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nd WEE Korean Children’S Picture Book Award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 이덕화 작가 인터뷰

스쳐 지나칠 수 있는 사건에, 흘려버리기 쉬운 어떤 시절에 숨결을 불어 넣는 사람이 있다. 이야기에 질감을 더하고 군더더기를 덜어내며 작은 상상을 키워가는 사람. 그녀의 손이 스친 얄팍한 종이엔 깊디깊은 세계가 세워지고 이내 생동하기 시작한다. 이 아름다운 세계는 그림책을 뒤집으면 쏟아질 것만 같아 살짝 들었다 놓게 만들고, 손가락을 갖다 대면 만져질 것만 같아 두 손을 움츠리고 펼치게 한다. 참 포근하고 따듯한 여정이다. 오늘도, 내일도 탐험하고만 싶다.

‘WEE 한국 어린이 그림책 어워드’ 후보 작가 인터뷰 2

흔쾌히 작업실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해요. 깔끔하고 아늑한 곳이네요.

만나서 반가워요. 오랜 시간을 그림책 작가로 살고 있는 이덕화예요. 짓고 그린 책으로 《뽀루뚜아》,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 《궁디팡팡》이 있어요. 그림책 작가로는 다양한 방법으로 오랫동안 이야기할 수 있길 꿈꾸고, 그림책 작가 바깥으로는 이것저것에 도전하며 자유롭게 살기를 꿈꾸는 사람이에요. 재미있게 살고 싶어서 주기적으로 다른 나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고 있어요. 아직은 로망이지만 차근차근 준비하고 있죠.

 

그림책 작가로 오랜 시간을 보냈다고 했는데, 첫 작업을 시작한 건 언제였어요?

그림책 작가 이전에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해와서 그 경계가 모호해요. 대학생 때부터 학습지나 문제집 같은 책에 삽화를 그렸거든요. 재미있는 일이었지만 졸업하고 나서 절대로 선택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직업이기도 해요.

 

어, 왜요?

컷당 일정 금액을 받으면서 일했는데 너무 적은 액수라 그걸로 먹고살긴 어려울 것 같았거든요. 저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했어요. 대학생 땐 일러스트레이터보다도 애니메이션 감독이 되고 싶다는 포부가 있었죠. 그래서 졸업하고는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회사에 입사했지만 저랑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감독은 자기 작업은 물론이고 함께하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도 적지 않은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데, 그게 제 성향과 딱 맞지는 않았거든요. 결국 퇴사를 결심하고 제 작업에 집중할 수 있는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게 됐어요.

 

절대로 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한 직업에 뛰어들었군요.

그렇죠(웃음). 일러스트레이터가 되기로 결심하고는 다른 작업자들과 작업실을 함께 쓰면서 외주로 일러스트 작업을 해보기로 했어요. 제일 먼저 한 일은 포트폴리오를 만드는 거였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땐 요령이 부족했던 것 같아요. 대학 때 작업한 습작들로 좀 엉성한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일을 구하기 시작했거든요. 그런데 ‘내 작업이 이렇게까지 형편없나?’ 싶을 정도로 일이 하나도 안 들어오더라고요.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나에게 직접 일을 주는 걸 생각해보게 됐어요. 내가 글을 쓴다면 그에 맞는 그림은 직접 그릴 수 있겠다고 생각한 거죠. 그림책 작업은 그렇게 시작됐어요.

 

글 작업이 쉽진 않았을 거 같은데 두려움은 없었나요?

대학 때 이원석 영화감독님에게 시나리오 수업을 들은 적이 있어요. 그때 교수님께 받은 긍정적인 피드백과 격려가 두려움을 없애준 것 같아요. 아, 그렇다고 제가 긴 글을 매끄럽게 잘 쓴다는 건 아니에요. 상상을 문장으로 풀어내는 걸 좋아하고 즐긴 거죠. 오히려 그 당시에 두려워한 건 그림 작업이었어요.

 

어떤 점에서요?

