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Home Resembling The Shape Of Life

작가 김수경

김수경 씨는 성실한 기록자다. 매일 집을 보듬고, 묵묵히 살림을 매만지면서 가족과 부둥켜 안고 살아가는 일상을 글로 남긴다. 봄비가 내려 녹녹한 아침, 그의 일기장 속으로 들어갔다. 바깥 공기일랑 모른 채 포슬포슬한 온기가 곳곳에서 배어 나온다. 아침마다 커튼을 걷으며 하루를 시작하고 커피를 내리며 찰나의 위로를 받고, 아이들을 먹이고 재우며 안도한 시간들이 이 기운을 만든 것일 테다.

낮은 집, 소소한 살림

요즘 날씨가 참 좋아요. 어떻게 지내셨어요?

계속 집에서 지냈어요. 저와 아이들은 물론이고 남편도 재택근무를 하는 곳으로 직장을 옮겨서 네 식구가 온전히 함께 했어요. 이렇게 오랜 기간이 될 줄 몰라서 처음엔 휴가나 연휴, 긴 명절처럼 생각했어요. 밥과 간식을 해 먹고, 도서관에 못 가니까 책을 좀 자주 샀어요. 가족이 함께 영화도 무척 많이 봤네요. 두 아이들이 워낙 집돌이인데도 나가고 싶다고 하는 거 보면 너무 오래 집에 있었나 봐요. 쉽지 않은 시간이에요.

 

최근 《집, 사람》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어요. 아이를 낳고 기르는 서투른 엄마와, 매일 조금씩 자라는 아이의 성장이 담겨 있어요. 그 이야기가 이 집에서 차곡차곡 쌓여온 거죠?

맞아요. 재희가 다섯 살, 태오가 두 살 때부터 여기에 살았으니까 두 아이를 키우는 시간의 대부분이 이 집에 있죠. 작은 집이지만 우리 집이라는 마음을 처음 갖게 해준 집이에요. 저희가 그동안 이사를 꽤 다녔거든요. 저와 남편은 대전 사람인데 남편 일로 신혼집을 서울에 차렸다가 오산으로 옮겼다가 급하게 용인에 왔어요. 그만 떠돌고 싶어서 무리해서 집을 샀어요. 아이들도 집을 정말 아끼는데 신기하게 아이 친구들도 우리 집을 정말 좋아해요. 놀잇감이 많진 않은데 간식을 잘 챙겨 줘서 그런가?

 

왜 좋아하는지 알 것 같아요. 현관문을 딱 열었는데 막 옥수수를 삶은 듯한 포슬포슬한 온기가 느껴졌어요.

좀 편안하게 느끼는 걸까요? 사실 남편이 온전히 재택근무를 하니까 이 동네에 굳이 살 필요가 없어서 이사 갈 생각도 했어요. 하지만 재희가 이곳에서 학교에 다니고 있고, 친구도 여기 있어서 떠나고 싶지 않대요. 결정적으로 태오가 “우리가 이사 가면 우리 집이 너무 슬퍼할 거 같아.”라고 말해서 여기서 더 지내보기로 했어요.

 

남편이 재택근무를 하면서 삶의 패턴이 많이 달라졌겠어요.

맞아요. 저희가 결혼 11년 차인데요. 남편은 늘 출퇴근을 하는 일상이었고 남편과 아이들이 나가면 저만의 시간을 보내왔어요. 처음엔 주말이랑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는데 지내보니 제가 쌓아 놓은 리듬이 많이 흐트러지더라고요. 오전에 아이들 보내고 나면 간단히 요기를 하고 청소를 하곤 했는데 남편이 그 즈음 회의를 해요. 그럼 청소를 못 하죠. 이상한 시간이 생겨요.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시간이요. 

남편은 이 시간에 글을 써보라고 하는데, 시간이 남는다고 글이 써지는 건 아니니까요(웃음). 남편이 모르던 저만의 루틴이 있는데, 일하는 남편을 방에 두고 저만 좋아하는 노래를 거실에 틀어놓는 것도 미안하고, 어쩌다 남편이 “이건 무슨 노래야?” 하고 아는 체하는 것도 괜히 싫더라고요(웃음).몇 달 동안 남편은 침실 한쪽에 책상을 두고 일했어요. 회의를 하거나 통화를 할 때면 우리 셋이 갑자기 조용히 해야 하는 상황이 종종 생겨서 불편했어요. 모두가 행복할 수 있도록 집 안의 공간을 새로 정비했어요.

 

어떻게 바뀐 건가요?

