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의 단어

야망 野望

야망 野望

[ː] 크게 무엇을 이루어 보겠다는 희망

책방 운영 3년 차. 변두리의 작은 책방코너스툴’을 찾는 사람들은 각양각색이다. 2년 전, 책방 문을 힘차게 열어젖히며 들어온 A 씨는 여러 방면에서 ‘크고 우렁찬’ 사람이었다. A 씨는 폭발적인 에너지와 유쾌한 입담으로 책방의 모임과 행사에 발 벗고 함께했고, 그 덕에 조금 소심하고 낯을 가리는 나는 그에게 신세를 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 그가 급격하게 마르기 시작한 건 지난여름부터다. 책에서만 보던얼굴이 반쪽이 되다는 표현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인가 싶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그의 얼굴빛이 돌아오길 기다리며 넣어두었던 질문은 봄이 지나고서야 꺼낼 수 있었다.

 

A: 야망이 다 사라졌다니까요.

나: 원래 야망 덩어리였잖아요.

A: 그럼요. 인생에서 이루고 싶은 게 많았단 말이죠. 인정받을 때 늘 희열을 느꼈어요.

나: 지금은 어때요?

A: 점심에 순댓국 정식에 소주 한 병 시킬 수 있는 할아버지 정도만 되면 충분한 것 같아요.

나: 사람이 갑자기 변하면 죽는다던데 대체 어떻게 된 거예요?

 

그의 끓어오르던 야성이 별안간 갈 곳을 잃은 것은 작년 초여름이다. 갑자기 쓰러지신 아버지는 급하게 수술을 받은 후에도 몇 달이나 병원에 계셔야 했다. 어머니와 번갈아 가며 병실을 지키는 동안 A 씨는 하던 일마저 정리해야 했다. 어머니를 병실에 남겨두고 오랜만에 홀로 돌아간 고요한 집에는 미처 넘기지 못한 달력이 나부끼고 있었다. 모든 것이 멈춘 6월의 날들이 펄럭이는 장면을 마주한 그는 비로소 혼자가 된 기분을 느꼈다. 어느 노래 가사처럼세상은 어제와 같고, 시간은 흐르고 있고, 나만 이렇게 달라져 있는여름이었다.

뜨거운 온도에 질식할 것만 같던 여름을 보내고, 언젠가 혼자가 될 거라는 공포가 점령한 가을과 겨울도 지났다. 새봄이 되자 그는 문득 자신을 이끌어 온 강력한 원동력을 잃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더 이상 누구도 할퀴지 않고 무엇도 좇지 않으며, 그저 직장에 다니며 월급을 저축하는 덤덤한 일상이 반복된다. 야망이나 인정욕구는 잊은 듯 했다. 그는 묻는다. 이래도 될까? 이렇게 조용히 존재해도 될까?

 

나: 그런 야망 없이 사는 것도 꽤 괜찮지 않나요?

A: 좋아요. 이제 상황이 나아졌으니까, 이렇게 책장에 침이나 바르면서 사는 게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나: 그런데 뭐가 문제예요?

A: 야망없이 대충 살다가 곁에 아무도 남지 않은 후에 초라하게 인정 투쟁 할까봐요.

: 먼 미래에 말이죠?

A: . 짧았던 과거의 영화(榮華)만 말하는 사람이 될까 봐.

나: 불안한 거네요, 결국.

A: 그런가봐요.

 

A 씨는 패기와 야망을 영영 잃은 듯 이야기했지만, 나는 여전히 그의 에너지를 느낀다. 가령 해가 뜨기 전부터 마라톤 연습을 한다고 얘기할 때, 책방의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하고 싶다고 기획안을 내밀며 눈을 반짝일 때, 훌륭한 칼럼을 읽었다며 신이 나서 링크를 보낼 때, 엄청난 분량의 글을 완성했다고 뽐낼 때 그렇다. 그는 언제나 꿈꾸고 행동하는 사람이다. 그렇게 서른일곱 해를 바쁘게 달려왔으니 당분간은 적당히만 망()하면 어떨까. 지칠 만큼 열망하거나 스스로를 움켜쥐는 대신 조금 풀어주면 어떨까. 지금은 다만 A 씨가 그간의 외로움이나 공포에서 무사히 구조되기를 빈다. A 씨의 깊숙한 곳에 늘 존재하는 야망이 다시 꿈틀거릴 날을 기대하며, 나는 그의 안식을 응원한다.

 

 A 씨와 얘기를 나누는 동안 문보영 시인의 첫 산문집이 떠올랐다. 가늘고 희미하게만 희망하겠다는 시인의 문장에 자꾸만 조급해지는 마음을 기댄다. 그저적당히보내는 시간이 있는 것도 괜찮지 않겠냐고 스스로를 다독이며 마지막 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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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바라는 게 무얼까요기대 없이 살기인 것 같습니다열망은 나를 지치게 하니까요내가 원하는게 무엇인지 모르기눈 감고 넘어가기피자를 바라면 피자가 늦게 오듯나 자신을 희망에서 구조할 필요가 있습니다하지만 희망은 하기희망은 희미하고 가늘고 어렴풋할 때 가장 근사한 것 같습니다그래서 곁눈질로 희망하기를 시전하려고요시에게 시를 달라고 떼쓰지 않고시를 움켜쥐지 않고 좀 풀어주면서요제가 바라는 것이 있다면 너무 많은 것을 바라지 않는 것이에요.

– 문보영 《사람을 미워하는 가장 다정한 방식》 중에서

We Around Project

한밤의 구석진 고민 의자

 

권투 선수가 링 위에서 싸우다 잠시 쉬어가는 구석의 의자코너스툴(Corner stool)’이라는 이름을 가진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단어로 된 고민을 가진 손님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떠오르는문장이 있습니다. 그것을 다시 읽고 쓰며 작은 의자에 머물다 간 그들을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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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성은 크리에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