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0년간 머문 집

임하리의 정연이네

300년간 머문 집
임하리의 정연이네

안동에 사는 젊은 부부의 집을 찾아가기로 했다. 주인은 전화로 “300년 된 한옥인데 알고 계세요?”라고 물었다. 몰랐다. 내부의 모습과 그들의 직업만 어렴풋이 알고 있을 뿐이었다. 아침 일찍 서울에서 무궁화호를 탔다. 안동역 앞에서 오래 버스를 기다려야 했고, 타고나서도 한참 더 갔다. ‘임하리’. 낯선 마을 입구에서 내려 집을 찾지 못하고 한참 동네를 돌았다. 헤매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300년이란 시간의 낯섦도 커져만 갔다.

INTERVIEW

아빠 박중희, 엄마 김선영, 큰딸 박정연, 막내아들 박정우

글을 쓰고
영화를 만들다가

서울에서 출발한 지 여섯 시간 만에 도착했어요. 도시에서 지내셨다고 알고 있는데, 어떻게 이곳까지 올 생각을 하셨어요?
선영 귀촌을 하려고 고택을 알아보던 중에 어떤 분이 이 집을 인터넷 사이트에 올렸어요. 할아버지가 돌아가시며 물려준 300년 된 한옥이라며 흐릿한 사진을 첨부했죠. 바로 안동으로 내려와서 집을 확인했어요. 저희 큰딸, 정연이는 시골과 한옥을 끔찍이 싫어했거든요. 그래서 집 보러 내려올 때 ‘토토로 집’에 간다고 속이고 데려왔어요.

여전히 토토로 집이라고 믿고 있어요(웃음)?
중희 그게 3년 전 일인데, 지금까지 그런 눈치예요. 그리고 실제로 저희가 이 집에 ‘토토로’란 이름을 붙였어요. 土(흙 토), 㫦(햇빛 토), 撈(물결 로)라고 한자 의미를 더했죠. 집의 원래 이름은 ‘길헌’이에요. 비지정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고요.

여기 오기 전엔 일산에 사셨다고요. 그곳에서는 무슨 일을 하셨나요?
중희 저는 영화 조연출을 했어요.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 영화 쪽 일을 한다고 했더니 어떤 영화에 참여했느냐고 묻는 거예요. <클래식>이라고 하니까 무슨 역할이었냐고 해서 엑스트라였다고 장난을 좀 쳤어요. 실제로 주인공을 업는 역할이 필요해서 엑스트라로 출연했거든요. 아내는 한참 그걸 믿다가 나중에 사실을 알곤 뿔이 났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선영 그게 벌써 9년 전 일이에요. 저는 그때 드라마 대본이나 시나리오를 썼어요. 그 후 결혼을 했고, 사용할 책상을 찾아보다가 둘 다 직업을 바꾸게 되었네요. 지금도 글을 쓰지만, 본업은 아니에요.

현재 직업은 목수라고 들었어요. 책상을 찾다가 그렇게 된 거예요?
선영 맞아요. 남편과 함께 쓸 긴 책상을 찾았지만, 원하는 디자인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한 공방에 가구를 의뢰하러 갔어요. 커피 한 잔 얻어 마시고 얘기를 나누다가 취미 삼아 목공을 배우게 되었죠. 오래 배우진 않았고 3개월 정도였어요. 시나리오나 영화는 만들고 싶다고 해서 결과물이 ‘짠’ 하고 생기지 않잖아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하고요. 하지만 목공은 즉각적이에요. 오늘 종일 사포질을 하면 내일은 예쁜 도마가 나오거든요. 저희는 목공의 그런 매력에 마음을 빼앗겨서 그때부터 이것저것 만들었어요. 시나리오는 앞으로 나아가지 못했고 계속 가구만 늘어갔죠(웃음).

