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의 도시에서 살아남기

세아추 — 일러스트레이터

세아는 메일로만 만나던 든든한 존재였다. 매거진 《AROUND》에 담길 삽화를 의뢰하면, 그는 일러스트레이터 ‘세아추’라는 이름으로 까만 선에 정성과 고민을 담아 내게 전해주곤 했다. 이번 호 주제가 ‘대전’으로 정해졌을 때, 나는 단번에 그의 이름을 떠올렸다. 메일 너머 대전에서 그는 어떤 마음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 “만족해요.”, “좋아요.”라는 말이 자주 오가는 동안, 세아는 대전이 최고와 보통 그 사이 어디쯤에 있는 도시라 말했다. 모든 것이 적당한 이곳에서, 그는 자신의 안녕과 자유를 도모하는 중이다.

매거진 삽화 작업으로 메일로만 이야기 나누었죠. 대전에서 만나다니 반갑고 신기해요. 오늘 우리가 만난 ‘욜라탱고’는 어떤 공간이에요?

당시 살던 집에서 가까운 곳에 뮤직 펍이 생겼다는 소식을 접했어요. 호기심에 여길 찾아와 사장님께 “안녕하세요. 저 추세아예요.”라고 다짜고짜 제 소개를 했는데요. 사장님이 그때 ‘누구신데요?’라는 눈빛으로 쳐다보셨어요. 지금은 사장님과 친한 사이가 됐는데, 떠올리면 웃음이 나는 에피소드예요. 처음 왔을 때부터 여기가 좋았어요. 왠지 서울 같았거든요(웃음). 대전에 와서 다른 곳을 많이 가보진 않았는데 여긴 혼자서도 여러 번 왔고, 친구들이 대전에 오면 무조건 데려왔어요. 오면 마음이 편해요. 여전히 저와 연결된 느낌이 드는 공간이에요.

 

세아 씨 아지트였군요. 직접 그린 그림도 곳곳에 보여요.

옆에 놓인 메뉴판에 제 그림이 있어요. 여기서 술 마시다가 낙서한 건데, 사장님이 마음에 들어 하셔서 드린 거예요. 개업 5주년 기념 굿즈도 함께 제작했어요. 사장님과 저 둘 다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데 욜라탱고는 ‘고’로 끝나니까, 굿즈에 고양이 그림을 넣게 된 거죠.

 

귀여운 영감이네요(웃음). 세아 씨를 일러스트레이터라고만 부르기엔 활동 영역이 다양해요. 여러 수식어를 걷어내고, 오직 한 단어로 자신을 소개한다면 어떤 이름을 붙여주고 싶나요?

저는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고, 취미가 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래서 ‘사람들에게 나를 어떻게 설명하지? 나는 설명이 안 되는 사람인가?’라는 고민도 있었어요. 그런데 몇 년 전부터는 다들 저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주시더라고요. 처음엔 간지러웠는데, 이제는 익숙해졌어요. 이젠 저를 ‘작가’라고 소개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사람들이 작가라는 호칭에 어떤 의미를 담는 것 같아요?

글쎄요, 작가라는 말의 의미는 쓰임에 따라 매번 달라지는 것 같아요. 그림이나 디자인 작업을 할 때나, 책 제작이나 행사 현장에서도 늘 작가라고 불리거든요. 분야가 무엇이든 창작 활동을 이어가는 사람들을 통칭하는 호칭이 아닐까요?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들을 부르는 다정한 약속 같은 거군요. 대전에는 어떻게 오게 됐어요?

대전에 있는 대학에 다니게 됐거든요. 고향은 전남 여수인데, 처음 여기 왔을 때 두 도시가 크게 다르다는 생각은 안 들었어요. 답답하지도 않고, 북적이지도 않고. 그런 점에서 살 만하다 느꼈어요. 여수에서 왔다고 하면 다들 바다가 그립지 않냐고 묻는데요. 저는 여수 집에서도 멀리 있는 바다를 잘 구경하지 않던 사람이라서요(웃음). 하늘이 잘 보이면 돼요. 그런 점에서 대전은 살 만하다 싶더라고요.

 

낯선 도시에서 살게 된 건데, 두렵진 않았어요?

원래 서울 소재 대학을 가고 싶던 거라, 대전에 특별한 관심은 없었어요. 학교생활도 싫었고요. 그래서 주말이 되면 서울에 공연이나 전시를 보러 다녔죠. 많으면 한 달에 서너 번 갈 정도였어요. 도망 다닌 거죠. 이제는 서울이 얼마나 재밌는 곳인지 충분히 알았고, 좋아하던 것들에 관심도 떨어져서 대전에 정이 생겼어요. 예전에는 서울에 살 수만 있다면 작은 집이라도 좋다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아니에요. 어디 살지 고르라고 한다면 여길 택할 거예요.

