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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어 목욕탕》 최민지 작가
문예 창작을 전공했고 그림책을 만들어요《문어 목욕탕》, 《코끼리 미용실》을 쓰고 그렸어요.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는 이야기를 쓰고 있어요. 넓고 시끄러운 작업실을 갖고 싶어요.
축하해요. 《문어 목욕탕》이 세 번째로 어린이들이 좋아하는 책으로 뽑혔어요.
좋아하는 책들과 함께 후보에 올라서 기뻤어요. 3위라니 더 좋네요. 감사합니다.
《문어 목욕탕》이 첫 책으로 알아요. 문예 창작을 공부했는데, 그림을 그리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대학교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이지현 작가님의 《수영장》과 이수지 작가님의 《토끼들의 밤》을 읽어주셨던 게 기억나요. 성인이 되어 처음 읽은 그림책이었어요. 졸업하고 나서 다시 그림책을 읽으면서 푹 빠졌어요. 온종일 그림책만 읽는 날도 있었어요. 잠들기 전에 다음 날 읽을 그림책 생각하며 설레기도 했고요. 그림책으로도 이야기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그림책을 쓸 때는 시와 소설을 쓸 때와는 다른 자세가 되는 것 같아요. 좀 더 노는 기분이 들어요. 그림책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고 소설로만 쓸 수 있는 이야기가 있고 시에서만 할 수 있는 말이 있다고 생각해요. 어떤 방식으로든 계속 이야기를 하고 싶고 그렇게 하려고 해요.
왜 그렇게 갑자기 그림책에 훅 빠진 거 같아요?
어른이 되어 다시 만난 그림책의 세계는 정말 놀라웠어요. 저는 글로만 된 문학에 익숙했는데 그림책은 글과 그림이 함께 있잖아요. 그림이 이야기를 하는 게 매력적으로 느껴졌어요. ‘내가 모르는 이런 세계가 있었다니.’ 억울하기까지 했죠. 그림책을 읽을 때, 저에게만 말을 거는 기분이 들어요. 저를 아주 멀리 보내주기도, 깊은 곳으로 데려가기도 해요. 말로 하면 한 문장으로 끝날 수 있는 간단한 이야기일지라도, 절대 단순하지 않아요. 들여다볼수록 풍성해지는 이 세계가 좋아요.
그럼, 《문어 목욕탕》을 내기 전에는 그림을 안 그려본 거예요?
그리기를 좋아하지는 않았어요. 읽거나 쓰는 것은 좋아했지만요. 그림책을 좋아하면서 그림을 좋아하게 된 것 같아요. ‘잘 그릴 수 있을까?’ 걱정하기도 전에 시작해버렸어요. 하고 싶은 마음이 더 컸나 봐요. A4 용지로 책 만드는 거 아시죠? 그렇게 미니북을 많이 만들었어요. 한 번에 열 개를 만들기도 하고요. 미니북을 만들다가 그중에서 《문어 목욕탕》을 그림책으로 만들고 싶어졌어요. 조금만 더 길게 늘려볼까? 했는데 70페이지가 넘어갔어요. 제가 소설의 호흡을 따라갔나 봐요. 줄이느라 애를 먹었어요.
책에 못다 한 이야기가 있겠네요?
원래는 결말이 달랐어요. 이 이야기가 판타지가 아니라 일상이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요. 어릴 때 판타지를 보고 서사의 결말이 뚝 끊기면 허무함을 느꼈어요. ‘이건 환상일 뿐이야. 현실이 아니야.’라고 말하는 거 같았거든요. 그래서 영화나 소설의 뒷이야기를 제 맘대로 바꿔 쓰곤 했어요. 문어가 아이의 일상으로 들어가는 과정을 좀 더 그리고 싶었는데, 너무 늘어지더라고요. 아이가 목욕탕을 나올 때 문어가 가방에 들어있는 장면으로 마무리했어요. 그 장면만으로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임을 보여줄 수 있겠다 싶었죠. 그다음 장면은 독자가 상상해주면 좋겠어요.
《문어 목욕탕》을 읽고, 제 안에 ‘목욕탕은 엄마와 가는 곳’이라는 편견이 있었다는 걸 알았어요.
