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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에서 적은 열흘의 일기
배에서 적은 열흘의 일기
피스앤그린보트는 일 년에 한 번 일본인과 한국인이 함께 띄우는 아주 큰 배다. 이 배가 열흘간 항해와 정박을 반복하는 동안 배에 탄 천 명의 승객들은 서로 인사하고 이야기 나누다가 친구가 된다. 모두 어떤 대화를 하다가 웃고 우는지 모르지만, 내 경우에는 이런 주제들이 기억난다. 탈핵 운동이 취미인 일본 아저씨, 원자폭탄이 떨어지는 바람에 가족을 잃은 할머니,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는 젊은 여자. 그리고 이런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들어주는 사람들. 우리는 모두 뒤섞여 밥을 먹고 노래도 불렀다. 매년 동아시아의 여러 나라를 여행하는 이 배는 올해 러시아의 블라디보스토크와 일본의 홋카이도, 나가사키, 후쿠오카를 각각 하루씩 거쳤다. 이렇게 명목상 여러 목적지가 있긴 한데, 배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 때문인지 나는 종종 이런 생각을 했다. ‘어쩌면 목적지는 하나.’ 뱃고동 소리를 들으며 보낸 며칠 간의 일기를 여기에 옮긴다.
8월 2일
부산 영도항에 도착해 출국 절차를 거쳤다. 바쁘게 움직이는 스태프들이 하는 얘기를 우연히 들었는데, 이번 피스앤그린보트에는 한국인과 일본인이 각각 500명 정도 탑승한다고. 한일 간의 항해를 시작한 지 올해로 10주년이 됐지만, 이렇게 많은 인원은 처음이라는 얘기도 있었다. 내가 알기로 그중에는 이미 몇 번이나 배에 올랐던 사람들도 많았다. 특히 일본 사람들. 재작년 내가 이 배를 처음 탔을 때 봤던 사람들도 더러 보여 그중 한 명에게 느린 한국어로 인사를 건넸더니 그가 내게 한국어로 답을 해왔다. “한국말 연습했어요. 작년부터.” 나는 그 사람이 좋아서, 그리고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서 얼떨결에 인사를 두 번이나 했다. 그는 두 번 웃어 주었다. 그와 헤어져서 나는 방에 짐을 대충 던져놓고 갑판 위로 나갔다. 아직은 한적하지만, 오늘 저녁엔 출항을 축하하는 사람들로 갑판이 가득 메워질 것이다.
8월 3일
본격적인 선내 활동이 시작되었다. 배가 바다를 건너 다음 목적지로 향하는 동안 배 안에서는 갖가지 프로그램들이 진행되는데, 육지에서부터 미리 준비된 정규 프로그램들과 승객들이 배에 올라 즉흥적으로 만들어 진행하는 자주기획 프로그램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나는 낮에 소설가 김연수의 강연을 듣고 저녁엔 기타 공연을 봤다. 그리고 바다 한가운데 서 있는 순간을 즐기려고 중간중간 갑판에 나가 맥주 마시는 일도 잊지 않았다. 저녁의 기타 공연을 진행한 일본인 수가노 이쓰오 씨는 매해 기타를 메고 이 배에 오르는 사람으로, ‘간짱’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다. 그의 자주기획이 성공적으로 끝난 걸 축하하기 위해 우리는 그의 방에 모여 맥주를 마셨다. 간짱 아저씨는 배에서 만나는 사람들에게 종종 취미를 묻는데, 그날도 역시 그랬다. 그리고 모두가 대답한 뒤 누군가의 질문으로 이번에는 그의 취미를 듣게 되었다. “기타 연주와 테니스 그리고 탈원전이 나의 취미입니다.” 그 자리의 모두가 그의 대답을 곱씹고 있을 때, 그는 탈원전이 가장 주된 취미라고 순서를 고쳐 말했다.