아마 욕심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많이 느꼈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쳐 출간된 첫 책이 《뽀루뚜아》였군요. 이 작품으로 2010년에 볼로냐 국제 어린이 도서전에서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선정되기도 했어요.

연락받은 날이 아직도 생생해요. 일이 너무 없어서 그림으로 어떻게 먹고살아야 하나 고민도 많고 사는 게 버거울 때였거든요. 엄마가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 보는 게 어떻겠냐 권하셔서 온라인 강의를 듣던 시기이기도 한데요. 착잡한 마음으로 강의 동영상을 켰는데 재생하자마자 너무 우울하더라고요. 그런 상황에서 받은 전화였으니 얼마나 기뻤겠어요. 그 덕에 《뽀루뚜아》가 정식 출간될 수 있었고, 그때 만난 편집자와 다시 호흡을 맞춰 세 번째 책 《궁디팡팡》도 출간할 수 있었어요.

 

단비 같은 소식이었겠어요. 이번 그림책 어워드에서는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이 아이들이 좋아하는 그림책 세 번째로 선정되었어요. 축하드려요!

고마워요(웃음). 처음에 소식을 접했을 땐 구체적인 내용을 몰라서 크게 와닿지 않았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직접 뽑은 거라는 이야길 듣고는 정말 기뻤죠.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은 출간한 지 벌써 3년 가까이 된 책인데 어린 독자들에게 꾸준히 사랑받는 것 같아서 더 좋았어요. 

 

어떻게 탄생한 이야기인가요?

작은 에피소드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이야기예요. 10년 전에 아이들에게 미술을 가르친 적이 있는데 그때 달과 별을 그리는 수업을 하게 됐어요. 저희야 이젠 익숙해져서 별 정도야 쉽게 그리지만 아이들은 한 번에 별을 그리는 게 어려웠던 모양이에요. 생각해보면 저 또한 어릴 땐 그랬던 것 같고요. 엉성한 모양의 별들이 여기저기서 그려지더라고요. 수업이 끝날 때마다 그날 그린 작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한 어린이가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도화지에 수많은 달을 그려놓고 그사이에 삐뚤빼뚤한 작은 별을 그린 아이였는데요. “많은 달 사이를 어린 벌이 날고 있어요.” 그러는 거예요. 아이의 말을 듣고 보니 망친 별이 정말 날고 있는 벌처럼 보였어요. 아이의 사랑스러운 상상력에 놀라워하며 ‘언젠가 이 그림을 모티프로 그림책을 만들어야지!’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에는 벌 대신 공룡이 등장하지 않나요?

이 에피소드로 이야기를 만든 건 몇 년 후의 일인데요. 그때 아이의 그림을 모티프로 두 가지 쌍둥이 이야기를 만들게 됐어요. 하나는 ‘아주 아주 작은 벌’이란 이야기고, 다른 하나는 책으로 출간된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이죠. 《100개의 달과 아기공룡》을 기획할 땐 딱 한 가지 생각만 했어요. 가볍고 유쾌한 책을 만들자는 생각이었죠.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은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요소를 잔뜩 넣어서 만든 이야기예요. 마치 무침 요리를 하듯, 큰 재료인 100개의 달을 두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걸 하나 둘 넣어서 버무렸어요.

 

듣고 보니 아이들이 열광하는 요소가 가득하네요. 공룡, 달, 맛있는 거, 방귀, 엄마….

그렇죠(웃음)?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에는 거짓말하지 말자는 교훈이 있지만 그 내용만 담은 책은 아니에요. 누구나 마음속에 꼭꼭 숨겨둔 이야기가 있잖아요. 아기 공룡처럼 거짓말일 수도 있고, 숨기고 싶은 부끄러운 실수일 수도 있죠. 그런 감정이 한 번에 펑 하고 터지면서 통쾌하고 후련해지는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아기 공룡이 느끼는 그 감정을 독자도 함께 느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작업의 아이디어를 경험에서 건져내는 것 같아요.

