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밀리미터 요란한 우유갑

경주의 유스호스텔

경주의 유스호스텔

경주의 건축물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건 경주의 유스호스텔이었다. “에에?” 담당 에디터는 깜짝 놀라는 사회 초년생의 표정으로 되물었다. 일본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깜찍한 반응이었다. “정말요? 경주의 유스호스텔이란 게… 그렇게까지 특별한 건물이었나요?”, “아니요. 경주하니까 그냥 유스호스텔이 떠올라요.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아무래도 지금부터 생각해 봐야 할 것 같아요, 왜인지는….” 에디터는 한참을 고민하는 듯하더니 (일본 드라마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존경과 신뢰가 뒤섞인 눈빛을 남기고 떠나갔다. “음!”

나는 집에서 조용히 학창 시절의 사진을 뒤적거려보았다. 고등학교 시절의 남학생은 한 몸에 적절한 비율로 어른과 아이가 뒤섞여있다. 여러 장의 사진 속에서 나의 병아리 같은 모습과 수탉 같은 모습이 번갈아 나타났다. 그리고 그중 한 장의 사진이 유스호스텔에 대한 기억의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어느 배 위의 갑판에 서서 위태롭게 찍은 별 볼 일 없는 사진이었다. 인스타그램이 없던 시절에 형들은 저렇게 별 볼 일 없는 풍경에도 막 셔터를 누르곤 했다. 배 위에서 찍은 의미 없는 사진을 보며 유스호스텔의 발코니가 떠올랐다.

초등학교 시절의 각종 캠프, 그리고 중학교 시절의 극기훈련을 거치면서 유스호스텔은 다 똑같은 모습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처음 몇 년 동안은 매년 같은 곳을 가고 있는 줄로 착각했지만 말이다. 입구를 들어서면 나타나는 전신 거울, 중앙 계단 그리고 텅 빈 방의 냉기까지, 건물 안의 모습은 언제나 같았다. 건물의 겉모습은 대부분 크고 네모나고 볼품없었다. 유통기한이 지나 팽팽하게 부풀어 오른 500밀리리터짜리 우유갑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보기만 해도 포만감이 느껴지는 비율이었다. 

경주의 유스호스텔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조금 다른 점이 있다면 한옥처럼 보이게 하려고 둥근 기둥을 사용했다는 점 정도? 그리고 더욱더 한옥처럼 보이기 위해 꼭대기에 기와지붕을 얹어놓았다는 점 정도였다. 이런 창의적인 과정을 통해 경주의 유스호스텔은 좀 더… 창의적인 우유갑으로 재탄생했다. 근방의 유스호스텔도 모두 이런 창의적인 우유갑들이었다. 그것들은 마치 장기판 위의 장기알처럼 일정한 간격을 두고 경주 일대에 당당히 박혀있었다. 낮에는 아이들의 행렬이 버스로 향한다. 점심엔 그 행렬이 구내식당으로 향한다.그리고 밤에는 아무도 돌아다니지 않는다. 흡사 잘 정돈된 공산국가의 어느 도시를 모사한 것 같은 이 풍경이 내가 기억하는 경주의 인상이었다. 그중 유일하게 발코니라는 공간만이 의미 있는 공간으로 기억되고 있었다.

유스호스텔에서 기억에 남는 사건들이란 모두 이 발코니를 매개로 벌어진 일들이었다. 창밖으로 1미터가량 돌출된 발코니는 당시 방과 방 사이를 연결해 주는 통로 역할을 해주었다. 선생님들이 발코니를 이용하지 말라고 경고했는데도 우리는 몰래 발코니를 통해 이동하곤 했다. 발코니를 기어다니다 친구와 맞닥뜨리면 서로 이상한 수신호를 주고받으며 낄낄거렸다. 수신호는 네가 비켜라, 아님 네가 비키던가, 혹은 비켜라…. 대략 이런 내용이었다. 저녁 시간엔 기대하지도 않던 일이 벌어지기도 했다. 우리 반 여자아이들이 발코니를 타고 와 우리 방 창문을 두드린 것이다. 발 냄새 가득한 남탕에 선녀가 들이닥친 기분이었다. 장기자랑은 어떻게 할지, 내일은 버스에서 누구와 앉을지, 우리는 굳이 늦은 밤에 하지 않아도 될 이야기를 하며 바쁜 척 소란을 떨었지만, 사실은 그냥 좀 친해지고 싶을 뿐이었다. 가여운 선녀들은 곧 자신들을 찾는 선생님을 피해 밤새 발코니를 뱅글뱅글 도는 신세가 되었다. 

