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ouse And A Home

Wander, Wonder
집 더하기 집

이제 진짜 집이 필요하다.

집은 저장고일 뿐이었다. 오늘 당장 필요하지 않은 물건(이자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보관하고 잠을 자는 장소. 부모님 집에서 나올 때가 대학교 3학년 때였는데, 졸업하면 철수할 예정이었으니 처음부터 임시 거처인 셈이었다. 명칭도 ‘자취방’이 아니라 ‘작업실’이었다. 과 애들이 모두 과제와 아르바이트로 늘 작업 중이었고 나 역시 시간의 대부분을 작업으로 보냈다. 돌이켜 생각하니 그때나 지금이나 일상의 루틴이 크게 다르지 않다. 졸업 후 직장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집은 그저 자고 씻고 옷갈아입는 곳이었다. 회사 근처에 (작업실이 아닌) 자취방이 있었지만 작업에 필요한 모든 것은 회사에 있었고 계절별 옷 몇 벌이 내가 가진 전부였으므로 몸만 누일 수 있으면 그만이었다. 서른이 되도록 그렇게 지냈으니 집에 대한 생각이 들어설 리 없었다.

느는 건 책과 음반뿐이었다. 음반은 전부 시디라 자리를 많이 차지하지 않았지만 책은 골칫덩이였다. 책 때문에라도 집을 점점 넓혀야 했다. 집이 그나마 덜 누추했던 건 책 덕분이었다. 한때는 가볍게 살아보겠다고 거실을 싹 비우기도 했다. 소파는커녕 방석 하나 없이 한구석에 오디오만 놓았다. 다른 동네에 따로 작업실을 차렸으니 집에선 무념무상으로 지내보려는 심산이었지만 소반을 놓고 허리 숙여 밥 한 끼 먹었더니 음식물이 역류하는 듯했다. 매끼 외식할 작정이 아니라면 식탁 정도는 있어야겠다고 생각을 고쳐먹었다. 그러자 집 안에 앉을 곳이라곤 딱딱한 식탁 의자뿐이었고, 그래도 그렇지 주말에 편안히 누워 책이라도 볼 자리는 있어야겠다는 생각에 소파를 들였다. 미니멀리즘이 역류하는 음식물과 지친 몸뚱이 하나 누일 곳 없는 거실을 뜻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게 세간이 점점 늘어났지만 중요한 일은 여전히 대부분 집이 아닌 곳에서 실행했다. 일은 작업실이나 카페에서 했고 밥도 거의 외식으로 해결했다. 집, 집이 있는 동네, 동네가 속한 나라에서 벗어나는 일탈 행위인 여행으로 누적된 피로를 풀고 해갈했다. 내 일상이 없는 곳에서 보내는 일상이 지난한 일상에 대한 보상이었다. 나와 상관없는 곳에서 방관자로 겉도는 일이 편했다. 심신을 회복하는 기능마저 집이 아닌 곳에 기댔던 것이다.

집을 밀어내는 동시에 집이면 충분하다는 생각도 있긴 했다. 특히 출퇴근길에 이동 중인 인간 무리를 보면 아득해진다. 어쩌다 인간은 집에서 우르르 이탈해 하루의 일정 시간을 보내는 생활을 하게 되었을까. 그리고 그런 생활에 지친 표정이 삶을 물들인다. 집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아지면 집에서 일하는 사람뿐 아니라 직장으로 이동하는 사람한테도 좋은 일 아닌가? 막 프리랜서로 독립했을 무렵, 집에서 일한다고 하면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마주하곤 했다.

모든 상황이 역병 창궐로 뒤집혔다. 집이 아닌 외부 공간은 이용할 수 없게 되었고, 집에서 일해도 충분하다는 인식이 점점 퍼지는 것 같다. 나 역시 집에 대한 무관심과 집을 옹호하는 마음이 포개져 합을 도출해 가는 과정에 있다. 집에 머무르는 것 말고 다른 방도가 없어지자 집에서 보내는 시간에 의외로 빨리 익숙해졌고 저장고에 그치던 역할이 ‘집’으로 서서히 전환되었다. 집의 변화는 곧 생활의 변화다. 가장 먼저 눈에 띈 변화는 예년에 비해 옷을 별로 사지 않는다는 점이다. 입고 나갈 일이 없는데 뭐 하러 산담. 물론 집에서 입어도 되지만 난 외출복과 실내복을 구분하는 편이고 집에서는 대개 파자마 차림이다. 2020년은 내내 파자마만 입고 지냈다. 은재한테 선물로 받은 파자마가 마음에 들어 몇 벌 더 사야겠다고 결의(결의가 필요한 가격이다….)를 다지고 있다. 실내화도 장만했다.

지난 여러 해 동안 주로 카페에서 작업을 해 왔기에 작업 도구 역시 이동성을 고려해 13인치 노트북이었는데 얼마 전에 24인치 모니터를 들였다(이실직고하자면 심해진 노안이 더 큰 동력이지만). 몸에 좋은 자세를 유지하려고 책상 밑에 발 받침대를 놓고 의자와 모니터 높이를 조정했다. 외출 시 들고 다니던 접이식 노트북 거치대는 쓸 일이 없어졌다. 물건을 수북이 쌓아두던 책상을 치웠고 쾌적한 작업 환경을 만들려고 몇 년째 방 한구석에 방치했던 물건들을 하나하나 조사해 남길 이유와 보낼 이유를 떠올리고 있다. 떠나보낼 물건은 거의 다 책이다. 스무 해가 넘도록 보관하고 있지만 그동안 한 번도 보지 않은 책들. 대체 왜 처분하지 못하는 걸까…. 마음에 드는 문장 하나 때문에 나머지 수백 페이지를 부둥켜안고 있는 걸까? 그 페이지만 찢어서 보관할까? 맥락이 제거된 문장의 유효성은 얼마나 짙을까? 내가 놓지 못하는 게 내용으로서의 책인가, 물질로서의 책인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자 동거묘 두 녀석과의 관계도 재설정 중이다. 작업하고 있을 땐 모니터 앞에 웅크리지 말기, 키보드 밟고 지나다니지 말기, 자꾸 놀자고 애원하지 말기 등이 내가 내건 조건인데 저쪽의 의지도 워낙 확고해 지난한 협상이 될 것 같다. 오래 걸리더라도 한쪽에만 부담이 너무 커지지 않게 원만히 조율되었으면 한다. 집에 대한 내 생각이 변하자 녀석들한테도 더 다양한 공간이 필요하진 않은지 점검하게 되었고 겨울을 대비해 티피텐트를 두 종류 들였는데 하나에만 서로 들어가려고 난리다. 어떤 차이가 선호도를 이끌어내는지 알 수 없지만 이 녀석들은 자기가 시간을 보내고 싶은 공간을 바라보는 관점이 명확한 모양이다. 난 아직 서툴러 집에 대한 생각이 녀석들만큼 명확하지 않다. 분명한 건 이제 집을 저장고로만 여길 수 없다는 점이다. 집은 나의 연장이라는 생각이 점점 자라고 있다. 나한테 맞는 집을 모색하는 탐험이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다. 내겐 큰 도약이지만 인류에겐 별 의미 없을 터. 모든 탐험은 거기에 맞는 장비를 갖추는 것으로 시작된다. 우선 파자마를 더 주문해야겠다. 실내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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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이기준(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