맞아요. 한 줄기 생각에서 출발하는 경우도 있고요. 첫 그림책 《뽀루뚜아》는 ‘특별하고 주옥같은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는 생각에서 시작한 작업이었어요. 프랑스의 그림책 작가 장 자크 상페Jean Jacques Sempe를 좋아해서 그의 그림을 들여다보며 ‘이런 그림책을 만들고 싶다.’고 생각한 기억이 나요. 제가 겪은 에피소드와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에 상상을 더해서 이야기에 살을 붙인 거죠. 

 

또 어떤 에피소드가 글감이 되었나요?

지금 막 생각난 얘길 해보자면, 어릴 때 한번은 언니랑 오빠가 아빠에게 어려운 단어를 물어보면서 재잘댄 적이 있는데요. 저도 그 대화에 끼어들고 싶은데 마땅히 물어볼 어려운 단어가 떠오르질 않더라고요. 그래서 대뜸 ‘꾸띠뿌꾸아’ 같은 외계어를 내뱉으면서 이건 무슨 뜻이냐고 물어봤어요. 그때 아빠가 “그런 말은 없어.”라고 딱 잘라 말씀하시더라고요. 무안한 마음과 함께 어떻게 그런 말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제가 아무리 얼렁뚱땅 지어낸 말이어도 어딘가에서는 사용하는 말일 수도 있잖아요. 《뽀루뚜아》의 첫 장면은 바로 이 에피소드에서 출발했어요. 주인공 다혜는 언니가 어려운 단어로 부모님과 대화하는 걸 보고 자기도 언니처럼 어려운 단어를 물어보고 싶어서 ‘뽀루뚜아’라는 말을 만들어내요. 어린 저는 아버지에게 상상을 차단당했지만 어른이 된 저는 아이들의 상상을 가로막고 싶지 않았어요. 아이들의 엉뚱한 질문에 살갑게 답해주며 상상의 나래를 더 풍성하게 펼칠 수 있게 해주고 싶은 마음이었죠.

 

다혜는 뽀루뚜아라는 단어를 ‘산 아저씨’의 이름으로 붙여주잖아요. 작가님도 다른 존재에게 이름을 붙여준 경험이 있나요?

물론이죠. 가장 가깝게는 지금 같이 살고 있는 강아지 ‘송이’가 있어요. “송이 송이 눈꽃송이 하얀 꽃송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하얀 꽃송이 나무에도 들판에도 동구 밖에도 골고루 나부끼니 아름다워라” 하고 이어지는 동요 ‘눈꽃송이’에서 따온 이름인데요. 송이는 털이 복실보실한 하얀 강아지거든요. 눈이 내리는 날 송이랑 산책할 때면 꼭 이 노랠 불러주곤 해요. 송이의 이름보다 동요가 먼저였지만 노랫말이 꼭 우리 송이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 같아서요. 

 

송이를 꼭 보고 싶었는데 집에 없어서 아쉬워요. 상상력은 그림책을 만들 때 꼭 필요한 요소 같아요. 아이디어가 되는 엉뚱하고 재밌는 상상은 주로 어떨 때 떠오르나요?

멍 때릴 때(웃음)? 감성적인 상태에서 뭔가를 곰곰 생각할 때 특히 상상이 풍성하게 피어나는 것 같아요. 이건 제 생각인데, 상상력은 어릴 때 많이 길러지는 것 같아요. 제 경우에는 어린 시절의 결핍이 상상력을 키우는 긍정적인 요소가 된 것 같고요.

 

결핍이요?