문득 엄마 없는 여자아이가 목욕탕에 가고 싶으면 어떻게 하지, 걱정됐어요. 미니북의 첫 장면에 ‘나는 목욕탕에 가보고 싶은데 엄마가 없어서 못 간다. 아빠랑은 가기 싫다.’고 쓰고 나서 다음 장면을 상상했어요. ‘나라면 어떻게 할까. 누가 씻겨주면 좋을 텐데.’ 그러자 문어가 빨판으로 때 밀어주는 이미지가 바로 떠올랐어요. 저는 미니북으로 이야기를 시작할 때가 많아요. 《문어 목욕탕》도 처음 만든 미니북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요.
‘내 짝꿍 민지’가 혹시 작가님이에요? 그렇다면 목욕탕 속에서 찾아봐야겠어요(웃음).
일부러 화자의 이름은 알려주지 않았어요. 독자들이 좀더 자신의 이야기로 생각하며 읽었으면 좋겠어서요. 이야기를 더 실제처럼 느끼게 하려고 짝꿍에게는 이름을 지어주고 싶었는데 ‘내 짝꿍은 민지’가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민지라는 이름이 많아서 짝꿍 중에 하나는 민지일 거 같았어요. 제 이름을 책 안에 넣고 싶기도 했고요. 목욕탕 안에 저는 없지만, 민지 가방은 있어요(웃음).
아이가 먹물 목욕탕에서 문어의 도움으로 해파리, 복어, 새우 등이랑 한바탕 놀면서 몸을 씻어요. 일상에서 탈출하여 시원한 해방감을 느낄 수 있었어요. 어떻게 작업했나요?
《문어 목욕탕》은 제가 독립하기 전이라 이모네 집에 살면서 완성했어요. 작업할 공간이 없어서 카페에서 그림을 그렸는데 눈치가 보여서 기분이 좋진 않았어요. 그런데 엉덩이 씻는 장면을 그릴 때 기분이 좋아졌어요. 엉뚱한 표정 그릴 때도요. 인물의 표정을 저도 모르게 따라 하면서 그리더라고요. 그걸 깨달았을 때 부끄럽고 웃겼어요. 카페에서 표정 관리하며 그리느라 힘들었죠. 문어가 씻겨줄 때는 의식적으로 씻는 기분을 느끼려고 했어요. 실제로 존재할 것 같다고 생각하며 쓰고 그렸어요. 아이들이 “문어 목욕탕 정말 있어요?” 물으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답해요. 그랬으면 좋겠고요. 카페에서 마지막 장면을 그리던 날 신기한 일이 있었어요. 마무리를 하고 집에 가려는데 가방에서 먹물이 터져서 뚝뚝 떨어지더라고요. 이야기의 마지막 장면이랑 똑같아서 너무 신기했어요. ‘역시 문어 목욕탕은 실제 이야기였어.’ 생각했어요. 저에게 이 이야기가 더 실재처럼 믿어졌죠.
《문어 목욕탕》 캐릭터 중 애정이 가는 친구가 있다면요?
해파리가 귀여워서 좋아요. 그래서 제 사인도 해파리예요. 비슷하게 생겼는데 전부 다 다른 캐릭터예요. 아이와 헤어질 때 슬퍼하는 해파리도 있고 웃으며 헤어지는 친구도 있어요. 아, 더미북에는 없었는데 추가된 장면도 있어요. 잡아먹히기 직전의 작은 물고기가 있거든요. 책이 출판되기 전에 상상마당에서 전시를 했는데, 어떤 어린이가 얘 먹히는 거냐고 묻더라고요. 곧 잡아먹힐 거 같다고 너무 슬퍼하길래, 책으로 만들 때 작은 물고기 상황을 뒤에 추가했어요. 무사히 살아남았다는 걸 보여준 거예요.
품고 있는 이야기가 많아 보여요. 머릿속 상상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은 없는지 궁금해요.
