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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셰익스피어
11월의 타임리프
윌리엄 셰익스피어
빅토리아 여왕은 여름을 맞이하여 ‘셰익스피어 배케이션Shakespeare Vacation’을 시행했습니다. 궁정 사람들이 그동안 자주 찾지 못한 서재로, 서점으로 돌아가 책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선물한 것이지요. 단어 사이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그의 시대로부터 450여 년이 흘렀습니다. 그리고 그는 여전히 우리의 책방에 머무르고 있어요. 책방이라는 공간 안에서 우리와 그는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는 셈이에요. 자, 그럼 두 눈 크게 뜨고 계세요. 이제부터 타임리프가 시작됩니다.
| 서울광장 변두리 으슥한 골목
안녕하세요, 저희 시간여행사는 옛 시절로 돌아가 보고 싶었던 인물을 만나는 즐겁고 유쾌한 여정을 선사합니다. 그동안 자주 들어본 이름들 사이로 궁금했던 것들이 많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시간여행에도 반드시 지켜야 하는 사항들이 있습니다. 첫째, 절대 인물에게 말을 걸어서는 안 됩니다. 역사 속 인물을 만나고 설레는 마음에 말도 걸어보고 싶고 꼭 하고 싶었던 질문도 남기고 싶겠지만 그의 인생에 개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명심하셔야 합니다. 둘째, 시간을 엄수해야 합니다. 앞으로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제가 포토 명당도 알려 드리고 왕왕 자유시간도 드리겠지만, 반드시 주어진 시간을 엄수해야 합니다. 1초도 지체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이용한 이 여행은, 시간이 중심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X를 찾으세요. 저희 투어 상품의 가장 큰 묘미기도 하죠. 아마 이것 때문에 여기 오신 분들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여행 중간에 숨겨둔 X를 찾아야 하는데요, 보물찾기 같은 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종이냐고요? 아니 꼭 그런 건 아닌데, 보통 그 시대와 잘 어울리지 않는 무언가를 저희가 숨겨두었습니다. 그것을 찾으시는 분께는 다음 투어를 함께할 수 있는 무료여행권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자, 그럼 다들 준비되셨나요? 저기, 애기야. 뛰면 안 되는데 자리에 앉아주겠니? 아저씨, 거기 그거 만지시면 안 돼요. 여러분, 들뜬 마음으로 이 한자리에 모이셔서 감정을 주체하시기 어려우리란 것 잘 이해합니다. 하지만 귀중한 여행이 안전하게 잘 끝날 수 있도록 제 말을 잘 따라주시길 바랍니다. 자, 이제 400여 년 앞으로 우리는 이동할 겁니다. 중간에 귀가 멍멍할 수 있는데, 그럴 때는 이렇게 코를 잡아 막은 뒤에 킁, 하면 시원하게 뚫릴 거예요. 중간에 준비된 기내식을 함께 즐기시면 됩니다. 각자 자리에 착석하신 뒤, 안전벨트를 꼭 매어주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런던 중앙광장
아아, 마이크 잘 들리나요? 여러분, 몸이 조금 찌뿌듯하죠? 다들 시원하게 기지개 한 번 켜고 가겠습니다. 으아아아아! 시원하네요. 먼저 셰익스피어에 관하여 짧게 이야기하고 가겠습니다. 윌리엄 셰익스피어는 1564년 스트랫퍼드어폰에이번Stratfordupon-Avon에서 출생했습니다. 정확한 출생일은 알려지지 않았지만 4월 26일, 지역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은 것으로 그 즈음 날짜이리라, 추측할 뿐입니다. 저희가 지금 찾아온 이곳은 빅토리아 여왕이 영국의 번영을 절정기로 올린 때예요. 