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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 아래의 집 : 오월농원
구불구불 경사진 길 위를 한참 올랐다. 어디까지 가는 걸까, 하고 생각했을 때 마침내 오월梧月의 집이 보였다. 비닐하우스와 커다란 밭 사이에 있는 집. 문 앞에 가족들의 신발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아껴왔던 단호박과 고구마를 푸짐하게 내어주는 사람들과 옛날 옛적의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고 왔다. 한바탕 대화를 마치고 오월의 집을 나왔을 땐 높았던 하늘이 유난히 가깝게 느껴졌다.
강원도 화천, 오음리에 있는 오월농원은 가족이 함께 운영하는 농장이다. 단호박, 고구마, 옥수수, 돼지감자, 토마토, 초석잠 등 푸릇한 작물이 이곳에서 자라난다. 화학비료와 약품 처리 없이 소중하게 먹거리를 대하는 마음은 오월농원의 가장 기본적인 태도다. 꼭 예술 작품을 만드는 사람만이 작가라는 이름을 가져야 할까. 아무것도 없는 땅에서 우리가 먹는 음식을 기르는 일은 이로운 창작의 한 종류다. 어느 가족의 노력이 깃든 땅에서 또 다른 창작의 움직임이 꿈틀인다.
“우리 집은 오음리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있어요. 달과 가까워서 밝은 집이라는 뜻으로 오음리의 ‘오’, 달 ‘월’ 자를 써서 ‘오월’이라고 이름 지었죠.”
오월의 땅은 네 명의 가족이 함께 일궈왔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농작물을 가꾸면 딸과 아들은 사진을 찍고 홍보를 한다. 각자 일이 없을 때도 부모님 일을 도와 함께 농장을 가꾼다. 채소는 늘 정해진 시기에 자라지만 계절마다 오월농원의 풍경은 다채롭다. 자연의 변화가 피부로, 마음으로 숨김없이 닿는 곳이다. 그래서인지 작물의 맛은 더 달고 또 맛있게 느껴진다.
“예전엔 우리가 콩을 심으면 이웃 집에서 ‘콩 심었어?’ 하고 전화가 왔어요. 그렇게 알음알음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소문이 닿아 연락이 오게 됐죠. 우리는 사람들의 말로 이어지는 방식을 믿어요. 지금은 인터넷 주문도 받고 있지만 아직도 많은 곳에서 전화가 오거든요. 단순하게 깨끗하고 맛있으니까, 그런 농작물을 우리가 직접 만들고 있으니까, 가능한 시작이었죠.”
요즘같이 빠르게 소통이 오가는 사회에서 ‘건너건너’라는 말은 조금 느리고 멀게 느껴진다. 하지만 오월에서는 당연하게 지켜가야 하는 방식이다. 긴 세월 동안 쌓아온, 지금은 없는 그때의 소중한 ‘알음알음’이 아직 여기에 남아 있다.
화천에서 쭉 나고 자란 희섭 씨와 서울 여자 미영 씨가 만났다. 친지의 소개로 잠깐 화천에 놀러 왔던 그녀는 그와 딱 세 번 만났을 때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단 세 번 만에 어떻게 하면 평생을 약속할 수 있는 걸까. 호기심 어린 말투로 물었을 때 그는 “옛날에는 다 그랬지.” 하며 태연하게 말했다. 반면에 그녀는 30년 전 이야기를 어제 있던 일처럼 가깝게 떠올린다.
“신기할 정도로 말이 없던 사람이었어요. 언제는 같이 기차를 탄 적이 있는데 출발하고 도착할 때까지 한마디도 안 하더라고요(웃음). 오기가 생겨서 두고 봤는데 역시나 끝까지 말이 없었어요. 그때 이 사람은 나 아니면 결혼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쓸데없는 모성애가 발동해서(웃음).”
서른세 살까지 묵묵히 농사만 지어왔던 그와 스물다섯 살에 평화로운 시골 생활을 꿈꾸던 그녀. 두 사람은 지금의 오월농원이 있기까지 한시도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 아궁이 피우는 옛날 집에서 신혼 생활을 시작해 컨테이너 안에서 지내던 시절을 거쳐, 지금의 안락한 집을 함께 지어왔다. 도시를 떠나면서 그녀가 바랐던 ‘저 푸른 초원 위에 그림 같은 집을 짓고’는 결혼 후 곧바로 이뤄지지 않았지만, 오늘의 두 사람은 푸르른 산속, 어여쁜 집 안에서 그들만의 공간을 꾸리고 있었다.