일하는 자리와 쉬는 자리의 분리가 필요했어요. 남편 책상을 침실에서 빼고, 아이들 책상과 함께 방 하나에 모았어요. 원래 옷방이었던 곳이 일하고 공부하는 방이 된 거예요. 옷 갈아입을 때만 들어가는 방이라 보기엔 깔끔했는데 짐을 옮기려고 꺼내보니까 어마어마했어요. 짐이 주인인 공간을 사람이 쓸 방으로 만드는 일이 이렇게 힘들 줄 몰랐어요. 정말 무모한 도전이었어요. 작아진 물건과 쓸모없어진 것, 묵혀둔 것들을 정리하고 당근마켓에 많이 팔았어요. 큰 방 한쪽에 붙박이장을 짜서 옷은 거기로 다 옮겼고요. 부부의 작은 침실은 아이들 침실이 되고 아이들이 쓰던 넓은 방이 부부의 침실이 되었어요.

 

방마다 각자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았네요.

네. 방도 바꾸고 살림도 다듬었어요. 더 오래 지내기로 마음먹으니 묵은 살림들이 눈에 들어왔거든요. 어깨가 아프도록 닦아도 얼룩이 지워지지 않던 싱크대 타일을 바꿨어요. 시공 업체에 문의했더니 가구가 있는 상태로는 안 해주신다고 해서 남편과 둘이 시작했어요. 잘고 잘은 타일을 매만지고 하나하나 붙이고 틈을 메우고 닦으면서 고뇌와 번뇌의 순간이 많았어요. 다음에 정말 이 집을 떠난다면 싱크대 앞에서 울지도 몰라요(웃음). 

타일이 남아 다용도실 바닥에도 붙이고 이참에 다용도실도 정리했어요. 보기 좋게 정리되어 있었지만 안 먹고 안 쓰는 것들이 계속 늘어났거든요. 묵은 곡류는 비우고 싱크대 속 살림을 재정비하면서 소형 가전은 손 닿기 좋은 동선을 찾아 자리를 바꾸었어요. 하나의 공간을 바꾸는 일이 다른 공간을 건들지 않고는 힘든 일이라 큰방에 있는 욕실도 손보게 되었지요. 원래는 사용 을 안 해서 가구로 막아 두던 공간인데 아이들이 크니까 욕실 하나로는 부족하겠더라고요. 고치면서 속을 많이 썩였어요. 애써 고른 세면대는 문 열리는 공간이 안 나오고, 실측을 여러 번 하고도 도기가 맞지 않고, 무늬가 엉망인 문이 오고, 물이 새기도 했어요. 이걸 하겠다고 덤비다니 참 용기있었네, 싶어요.

집이 주는 분위기를 유지하면서 손을 본 거 같아요.

저는 분위기를 중요하게 생각해요. 핀터레스트나 영화에서 제가 좋아하는 분위기를 발견하곤 하는데, 대개 음식을 만들거나 아이들과 노는 장면이에요. 어떻게 하면 우리 집에 저런 분위기를 구현할 수 있을까, 많이 고민해요. 물건을 하나 살 때도 집 분위기에 어울리는지를 오래 생각해요. 제가 계속 가지고 있고, 오래 쓰고 싶은 건 색이 많이 들어가지 않은 나무 색감의 톤과 만져볼 때 좋은 질감의 나무예요. 새로운 걸 샀는데, 남편이 “우리 집에 원래 있는 건가?” 하면 성공이구나 해요(웃음).

 

오래 고민해서 집에 들인 것 몇 개만 소개해 주세요.

누군가 집 안의 가구를 사는 데 고민한다면 “식탁을 좋은 걸 사세요.”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이제는 아이들이 커서 좀 작은 감이 있는데 식탁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아요. 식사하고 나면 아이들이 여기서 공부를 하고, 간식을 먹고 그림을 그려요. 저녁을 먹고 제가 글을 쓰면 아이들이 어느새 곁으로 와 놀고요. 정말 다용도지요. 전등도 좋아해요. 오래된 시간이 묻어 있는 물건이 좋아서 빈티지를 하나씩 모아요. 

 

물건들이 쓰임에 맞게 제자리를 잡은 듯 보여요.

수납은 예쁘게 하는 게 아니라 보기에도 쓰기에도 좋은 자리를 잡아가야 하는 일이라서 늘 생각이 많아요. 쓰기가 좋은 수납으로 다듬고 손보며 느리지만 조금씩 내 것이 되어가는 거 같아요. 높은 책장을 거실에 둔 적이 있는데 아이들이 위에 있는 책들을 못 꺼냈어요. 그래서 위에는 아이들이 덜 읽는 책을 놓게 되니까 그 책장은 쓸모가 없어졌어요. 쓰임을 다한 물건은 정리하고 쓸모 있는 물건을 찾아 동선을 짜요. 낮은 책장으로 바꾼 뒤 아이들이 언제나 쉽게 꺼내어 보고 정리도 잘해요. 거실 소파도 커진 아이들에게 필요해서 들였는데, 남편이 집이 더 좁아 보일 거라고 반대했어요. 제게 다 생각이 있었죠. 소파와 책장 사이에 공간을 두고 배치했는데, 아이들이 이 길을 너무 좋아해요. 등 기대서 책도 보고 여기서 놀이도 해요.

 

《집, 사람》에서 재희가 ‘요리왕 엄마’ 상패를 준 게 아직도 주방에 붙어 있네요. 주로 어떤 음식을 만들어요?