이야기는 금방 떠올라서 미니북도 빨리 떠오르는 편인데, 원화를 그릴 때가 어려워요. 그림을 배우지 않았다는 생각 때문에 스스로 불안하게 만들 때가 있었어요. 어떻게 해야 이 장면에서 내가 생각하는 느낌을 잘 전달할 수 있을까, 이게 최선인가, 더 나은 이미지는 없을까, 싶어서요. 그리고 이게 책으로 나와야 하니까 조심스러워요.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하니까요. 만약 문어를 그린다면, 제가 문어에 대해 모르는 건 없는지 계속 의심해요. 다리가 여덟 개인 걸 몰라서 아홉 개로 그리면 안 되니까요. 의도한 게 아니라면요. 《문어 목욕탕》 그릴 땐 벗은 몸을 그려봐야 할 거 같아서 누드 크로키 모임에도 나가봤어요.
《코끼리 미용실》을 읽을 때 제 아이는 머리 스타일을 결정하고 책처럼 ‘코끼리 코’를 세 번 했어요(웃음). 헤어롤을 말고 있는 유니콘을 좋아했고, 귀 끝 염색하는 토끼도 신기해했어요. 작업하면서 즐거웠을 거 같아요.
파마하고 있는 건, 사실 하얀 말인데 유니콘으로 할 걸 그랬나 봐요(웃음)? 아이가 코끼리 코 세 번 했다니, 너무 신나요. 저도 그리면서 코끼리 코 해봤거든요(웃음). 처음에는 놀라고 긴장되고, 처음 가보는 공간에서 느껴지는 아이의 감정을 따라가려고 노력했어요. 코끼리와 만나서 씨익 웃을 때는 코끼리처럼 웃어보고요. 아이가 놀란 표정으로 바라보는 코끼리 미용실은 어떤 곳일지 상상했어요. 공간을 코끼리의 것들로 하나씩 채웠어요. 코끼리가 주인이니까 커다란 과일로 바구니를 채우고, 코끼리를 닮은 물건을 구석구석 배치했어요. 기린을 좋아해서 손님으로 넣었고요. 특히 염색표 그릴 때 너무 재미있었어요. 회색이 아니라 ‘코끼리 색’, 노란색이 아니라 ‘바나나 색’이잖아요. 코끼리가 직접 적은 거라 그렇답니다(웃음). 여기서는 손님들이 읽고 있는 책으로 이 세계를 진짜처럼 보여주고 싶었어요. 잡지의 기사가 그 역할이에요.
닮고 싶은 작가가 있나요?
저는 한국 그림책을 보면서 그림책을 좋아하기 시작해서 좋아하는 국내 작가들이 많아요. 사이다, 서현 작가 좋아해요. 그리고 최근 전시를 연 데이비드 위즈너 작가도 좋아해요. 《구름공항》을 처음 읽었는데 작가가 그 세계를 믿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 설명 없이 우리를 생생하고 멋진 세계로 데려가 주는 게 좋아요. 저도 그 세계가 믿어지고요. 환상적인 이야기가 사실적인 이미지와 만나니까 더욱 생생하게 다가와요. 전시를 보고 더 좋아져서 작가에게 편지를 쓰기도 했어요.
지금 작업 중인 그림책은 어떤 이야기예요?
이 질문이 가장 좋아요(웃음). 항상 작업 중인 책에 대해 말하고 싶어요. 《마법의 방방》이라는 책이고, 올해 나올 예정이에요. 원하고 믿는 대로 이뤄지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문어 목욕탕》과 《코끼리 미용실》하고는 결이 좀 다를 거 같아요. 심심해 마을에 사는 어린이가 너무 심심해서 마법이라도 이뤄졌으면 좋겠다, 소원을 빌죠. 그러면서 하늘에서 방방이가 떨어진다는 내용이에요. 여기서도 이게 꿈이 아니었다는 장치가 있어요. 마법이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이야기를 하고 싶어요.
《문어 목욕탕》 무삭제판 버전
문어 목욕탕의 최초 결말을 공개해요. 하지만 이건, 결말의 또 다른 버전일 뿐이에요. 여러분만의 뒷이야기를 마음껏 상상해보세요.
에디터 김현지
포토그래퍼 이요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