그러다 글 쓰는 일과 영화를 만드는 일을 그만두셨어요?
선영 식구 중에 누군가 침대가 필요하다고 해서 만들어주고 돈을 조금 받았어요. 재미있게 뭔가를 하고 돈도 벌 수도 있다는 걸 알았죠. 즐겁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쪽으로 일을 키우게 되었어요. 일산에서 작은 공방을 열고 파주에서 농사짓는 것도 배우게 되었고요. 농사도 짓고 가구도 만들다 보니, 시골에서 한 번 살아볼까? 하고 얘기했던 게 이렇게 되었네요.

시골집의
대문이 열려있는 이유

시골에 내려와 사는 일이 생각보다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계속 도시에서만 지내왔던 거잖아요.
선영 너무 힘들었어요. 첫 1년은 포기하고 올라갈까, 몇 번을 생각했죠. 도시에서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없어진 게 당황스럽더라고요. 각오는 했지만, 막상 와 닿으니까 만만치 않았죠. 일단 외로웠어요. 남편이 있긴 하지만 혼자 있는 시간이 생기면 정말 오롯이 혼자인 거예요. 도시에선 카페에서 혼자 커피를 마시더라도 군중의 틈에 있잖아요. 그 속에 묻혀 있을 때와 이 벌판에 혼자 서 있을 때는 다르더라고요.

오면서 보니까 마을에 젊은 분들이 별로 없더라고요. 텃세는 없었나요?
선영 있었죠. 젊은 애들이 왜 여길 들어와서 지내느냐고 의아해하는 어르신들이 많았어요. 저희는 ‘금방 친해지겠지.’라고 쉽게 생각했는데, 3년째 친해지는 중이네요.
중희 아무래도 어르신들은 논농사를 지으시고 저희는 밭농사만 짓다 보니, 유대감이 떨어지는 것 같아요. 그래도 몇몇 분들은 친해졌고 저희와 얘기 나누지 않으신 분들도 소문으로 저희의 존재는 다 알고 계세요. 시골에선 소문이 빠르거든요. 저희가 선택한 해결책은 인사를 열심히 하는 것이었어요. 시골에서는 인사가 필수 요소더라고요.

친해진 어르신들과는 어떻게 지내고 있어요?
선영 어떤 어르신들은 새벽에 막 찾아오세요. 대문을 두드리셔서 나가보면, “문 앞에 열무 놔뒀다.” 하면서 슬쩍 가세요. 재미있는 점은 제가 누군지 마을 사람들이 알고 있다는 거예요. ‘저 집에 사는 여자는 어떤 아이의 엄마다.’ 별거 아닐 수 있지만, 아파트에선 쉽게 느낄 수 없었거든요. ‘누구 엄마’가 되었다는 소속감이 들어 좋더라고요.

시골에선 대문을 안 닫고 산다고들 하잖아요. 비슷한 맥락이겠죠?
선영 아파트에선 대문을 닫으면 안전하잖아요. 누군가 벨을 누르기까진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고요. 여긴 그렇지 않아요. 제가 문을 닫아둬도 누구든 불쑥불쑥 들어와요. 할머니, 할아버지일 때도 있고 동물이나 식물일 때도 있죠. 이 생활을 왜 이렇게 힘든 게 얻은 느낌이 들까요? 도시에서도 잘 지내려고 했던 것 같은데, 그럴수록 외롭고 무기력했거든요. 큰딸이 아가였을 때, 남편은 일하러 가고 저는 혼자 아이를 안고 멍하게 앉아 있는 시간이 많았어요.

지금은 그런 시간이 줄었나요?
선영 물론 그렇기도하고, 예상치 못한 일들이 생기기도 하죠. 대문으로 누군가 들어오잖아요. 두더지가 갑자기 방을 긁는 소리 들어본 적 있으세요?