영토 확장과 탐험, 발견의 시대이고 한창 신흥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죠. 많은 사람들이 셰익스피어가 결혼한 줄을 모르더라고요. 더 놀라운 것을 알려드리자면, 그는 여덟 살 나이가 많은 연상의 여인과 혼전임신으로 결혼하게 되었답니다. 그게 그의 나이 18살 때의 일이죠. 조금 더 흥미로울 이야기를 전하자면, 그의 섬세한 단어 사용과 이야기 구성력을 보고 로맨틱한 연애 기술을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 텐데 그는 부인과 사이가 썩 좋은 편은 아니었어요. 그의 작품 중 《십이야》에는 연상의 여자와 결혼하지 말라는 대사가 등장할 정도죠. 실제로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아내에게 상속한 것은 바로 집에서 두 번째로 좋은 침대였어요. 아주 놀랠 노자죠? 워낙 그에 관해서 알려진 게 거의 없어서 이런 이야기가 조금 흥미롭게 들리기도 한답니다. 앗, 저기 셰익스피어가 지나간다! 여러분 조용히 해주세요. 저희 셰익스피어 작가님 놀라십니다. 다들 조용히 해주세요. 너무 쳐다보지 마세요. 이동할 때 처음에 연습한 대로 자연스럽게 행동해주세요. 안 그럼 우리가 이방인이라는 것을 눈치챌 테니까요. 걱정 마세요. 이따가 극장에 가면 지금보다는 더 자유롭게 그를 엿볼 수 있답니다. 자, 다시 저를 주목해주세요. 처음에 런던에서 작가로 데뷔했을 때, 그를 싫어하는 사람들이 무척 많았어요. 정확히는 시기하는 사람들이 많았죠. 이런 기록이 남아 있기도 해요. “갑자기 출세한 까마귀 한 마리가 있다. 다른 새의 깃털로 장식을 하고 배우의 가죽으로 호랑이 심장을 둘러싸고 운도 맞지 않는 시를 자랑스레 떠벌린다. 제 딴에는 만능 재주꾼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시골 출신일 뿐이다.” 실제로 그는 다양한 소재로 글을 쓸 수 있었어요. 시와 소네트, 초기 희극과 역사극을 두루 썼으니까요.
| 허름판 노천 카페
자, 다들 커피 한 잔 하시면서 마음을 조금씩 안정시켜주세요. 다들 셰익스피어 작가님의 수려하고 출중한 외모에 반한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 그랬답니다. 그러면 마저 커피 마시면서 제 얘기 들어주시면 됩니다. 극장에서는 자꾸 그를 불러들였고, 더 많은 수의 작품을 요구했어요. 그의 작품은 굉장히 상업적이었고, 인기가 많았죠. 그가 런던에서 머무르는 20년 동안 37편의 작품을 만들었으니 아주 많은 작품을 완성한 편이죠. 항상 연극에만 몰두했는데, 오전에는 리허설을 하고 오후에는 고민을 하고, 저녁에는 글을 썼어요. 그러니, 아까 전에 저희가 본 모습은 리허설하러 간 모습입니다. 아시겠죠? 이렇게 인기가 많으니까 상당한 재력가라고 생각할 거예요. 물론 그런 편에 속할 테지만 우리가 있는 이곳의 현재는 종이가 무척 비싸요. 그리고 밤에 작업을 하니 당연히 양초와 등불이 필요하지 않겠어요? 이런 것들이 너무 비싸서, 가족들과 떨어져 지내며 가정을 부양해야 하는 그에게 부담이 되었을 겁니다. 그래서 그는 선술집에서 주로 글을 썼죠. 밥을 한 끼 먹으면 등불을 오랜 시간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게 탄생한 작품이 무어냐고요? 바로, 《로미오와 줄리엣》 그리고 《한여름 밤의 꿈》이죠. 다들 박수 한번 주세요!
허미아 아, 슬픈 일이네요! 남의 눈으로 사랑할 대상을 선택하다니.
라이샌더 아니면 비록 사랑하는 두 사람의 뜻이 잘 맞는다 하더라도 전쟁이나 질병, 죽음과 같은 것들이 두 사람의 사랑을 덮쳐서 석탄처럼 새까만 밤중에 번쩍 하면서 셍을 비추고는 사람들이 ‘저것 봐!’ 하고 말 할 사이도 없이 어둠 속으로 묻혀버리는 번갯불처럼 덧없는 것으로 만들어버리다니! 이렇게 생동하는 빛을 발하는 아름다움이란 순식간에 덧없이사라지게 마련이지.
허미아 진실한 사랑을 나누는 연인들이 언제나 그렇듯 쉽게 좌절해왔다면, 아마 운명이 정해놓은 규칙이라고 해야겠죠. 하지만 시련이 와도 인내하는 법을 배울 필요가 있습니다. 사랑에는 반드시 따라다니는 비관적인 생각과 꿈과 한숨, 희망과 눈물 같은 사랑의 동반자들처럼, 그것은 언제나 만나게 되는 좌절이 아닐까요.