네. 제 어린 시절은 그리 부유하지 않아서 이래저래 결핍이 있었거든요. 어릴 때 정말 갖고 싶어 한 것 중 하나가 바비인형이었어요. 얼마나 가지고 싶어 했는지 꿈까지 꿀 정도였죠. 아무리 가지고 싶어도 인형을 살 형편이 안 되니까 나중엔 인형을 직접 만들게 됐는데요. 제일 먼저 어떤 모양의 인형을 만들지 머릿속으로 그렸어요. 떠올린 수많은 그림 중 하나를 선택하고 엄마 스타킹에 이불 솜을 넣어서 얼굴, 몸통, 팔다리를 만들었죠. 털실을 한 가닥씩 풀어서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만들고 눈·코·입도 실로 꿰맸고요. 하나하나 만들어 그 결과를 확인하면서 창작하던 과정이 얼마나 즐거웠는지 몰라요. 이런 경험이 상상력을 기르는 데 훈련 아닌 훈련이 된 것 같아요. 결국 결핍이 창작의 원동력이 된 거죠.

풍성한 상상 덕분인지 작가님 그림책엔 유독 사람이 아닌 생명체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아요. 동물, 공룡, 산 같은 존재들이죠. 

워낙 혼자 일해온 시간이 길어서 그동안 사람을 폭넓게 만나거나 알아갈 기회가 많지 않았어요. 하지만 사람이 아니더라도 생명들은 늘 곁에 있었어요. 집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들풀, 산, 꽃, 바람… 수많은 생명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사실 집에만 해도 고양이 ‘달고’, 강아지 ‘송이’가 있어서 누군가와 함께 지내는 기분이죠. 자연은 참 신기한 것 같아요. 놀랍도록 정교하게 만들어졌다는 걸 느낄 때마다 더 그런 생각이 들어요. 언젠가 다큐멘터리에서 이파리와 바늘을 확대해서 비교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는데요. 바늘은 매끄럽고 가지런해 보이는데, 막상 확대해보면 우둘투둘하고 거칠더라고요. 반면에 나뭇잎은 아무리 높은 배율로 확대해도 정갈하고 질서가 잡혀 있어요. 확대된 이파리의 모습은 계속 봐도 질리지 않을 만큼 아름답죠. 자연에서 생물을 볼 때면 조물주의 섬세한 손길, 디자인 감각, 유머를 엿볼 수 있어요. 매일 마주하는 송이랑 달고만 하더라도 볼 때마다 얼마나 놀라운지 몰라요. 네 다리로 걷고 털에 둘러싸여 있는 게 귀엽고 신기해서 자꾸 웃게 되죠.

 

송이랑 달고 이야길 할 때마다 미소가 떠나질 않네요(웃음). 그런데 움직임이 있는 애니메이션을 전공하셨잖아요. 비교적 평면적인 그림책 작업이 허전하게 느껴질 땐 없나요?

저는 그림책이 평면적이라고 생각하진 않아요. 머릿속에서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동안 역동적인 장면들이 끊임없이 펼쳐지거든요. 아이디어가 이야기로 뻗어 나가는 과정은 결코 평면적일 수 없어요. 애니메이션과 그림책은 작가 머릿속에서 출발하고 확장된다는 점에서 그 본질은 같을 거예요. 다만, 아웃풋을 영상으로 하냐 책으로 하냐의 차이일 뿐이죠. 또 저는 그림책의 매력 중 하나가 ‘케미’라고 생각하는데요. 글과 그림의 케미, 책장을 한 장 한 장 넘길 때의 케미는 그림책이기에 가질 수 있는 특징 같아요. 독자들이 능동적으로 책장을 넘겨야 하기 때문에 독자가 행위 할 공간을 더 많이 만들어둔 분야라고도 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작가님의 그림책은 다양한 기법을 활용해서 그 케미가 더욱 커지는 것 같아요. 《뽀루뚜아》는 콜라주로, 《궁디팡팡》은 자수로 완성한 작품이었죠.