그러면 멍하게 있다가도 정신이 들어요. 무슨 소린가 하고 찾아보게 되고요. 도시에서는 책을 보거나 뭔가를 해야 했는데 여기선 다른 방식으로 해소하게 되더라고요. 한 번은 우울한 날이었는데, 개구리 하나가 창문에 ‘턱’ 하고 붙었어요. 계속 보고 있었는데 다음날까지도 있더라고요. “그래. 오케이. 콜!”이라고 외쳤어요. 자연이 주는 위로가 확실히 있는 것 같아요. 예전에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알 것도 같아요.
중희 우리나라는 사계절이 분명하잖아요. 절기대로 살아가는 게 자연스러워지고 있어요. 봄이 되었을 때, 땅이 폭신폭신해지는 걸 이제서야 느껴요. 처음에는 땅이 변한다는 걸 알지 못했어요. 그저 ‘꽃이 피는구나.’ 정도였죠. 한 해, 두 해가 지나면서 땅이 말랑해지는 것을 몸으로 느껴요. 자연스럽게 뭔가를 심을 시기가 온 것을 알게 된 거죠.

생각은 자연스럽게 변해온 것 같은데, 생활은 어땠나요? 배워야 하는 것들이 많았을 것 같아요.
중희 시골에서의 삶은 정해져 있진 않지만, 잘못 들어가면 빼도 박도 못 하는 상황이 될 수도 있거든요. 예를 들어 어떤 땅인지 모르고 아무거나 심으면 안 돼요. 지인 중 한 분은 친환경 블루베리 농사를 짓겠다고 땅을 사서 나무를 심었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옆에 사과밭이 있는 거예요. 사과는 농약을 많이 치고 그게 멀리까지 영향을 미쳐요. 뒤늦게 비닐하우스를 치고 수습을 해야만 했죠. 그래서 이리저리 물어보며 배워야죠. 무턱대고 시작했다간 한 해 농사를 망칠 수도 있어요.

어려웠다고 하셨지만, 주변 어르신들과도 잘 지내는 법을 이미 배우신 것 같아요.
선영 사실 애 아빠는 동네에서 ‘김 반장’이에요. 연장 같은 걸 넣어서 다니며 집을 고쳐드리기도 하고 겨울에는 눈을 치워요. 썰매에 큰딸과 연장을 싣고 그걸 끌고 다니죠. 저희 원래 이런 사람들이 아니에요. 개인주의가 강했죠. 여기선 신기하게 가능하더라고요. 행복한 일이에요. 하지만 이웃과 가까워지는 만큼 슬퍼질 때도 있어요. 죽음을 직면하거든요. 겨울이 지나면 꼭 한두 분씩 돌아가세요. 한 번은 아랫집 할머니께서 새벽에 문을 두드리셨어요. 냉장고에 있는 초코파이나 음식을 다 갖다 주시는 거예요. 저희 큰 애를 아껴주셔서 그런가 보다 생각했어요. 이틀 후에 가구를 배송하고 돌아왔는데 구급차를 보고 그 의미를 알았어요. 가족이 올 때까지 애 아빠가 상주를 봤었죠.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이지만, 한동안 그 집 앞을 지나다니는 게 너무 힘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갈 때는 가고 태어날 때는 태어나는 것이구나, 하는 게 더 피부로 와 닿아요.

죽어서도 자신의 본질을
잊지 않는 나무처럼

이곳에서 공방을 운영하는 일은 어떤가요?
중희 블로그를 통해 운영하고 있는데 속도가 느려요. 주문하면 보통 계절을 넘겨야 받아볼 수 있어요. 그만큼 공을 들여 하나의 가구를 만들고 있어요. 아내가 예전에 책을 출간한 적이 있거든요. 그걸 보고 주문이 여기저기서 들어와서 일단 다 받고, 테이블만 스무 개를 만들었어요. 둘이서 계속 밤을 새웠죠. 공장이었어요. 스무 번 다듬어야 할 것을 열 번으로 줄이게 되고, 남은 것은 돈뿐이었죠. 그때 돈이 무섭다는 걸 알았어요. 그다음부턴 그렇게 하지 않아요. 