다시 받을 수 없는 거라서 아직 붙여 뒀어요. 한식을 주로 해요. 메인 음식 하나를 하는데 순두부찌개, 된장찌개, 김치찌개, 닭볶음탕 등을 해 먹죠. 아침에는 간단하게 먹는 걸 좋아하고 저녁은 미트볼 파스타, 불고기 등 이것저것 시도해 봐요. 신기하게도 요리에는 겁이 없어요. 처음에는 맛이 덜해도 많이 도전해서 맛을 찾아가요. 빵을 굽고 쿠키 만드는 것도 좋아해요. 요리는 할수록 재밌고 힘들지 않아요.

요리가 왜 즐거워요?

요리는 치료같아요. 아이가 감기 기운이 있으면 밥을 한 끼 정성 들여 해서 먹여요. 제가 의사나 약사는 아니지만 아이들이 밥을 먹고 한숨 자고 나면 괜찮아지는 날이 있잖아요. 정성과 좋은 기운을 모아서 한 끼를 만들고 ‘잘 먹고 자고 나면 나을 거야.’ 하고 확신을 주는 거예요. 아이들이 그 기운을 받는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하루 세끼는 좀 힘들잖아요. 밥 시간이 정말 빨리 돌아오더라고요.

맞아요. 처음 한 달은 꼭 세 끼를 차려 먹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열심히 해 먹었어요. 학교와 유치원에서 우유도 먹고 간식도 먹고 식사도 잘 나오는 편이니까요. 집에 있는데 덜 먹이면 안 될 거 같아서, 밖에 있는 것만큼 먹이려고 노력해서 재희도 저도 살이 좀 올랐어요. 한 달이 넘어가니 힘들더라고요. “더 이상 안 될 것 같아. 우리 집은 두 끼만 먹자.”고 선언했어요. 요즘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2시쯤 출출하다 싶으면 간식을 먹고 저녁을 먹어요.

 

아이들이 뭐든 잘 먹는 편이에요?

아니요. 많이 나아졌지만 재희는 지금도 편식이 있어요. 태오는 맑은 국만 먹고 재희는 찌개를 좋아해요. 처음엔 각각 열심히 해보겠다고 했는데 어느 순간 너무 힘들더라고요. 오삼불고기를 만들었는데 애들이 먹기 싫은 표정이면, 설명을 해줘요. “이거는 뭐랑 뭐를 넣고 이렇게 만든 거야. 엄마가 아빠한테 처음 해준 요리였어. 아빠가 자취할 때 엄마가 장을 봐서 했는데, 아빠가 정말 좋아했어. 아빠의 최애 음식이야.”라고요. 그럼 “나도 한번 먹어볼까?” 해요. 먹어보고 나쁘지 않으면 먹을 만한 음식이 되는 거죠. 오징어를 안 좋아하는 재희를 위해 떡도 함께 넣어요. 이제는 “오삼불고기 할 거야.” 그러면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이네.” 해요. 

아이들이 찾는 음식이 아니더라도 아빠가 좋아하는 것도 하고 엄마가 즐기는 음식도 만들고 태오가 좋아하는 거, 재희가 좋아하는 거를 번갈아 가며 만들어요. 누가 “너희 엄마 뭐 좋아하니?”물어보면 모를 수도 있잖아요. 서로의 취향을 알아가고 상대가 좋아하는 거라 한 번 시도해 보는 것. 그것까지가 요리의 완성인 거 같아요.

집은 삶의 모양에서 시작된다

아이들과 지내는 모습이 편하고 자연스러워 보여요. 처음부터 육아가 편했나요?

아니요. 저도 아이를 낳자마자 아이가 예뻤던 사람은 아니에요. 조리원에서 만난 엄마들은 아이를 세상에서 가장 예뻐했어요. 저는 몸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그 정도 마음은 들진 않더라고요. 모성애에도 아이와 친해지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가 재희하고만 보낸 시간이 꽤 길었잖아요. 육아가 처음이라 어떻게 감정을 눌러야 하는지 몰라서 화도 많이 내고 감정을 막 분출했어요. 소리도 꽤 질렀어요. 태오에게는 그런 적이 거의 없어서 태오는 제가 목소리톤이 조금만 높아져도 눈물을 흘려요. 잘못된 거를 설명하면서 설득해줬지 감정적으로 대하진 않았는데, 재희에게는 꽤 많이 보여줬네요.

 

재희는 생각이 깊고 섬세한 아이 같아요.

농담으로 하는 말인데, 산후조리원에서도 산후조리사분들이 “얘는 왜 의젓해요? 왜 잘 울지도 않아요? 울음 끝이 조금도 길지 않아요?”라고 말하곤 했어요(웃음). 신기해요. 어릴 적부터 설명을 하면 명확하게 알아듣고 행동하는 아이였어요. 의지가 되는 면도 많아서 저희 부부는 모든 일을 재희와 상의해요. 어른과 다름없이 생각을 존중해 주고, 동생 일과 아빠에게 생긴 변화도 다 설명해 주고 함께 의논해요. 다만 워낙 섬세해서 처음이 어렵고 예민한 부분이 있어요. 그건 제 영향이 컸을 거라는 생각도 있어요.