8월 4일
열흘간 거치게 될 네 개의 기항지 중 첫 번째 장소인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에 닿았다. 각각의 기항지에는 환경과 역사, 평화 등의 주제와 관련된 코스가 있고, 승객들은 배에 타기 전에 신청을 마친다. 물론 자유여행을 할 수도 있다. 이곳에서 내가 고른 코스는 항구와 한 시간 정도 거리의 섬에 들어가 해변을 따라 걷는, 담백하기 그지없는 코스였다. ‘담백했으면’ 하고 바랐는데 당황할 정도로 담백한 코스. 숲과 해변을 쭉 걸어가는 동안 동행한 사람들이 진흙에서 넘어지는 소리가 아니었다면 분위기가 더 딱딱했을 것이다. 긴 산책을 마치고 배에 돌아오기 전에는 잠시 시내에 들러 러시아 술을 사고 길거리 음식도 먹었다. 저녁 늦게 다시 배에 모인 일행이 각자의 여행이 어땠는지 늘어놓고 있을 때 간짱 아저씨가 기타를 메고 우리 옆을 지나갔다. 왜인지 모르지만 약간은 지쳐 있었는데,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컵과 술을 드렸다. 몇 분 뒤 아저씨는 자신이 두 번째로 좋아하는 한국 노래라며 기타를 꺼내 연주했다. ‘전화카드 한장’이라는 그 곡은 가사가 참 좋았다.
8월 5일
저녁에 방으로 배달되는 선내 신문으로 다음 날 있을 프로그램을 확인할 수 있는데, 어제 신문에는 꼭 들어보고 싶은 강연이 적혀 있었다. ‘재한 피폭자 증언’이라는 제목과 함께 ‘히로시마 피폭 피해자 이곡지 님으로부터 증언을 듣습니다.’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다. 오전부터 시작된 그 증언에는 여섯 살 무렵 피폭을 겪은 이곡지 할머니와 훗날 그녀의 남편이 된 김봉대 할아버지가 나왔다. 할머니는 마이크를 건네받자마자 울었다. 그리고 겨우 꺼낸 한 마디는 ‘만나서 반갑습니다’가 아닌, ‘만나서 감사합니다’라는 인사였다. 할머니는 그 후로 강연이 끝날 때까지 마이크를 잡지 못했다. 그녀의 남편, 김봉대 할아버지가 말을 이었고 한 시간 동안 피폭 2세로 늙은 부모보다 일찍 세상을 떠난 아들에 관해 이야기했다. 그의 아들은 죽기 전까지 피폭 2세가 겪은 불행한 일에 대해 일본과 한국에 책임을 물었고, 김봉대 할아버지는 오늘도 아들을 위해 끝없는 반핵운동을 하고 있다. 통계에 따르면 현재 한국 국적의 피폭 2세는 2,300명 정도라고 한다.
8월 6일
러시아 다음의 기항지는 일본 북부의 홋카이도, 오타루 항이었다. 눈의 고장으로 유명한 곳. 이곳에서 내가 선택한 코스는 블루베리 농장에 들려 무농약 블루베리를 실컷 따먹고 ‘에코 빌리지’라는 곳으로 이동해 순환적인 삶을 실천하고 있는 사람들의 강연을 듣는 것이었다. 배에서 내린 우리 일행은 25인승의 오래된 버스를 타고 ‘요이치’라는 곳으로 이동했다. 버스 창밖으로 보이는 집들은 눈이 쌓이지 않도록 모두 경사가 큰 지붕을 얹어 놓았다. 더운 날씨에 몸은 늘어져 있었지만, 나는 잠시 지붕에 쌓인 눈이 미끄러져 떨어지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었다. 조용한 겨울 아침에, 아무도 보지 않을 때 후두두 눈이 떨어지는 모습. 홋카이도에서 우리를 이끌어준 일본의 젊은 가이드는 요이치 여행의 시작을 ‘풋 패스’로 열고 싶다고 했다. “요이치를 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 생각에 이곳을 느끼는 가장 좋은 방법은 그저 걷는 것입니다. 더 좋은 방법도 물론 있겠지요(웃음).” 그를 따라 걷는 동안 우리는 홋카이도 자작나무 숲을 지나고 안개 낀 포도밭을 지났다.