한 가지 기법을 고수하며 붓 하나로 큰 에너지를 전달할 수 있는 작가들이 간혹 있는데요. 저는 솔직히 말하면 저에게 완전히 최적화된 방식을 아직 찾지 못했어요. 또 제 방식을 찾는다 해도 하나의 기법에 정착하고 싶은 생각은 아직 없어요. 지금까지 그래왔듯 앞으로도 여러 가지 다채로운 작업을 기획하고 거기에 맞는 스타일의 기법을 시도해볼 생각이에요. 저는 이야기가 만들어질 때마다 이것저것 새로운 기법들이 함께 떠오르곤 해요. 위로와 공감에 대해 이야기하는 《궁디팡팡》은 줄거리를 구상하자마자 천에 한 땀 한 땀 자수를 놓아 표현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바느질 자체에 위로의 느낌이 있기 때문에 잘 어울릴 거라고 생각했죠. 

 

처음 해본 자수였다고 들었는데 원화를 보고 깜짝 놀랐어요. 정말 정교하더라고요. 《궁디팡팡》 원화로 전시도 하셨죠?

전시는 지금도 진행 중이에요. 그래서 여기 남아 있는 원화가 얼마 없네요(웃음). 자수를 배운 적은 없어서 그림책 작업을 위해 책이랑 유튜브를 보면서 따라 하며 익혀 나갔어요. 이미 나와 있는 자수로 된 그림책을 참고하기도 했죠. 한 땀 한 땀 수를 놓으면서 그림의 윤곽을 비롯한 선의 느낌을 냈고 색이 필요할 땐 물감을 사용했어요. 물감이 너무 진하다 싶을 땐 또 다른 채색 도구로 어울리는 색감을 내기도 했고요.

 

그래서인지 손으로 만져질 것처럼 입체적이에요. 게다가 음악까지 만드셨잖아요. 책에 악보도 수록한 ‘궁디팡팡송’!

저는 그림책 작가지만 제가 할 수 있는 일에 제한을 두고 싶지는 않아요. 언젠가부터 오디션 프로그램을 즐겨 보면서 음악을 만드는 데도 관심이 생겼는데요. 음악을 배운 적은 없지만 노랠 짓고 부르는 게 재미있어 보여서 만들어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됐어요. 참가자들이 오디션을 통해 한 계단, 한 계단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보면서 저도 성장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이적이나 유희열 같은 뮤지션도 그림책을 만드는데 저라고 노래 못 만들까 싶은 마음도 있었고요(웃음). 떠오르는 대로 흥얼거리고 핸드폰 녹음기로 녹음하면서 샘플을 여러 개 만들었는데요. 그중 특히 마음에 드는 곡을 재미 삼아 편집자에게 보내 주었어요. 그랬더니 얼마 뒤엔 반주가 깔린 노래가 되어 있더라고요. 독자들을 직접 만나는 자리에서는 함께 불러보기도 했는데 저에게도 신선하고 고마운 경험이었어요.

다채로운 작업이 많아서인지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이 파랑, 노랑, 검은색으로만 단출하게 전개된 게 새롭게 느껴지기도 해요.

그런가요(웃음)?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을 작업할 땐 처음부터 자연스럽게 그 세 가지 색상을 떠올렸어요. 특별한 의도가 있던 건 아니에요. 우선 달이 노란색이니까 노랑을 메인 컬러로 삼았죠. 하늘은 파란색으로 작업하되 진해지거나 옅어지게 표현하면서 시간의 흐름을 보여주려고 했고요. 이 색상들을 잡아주는 게 검정의 역할이었어요. 구상 단계에서 달이 제각기 다른 색으로 알록달록하게 떠 있는 모습도 생각했지만 달은 노란색으로 통일하는 게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기에 효과적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특히 노랑은 아기 공룡의 심리를 보여주기 위해 적극 사용한 색이기도 해요. 아기 공룡이 압박감에 시달리거나 긴장했을 땐 거의 쓰지 않았고 “으앙!” 하면서 감정이 터지는 순간엔 전면에 사용하면서 내용의 전달을 극대화했죠. 

 

아기 공룡의 감정이 책장을 가득 메운 그 장면, 정말 좋았어요. 독자들이 특히 좋아한 장면은 어떤 거였어요?