 

어떤 아이든 기르면서 힘든 부분이 있잖아요. 재희는 어땠어요?

재희가 2학년 때였나 학교에서 인성검사를 했어요. 제일 높은 지수가 배려심이고, 100점을 받았어요. 하지만 저는 너무 속상해서 눈물이 날 뻔했어요. 다른 엄마들에게 이야길 많이 들었거든요. “재희는 발을 밟혀도 화를 안 내요. 조심해. 이렇게만 말해요.” 칭찬으로 해주셨지만 정말 속상했어요. 발을 밟히거나 친구가 잘못한 행동을 하면 화를 냈으면 좋겠더라고요. 그 결과지를 들고 재희랑 이야기했어요. “엄마는 배려심 100점은 좀 속상한 거 같아. 다 참을 필요는 없어.” 재희도 같은 생각을 했대요. “엄마, 나도 이제 너무 많이 속상하면 표현하려고 노력해.”라고 했어요. 아이를 키우면서 나의 부족한 점을 발견하면 참 속상해요.

 

나보다 조금 더 나은 사람이 되면 좋겠는데 말이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은 내 안의 덜 자란 꼬마를 함께 키우는 거라는 말이 있잖아요. 재희를 키우다 보면 문득문득 저의 어릴 적 닮은 상황을 발견해요. 아팠던 거, 긴장되었던 일, 상처가 된 것들이 떠올라요. 어린 내가 재희 옆에 서 있는 걸 바라보는 기분이 들어요. 그럴 때마다 제가 했던 것과는 반대의 것을 가르쳐주곤 하는데 사실 내 것이 아닌 걸 알려주는 셈이죠. 김애란 소설에 “너는 자라서 내가 되겠지… 겨우 내가 되겠지.”라는 말이 있잖아요. 남편과 이런 말을 했어요. “우리는 우리와 생긴 것도 성격도 비슷한 사람을 낳고 살아가는 거야. 그런 운명이야.” 첫아이 재희는 저희 부부를 함께 자라게 해주고 있어요. 저희가 재희에게 해주는 따뜻한 말이나 위로는 사실 그 옆에 서 있는 어린 저에게 해주는 말이기도 해요.

 

재희가 10대가 되었잖아요. 감정의 변화가 있나요?

최근 변했다 싶은 일이 있었어요. 롤러스케이트를 타러 가서 재미있게 놀고 집에 왔는데 재희는 재미없었대요. 더 놀아야 한대요. 저희는 롤러스케이트 탄다고 너무 피곤했거든요. 혼냈더니 방으로 들어가서 문을 닫는 거예요. ‘아, 이날이 왔구나.’ 했어요. 태오가 가서 보더니 “형아가 혼자 있고 싶대.”라고 말을 전해주면서 물티슈로 그렁그렁한 형의 눈을 닦아줬어요. 서로 마음의 독립을 해야 하는 시기가 다가오고 있는 거 같아요. 

 

태오는 발랄하고, 감정에 솔직한 편 같아요. 두 아이가 참 달라 보여요.

재희처럼 의젓한 친구를 키우다가 ‘아, 그래서 사람들이 아들 키우기 힘들다고 하는구나.’를 알았어요. 남편이 태오 데리고는 외출 안 한다고 할 정도로 유니크한, 처음 키워보는 캐릭터예요. 한 예로 제가 딸기를 씻으면 재희는 기다려요. “먹 어도 돼.” 하면 먹어요. 태오는 엄마가 씻기 전에 손이 덥석 가는 아이예요. 만약 이 아이가 첫째였다면 많이 혼났을 텐데, 굳은살이 생겨서 ‘그때는 원래 그래.’ 하면서 지켜보게 되네요. 태오에게는 그 방법이 잘 맞았나 봐요. 많이 혼냈다면 눈치 보고 자기 걸 표현 못 했을 텐데, 여유를 갖고 그래 한번 해봐, 하니까 ‘별 거 아니네?’ 하고 다음부터 안 하는 거죠. 확실히 더 용기 있고 호기심이 많아요. 재희를 키우고 보니까 이 아이의 장점이 눈에 잘 들어오는 듯해요.

부부가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삶의 태도가 있나요?

아이러니하게도 저희가 알게 모르게 교육한 건 배려심이에요. 배려하는 마음, 다른 사람에게 피해 주지 않는 마음을 늘 가르쳤어요. 요즘은 네 몸과 마음을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얘길 해요. 욕심 있게 자기를 챙기고 다른 친구도 챙겨줄 수 있기를 바라요. 사회에 내보내니까 유치원과는 또 다른 세상이에요. 학교는 일이 정말 많더라고요. 최근 재희는 반대 성격의 아이들과 재미있게 놀아요. 그런 친구들과 놀다 보면 조용한 친구가 손해 보는 일이 생길 거예요. 어떤 상황에서도 단단하게 자신을 지키는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아이가 커가면서 부모로서 고민되거나 관심을 두는 일도 달라지는 거 같아요. 최근의 고민이나 관심사가 궁금해요.