우리 학교엔 아무리 높은 곳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다는, 일명 ‘떨어져도 죽지 않는 아이’가 있었다. 그 아이의 머리에는 도끼에 찍힌 것 같은 큰 땜빵이 있었는데, 어릴 적 계단에 찧어 생긴 상처라고 했다. 그 아이는 불현듯 발코니를 타고 내려가 술을 사와야겠다고 했다. 그러고는 또 머리로 떨어진 건지, 정말로 순식간에 눈앞에서 사라져버렸다.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내려갔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 아이의 그림자는 이미 정문에서부터 뻗어 나오고 있었다. 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였다. 그 아이의 말을 빌자면, “길이 ‘존나’ 넓어서 뛸 수가 없었다.”고 한다. 어찌어찌 눈을 피해 정문을 빠져나간다 해도 차 한 대 없는 그 적막한 길 위에서 선생님 눈에 띄지 않을 방법은 없을 듯 보였고, 그렇다고 돌아가자니 중력을 거스를 수도 없고…. 그래서 그 아이는 밤새도록 담벼락을 뱅글뱅글 맴돌았다고 한다. 

마지막 날 밤, 발코니에서 뭐라도 해볼까 고민 중이던 나는 예상치 못한 관객을 만나게 되었다. 발코니 저쪽 구석에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 아이’가 누워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그 당시 많은 친구들이 담배를 피운다는 사실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 모습을 실제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난 그 아이를 향해 “수업 안 하니까 좋지?”라며 인사를 건넸다. 그 아이는 “건물들 참 조까이 생겼네…”라는 대답을 돌려주었다. 그리 친한 사이는 아니었지만 우리는 대화를 시작했고 그 아이는 수탉처럼 쓸쓸한 척, 이런저런 불만을 털어놓았다. 교복이 구리고, 날씨가 구리고,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났고, 반찬이 구리고, 술도 없고…. 그것은 어른의 발음으로 말하는 투정일 뿐이었는데. 난 당시에 그게 참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날 밤 나에게도 어딘가 쓸쓸한 구석이 있는 척, 발코니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딘가로 천천히 표류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배의 갑판을 연상케 하는 건물의 발코니 때문이기도 했지만, 실제로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밖을 내다보기만 해야 하는, 배를 탄 것과 유사한 유스호스텔의 밤 분위기 때문이기도 했다. 당연히 표류하는 우리의 목적지를 아는 친구는 아무도 없었다. 

경주는 70년대부터 관광도시로 계획되어 꾸준히 개발되어왔다. 오랜 시간이 지나 건물을 설계하는 어른이 된 후에 추측해 보건대, 경주의 불국사 일대는 애초부터 유스호스텔 단지를 건설할 계획으로, 널찍한 도로를 먼저 깔아놓고 한옥처럼 보이는 유스호스텔을 연달아 짓기 시작했을 것이다. 역사나 주변 정취와는 상관없이, 앞으로 이곳에서 벌어질 일들에 대한 호기심 역시 접어둔 채로, 그저 커다란 버스들이 오가기에 불편함이 없도록 계획되었던 것 같다. 왜 길이 ‘존나’ 넓어서 떨어져도 죽지 않는 아이를 당황케 했는지, 왜 내 머릿속의 경주는 뚱뚱한 건물들이 드문드문 박혀있는 장기판의 풍경이 먼저 떠오르는지, 이제는 알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기억하는 경주의 바닥은 아스팔트다. 그리고 경주의 건물들은 뚱뚱한 우유갑이다. 도시는 어떤 기준에 따라 만들어지고 어떤 추억은 도시에 맞춰서 새겨진다. 나의 추억이 섬세하지 못한 어느 공무원의 손에 의해 다듬어졌다는 사실이 조금은 서운하다. 발코니 하나만으로도 수없이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아이들인데 말이다. 내가 기억하는 경주의 유스호스텔은 그 모습이 다분히 획일적이고 직설적이었다. 나에게 경주라는 도시가 다보탑이나 석굴암이 아닌 유스호스텔로 기억되는 것은, 그 시절 우리를 가르치던 획일적이고 직설적인 언어와 무관하진 않은 것 같다. 나의 기억은 미화되기보다는 보존되기를 더 선호한다.

종종 떨어져도 죽지 않는 아이의 소식을 듣는다. 주로 경조사에 관련된 이야기들이다. 지난해에는 그 아이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왔고, 얼마 전에는 통닭집을 개업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새삼 깨닫는다. 아직까지도 우린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았음을. 500밀리리터짜리 우유갑처럼 생긴 방주는 끊임없이 출렁이며 어딘지 모를 곳으로 우릴 데려가고 있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그림 한승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