 

대전에 애정이 깊어진 건, 삶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가 달라졌기 때문이 아닐까 싶어요. 요즘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건 뭐예요?

자유? 이젠 조용히 혼자 자유로워지고 싶어요. 대전은 바쁜 분위기의 도시가 아니라, 평화롭다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여기 계속 사는 것 같아요.

 

아까 학교생활이 싫었다고 했는데, 그 이유를 들려줄 수 있어요?

간단히 말하자면 학교라는 시스템이 저랑 잘 안 맞았어요. 어릴 때부터 규칙이 있는 생활이 싫었고, 디자인과에서 작업물에 대해 공개적으로 피드백을 받는 것도 힘들더라고요. ‘그냥 개인적으로 말해주면 안 되나?’ 싶었어요(웃음). 대학도 부모님 권유로 갔던 거라 부담과 압박이 심했고요. 대인 관계가 안 좋은 것도 아닌데, 늘 수업에 가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도 장학금도 받고, 과탑도 할 만큼 열심히 했어요. 너무 열심히 하다 보니까 지쳐버렸죠.

 

오랜 휴학을 하게 된 이유도 바로 그런 마음 때문이었나요?

네. 4학년 2학기 졸업 전시를 준비할 때 휴학을 했어요. 마무리만 하면 되는 단계였는데, 더는 못 하겠다 싶어서 도망치듯이 나와 버리고 4년을 고향에서 지냈죠. 그때 프리랜서 일러트스레이터 작업을 더 열심히 했어요. 제 그림이 들어간 물건을 스스로 만들어 판매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고요. 하지만 생계유지에 대한 불안감이 커서 드럭스토어부터 화장품 가게, 빵집까지 다양한 곳에서 아르바이트를 병행했어요. 그때 느낀 건, 조직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많이 일어난다는 거였어요. 남들은 넘어가야 한다고 말하는 일들을 저는 참기가 어려웠거든요. 직장 생활도 두 곳에서 해봤지만, 아르바이트와 다를 게 없다는 생각에 몇 달 만에 나왔어요. 진정성 있게 뭔가를 이루려 하기보다 불안한 마음에 한 도전이었기 때문에, 끝이 안 좋았던 것 같아요.

 

그림과 관련 없는 다양한 일을 경험해 보면서, 나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점이 있었는지 궁금해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일은 그림이라는 걸 느꼈어요. 아르바이트 때문에 프리랜서 작업에 지장이 생기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그 시절이 유쾌하진 않았지만, 제가 그림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깨닫게 해준 경험이에요.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그림에 대한 마음도 조금 달라져 있었겠네요. 컴퓨터 작업을 주로 하는 디자인과였지만, 복학 후엔 죽을 만큼 그림을 그려보고 싶었어요. 그래서 교수님들을 설득해서 졸업 작품으로 그림 몇백 장을 그렸죠. 저희 학교는 ‘대전’에 관한 자유 주제로 졸업 작품을 완성해야 했는데요. 저는 대전의 헌책방 거리에서 책을 수집하고, 마음에 드는 페이지를 찢어서 그 위에 그림을 그렸어요. 그렇게 완성한 작업을 다시 책으로 엮었고요. 지금 생각해 보면 대전과 큰 관련이 없는 주제이긴 했는데, 교수님들이 오랜만에 돌아온 학생을 딱하게 여겨 작업을 허락해 주신 것 같아요(웃음).

프리랜서로 대전과 연관이 깊은 작업물도 만들었어요. 대표적으로는 ‘성심당’과의 협업이 있죠?

졸업 전시 때 성심당 이사님이 제 작업을 보시고는 다음 작업을 저한테 맡겨보고 싶다 하셨어요. 그런데 얼마 뒤에 실제로 이사님한테 전화가 온 거예요. 2022년 연말 케이크 구매 시 증정용 달력 제작을 시작으로, 성심당의 이념을 보여주는 공간인 ‘성심당 문화원’ 로고, 레터링, 캐릭터, 일러스트를 만들었어요. 저희 엄마는 성심당을 잘 모르셔서, 협업했다고 말씀드리니까 “그냥 빵집 아니야?”라고 하셨지만요(웃음). 어디 가서 말할 수 있는 자랑거리예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는 본인 스타일이 아닌 작업도 해야만 할 때가 있잖아요. 그런 부분에서 오는 스트레스는 없어요?