두 아이가 아직 예체능 외의 학원은 안 다녀요. 그래서 아이들 친구 엄마를 만나고 오면 좀 힘들어요. 뭐는 이미 했고, 지금은 뭘 하며, 어느 대회에 나가고 뭘 받았고 하는 얘기들이 들리죠. 우리 아이들은 아직 드러나는 게 없으니까 이렇게 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한번은 도서관에 책을 늦게 반납하러 간 적이 있어요. 우리는 도서관 가방을 메고 가는데 친구들은 학원 차를 타려고 영어 단어를 외우며 줄을 쫙 서 있어요. ‘책 빌리러 다닐 때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지금까지는 괜찮았어요. 꾸준히 엄마가 해줄 수 있는 선에서 관심 있게 봐주고 아이들이 질문하면 검색해서 찾아주고, 다큐멘터리를 보고 환경부터 사회적인 문제도 이야길 나누고 있어요. “저 사람 왜 그래? 왜 이런 일이 생겨?” 묻고 대화하죠. 하지만 이게 과연 언제까지 괜찮을까 하는 의문은 늘 들어요. 어느 시기가 오면 차를 태워 아이를 학원에 보내야겠죠. 늘 고민이지만 답이 없는 문제 같아요.

 

아이들이 요즘 빠져 있는 것도 있어요?

재희는 마인크래프트를 가장 좋아해요. 집을 설계하고, 괴물이 오면 방어도 할 수 있게 집을 만드는 게임이래요. 설계를 바탕으로 입체적으로 레고로 구현하는 게 지금 제일의 관심사예요. 아직은 고맙게도 스마트폰도 없고 친구들이 하는 게임을 보고 하고 싶으면 아빠한테 말하곤 해요. 아빠가 밤에 한번 죽 훑어보고 할 만하다 싶으면 잘한 일이 있을 때 한 번씩 시켜줘요. 재희는 주로 그림을 그리고 노는 아이여서 일관되게 꿈이 화가였는데 지금은 건축가로 바뀌었어요. 아름답게 만들어보는 걸 좋아해요. 태오는 공룡이었다가 고래였다가 지금은 곤충이라 곤충 다큐를 열심히 봐요. 태오는 꿈이 너무 많아요. 고정적으로 나오는 건 공룡 발명가, 화석 발굴가예요. 

 

부부 간의 관계도 참 편안해 보여요. 마음의 무게를 안정적으로 맞춘다고 하셨는데, 어떤 태도로 서로를 대하나요?

남편과 싸울 일이 정말 없었어요. 처음 싸운 게 아이를 대하는 태도와 방식 때문이었어요. 서로 너무 다르게 자랐잖아요. 자기가 아는 방식이 있으니까 부딪히는 거예요. 솔직하게 말하고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표현력이 좀 부족해서 그렇지 남편 생각이 훌륭할 때가 더 많아요. 물론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좀 달라요. 저는 상황을 빨리 해결하고 싶어 하는데 남편은 시간이 필요한 사람이에요. 처음엔 그게 너무 힘들었는데 저는 시간을 주는 법을 배웠고 남편은 빨리 얘기하는 법을 배웠어요. 

아이가 너무 어릴 땐 대화할 시간이 없었어요. 부부 침실을 두게 된 것도 대화할 시간이 너무 부족해지니 둘만 있으면 어색한 시기가 오는 거예요. 서로 얘기하고 놀 시간이 필요했어요. 의식적으로 점심시간에 만나서 외식을 하거나, 남편이 밥을 먹으러 집에 오기도 했죠. 그렇게 둘이 잠깐씩 노는 게 아이들이랑 다 같이 있는 거랑 또 다른 재미였어요.

 

집에 오래 머무는 편인데, 내가 정한 하루의 시작과 마무리 의식이 있나요?

네. 의식적으로 아침이면 커튼을 걷고 블라인드를 열어요. 그게 저한테는 국기 게양 같은 거예요. ‘오늘이 시작되었어.’라는 의미예요. 아이들이 저보다 더 일찍 일어날 때도 있는데 이제 재희가 배워서 블라인드를 열어요. 그 소리가 나면 아침이구나 하고 저도 침대에서 일어나요. 저녁에 해가 질 즈음 커튼을 그리는 것 또한 저한테 중요한 의식이에요. ‘오늘이 끝났어. 마감이야.’ 가끔 외출해서 늦게 들어온 날, 깜깜한 밤인데 블라인드를 안 내려놨으면 이걸 안 내렸네, 하며 뭐라고 할 때도 있어요.

매일 반복되는 살림의 즐거움이 궁금해요.

