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리사는 집에서 요리하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 직장에서 하는 일을 일상 속으로 가져오기란 쉽지 않다. 하물며 여행이라면 더 그렇다. 숲 속으로 떠난 캠핑에서 어떤 제빵사들은 빵을 구웠다. 짐 줄이기가 관건인 캠핑에서 빵을 굽기 위해 무거운 냄비를 챙겨야만 할까? 또 ‘굳이’ 빵을 만들어 먹어야만 할까? 몇 개의 물음표가 떠올랐지만 이번에는 천천히 ‘굳이’라는 말의 뒷면에 다가가 보기로 했다.
평일엔 숲으로
평일에 팔현캠핑장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 평소에 이곳을 ‘나무가 많은 캠핑장’ 혹은 ‘나무보다 사람들이 더 많은 캠핑장’으로 부르고 싶었다면 오늘은 달랐다. 숲이었다. 주말 인파 속에 감춰져 있던 적막과 고요가 낮게 흘렀다. 우리는 텐트를 친 뒤 조금 떨어진 곳에 넓고 둥그렇게 둘러앉았다.
캠핑 요리라는 것이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대부분 고기를 사용한 요리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제빵사들과 함께한 몇 번의 캠핑 이후로 나에게 캠핑 요리라고 하면 빵이 떠오르게 됐다. 특별히 다른 걸 기대했던 건 아니었는데(그저 같이 간 사람들의 직업이 제빵사였을 뿐) 그들은 매번 자연스럽게 빵을 구웠다.
0.2%의 밀
홍차 한 잔으로 속을 데운 뒤 ‘더 벨로The velo’의 목소장(제빵사 반영재 씨의 별명)은 조용히 반죽을 시작했다. 흰색의 고운 밀가루도 있었고 다소 거칠어 보이는 통밀가루도 있었다. 물어보니 구례에서 밀농사를 짓는 홍순영 농부의 금강밀과 호밀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99.8% 수입 밀을 쓰는데, 이 두 가지의 밀은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밀이에요. 0.2%에 속하는 밀이죠.” 0.2%라고 하면 거의 없는 것과 다름없는 숫자처럼 느껴지지만 이야기를 들어보니 그 움직임은 작지 않았다. 구례, 장흥, 홍성, 청주 등지에서 우리밀을 재배하고 있고, 다양한 사람들이 각자의 방법으로 우리밀을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단다.
그렇게 재배된 밀가루에 특별히 다른 맛이 있을까 궁금해 물어보니 지역밀로 만든 빵은 그 맛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다. “밀은 자라온 땅의 기억을 품고 있거든요.” 그는 구례산 호밀을 통밀로 가지고 있다가 직접 제분해서 가져왔다. 커피를 내리기 직전에 원두를 갈아 쓰면 향이 더 좋듯 밀 역시 빵을 만들기 전 제분을 하면 빵이 밀의 고유한 향을 간직하게 된다. 이야기를 듣다보니 수입밀이 아닌 우리밀을 사용하는 이유가 궁금해졌다.
“이 호밀이 나고 자란 밀밭을 찾아가 농부 아저씨를 만났어요. 그곳에는 친숙함이 있더라고요. 재료는 그러하듯 친숙함이 필요해요. 빵을 만드는 것은 일이 아닌 일상이고 싶거든요.”
오래 만든 빵
빵을 굽는다고 하면 ‘많은 시간이 걸리진 않을까?’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캠핑장에서 반죽-발효-굽기의 과정을 거친다면 대여섯 시간 정도가 걸리지만, 집에서 미리 반죽해 오거나 저녁 시간을 잘 활용하면 아침에 일어나 삼십 분 만에 따뜻한 빵을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누가 그 질문을 한다면 나는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대답해주고 싶다.
빵을 만들 때 쓰는 드라이이스트는 산업화의 산물이다. 소량을 사용해도 단시간 안에 빵을 부풀릴 수 있다. 빠르게, 많이 만들 수 있다는 말이다. 하지만 목소장은 드라이 이스트 대신 직접 키운 발효종을 넣고 반죽을 했다. 사실 발효종을 넣지 않고 반죽을 해도 3~4일 정도가 지나면 빵은 구울 수 있을 만큼 부풀어 오른다. 밀 안에 자연스러운 힘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반죽이 부풀어 발효가 끝나면 빵을 굽는다.
발효종을 키우는 시간, 효모가 빵을 키우는 시간, 빵을 굽는 시간, 또 그전에 밀이 땅의 맛을 담는 시간. 그렇게 하나의 빵이 우리에게 오기까지의 시간을 떠올려보면, 아득한 기분이 든다. 나른함마저 몰려오는 아득함이다. 하지만 숲에서라면 그런 기분을 느껴도 괜찮지 않을까? 나무로 된 책상을 만지며 오래된 나무의 생애를 짐작해보는 것처럼. 작은 별을 보며 우주의 크기를 가늠해보는 것처럼. 여행을 함께해준 한 살배기 개똥이가 자기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잣나무 숲의 흙과 돌을 아무렇게나 만지는 것처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목소장이 옆에서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가장 맛있는 빵은 오래 만든 빵이에요.”
숲에서 보낸 시간
우리는 빵을 반죽하고 발효가 되길 기다리며 숲에서 시간을 보냈다. 같이 간 소품가게 ‘포터블롤리팝’의 오상 아저씨가 “자, 나뭇가지 다섯 개씩 주워오세요.”라고 말하자 모두 한적한 숲을 돌아다니며 땔감을 구해왔다. 그렇게 피운 불 옆에 둘러앉아 우리는 하고 싶은 일을 했다. 그림을 그리고, 기타를 치고, 노래를 부르고, 산고양이들과 인사를 하고, 와인을 마시면서 빵과 어울리는 음식을 만들었다. 각자 하는 일이기도 했고, 같이 하는 일이기도 했다.