8월 7일,
8월 8일
기항지 간의 먼 거리 때문에 이틀간은 꼼짝없이 배 안에 있게 되었다. 보통 이 기간에는 배 안의 사람들이 어떤 ‘작정’ 같은 걸 하고 다니기 때문에 친구를 만들기 좋은 것 같다. 창밖으로 무한한 바다의 푸른색만 가득하고 하릴없이 돌아다니는 동안 봤던 이를 계속해서 마주친다. 어제 배운 타국의 언어로 인사하는 사람들, 벌써 친해져서 서로를 놀리는 어린아이들, 배의 후미 쪽 으슥한 계단에 앉아 서로 비밀을 털어놓는 젊은 사람들, 끊임없이 마작을 두거나 멍하니 바다를 바라보는 노인들도 많다. 이때에는 저녁의 술집도 유독 붐빈다. 재 작년에는 태풍을 만나는 바람에 3일 동안 배 안에 갇혀 있었는데, 그때 사람들 얼굴이 기억난다. 두려움도 조금 있고, 가고 싶던 기항지에 가지 못해 실망한 기색이 있었지만, 한편으론 설렘이 담겨 있었다.
8월 9일
세 번째 기항지는 일본 나가사키였다. 앞서 기항지에서 조금 여유를 부렸다면, 이번에는 역사적으로 무거운 사건을 품고 있는 ‘군함도’를 찾아갔다. 1900년대 일본 경제부흥의 요지였던 이 섬은 최근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어 큰 주목을 받았다. 하지만 우리가 이곳을 찾은 이유는 은폐된 사실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일제강점기 때 이곳으로 강제징용된 한국인 800명의 끔찍한 삶. 보통 12시간, 길게는 16시간씩 일을 시키며 죽지 않을 만큼의 밥을 줬다고 한다. 탈출을 시도한 사람들은 육지에서 18킬로미터나 이어진 바다를 건너지 못했고, 떠내려가 다른 마을에 묻혔다고 한다. 알면 알수록 처참한 이야기였다. 하지만 섬을 찾는 외국인들 심지어 일본인들도 이 사실을 알 수가 없다. 숨기려 하기 때문이다. 이 얘기를 적은 팻말이 겨우 하나 세워질 거라는 얘기를 들었지만,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됐다는 소식이 그보다 크게 들렸다. 나가사키에 도착한 날 먼바다에 태풍경보가 있어서 우리는 군함도에 내리지 못하고 주변을 빙빙 돌며 섬을 지켜봤다. 과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술렁였다. 관광하기 위해 배에 탄 사람들은 그 모습에 분개했고 기장에게 항의해 상황을 정리했다. 자리에 앉아 있는 동안 경험했던 무기력은 여태껏 느꼈던 것과 조금은 다른 것이었다.
8월 10일
마지막 기항지 후쿠오카에서는 유후인을 찾았다. 일본에 왔으니 온천을 한번 해볼까, 하는 마음으로 고른 코스였다. 버스를 타고 우거진 삼림을 뱅뱅 돌아 도착한 그곳에는 좁고 아름다운 길이 있었다. 곳곳에 온천도 있었다. 온천에서 보낼 수 있는 시간이 한 시간 정도밖에 되지 않아 아쉬웠지만, 그래도 산속에 둘러싸여 땀을 흘리고 있던 시간이 특별하게 기억난다. 가이드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는 2,000미터가 넘는 산이 스물두 개나 있다고 한다. 산자락마다 가지고 있을 물줄기와 수북한 숲과 축축한 흙, 동물들의 표정을 상상해 보면 일본의 원전 사건이 훨씬 더 안타깝게 다가온다. 마지막 기항지여서 그런지 유후인에서 항구로 향하는 길이 벌써 부산을 향하는 길처럼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내가 기억하는 풍경은 버스 밖으로 끝없이 펼쳐지던 숲과 드문드문 보이던 옛 마을이었다.
8월 11일
배에서 내려서 곧장 부산역으로 향했다. 일행과 뜨거운 국밥을 먹고 서울역으로 가는 열차에 몸을 실었다. 어지럽고 또 졸음이 밀려왔다. 사람들은 그게 땅 멀미라고 말했다. 잠들기 직전에는 조타실에 들어갔을 때 촬영했던 바다 영상을 봤다. 파도 한점 없었던 평평한 바다를 1분간 찍은 시시한 영상이었다. 그렇게 큰 배가 지나가도 괜찮던 곳이라는 게 믿기지 않았다.
에디터 박선아
글·사진 전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