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Little Bit More Vegan Today

작은 부엌 이야기 : 비건 크리에이터 초식마녀 박지혜


나는 둥글둥글 덩어리진 그녀의 만화가 좋다. 비건 타코를 뚝뚝 흘리며 먹는 천진한 영상이 좋다. 무구한 얼굴로 비건 생활을 쉽고 즐겁게 소개하는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이곳에 왔다. 여기는 초식마녀의 영상 속, 그 작은 부엌이다.

비건 감태 김밥

“저는 메뉴를 생각하고 장을 보는 게 아니라, 냉장고에 어떤 재료가 있는지 확인하고 그날 메뉴를 결정해요. 오늘은 냉동실에 감태가 많아서 감태 김밥을 만들었어요. 속 재료는 현미밥과 템페, 후무스, 시금치, 비건 마요네즈예요. 템페는 콩을 발효해 만든 인도네시아 식재료인데 한국에서도 채식이나 다이어트 식품으로 많이 드시더라고요. 템페에는 커리 파우더를 넣어 굽고 후무스에는 커민, 고수를 추가했어요. 시금치도 숨이 살짝 죽을 정도로 볶고, 병아리콩을 삶아서 만든 후무스와 비건 마요네즈를 올린 뒤 둘둘 말았죠. 저도 처음 해보는 거라 망칠까 봐 걱정했는데 잘 만들어진 것 같아요. 모양은 엉성하지만 제가 만든 김밥 중 제일 잘 말린 거예요(웃음).”

만나서 반가워요. 독자들에게 인사해 주세요.

안녕하세요, 저는 비건 레시피 만화와 영상을 만드는 박지혜예요. ‘초식마녀’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죠. 쑥스럽지만 지난 4월엔 네 컷 비건 요리 만화인 《오늘 조금 더 비건》을 출간했어요.

 

크리에이터 활동을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나요?

채식을 소재로 활동한 건 1년 정도 되었어요. 그 이전부터 일상툰은 꾸준히 그렸고요. 일상툰의 시작은 신랑이 잘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면서부터였는데요. 그 당시 느끼던 부담감과 막막함을 만화로 그려서 포털 사이트 웹툰 채널에 연재하다가 인스타그램으로 플랫폼을 옮기고는 지금의 네 컷 만화 형식으로 정착하게 됐어요.

 

채식을 소재로 삼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나요?

제 만화는 항상 일상이 소재였기 때문에 비건이 되고 채식을 다룬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어요. 비건 생활 중에서도 비건 레시피를 소개하고 있는데, 저는 전문가도 아니고 그때그때 냉장고에 있는 재료들로 요리해서 늘 맛과 모양에 편차가 커요. ‘이건 알려야 해!’ 싶게 잘 만든 음식이나 썩 괜찮은 조합을 발견했을 때 만화로 그리고 있죠. 이 만화들은 구독자를 위한 콘텐츠이기도 하지만 제가 무엇을 어떻게 해 먹었는지 기록하는 일이기도 해요.

 

유튜브도 비건 생활과 함께 시작된 건가요?

평소에 유튜브를 즐겨 보지 않아서 딱히 관심이 없었는데 비건이 된 이후 주변에서 유튜브를 해보는 게 어떻겠냐고 많이들 권해주셨어요. 낯을 가리는 성격이기도 하고, 저를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도 않고, 영상에 대한 지식도 없었지만 일단 부딪쳐보기로 했어요. 장비 욕심은 없는 편이어서 핸드폰을 세워두고 요리하는 걸 찍기 시작했더니 남편이 집에 핸드폰 삼각대가 있다면서 꺼내주더라고요. 그걸 이렇게 저렇게 설치해서 촬영에 도전했는데 첫 영상을 완성하기까지 100번 정도 시도한 것 같아요(웃음). 인사만 한 건데도 제 모습이 어찌나 어색하던지, 못 보겠고 민망하고…. 게다가 요리를 잘하는 게 아니어서 냄비도 태워 먹었어요. 그래도 여러 번 촬영하다 보니 지금은 영상 속 제 모습이나 촬영 과정이 좀 익숙해졌어요. 