아기 공룡 엉덩이에 노란 반창고가 붙은 그림(웃음)? 뒤표지에 실려 있는 그림인데, 내용과 연결되어서인지 그 그림 이야기를 많이 해주시더라고요. 저도 좋아하는 장면이고요.

 

《100개의 달과 아기 공룡》에서 표현한 달의 맛도 이야기해보고 싶어요. “달콤한 꿀과 시원한 수박의 맛”이라니, 당연히 따듯할 줄 알았거든요.

제가 생각한 단맛은 사탕이나 시럽 같은 당도 100퍼센트의 달콤함이 아니라 과일처럼 신선한 단맛이었어요. 가공하지 않은 본연의 단맛을 떠올리면서 자연스럽게 시원한 느낌과 연결된 것 같아요. 아, 달의 맛을 상상할 때 참고한 열매가 있는데요. 혹시 ‘으름’ 열매를 아시나요? 어릴 때 산속에서 가끔 구해 먹던 열매인데 딱 그런 맛이었어요. 나무색 껍질을 까면 안에 작은 알맹이들이 촘촘하게 채워져 있어요. 석류처럼요. 까만 씨를 하얀 과육이 감싸고 있는 모양인데 그 맛을 상상하며 묘사한 거였어요. 이야기하니까 군침이 도네요(웃음). 

 

아기 공룡은 엄마에게 달을 따 먹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잖아요. 작가님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나요?

물론이죠. 말하려니까 조금 부끄러운데요. 초등학교도 입학하기 전 일인데 집이 워낙 시골이어서 화장실이 재래식이었거든요. 엄마가 같이 가주지 않으면 혼자 가기엔 너무 무서운 곳이었어요. 변소에 빠질 수도 있고, 어둡고, 습하고…. 그런데 어느 날 엄마가 자리를 비웠을 때 배가 살살 아픈 거예요. 혼자 화장실에 가면 귀신이 나올 것만 같아 도저히 못 가겠더라고요. 그래서 마당에 ‘응가’를 했어요(웃음). 부끄럽기도 하고, 야단 맞을 것 같기도 해서 엄마가 돌아왔을 때 이웃집 개가 와서 그랬다고 거짓말을 했는데 엄마가 별 의심 없이 믿어주시더라고요. 그 어린 나이에도 엄마가 진짜 믿는 걸까 싶은 생각이 들긴 했어요. 조용히 치워주신 기억이 나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알면서도 속아주신 것 같아요.

 

사사로운 경험들이 스토리를 만드는 데 큰 자양분이 되는 것 같아요. 다양한 이야기를 자유롭게 풀어내고 있는데, 그림책 작가로서 본인의 강점을 꼽아본다면요?

한 가지에 머물지 않고 계속 시도하려고 하는 마음가짐? 여러 기법을 사용하더라도 제 그림에만 있는 저만의 선 맛도 특징이자 강점인 것 같아요. 저는 그림책엔 작가의 생김새와 태도가 그대로 투영된다고 생각해요. 가끔은 주위를 둘러보다가 남들과 저를 비교하면서 위축되기도 하는데요. 남들과 비교하기 전에 저 자신을 돌아보고 제가 잘하는 걸 살리는 데 집중하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야 제 작업에 당당해지고 더 좋은 작업을 선보일 수 있을 테니까요.