– 윌리엄 셰익스피어, 《한여름 밤의 꿈》 중에서
맹목적인 사랑에 관한 몽환적인 상상력이 극대화된 《한여름 밤의 꿈》 안에서 허미아는 정략 결혼을 시키려는 아버지의 강압을 피해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과 도망치는 당찬 인물로 그려집니다. 자신이 진정 원하는 것을 능동적으로 찾아가는 모습을 보여주죠. 하지만 그의 연극은 모두 남성 배우로 이루어져 있었어요. 여주인공은 아주 경험이 많은 남성 배우가 맡았고, 《로미오와 줄리엣》의 경우 줄리엣은 변성기가 아직 오지 않은 소년이 맡았답니다. 아주 흥미롭죠?
| 글로브 극장 밖
이제 화장실 다녀오실 분까지 모두 나왔나요? 이제 우리가 갈 곳은 글로브 극장입니다. 드디어 셰익스피어 작가님이 계신 곳으로 이동하는 거예요. 사실 이 극장에도 녹록하지 않은 이야기가 있어요. 한창 전염병이 돌던 때, 일주일 동안 사망 인원이 천 명을 육박하기도 했거든요. 사람들은 급히 도시를 떠났고 극장은 문을 닫았어요. 시정 원로들은 극장을 부도덕하며 타락한 곳으로 여겼고 마침내 폐쇄했어요. 그렇게 글로브 극장을 건립했죠. 새로운 극장에 맞춰 다른 배경이나 소품이 필요 없는 극을 쓰기 시작했어요. 오직 자연광만을 활용한 거죠. 셰익스피어는 자신이 갖고 있는 단 하나의 도구, 언어로 완벽한 극을 쓰려고 했어요. 그래서 등장인물의 세부적인 정보나 방향 같은 게 잘 정리되어 있었어요. 사람들이 자기가 처한 상황이라고 마음껏 상상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그리고 작가님은 아들 햄넷의 죽음을 맞닥뜨리고 맙니다. 그리고 그렇게 쓴 작품이 바로, 우리의 마음을 울리는 《햄릿》이죠.
햄릿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가혹한 운명의 화살을 맞고도 죽은 듯 참아야 하는가. 아니면 성난 파도처럼 밀려드는 재앙과 싸워 물리쳐야 하는가. 죽는 건 그저 잠자는 것일 뿐, 잠들면 마음의 고통과 육식에 따라붙는 무수한 고통은 사라지지. 죽임이야말로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결말이 아닌가. 그저 칼 한 자루면 이 모든 것을 깨끗하게 끝장낼 수 있는데. 그 미지의 세계에 대한 불안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남아 현재의 고통을 참고 견디는 것이다. 결국 분별심은 우리를 겁쟁이로 만드는구나.
– 윌리엄 셰익스피어, 《햄릿》 중에서
그의 공연은 관중의 상상력을 자극해요. 간단한 무대 위에는 오직 대사만이 흐를 뿐이랍니다. 우리 셰익스피어 작가님은 그 전에는 주로 희극을 많이 썼어요. 그리고 아들의 사망 시점 즈음에 《오셀로》, 《멕베스》, 《리어 왕》 등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비극이 탄생했죠. 그래서 아마 많은 이들이 그의 비극 작품에 드러나는 깊이는 아마 그의 경험에서 비롯한 게 아닐까 추측하고 있어요. 이제 극장에 거의 다 도착했네요.
| 글로브 극장 안
자, 여러분. 티켓 하나씩 받으셨죠? 저희 이제 셰익스피어 작가님의 대작을 직접 보러 들어갈 건데요. 오늘 볼 연극은 여행 계획표에 쓰여 있는 대로 《리어 왕》입니다. 들어가서 연극 볼 때 원래 그런 것처럼 중간에 핸드폰 하시고, 막 사진 찍고 그러시면 안 됩니다. 사람들 놀라 자빠져요. 이곳 사람들에게 절대 혼란을 주어서는 안 된다는 점, 꼭 기억해주세요. 들어가기 전에 《리어 왕》에 관해 짤막한 정보를 드리자면, 셰익스피어는 비극을 쓰던 시기에 탄탄한 통찰력을 쌓았고 극 전체의 긴장감을 유지할 수 있었답니다. 인간의 내면이나 영혼의 성장에 관한 이야기를 주로 다루는데, 인간 심리에 관한 전통적인 관습을 발견할 수 있어요. 《오셀로》에서 질투심을 치열하게 강조했다면, 《리어 왕》에서는 권력을 뺏긴 늙은 남자의 고통을 보여주죠. 단순히 늙은이의 비극을 나타낸 게 아니라, 저런 문제를 표면으로 드러내기까지 작가님이 얼마나 공부하고 고뇌에 빠졌는지 알 수 있는 거예요. 우리 셰익스피어 작가님께서는 특히 ‘분노’라는 감정에 대해 잘 이해하고 있는 듯 보여요. 인물들을 통해서 그들만의 감정을 포착하는 거죠. 자, 그러면 모두 표 제가 드렸죠? 그거 가지고 들어가면 돼요. 아버님, 아이들 손 꼭 잡아주세요. 네네, 좋습니다. 그러면 이제 안으로 들어갈 건데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지만 핸드폰이나 카메라로 사진 찍으시면 안 됩니다. 그게 이 여행의 묘미다, 하고 생각하세요. 자! 출발합니다.