저는 결혼 전 365일 중에 360일을 체해 있을 정도로 참 예민한 사람이었어요. 가정을 이루고 살림을 하면서 좀 둥글어졌어요. 매일같이 요리를 하면서 음식을 완성했다는 기쁨보다 만드는 과정의 아름다움을 깨달았어요. 재료 하나하나 깎아 놓으면 그 자체로도 얼마나 예뻐요. 각 맞춰서 빨래를 정성스럽게 접고 정돈하는 내 손은 얼마나 아름다우며, 그 정돈됨을 이루어가는 과정이 정말 가치있다고 생각해요. 인스타그램에 종종 음식을 다 먹은 접시 사진을 올리는데 ‘좋아요’를 많이 눌러 주세요. 잘 차려진 것보다 지저분하고 찌꺼기도 남아 있지만 그 과정을 알고 보시는 거잖아요. 모두가 자기 삶 안에서는 주인공이에요. 다른 사람과 비교하는 날도 있지만, 내가 내 삶에서 제일인 삶을 살면 된다고 생각해요. 주어진 조건 안에서 내가 할 수 있는 걸 최선을 다해서 살면 ‘나도 멋져. 너무 잘했는데?’ 칭찬해 주면서 살아요. 

 

하루 중 가장 설레는 일과가 있다면요?

‘코로나방학’이 시작된 후로는 아이들 온라인수업을 봐주고 늦은 아침을 먹어요. 아침 설거지가 끝내고 집 정돈도 하고 그사이에 아이들도 수업이 끝나요. 그럼 과제 한 것들 다시 점검해주고 엄마와 함께해야 하는 숙제도 해요. 그것까지 끝나면 드디어 커피를 만들어서 마실 수 있는 여유가 찾아와요(웃음). 1부 끝. 혹은 인터미션 같은 느낌으로 커피를 만들어서 한잔 느긋하게 마셔요. 하루 중 가장 기다려지는 순간이지요. 커피콩을 갈 때부터 즐거워요. 가루가 된 커피콩을 여과지에 부어 뜨거운 물을 따르고 커피를 내리는 순간 몰입이 주는 기쁨이 아닐까 싶어요. 

또 제가 참 좋아하는 루틴이 있는데, 저만의 시간에 혼자 바구니를 가지고 집 밖을 나서는 일이에요. 제가 발 딛는 동선이 있어요. 먼저 꽃집에 들러 꽃을 사요. 꽃을 사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길 가다가 꽃을 든 사람을 봤을 때 느끼는 감정이 있잖아요. 채소 하나 사는 거랑 비슷하지만 즐거워요. 옆에 있는 마트로 옮겨서 장을 좀 보고, 빵집에 가서 빵을 사고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집 앞 카페 2층에 앉아서 멍하니 구경해요. 관찰하는 걸 워낙 좋아해서 어디 앉아도 한 시간, 두 시간 휙 지나가요. 누가 뭘 사네, 어떤 표정이네, 이런 걸 멍하니 바라봐요. 그 시간이 글을 쓰거나 남은 오후를 보내는 데 많은 도움이 돼요. 정리하는 시간인가 봐요. 바람 맞고 걷고 오면 참 좋아요.

 

코로나19가 수그러들면 가장 하고 싶은 일은 동네 한 바퀴겠네요.

맞아요. 또 하나가 더 있다면 태오랑 곤드레밥집 가는 거요. 태오가 요즘 곤드레밥의 맛을 알았거든요. 큰길 지나면 곤드레밥집이 있는데 간판을 볼 때마다 저길 가고 싶다고 해요. 다음에 꼭 가자고 했는데 여태 못 가고 있어요.

 

아무것도 하기 싫은 날도 있어요?

그럼요. 정말 고단한 날은 집안일을 내려놔요. 피로한 상태에서 집을 말끔하게 하려고 노력한 적이 있어요. 그러면 여유가 없으니까 아이들에게 짜증을 내게 돼요. 경험해 보고 절대 그렇게 하면 안 되겠다는 걸 알았어요. 그런 날은 “엄마 10분만 누워 있을게.” 말하고 잠깐 침실에 들어가 졸고 나오면 괜찮아요. 그리고 체크리스트를 써놓고 지우는 방법도 꽤 도움이 돼요. 꼭 해야 하는 일, 우선순위 정해서 서너 개 정도 써놔요. 그중에 두 개 정도만 지워내도 개운하더라고요. 내가 오늘 다른 건 못 해도 이건 한다, 하면서요.

 

오늘 하루도 잘 지냈구나, 안도감이 드는 순간도 궁금해요.

블라인드 내릴 때와 씻은 아이들 머리 말려줄 때요. 예전에는 로션도 발라주고 옷도 갈아입혔는데, 이젠 커서 둘이 씻어요.저는 침대에 몸만 쏙 들어가게 이불 정리 해두고 드라이어 해주면서 잘 자라고 방에 들여보내거든요. ‘이것만 하면 오늘 내 일이 끝이구나.’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렇지 않은 날은 어떻게 견뎌요?