시대의 변화도 그림책 작업에 영향을 미칠 것 같아요. 혹자는 기술의 발전으로 출판업이 사양길에 접어들었다고도 하잖아요. 그림책 작가로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시대의 흐름에 영향을 받는 분야와 아닌 분야가 있다고 생각해요. 시대의 흐름을 유연하게 타고 가는 매체는 라디오 같아요. 이전엔 아날로그 매체였지만 지금은 스마트 기기와 호환하면서 제 나름으로 발전해나가고 있잖아요. 그래서 현대 사람들도 라디오를 구시대적 산물로 생각하지 않고 기술에 발맞춰 특색을 잘 살려가는 매체로 인식하는 것 같고요. 이런 행보가 라디오가 성장해나가는 방식이라면 책은, 특히 그림책은 라디오와는 좀 다른 것 같아요. 물론 그림책도 스마트 기기로 경험하도록 제작할 수 있겠지만 앞서 그림책의 매력이라 이야기한 ‘케미’를 지키기 위해서는 있는 그대로를 유지하는 게 최고의 방법 같아요. 시대가 변했다고 무언가를 덧대기보다는 그림책 본연의 것을 지키는 거죠. 그 안에서 콘텐츠를 표현하는 데 유연함과 다양성을 갖춘다면 시대가 변해도 꾸준히 사랑받을 수 있지 않을까요? 이거 너무 보수적인 생각인가요(웃음)?

 

동감해요. 아날로그 한 물성이 책의 매력이니까요. 작가님은 어떨 때 그림책 작가가 되길 잘했다고 생각하나요?

사실 그림책 작가는 너무 하고 싶었다기보다는 처음에 말했듯이 그림으로 일감이 들어오지 않으니 스스로 일을 주기 위해 시작한 거였잖아요. 근데 생각해 보면 그림책 작가가 경제적으로 큰 도움이 되는 직업은 또 아니거든요. 초기엔 ‘그림책 작가를 왜 하고 있지? 계속해야 하나? 나보다 잘하는 사람도 많은데….’라는 생각도 많이 했어요. 그런 상태로 10년 정도 방황한 것 같아요. 그러는 동안 하나둘 책을 내면서 저만의 재능을 발견하게 됐어요. 설령 작다고 할지라도 제가 가진 재능이 있단 걸 알게 된 거죠. 그림책 작가라는 직업은 저자신을 발견하고 표현하는 데 좋은 직업인 것 같아요. 그래서 시간이 갈수록 이 직업이 좋아지는 거고요.

 

자기가 하는 일을 ‘좋은 직업’이라 말하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아요. 어떤 의미에서 좋은 직업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그림책을 완성할 때마다 제가 어떤 사람인지 알게 됐거든요. 저는 감성적이고, 또 무언가 상상하고 구상하며 이야기로 만드는 걸 좋아하는 사람이에요. 아이디어를 내고 그림책을 기획하는 건 즐거운 일이죠. 아이디어도 순간순간 잘 떠오르는 편이고 기획하는 게 힘들지도, 괴롭지도 않아요. 물론 머릿속에 있는 걸 밖으로 표현하는 게 어려울 때도 있지만 더 좋은 작업을 위해 이것저것 배우며 풍성하게 표현하고 싶다는 의지도 있어요. 그림책 작가가 되길 잘했다는 생각은 특별한 사건 없이도 점차 진해지는 것 같아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더 좋아지는 직업이죠.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말이네요. 우린 또 어떤 모습으로 만나게 될까요?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이 정말 많아요. 그림책 아이디어는 벌써 다섯 개가 훌쩍 넘거든요. 하지만 삽화 작업도 하고 있어서 삽화 일이 바빠지면 그림책은 우선순위에서 밀리게 돼요. 그래도 천천히 기획해서 다양한 작업을 선보이고 싶어요. 요즘은 그림책 작가들과 컬래버레이션을 해보고 싶단 생각도 자주 하고 있는데요. 감사하게도 좋은 기회로 제가 쓴 글을 다른 그림책 작가에게 건넬 수 있게 됐어요.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그런 책이 한 권 나올 것 같아요. 머지 않게 ‘글 이덕화’로도 만나볼 수 있겠죠? 하고 싶은 게 많기 때문에 이 모두를 다 해보기 위해선 그림책 작가로 롱런하는 게 중요할 거예요. 그래서 아무리 바빠도 습작에 소홀히 하지 않으려고요. 앞으로도 머릿속에 가득한 아이디어들을 다양하게 풀어내 볼 테니 재미있는 작업들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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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주연

포토그래퍼 이종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