 

채식의 단계를 거치지 않고 바로 식물성 재료만 먹는 비건이 되었다고 알고 있어요. 어떤 계기로 비건을 결심하게 됐나요?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카우스피라시Cowspiracy>에 큰 영향을 받았어요. 공장식 축산이 환경에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주는 다큐멘터리인데, 그걸 보고 제 머릿속에 있던 가짜 매트릭스가 와장창 깨졌거든요. 이 다큐멘터리에서는 공장식 축산의 대안으로 평가받는 잘 구성된 복지 농장의 모습들도 보여줘요. 오리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넓고 푸른 풀밭이죠. 하지만 그 좋은 환경에서 지내온 오리들도 도축하려고 하니 낌새를 알아채고 바삐 도망치더라고요. 그중 한 마리를 잡아서 도마 위에서 목을 내리치는데… 그걸 보곤 바로 비건이 되겠다고 결심했어요. 어떤 동물은 먹어도 되고, 어떤 동물은 안 된다고 따지는 게 의미 없단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동안 제가 먹은 고기들은 동물 복지가 잘된 농장에서 자라 고통 없이 죽은 가축일 거라고 생각해 왔는데 전부 육식을 위한 합리화였단 걸 인정해야 했어요. 고민하고 시간을 들인다고 더 좋은 결론을 내는 사람은 아니어서 비건을 시작하는 데 망설임은 없었어요.

고양이와 함께 살고 있어서 더 크게 와닿았을 것 같아요.

아무래도 그렇죠. 하지만 고양이가 없었더라도 저는 비건이 되었을 것 같아요. 동물권에 대해 이미 꽤 오래전에 고민한 적이 있거든요. 우연한 기회에 3개월 정도 유기견을 보살피게 돼서 유기견 보호소에 봉사활동을 다닌 적이 있는데요. 그때 펫숍에 귀여운 강아지들이 진열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엄청나게 많은 개들이 희생되고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정말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더라고요. 강아지나 고양이는 다른 동물들에 비해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존재인데도 이렇게 끔찍한 일을 겪는데, 하물며 사람이 먹는 동물들은 어떻겠어요. 이미 한 번 인식한 적이 있는데도 이제야 비건이 된 건 오히려 늦은 결심이었어요.

 

마주할수록 무거워지는 문제 같아요. 비건이 되고 소비에도 신중해졌을 것 같은데 어때요?

맞아요. 비교하고 따져야 할 게 정말 많아요. 그래서 저는 비건의 기준에 너무 속박되지 않기 위해 조심하고 있어요. 저라고 비건에 대해 속속들이 아는 건 아니어서 어쩌다 동물성 제품을 소비할 수도 있으니까요. 실제로 유튜브로 비건 마라샹궈 레시피를 소개할 때 비슷한 경험이 있었어요. 동물 성분이 없는 제품을 골랐는데, 마라 소스에 동물에서 유래했을 수도 있는 화학 성분이 있다고 구독자가 알려주었거든요. 중국 기업이라 직접 문의하긴 어려워서 ‘소스에 논비건 성분이 포함되었을 수도 있다’고 공지하는 걸로 마무리했는데, 저는 이런 실수도 누군가에겐 정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완벽하지 않은 비건의 모습도 다 보여주려고 하는 게 그런 이유죠. 그 사건 이후로 저도 원재료명을 조금 더 샅샅이 찾아보게 됐어요. 그게 귀찮아서 언젠가부터는 첨가물이 안 들어간 제품만 먹고 있지만요(웃음).

 

비건이 되기 전에도 채소 위주로 식사를 해왔나요?