넓은 밭 아래에 커다란 자두나무가 있다. 30년이 된 나무는 오월의 딸과 아들이 태어난 때부터 함께 자라, 이제는 자두를 손에 잡지도 못할 만큼 키가 커졌다. 작물을 포장할 박스와 신문지를 접으면서 농장 일을 돕던 딸과 아들은 이제, 파종을 하고 밭매는 일부터 함께 한다. 이제는 고향을 떠나 생활하지만 주말이 되면 돌아와 밭일을 돕는다. 어릴 때부터 블로그에 부모님이 키우시는 작물을 일상처럼 기록하던 딸은 이제 오월농원의 마케팅 담당자가 되었다. 집을 떠날 때마다 챙겨가는 깨끗한 작물은 도시에서의 먹는 시간을 조금 특별하게 만들어준다.
“사람들은 제가 엄청 건강한 것만 먹고 사는 줄 알아요(웃음). 매일 집에서 키우는 고구마나 냉이 같은 산나물을 가지고 가니까요. 한 보따리 들고 집을 나설 땐 마음이 찡해지기도 해요. 저는 더 오래 도와드리고 싶은데, 엄마는 어두워지면 위험하다고 얼른 가라고 하시거든요. 서로의 마음을 알기 때문에 먹먹해질 때가 있죠.”
아들 기우 씨는 농장을 배경으로 가족을 카메라에 담는다. 새참을 먹는 아빠의 뒷모습을 찍고 옥수수를 따다가 멈춰서서 부모님의 웃는 얼굴을 기록한다. 친구 같은 누나와 숲을 배경으로 오늘을 추억하기도 한다. 처음 기우 씨가 가족을 찍기 시작했을 때 가족들은 나 몰라라 했지만 어느새 다들 노련한 모델이 되었다. 취미로, 업으로 시작했던 그의 사진 작업은 어느새 가족의 역사를 담고 있는 소중한 자산이 되었다. “어릴 때 제가 농구를 좋아해서 아빠가 농구대를 만들어주셨어요. 지금 그 농구대는 다 쓰러지고 저는 사진을 찍게 됐네요(웃음). 요즘은 아빠가 사진 찍을 배경으로 포토존을 만들어주시고 있어요.”
작물을 키우고 수확하는 여름에 오월의 가족들은 어김없이 자연과 맞선다. 멧돼지를 피해 고구마를 지키느라 거의 매일 밤 밖에서 지내고, 습기에 취약한 단호박은 약을 쓰지 않아서 수확물의 대부분을 버리는 경우가 많다. 태풍이 오면 힘들게 일군 옥수수는 하루아침에 모두 쓰러지기도 하고 아버지는 벌에 쏘여도 이상이 없을 만큼 자연의 공격에 무던해졌다. 오월의 농작물에는 약을 뿌리지 않아 벌레가 먹을 때도 많은데 정말 맛있는 작물 안에서만 일어나는 일이라고 한다.
“친환경으로 자란 작물은 대부분 모난 데가 많아요. 생긴 건 그래도 정말 맛있고 깨끗한 음식이에요. 특히 단호박은 꼭 껍질째 먹어야 한다고 당부해요. 그만큼 우리 몸에 좋은 방식으로 농장을 운영하기 때문이죠.”
어느새 20년이 넘은 오월에는 단골손님이 대부분이다. 청정 구역 아래에 파종하고, 사람에게 해가 되는 일은 일체 하지 않는다. 단호박을 포장하다가도 옆에 있는 풋고추를 집히는 대로 싸서 덤으로 보낸다. 이러니 단골손님이 많은 것도 당연한 일일 터다. 정성스럽게 가꾸는 마음은 작물의 맛에서 티가 나고 오랜 세월 주고받은 정은 한없이 쌓여만 갔다.
“오래된 손님들은 저희 집에 직접 오셔서 작물을 가져가시기도 해요. 멀리서 얼굴도 보지 못한 단골분들은 귀한 선물을 보내주시기도 하고요. 오랫동안 계속 같은 마음이에요. 오월을 믿고 좋아해주시는 분들을 생각하면 매년 어깨가 무거워져요. 더 잘 가꾸어서 건강하고 맛있는 먹거리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서요.”
서로의 현재이자 과거인 사람들. 내가 아는 가족은 늘 싸우면서도 언제나 애틋해진다. 항상 가까이 있기 때문에 다투고 상처 주는 일이 뻔해서, 자주 미안한 마음이 든다. 함께 일을 하면서 사는 모양을 가꾸는 오월의 가족에게서 어떤 종류의 견고한 힘을 보았다. 서로가 서로를 이끌어주는 오랜 벗이자 믿음이 되어 살아가는 이유가 되고 있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깨지지 않을 이 견고함이 더욱 단단해지길 바란다. 너무도 닮은 그들의 얼굴이 언제까지나 맑은 표정으로 지켜지길 바란다.
에디터 김지수
사진 정기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