지금은 유아용 학습지 일러스트를 그리고 있어요. 깔끔하고 상업적인 스타일로요. 이런 작업이라도 저는 제가 그린 그림이면 다 좋아요. 그래서 일을 거절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어요. 뭐든 무조건 해요.

 

어떤 일이라도 거절하지 않는 이유는 그림이 좋아서인가요?

무언가를 같이 만들어가는 기회가 소중하거든요. ‘그림 그립니다. 일 맡겨주세요.’라는 전단지를 돌리는 것도 아닌데 작업 의뢰가 들어오는 것 자체가 기분 좋아요. 지금도 어디서 뭘 보고 저한테 일을 맡기시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포트폴리오 사이트도 따로 없거든요. 다양한 일을 하면서 평소에 하지 못한 스타일도 경험해 보고, 결과물이 좋으면 ‘나 이런 것도 잘할 수 있구나.’ 싶어 뿌듯해요. 일을 할수록 배운다는 느낌이 커요.

 

프리랜서의 삶을 선택하고 지속하는 데 대전이 준 영향도 있어요?

질문지를 받고 오랫동안 고민해 봤어요. 처음엔 메모장에 ‘모르겠다.’고 썼다가 든 생각인데요. 지금 사는 집이 제가 회복되도록 도와준 것 같아요. 전에 기숙사와 학교 근처에서 살 땐 종일 학교에 있는 느낌이라, 복학해서는 일부러 학교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집을 구했어요. 사람 사는 냄새 나는 조용한 동네에 있는 구축 빌라인데요. 졸업 작품 하면서도 힘들고 불안했지만 일단 그 집에서 잘 사는 걸 목표로 삼았어요. ‘우선 생활을 하자. 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로 나를 키워놓자.’라는 마음을 먹으니까 일상이 나름 순탄했죠.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의 집에서 성장한 느낌이에요. ‘살기 좋은 곳이라면 나 대전을 싫어하는 게 아니구나, 나 대전 좋아하나?’라는 생각을 해보게 됐어요(웃음).

 

소속이 주는 안정감을 원한 적은 없나요?

‘어디에 소속된 누구’라고 나를 소개하는 게 저는 조금 답답했어요. 하지만 소속에 대한 마음은 열려 있어요. 내가 필요한 곳이 있다면 가고 싶어요. 그게 아니라면 내가 먼저 문을 두드려서 나를 설명하고 설득하고 싶진 않은 거죠. 정말 돈이 필요해진다면 달라질지도 몰라요. 사실 지금도 수익이 많진 않고, 대충 유지가 되는 정도예요. 머리로는 이렇게 계속 살면 안 된다는 걸 알지만, 저는 지금의 생활이 좋고 아주 나중까지 생각할 겨를이 없어요. 왜 살아야 하는지를 고민하던 제가 최근에야 성장하고 있다고 느껴서, 이 순간을 즐기고 싶어요. ‘지금 괜찮네, 그럼 유지하자. 일단 지금만 생각하자.’는 마음이에요.

 

세아 씨는 염려로 미래를 대비하기보다, 현재 마음이 즐거운 상태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나 봐요.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는 건데, 마음 가는 걸 하는 게 최고예요. 최근에는 밥 먹는 것마저 마음대로 하고 싶어서 잘 안 챙겨 먹어요(웃음). 무슨 일이든 미리 걱정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중이어서 요즘은 고민을 너무 안 하나 싶을 정도예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살아갈 도시를 다시 정할 수 있다면 또 대전을 선택할래요?

네, 대전을 고를래요. 다른 도시가 어떤지 잘 모르긴 하지만, 대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여기가 아니면 안 되거나, 여기가 최고라는 느낌은 솔직히 아니거든요. 근데 여기면 충분해요. 그게 진짜 어렵잖아요. 대전은 내가 원하는 이런저런 것들을 다 충족할 수 있는 곳이니까, 그냥 괜찮아요.

 

다양한 창작자와 교류할 기회가 많은 서울을 택하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예전엔 저도 서울에 가면 할 수 있는 게 많아지겠다는 확신이 있어서 살아보고 싶었는데, 지금은 달라요. 서울에 살아도 저는 집에만 있을 것 같아요(웃음). 어딜 가도 사람 많은 것도 싫고. 대전은 만원 버스를 보기 어려워요. 그것만 해도 이곳에 살 만한 이유라고 생각해요. 서울은 너무 커서 막막하기도 하고요. 대전은 딱 적당해요, 모든 면에서. 