개똥이는 돌을 자꾸 입에 가져가 엄마를 곤란하게 했다. 삼십여 분이 지난 후, 하던 일을 멈추고 다 같이 무수분냄비(식품 자체의 수분만으로 조리가 가능한 냄비)에 주위에 모였다. 무거운 냄비 뚜껑을 들어 올리니 나무색을 닮은 빵이 거기에 있었다. 목소장은 따끈한 빵을 쓱쓱 썰어 한 조각씩 나눠주었다. 밖에 나와서 먹으면 밥에 물 말아 김치만 척척 올려 먹어도 맛있다지만, 숲 속에서 먹는 빵에는 그것과는 다른 맛이 있었다. ‘기다림’의 맛이었다.
우리가 숲에서 기다린 건
제빵사들과 떠난 세 번째 캠핑이다. 생각해보니 나는 그들이 굳이 캠핑장에서 빵을 굽는 이유를 한 번도 물은 적이 없었다. 고민하다가 나는 이번에도 묻지 않기로 했다. 물어보려다가, 그만 뒀다. 차를 타고 가며 목소장이 한 이야기가 문득 생각났기 때문이다. “한국 사람이 밥 먹을 때 이야기를 잘 안하는 이유를 아세요? 밥이 식으니까.” 그 이야기는 먹는 시간이 아니라 요리를 하는 시간 동안에도 적용된다. 다듬고 볶고 끓이고 맛보고. 쉴 틈을 찾기 어렵다. 쉬어야 하는 시간에도 짬을 내어 할 수 있는 무언가를 찾는다.
하지만 빵을 만들 때는 모든 것을 밀과 효모에게 맡기고 기다릴 여유가 필요했다. 빵이 나오기 전에는 모두 빵을 기다리는 줄 알았는데 먹으면서야 깨달았다. 우리가 숲 속에서 기다린 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보낸 시간, 빵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지금 이 시간, 시간이 흐른 뒤 지금을 추억할 시간이었다는걸. 그래서 우리가 기다렸던 것 중 하나는 이미 지나가고 자리에 없었다.
Recipe
아주 사적인 취향의 빵
그날 우리가 먹은 빵은 목소장의 빵집 ‘더 벨로’에서는 팔지 않는다. 그냥 그가 좋아하는 빵이다. 기존의 제빵법은 단시간에 많은 양을 만들 수 있게 획일화되어 있다며 그는 말했다. “예전에 집에서 빵을 만들었을 땐 맛과 향이 모두 달랐을 거예요. 지금은 너무 배합과 식감 위주죠. 꼭 그러지 않아도 되거든요. 빵을 만든다는 건 자신의 취향을 찾는 것과 같아요.”
우리호밀빵
재 료
500g x 2개 분량 호밀통밀가루(전남 구례 광희면 온당리) 100g, 백밀가루(전남 구례 토지면 오미리) 400g, 소금 (신안 토판염) 8g, 물 350g, 발효종100g (드라이 이스트 3g으로 대체 가능)
01. 미온수(25도 정도)를 준비한다. 소금을 넣고 풀어준 뒤 발효종을 넣고 30분 정도 기다린다. 02. 통밀가루와 호밀가루를 01에 넣고 손으로 반죽을 한다. (질었던 반죽에 힘이 붙으면 그때부터 사용이 가하다. 반죽 시간을 늘리면 조금 더 차진 빵이 된다.) 03. 바람이 들지 않는 통이나 그릇 위에 천이나 비닐을 덮어 발효를 시켜준다. (그날의 온도에 따라 다르다. 25도 선에서는 5시간 정도 20도 이하에서는 10시간도 좋다. 보통 미리 반죽을 해서 가져가거나 도착해서 바로 반죽을 하고 다음날 아침에 구워 먹는다.) 04. 발효가 된 반죽을 손으로 가볍게 뭉쳐 주며 가스를 빼고 둥근 모양을 잡아 준다. 05. 30분 뒤 500g 두 개로 분할을 한다. (크기는 크게 상관없다.) 06. 20분 뒤 원하는 모양으로 반죽을 뭉쳐 준다. 07. 10분 뒤 예열 된 무수분 냄비에 넣고 위 아래 불로 열을 가해준다. 15분 정도 굽고 상태를 확인 한 뒤, 보통 25분 내외로 구워 준다.
발효종
재 료
건포도 100g, 물 100g, 꿀 1g
01. 모든 재료를 유리병에 넣고 3~4일 정도 상온에서 기다린다. 02. 거품이 왕성하게 올라오면 건포도를 제외한 액체만 거른다. 03. 1차 발효종 – 액체에 밀가루를 1:1로 넣고 가볍게 섞어준 뒤 5시간 정도 발효 시킨다. 04. 2차 발효종 – 1차 발효종에 같은 양의 밀가루와 물을 넣고 섞어준다. (발효종200g 일때 밀가루100g, 물100g) 05. 3차 발효종 – 2차 발효종에 같은 양의 밀가루와 물을 넣고 섞어준다. 06. 완성 된 발효종은 만들 반죽에 넣고 빵을 만든다. 07. 남은 발효종은 다시 밀가루와 물을 주면서, 매일 사용할 수 있다.
반죽하는 동안 바라본 제빵사의 손은 가벼웠다. “손에 힘을 많이 주지 않으시네요.”라고 말했더니 그는 ‘빵은 효모와 시간이 만들어 주는 거니까요.’라고 답했다. 제빵사는 단순히 빵을 만드는 사람인 줄 알았는데, 알고보니 빵은 시간이 만들어주고 그들은 그 시간을 차분히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