아니요. 비건이 되기 전엔 엉망이었어요. 배달 음식도 많이 먹고, 밤늦게 기름진 것도 자주 먹고…. 그런데 비건이 되고부터는 스스로 해 먹게 되니까 부모님은 오히려 뿌듯해하시더라고요. 재밌는 건 비건이 되기 전엔 중국식 만두를 제일 좋아했고 특별한 날엔 곱창으로 분위기를 내던 사람이었는데, 비건이 된 후로는 단 한 번도 고기가 먹고 싶던 적이 없다는 거예요. 먹고 싶다고 생각한 건 고기보다도 추운 날 먹던 붕어빵이나 꼬치 어묵 같은 길거리 음식이에요. 정확히는 그 음식들이 소환하는 분위기가 그리운 것 같아요. 물론 바로 옆에서 오징어를 굽거나 하면 저도 냄새 때문에 힘들어요. 하지만 살아 있던 생명이라고 생각하면 입맛이 뚝 떨어져요. 의지력이 강한 편은 아닌데 비건이 되고서는 절제력이 생겼죠.

초식마녀의 만화는 비건과 논비건 모두에게 사랑받고 있어요. 채식을 소재로 삼으면서 만화 구독자가 늘어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특별한 테마 없이 일상툰을 그릴 땐 구독자가 2천 명 정도에서 정체되었는데요. 일상툰이 워낙 많기도 하고, 제 만화에 2천 명 이상의 독자를 끌어들일 특별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저 자신도 만화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기보단 습관 같은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 마음이 만화에도 그대로 드러난 것 같아요. 물론 가벼운 일상툰을 좋아하는 구독자도 있었지만 딱 그 정도까지의 호응이었어요. 하지만 비건이 된 이후로는 하고 싶은 얘기가 정말 많아졌고, 만화에 말하고자 하는 바를 담으면서 작가로서의 정체성도 생겼어요. 이전에는 만화로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깊게 고민하지 않았는데 비건이 되고부터는 확실히 말하고 싶은 게 생긴 거죠. 비건 요리도 맛있을 수 있고 비건 라이프도 쉽고 즐겁게 할 수 있다는 걸요.

 

채식은 지나가는 트렌드처럼 여겨지기도 하고 무겁고 민감한 주제처럼 다뤄지기도 해요. 이 시대의 비건으로서 채식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채식은, 특히 비건은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사랑이 있어야 할 수 있는 일 같거든요. 그게 아니라면 평범하고 게으른 제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불편함과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살아가는 방식을 바꿨겠어요. 저는 사회 이슈가 되어야 할 건 채식이 아니라 육식이라고 생각해요. 하지만 채식이 계속 이야기되면서 건강에 대한 새로운 상식으로 여겨지는 건 좋은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문화적 트렌드로 활용되는 것도 긍정적인 것 같고요. 저는 채식이 이렇게 이슈 되고 사람들 사이에서 이야기되는 게 좋아요. 그저 채식하는 사람과 하지 않는 사람 사이의 편 가르기식 싸움만 없기를 바라고 있어요.

 

앞으로의 비건 생활에 목표가 있다면!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작은 텃밭을 가꾸고 싶어요. 직접 기른 채소로 더 건강한 비건 요리를 만들고 싶거든요. 텃밭이 생긴다면 고수, 겨자채, 치커리, 상추, 깻잎 같은 걸 가득 심을 거예요. 지금도 쌈 채소랑 허브로 요리하는 걸 좋아하는데 마트에서 구매하면 비닐이나 플라스틱 포장이 과해서 마음이 불편하더라고요. 제 텃밭이 생긴다면 플라스틱 없는 다채로운 채소 식탁을 차려볼 수 있겠죠? 먹고 나서 후회가 없는 식탁으로 건강한 비건 생활을 이어나가고 싶어요.

그녀가 요리를 만드는 내내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쫓아 슬금슬금 다가오던 고양이 태풍이. 몸집이 크고 뚱뚱한 태풍이를 식탐 고양이라 부르며 몇 번이나 얼굴을 부비던 초식마녀는 행복해 보였다. ‘비건은 사랑’이라는 그녀의 말에 잘 자던 태풍이가 꿈틀거린 건 그저 우연이었을까?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이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