공장과 다른 점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두 분이 가진 ‘좋은 가구’에 대한 생각과도 연결될 수 있는 얘기 같고요.
선영 주문이 들어오면 일단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요. 몇 사람이 어디에서 쓸 것이고, 어떤 용도이며, 어느 방향에 놓일 거고 그런 것들을 다 고려해서 구상해요. 어떤 가구의 사진을 주시고 그대로 만들어 달라고 하시면 조금 힘들어요. 앞서 말씀드린 상황처럼 저희는 조금만 욕심을 부려도 공장이 될 수 있거든요. 좋은 가구란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야기를 듣는 일부터 가구를 만드는 작업이 시작되는 거죠. 만들고 배송하고 설치하는 것까지 저희가 직접 해요.

배송과 설치도 직접 하세요?
중희 네. 전국적으로 다녀야 하죠. 그럴 땐, 주로 온 가족이 같이 가요. 상상해보세요. 작은 트럭에 가구를 싣고, 네 가족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는 모습. 요금소를 나갈 때, 아주머니가 한숨 쉬면서 볼 때도 있었어요. 도시에서 살 땐 상상하지도 못했던 풍경에 저희가 들어와 있는 게 가끔 재미있게 느껴져요.
선영 주문하신 분들을 만나 이야기 나누는 시간도 즐거워요. 가구를 주문했는데 가구와 함께 네 가족이 방문하는 게 얼마나 웃기겠어요. 가구를 배치하고 차도 나눠 마시고 집으로 돌아오죠. 어떨 땐, 흠집 같은 것 때문에 반품이 들어올 때도 있어요. 저희 집에 있는 가구는 대부분 그런 것들이에요. 긴 시간을 들여 만든 것이라 차마 버릴 순 없거든요. 어떻게 보면 버려진 것들인데 이 집에 들어오면 다 제법 잘 어울려요. 한옥은 어떤 걸 가져다 놓아도 잘 어울리는 것 같아요.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300년 된 한옥에 대한 이야기를 잊었네요. 상상이 잘 안 돼요. 그렇게나 오래된 집에 사는 것은 어떤가요?
선영 생생하다고 느껴질 때가 있어요. 계절을 숨길 수가 없거든요. 봄, 여름, 가을 겨울 중 어느 것도 건너뛸 수가 없어요. 장마철에 비가 올 땐 다른 건 못 해요. 빗소리가 온 집을 들었다가 놨다가 하거든요.
중희 겨울엔 난방 때문에 별의별 짓을 다 해봤어요. 외벽이 흙벽이다 보니 단열이 잘 안 되거든요. 겨울에는 집 안에 텐트를 치고 침낭 안에서 유단보를 하나씩 끌어안고 자요.

자연과 가까이에서 지내며 나무를 만지는 일을 하고 있잖아요. 나무라는 단어가 어떻게 다가오나요?
선영 집 앞에 300년 된 나무가 한 그루 있어요. 누군가 이 집을 지을 때, 심었던 것이겠죠. 이곳에 처음 와서 힘들거나 외로울 땐, 그 앞에 있곤 했어요. 300년이나 같은 자리에 있었으니 당연히 크고 새집도 많아요. 나이가 많아서 그런지 잎도 다른 나무들에 비해 천천히 피우더라고요. 그렇지만 다른 나무들보다 아주 울창하게 잎을 틔우죠. 그 앞에서 ‘나는 아무것도 아니구나.’라고 생각하곤 해요. 긴 시간을 말없이 지내온 나무를 보며 작아지죠. 나무에 늘 고마워요.