가장 하기 싫은 걸 해요. 욕실 청소하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같은 일이요. 제일 하기 싫은 이유는 내 마음의 짐인 경우가 많아요. 마치고 나서 리스트에서 지워요. 리스트에서 그어진 걸 보면 마음이 한결 나아져요. 사람 관계 때문에 힘들 땐 남편이랑 얘기를 많이 해요. 치졸한 인간의 감정, 누구한테 말하기 어려운 걸 얘기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요. 남편이 별다른 대꾸는 안 하지만, 털어놓고 나면 괜찮아져요.

 

집에 자주 있지만 바깥의 자극이 필요할 때도 있을 텐데요.

외출을 자주 하진 않지만 개인적으로 꽤 오랜 기간 이어온 모임이 있어요. ‘안나책방’이라고 1년에 두세 번 만나는 소모임인데, 정말 다양한 분야의 다채로운 연령대의 분들을 만나요. 자주 만나는 게 아닌데도 좋은 이야기를 들으니 마음이 채워져요. 마음이 맞으니 닮은 고민이 아니어도 만나는 지점이 있고요.

계속해서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하실 거죠?

쓰는 게 꽤 즐거워요. 고통스러울 때도 있지만 재미있어요. 머릿속에 작게 저장했는데 펼쳐 쓰면 선명하게 세세하게 보여요. 학교 다닐 때부터 보여주려고 한 건 아니었지만 글도 열심히 썼고 작게 출판물 교지도 해봤어요. 직장 생활할 땐 블로그에 글을 쓰고요. 그걸 계기로 책도 내게 되었지요. 올해와 내년에도 책이 한 권씩 나올 예정이예요. 지금 내가 하고 생각하는 것들이 나중에 보면 이상할 수 있어도 성실하게 기록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출판처럼 뭔가 결과물이 있으면 감사한 일이지만 그게 아니라도 계속해서 쓰고 싶어요. 

 

다른 꿈도 있어요?

남편과 함께 꾸는 꿈인데요, 나중에 아이들이 안정적으로 크고 나면 대학에 갓 들어간 청년들을 위해 좋은 집을 짓고 싶어요. 밖에 나가면 멀끔하지만 몸 하나 누우면 끝인 공간에 사는 친구들이 많아요. 원룸을 가진 빌딩인데 늘 밥이 있고 좁은 공간일지언정 곰팡이 피지 않고 녹슬지 않는, 관리가 잘된 집을 짓고 싶어요. 사회가 순환할 수 있게 좋은 어른이 되고 싶어요. 재미있을 거 같아요.

 

그 집을 재희가 만들면 더 좋겠네요.

EBS에서 그런 사연을 본 적이 있어요. 딸이 집을 짓고 부모님이 제일 꼭대기에 살더라고요. 아 그렇게 되면 너무 멋지겠네요.

 

다섯 살 재희에게 집은 ‘사랑하는 사람들이 사는 공간’이었지요. 지금은 어떻게 생각한대요? 태오가 생각하는 집도 궁금해요.

재희는 지금도 비슷해요. 집은 가족과 쉬는 공간이라고 하더라고요. 태오에게 물어봤더니 그러네요. “집은 나무야. 태오는 코알라고.” 더 설명은 없대요(웃음).

 

수경 씨도 어릴 때 살던 집의 기억이 있어요?

태어나 13년을 살던 집은 마당이 있는 이층집이었어요. 요즘도 많이 힘든 날에는 꼭 그 집 꿈을 꿔요. 이유는 모르겠는데 평안한 것을 찾고 싶어 하는 방어기제일 수도 있고요. 건강한 모습의 할머니 할아버지와의 추억도 있고 젊은 엄마 아빠, 아주 어린 동생이 꿈에 나오면 마음이 너무 좋아요. 그냥 같이 식사하고 마당에서 노는 풍경인데도 말이죠.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의 우리는 참 행복했고 예뻤어요. 살면서 무너지는 순간에 결국 나를 지탱해 주는 것은 행복하고 따뜻했던 유년의 기억이에요. 아이들에게 이 집이 그랬으면 좋겠어요. 좀더 자라 여러 일에 부딪칠 때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의지가 되고 위로가 되는 존재요. 제가 그랬던 것처럼.

 

지금의 집은 수경 씨에게 어떤 의미예요?

가족이 가진 계절이 가장 많이 담긴 공간. 계절은 여러 의미가 있어요. 수박 잘라서 나누고 낙엽 떨어진 거 구경하고 눈 내리는 날 핫초코 타서 추운 데서 먹은, 사계절이 잘 드러나는 곳이자 각자의 계절일 수도 있어요. 키가 아주 작았다가 커지고, 어떤 문제를 겪고 힘들어했다가 이겨내서 어느새 이만큼 자라요. 집 안에 사는 사람들이 잘 성장하고 그 사람들의 계절이 다 있는 공간이에요

집, 관찰자의 일기

월요일 | 창가의 나무들

겨울에 싹둑 가지치기를 한 화단의 나무는 2층집 창맡에 겨우 까치발이 닿았다. 톡톡톡 창문을 두드리던 가지에 보송보송한 봄눈이 돋아 있던 것도 불과 며칠 전 일인데, 볕 고운 날들을 지나는 동안 잠깐 눈 비비는 사이에도 잎이 나더니 어제 내린 비를 맞고 밤사이 숱이 무성해졌다. 바람이 불 때마다 창을 다 덮은 연두가 일렁이는데 태오가 그 앞에 서서 자꾸 손을 흔들었다. 나무가 인사를 해서 자기도 대꾸를 해주는 거라고 했다.