취미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눠볼게요. 오랫동안 뜨개를 이어오면서 판매도 하고 있죠.

3년 전 펀치니들 작업을 했는데, 슬슬 재미없어질 때쯤 남은 재료로 뭘 할까 고민하다 무작정 뜨기 시작했어요. 연습 이상으로 가지고 놀 수 있게 된 시점부터 불이 붙어서 쉬지 않고 뜨개질을 했죠. 방안뜨기도 했는데요. ‘정신차려라’처럼 현실에서 쉽게 할 수 없는 말을 넣었어요. 제 관심사나 정서가 옮겨간 것 같아요.

 

위트 있는 문구가 뜨개로 표현되어 있으니 웃음이 나더라고요. 요즘은 베이스 연주에 푹 빠진 것 같아요.

베이스는 100퍼센트 취미 활동이라 마음껏 못해도 되는 일이에요. 그래서 재밌어요. 연주하는 내 모습이 웃기기도 하고요. 어느 순간부터는 베이스를 치려고 제가 음악을 공부하고 있더라고요. 생각보다 실력이 빨리 늘어서 뿌듯함에 계속하게 돼요.

 

그림, 뜨개처럼 앞으로도 취미가 일로 이어지길 바라나요?

그렇게 된다면 좋겠지만, 쉽지 않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생활이 정말 어려워진다면 생각지도 못한 일을 해야 한다는 데 마음을 열어 놓은 상태예요. 창작과 상관없는 일이라도 언제든 할 준비는 되어 있어요.

 

아까 미래를 구체적으로 고민하지는 않는다고 했지만, 세아 씨가 살고 싶은 삶은 어떤 모습이에요?

지금처럼만 계속되면 좋겠어요. 여유가 있다면 좋겠지만 풍족한 삶을 간절히 바라진 않아요. 더 나빠지지만 말자는 마음이에요. 만약 제가 야심이 크다면 지금보다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지 궁금하긴 한데요. 지금이 적당하고, 만족스러워요. 심리 테스트를 하면 선택지가 다섯 개잖아요. ‘전혀 그렇지 않다, 그렇지 않다, 보통이다, 그렇다, 매우 그렇다.’ 지금의 저는 4의 상태, ‘그렇다’ 정도인 것 같아요.

 

제일 좋은 상태죠. 삶을 4 정도로 살고 싶은 사람들에게 대전을 추천할 수 있나요?

당연하죠. 서울에서 누군가 힘들다고 하면, 이리 오라고 자주 이야기해요. 절대 안 오지만.

 

(웃음) 왜 오지 않을까요?

글쎄요, 서울이 재밌나 봐요. 그 친구들에게 서울이 재밌는 것처럼, 저는 대전이 재밌어요.

 

낯선 도시에서 편안함을 찾은 세아 씨를 응원하고 싶어지는 대화였어요. 세아 씨는 도시가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어요?

정치인 같은 말이지만… 도시는 사람을 바꿀 수 있어요. 사람을 구성하는 건 생활이고, 생활은 환경에 따라 달라지니까요. 환경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저는 환경이 전부라고 생각되는 때도 있어요. 다만 지금 내 상태가 어떤지에 따라서 외부 환경을 달리 느끼게 될 거예요. 학교 다닐 땐 대전이 미웠고, 자유를 얻은 지금은 대전이 좋아요. 이곳에서 하기 싫은 것들을 최대한 안 하며 살고 싶어요. 물론 그럴 수 있을 때까지만요. 그 기간을 늘릴 방법을 모색해 봐야겠어요. 

“소중하다는 말은 입 밖에 내본 적이 별로 없는데, 제가 그 표현을 써서 놀랐어요.” 인터뷰를 마치고도 솔직한 마음을 전해준 세아라 좋았다. 적당하다는 기분 속에서 회복을 경험하고, 아끼는 기억을 하나둘 끌어안은 삶이 어쩜 그리 씩씩해 보이는지. 인터뷰가 끝나고 세아와 함께 찾은 식당 구석에서 종업원들이 낮잠을 자다 일어나 금세 두루치기를 볶아냈고, 걸음을 옮기는 내내 하늘이 넓게 보였다. 그가 말한 대전의 적당함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느긋한 만족 속에서 세아가 말하는 ‘이대로’의 상태가 오래 깃들길. 하늘이 좁게 열린 서울에서 난 여전히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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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차의진

포토그래퍼 박은비 장소 협조 욜라탱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