나무에 미안할 때도 있을 것 같아요.
선영 목재가 하나의 얼굴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요. 그래서 어느 것 하나 허투루 자를 수가 없더라고요. 보통 가구를 만들기 위한 나무는 상품 가치가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나뉘거든요. 예를 들어 일자로 자라지 않는 나무는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고 말해요. 물관이 흐르거나, 잔무늬가 자잘한 것도 꺼리고요. 그런 것들이 상품 가치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버려지기도 해요. 사람들이 어떤 기준을 정하고 평가하지만, 나무는 플라스틱이 아니잖아요. 다 같을 수가 없는 건데…. 그럴 때 아쉽고 미안해져요.

나무는 죽어서도 숨을 쉰다고 하잖아요. 그게 느껴지나요?
선영 그럼요. 나무는 죽어서도 수축하고 팽창해요. 그러면서 자리를 잡고 무늬도 변하고요. 햇빛의 영향에 따라 색도 변하죠. 나무가 시간이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손님들에게 설명하기가 어려워요. 분명한 건 나무는 죽어서도 자신의 가진 본질을 잊지 않아요. 고맙고 또 고마운 존재죠.

가난해도 괜찮은
자유를 누리는 것

밭농사 짓는 이야기도 좀 들려주세요.
선영 처음에는 호미질하면서 ‘여기 와서 뭘 하고 있니?’ 하고 자신에게 묻곤 했어요. 지렁이가 나올 때마다 소리를 지르고, 쉬워 보이는 호미질도 제 뜻대로 못 했고요. 모르고 살아온 게 많다는 걸 서서히 알게 되었어요. 시골생활의 묘미들은 그런 곳에서 시작되는 것 같아요.

또 다른 묘미는 어떤 게 있나요?
선영 저희 부부는 여기에 와서야 서로를 제대로 알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남편의 주변에 있는 것들을 보지 않을 수 없었어요. 그의 일, 가족 같은 외부의 것들이요. 부부여도 늘 신경 쓰고 살잖아요. 여기선 그런 것보다는 이 사람은 그냥 A이고 저는 B인 거예요. 일산에서는 싸우면 음식점이나 카페에 갔어요. 맛있는 걸 먹으면 관대해지잖아요(웃음). 이 사람에게서 시선을 떼고 마음이 편해지면 화해를 하는 시도를 한 거죠. 시골에선 그럴 수가 없어요. 오늘 어떠한 것으로 싸우면 다른 것으로 상쇄할 수가 없어요. 이 문제가 해결되어야만 다음으로 나아갈 수 있죠. 여기 와서 소득이 있다면, 함께 사는 인간을 아슴하지 않게 알 수 있다는 거예요. 딸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도시에선 제가 보고 싶은 모습만 골라 봤다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도시에서도 그런 걸 볼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이 있겠지만, 저는 부족했거든요. 여기 와서 기껏 저희 네 사람을 정확히 알게 된 거죠.

서로에게 묻는 것도 많아질 것 같아요.
선영 그럼요. 한 이야기가 시작되면 “왜 그랬는데? 언제부터 그랬는데? 어린 시절엔 무슨 일이 있었길래!” 하면서 계속 물어요. 전에는 미운 점은 포기하듯 모른 척하곤 했는데, 여기선 포기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너무 심심하거든요. 사회적인 명예 같은 것과는 아무 관계가 없지만, 같이 사는 식구를 정확하게 알게 된 것은 제게 굉장한 자신감을 줘요.

듣다 보니 이곳 생활이 두 분을 단순하게 만들었다는 느낌이 들어요.
중희 그러게요. 가구를 만들다 보면 흠집이 나기도 하는데 눈으로 보이지 않을 때가 있어요. 그럴 때는 눈을 감고 손으로 만져서 촉감으로 찾아내요. 예전엔 손의 감각은 필요 없었거든요. 감각이 많이 죽어 있었던 것 같아요. 이걸 하다 보니, 확실히 자연에서 필요한 다른 감각들을 찾아가고 있어요.
선영 안 찾고 싶어도 안 찾을 수가 없어요. 가만히 있으면 벌레가 ‘샥샥’ 소리를 내며 지나가요. 귀의 감각이 살아가는 거예요. 이곳에는 가난해도 괜찮은 자유가 있는 것 같아요. 저희에게는 그게 정말 필요했던 거예요. 일산에서 아파트에 살 땐, 안 그러고 싶어도 자꾸 바로 옆의 것들을 둘러봤거든요. 지금은 온전히 저희에게 집중하고 있고, 단순해졌어요.