화요일 | 접시

설거지하고 잘 마른 접시를 정리하다가 문득 접시 서랍을 들여다본다. 하나씩 하나씩 모은 내 그릇들이 반질반질 참 예쁘다. 작고 파란 꽃이 그려진 건 우리 재희 제일 좋아하는 들기름에 부친 달걀 프라이를 담아주는 접시. 고운 레이스를 닮은 접시는 우리 태오 카레 담아주는 것. 노릇하게 구워낸 저녁 생선을 올리는 것은 길고 색이 짙은 녀석이고, 반 가르면 하트가 되는 봄 토마토는 아끼는 제비무늬 접시에 담는다. 접시 서랍 안에도 우리들의 식탁 이야기가 담겨 있다.

수요일 | 종이컵 전화기

종이컵에 실이 빠져나갈 만큼만 아주 작은 구멍을 내고 빨간실을 길게 늘여 컵 두 개를 잇는다. 컵을 한 개씩 나누어 들고 실 길이만큼 멀어져 나는 듣고 너는 말하고, 내가 말하면 너는 듣는다. 그러면 신기하게도 그 엷은 실 끝을 따라 아주 작은 소리가 전해진다. 너무 심심해하는 태오와 종이컵 전화기를 만들며 놀았다. 실 끝을 잡은 태오가 내게 처음 한 말은 “엄마.”였다. 종이컵 전화기로 전해 들은 그 말이 태오가 나에게 가장 처음 한 말과 같아 새삼스럽게 코가 시큰했다.

목요일 | 야근자의 밤

재택근무자가 된 남편은 사실 몸만 집에 있다뿐이지 늘 바빠 밤낮으로 일할 때가 많아 안쓰럽다. 목요일은 맡아 놓은 야근일인데, 아이들이 잠든 지 한참이 지나고 조용히 틀어놓은 영화 한 편이 다 끝나도록 퇴근을 못 하는 날도 있었다. 그럴 때는 따끈한 차를 새로 만들어 남편의 책상맡에 가만히 올려준다. 깊고 깊은 밤, 잠든 아이들의 숨소리를 꿋꿋이지키는 아빠의 무게. 새벽녘까지 책상 방에서 새어 나오는 불빛을 바라보면 고맙다는 말로는 다 못 할 감정들을 느낀다.

금요일 | 까치집 머리

1학년은 티브이로 EBS를, 형아는 노트북 앞에 앉아 온라인 수업을 시작하는 아침이 이제 일상이 되어 간다. 7시 50분이면 반짝 눈이 떠진다는 두 아이는 시키지 않아도 이불을 예쁘게 개켜 놓고 나와 제 공부 자리에 앉는다. 녀석들의 종알거리는 소리가 내게는 알람 시계다. 요즘 일어나 가장 처음 만나는 것은 부스스 귀여운 두 녀석의 까치집 머리.

토요일 | 딸기 화분

봄이 되면 베란다에서 놀고 있는 화분에 식물을 심어야겠다는 소박한 계획이 있었다. 외출이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꽃농원에 언제 갈 수 있을지 알 수 없어, 난생 처음으로 온라인 농장에서 식물을 사보기로 했다. 초록들 사이에서 딸기 화분을 발견하고는 눈이 커다래졌다. 열매 맺는 것을 관찰할 수 있다는 말에 신나서 딸기 화분을 들이기로 했다. 나는 우리 재희가 먼저 알아볼 줄 알았다. 빨갛게 영글어 햇빛에 반짝이는 딸기가 너무 예쁘다며 재희가 화분맡에서 한참을 앉아 구경했다. 태오는 “이거 먹을 수 있는 거예요?”라고 물으며 입맛을 다셨다.

일요일 | 태오의 집

일요일 오후 태오는 갑자기 베란다에 책을 잔뜩 뽑아다가 쌓아 놓았다. 조금 후에 보니 나무 블록, 제가 만든 종이컵 전화기와 베개까지 가져다 놓고 의자에 앉아 정말 한참을 놀았다. 내가 살그머니 들여다보았더니 자기 집을 소개해 주겠다며 들어오란다. 커다란 캠핑 의자는 책방이자 침대이고, 작은 의자들은 좋아하는 것들을 쌓아 놓는 창고란다. 아하. 이런 귀여운 녀석을 보았나, 이제 보니 베란다 창문에 ‘태오의 집’이라고 이름표도 붙여 놓았네.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장수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