리 건 그럴 순 없어요. 저는 아버지를 받아들일 준비를 전혀 못 했어요. 언니의 말을 들으세요. 지금 아버지의 노여움을 우리가 받아들이는 것은 어른을 존경하는 마음에서 그런다는 걸 알아두세요.
리어왕 그 말이 진담이냐?
리 건 그렇습니다. 시종이 50명이면 되지 않아요? 그 이상 무슨 필요가 있어요? 아니, 그것도 많아요. 시종이 많으면 비용도 그렇고 위험도 크지요.
고네릴 동생의 하인이나 저희 집 시종들이 아버지를 돌봐드려도 되잖아요.
리 건 그래요. 만약 저희 집 하인이 아버지를 소홀히 모시면 제가 단속하지요.
리어왕 난 너희에게 모든 것을 주었는데…….
– 윌리엄 셰익스피어, 《리어 왕》 중에서
| 극장 앞 전나무 아래
자, 다들 잘 보셨나요? 이열종대로 나란히 맞춰 서주세요. 연극을 마지막으로 저희는 다시 우리들의 세계로 돌아갈 거예요. 아까 관객석 중간에 앉아 계시던 셰익스피어 작가님 보셨나요? 아까 다른 여행사에서 온 사람들이 자꾸 몰래 작가님 사진 찍는 것을 보며 얼마나 놀랐는지. 정말 우리 여행사를 찾아주신 여러분처럼 젠틀하고 우아하게 느끼셔야 하는데, 그쵸? 오늘 셰익스피어 작가님이 입으신 옷의 깃이 남달라 보였어요. 아무래도 궁정에서 최고로 인정하는 극작가여서 그런지 의복 하나도 남다르네요. 심지어 들고 있던 회중시계도 으리으리해 보이더라고요. 앗! 네, 거기 여성분. 갑자기 손 드셨네요? 네? 뭐라고요? 조금만 더 크게 말해주시겠어요? 아, 맞습니다. 정답입니다. 바로 이번 여행의 X의 정체는 바로 회중시계입니다. 사실 회중시계는 18세기가 되어서야 대량 생산 단계에 진입하고, 회중시계나 손목시계 같은 휴대용 시계도 그제야 널리 보급되었어요. 대단하시네요. 모두 박수 주세요! 세계사에 아주 빠삭한 것 같습니다. 그러면 셰익스피어 작가님께서 들고 계셨던 회중시계를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뒷면에는 아주 특별한 문구가 새겨져 있어요. 바로 셰익스피어 작가님의 묘비명인데요, 죽음을 의연하게 받아들이고 세상을 떠날 준비를 하던 그의 마음을 그대로 읽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셰익스피어의 팬이라면 모두 잘 알고 있는 문구이기도 하죠?
GOOD FREND FOR JESUS SAKE FORBEARE
TO DIGG THE DUST ENCLOSED HEARE
BLESTE BE YE MAN T[HAT]Y SPARES THES STONES,
AND CURST BE HE T[HAT]Y MOVES MY BONES 내
벗들이여 제발 부탁컨대
여기 묻힌 것을 파지 말아다오
이것을 그대로 두는 자는 축복받고
내 뼈를 옮기는 자는 저주받을지어다
자, 이제 우리 모두의 여행은 여기서 끝입니다. 이제 다시 타임리프 비행체로 돌아가서 우리의 시간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비록 우리가 이렇게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볼 수 없는 것을 다시금 생생하게 볼 수 있었지만, 이 경험 또한 다시 되돌릴 수 없는 귀중한 시간이었다는 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이 시간, 그를 찾아왔다고 해서 그의 의미가 퇴색되거나 너무 흔해지는 것이 결코 아니듯이 말이지요. 그럼 우리 서로 인사하고 다시 돌아가도록 합시다. 모두 수고 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에디터·포토그래퍼 이자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