단순해진 삶의 즐거움은 어떤 게 있나요?
선영 둔감해졌어요. 뭔가를 보고 나면 예전엔 이유를 붙였거든요. 그래서 좋고, 저래서 좋고, 이래서 좋고, 말이 많았죠. 그런데 이제는 그냥 “우와 좋다.”로 끝나요. “뭐가 좋은데?”라고 물으면 “그냥 좋다!” 하게 되는 거예요. 그런 단순함이 저희를 좀 더 편하고 행복하게 하더라고요. 이곳에 와서 겨우 인간에 좀 가까워진 것 같아요. 전에는 괴물이었어요. 괴물.

정연이네 가족이
아끼는 집안의 물건들

01. 촛대 

천주교 신자지만, 아이들을 시골에서 돌보느라 성당까지 나갈 수가 없는 부부는 직접 촛대를 만들었다. 매일 밤, 여기에 초를 켜고 많은 것을 위해 기도한다. 그래서 어떤 물건보다 아끼고 있고, 또 누군가 촛대를 원한다면 기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만든다.

02. 호미

정연이 엄마는 처음 안동에 왔을 때, 호미를 들고 한없이 땅을 파며 ‘내가 할 수 없는 게 별로 없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호미를 보는 마음이 애틋하다고. 손을 쓰는 일을 하며 단순한 일이 주는 행복을 느꼈다는 그녀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물건이다.

03. 책상 

한쪽에서 보면 살짝 휘어진 큰딸의 책상. 상판이 너무 많이 나와서 휘어질 수밖에 없도록 만들어졌다. 그걸 만드는 과정에서 알아차린 부부는 이 책상을 집에서 사용하기로 했다. 그들이 성장해나간 과정처럼 정연이도 이 앞에서 공부하며 조금씩 무엇인가를 알아가지 않을까.

04. 식탁 

정연이 아빠가 어릴 적부터 쓰던 6인용 식탁을 고쳐서 만들었다. 너무 낡아서 버리려고 했던 것을 갖고 와 그 위에 참나무를 얹었다. 정연이와 아빠, 그리고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이 식탁에 앉아서 나눈 이야기가 얼마나 많을까. 그 시간을 생각하면 더 귀하게 여겨지는 테이블이다.

귀농귀촌종합센터 returnfarm.com
정연이네가 도움을 받은 곳으로 농촌생활을 위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더테이블 thetable.co.kr
부부가 운영하고 있는 목공소 사이트로 이곳에서 가구 주문이 가능하다.

자전거가 그려진 스티커 위에 그들의 목공소 이름이 적혀져 있었다. 왜 자전거가 그려져 있는 지를 물었더니, 정연이 엄마는 “어릴 적에 아버지에게 자전거 타는 법을 못 배웠어요. 그래서 제 아이에겐 자전거 타는 방법을 가르쳐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서 만들었어요.”라고 답했다. 얼마 후, 학교에서 큰딸 정연이가 돌아왔고 우리는 산책을 했다. 여덟 살짜리 소녀는 묻지도 않았는데, 길가에 핀 꽃들의 이름을 줄줄 말해줬다. 생전 처음 듣는 이름도 많았다. 잘 보이지 않는 작은 것들의 이름을 외며 자라는 아이는 어떤 어른으로 자랄까. 그런 상상을 하다가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뭐야?”라고 물으니, 정연이는 망설이지 않고 “자전거!”라고 씩씩하게 답하며 웃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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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박선아

포토그래퍼 안선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