어른이 무엇을 즐기느냐에 따라서 어린이가 달라져요. 아이들은 어른이라는 토양 위에서 자라는 식물이에요. 단순히 그림책 한 권에만 영향을 받는 게 아니라 그 집안의 분위기, 어른의 생각, 행동, 교육 철학에 의해 성장하는 거죠. 


어른의 역할이 어린이 성장에 핵심적인 키가 되는 거네요.

그럼요, 어른이 핵심이죠. 무엇보다 좋은 토양이 중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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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다은

포토그래퍼 안가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