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금해하며 걸어볼까요

김예슬 — 건축 여행자

10년 전, 회사 근처 오래된 건축물에 호기심이 생겨 시작한 예슬의 산책은 어느덧 전국을 가로지르는 ‘건축 여행’이 되었다. 그 성실한 기록이 모여 탄생한 《서울 건축 여행》은 올해 6쇄를 찍으며 새로운 여행 방식을 제안해 왔다. 서울 이후 그의 시선이 닿은 곳은 대전. 일제강점기 근대 신도시로 개발된 대전을 거닐며, 예슬은 꿈과 사랑, 희망의 이야기를 읽어냈다. ‘건축 여행 시리즈’의 두 번째 기록인 《대전 건축 여행》을 사이에 두고 만난 어느 오후. 나는 익숙한 도시의 풍경에 숨은 옛이야기에 바짝 귀 기울여 보았다.

《대전 건축 여행》 즐겁게 읽었어요. 오늘은 서울 정동에서 만나게 되었네요.

반갑습니다. 제가 경남 함안에 살고 있는데 마침 서울 일정이 생겨서 만남 장소로 이곳을 제안드렸어요. 대전에서 뵈었으면 좋았을 텐데요(웃음). 정동은 제가 관심 있게 지켜보는 근대 역사의 한복판이기도 해요. 조선왕조 마지막 무대인 덕수궁이 있고, 인근 서울도서관도 일제강점기의 시작을 알렸던 경성부 청사 건물이었거든요. 지금 서울시의회로 쓰이는 부민관 역시 원래는 경성 시민을 위한 극장이었고요. 요즘 어린이를 위한 건축 여행 책을 쓰고 있는데, 책에서 다룰 장소가 이 일대에 많이 모여 있어요.

 

자주 지나다닌 거리인데 근대에 지어진 건축물이 많았네요. 인터뷰가 끝나면 함께 ‘세실마루’에 가보기로 했죠.

세실마루라고 불리는 국립정동극장 세실 옥상은 건너편 덕수궁도 잘 보이지만, 무엇보다 대한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을 가장 아름답게 볼 수 있는 곳이에요. 당시 건립을 주도했던 3대 주교님이 성당이 덕수궁을 압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뾰족한 고딕 양식 대신 부드러운 로마네스크 양식을 제안하셨다고 해요. 지붕은 붉은 서양식 기와와 검은 한옥식 기와가 섞여 있는데, 세실마루 옥상에 가면 건물 끝마다 남아 있는 검은 한옥식 기와를 가까이서 볼 수 있어요.

 

공간에 숨은 이런 사소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건축 여행 시리즈’로 소개해 오셨어요. 여행 기록은 어떻게 시작되었나요?

2015년 서울역 건너편 빌딩에서 인턴 생활을 시작한 게 계기였어요. 그 지역은 서울 여행객으로 붐비는 곳이라, 자연스럽게 저도 회사 근처 건물들이 궁금해지더라고요. 회사 뒤편 남대문교회나 지금은 사라진 힐튼 호텔 등이 언제 생겼는지, 누가 사용했는지 찾아보기 시작했죠. 그게 저한텐 일상 속 작은 여행이었어요. 그렇게 쌓인 기록을 인스타그램에 꾸준히 공유하다 보니 《서울 건축 여행》을 출간하게 되었고, 이어 《대전 건축 여행》까지 쓰게 되었어요.

 

건축 여행 시리즈는 어려운 역사 서적이라기보다, 근현대 건축물을 중심으로 가벼운 여행을 제안하는 책이라는 인상을 받았어요.

제가 역사나 건축을 전공한사람은 아니기도 하고요. 주변 사람들은 제가 소개하는 공간에 가보고 싶다 말하지만, 막상 직접 자료를 찾고 여행을 계획하기는 어려워 보였어요. 그래서 ‘여행’이라는 키워드로 근현대 건축을 소개해 보고 싶었어요. 제가 겪은 시행착오를 바탕으로 건축 여행에 대한 관심을 열어주는 가이드북이 되길 바라면서요. 일상에서 자주 마주치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건물에 개인적인 감상을 엮어 소개했고요.

 

수집한 역사적 정보에 개인적인 감상을 더하는 건 구체적으로 어떻게 이뤄지나요?

예를 하나 들어볼게요. 1936년 베를린 올림픽 때, 손기정 선수의 가슴에 달린 일장기를 처음으로 지워 보도한 신문사는 ‘조선중앙일보’였어요. 저는 건물에 얽힌 이야기 시점을 뾰족하게 하기 위해 인물을 찾아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일장기를 지운 기자가 체육부의 유해붕 기자거든요. 놀라운 건 유해붕 기자와 손기정 선수가 고등학교 선후배 사이였다는 점이에요. 함께 육상을 하며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기도 했던 동료가 졸업 후 기자가 된 거죠. 이 사실을 알고 나니까 마음이 울컥했어요. 선배이자 동료 육상인이었던 유해붕 기자가 어떤 마음으로 후배의 가슴에서 일장기를 지웠을지 생각해 보게 되었거든요. 현재 농협은행 종로지점으로 쓰이는 옛 조선중앙일보 사옥을 볼 때 저는 영화 같은 풍경을 상상해요. 사장이었던 독립운동가 여운형 선생님, 유해붕 기자가 출퇴근하는 모습 같은 것들이요. 이처럼 저는 사건에 머물지 않고, 그 시대를 살던 인물의 시선을 따라가려고 해요.

 

푹 빠져서 듣게 돼요. 비슷한 이야기 하나 더 들려주실래요?

지금은 용산역사박물관이 된 용산철도병원이 있겠네요. 용산역에서 근무하는 철도청 직원들과 가족을 위해 지어진 곳인데요. 그곳 해설사님에게 들은 내용인데, 철도청 직원이었던 독립운동가 이봉창 선생님이 질병 퇴직 때문에 용산철도병원에서 관련 서류를 신청하셨대요. 역시 사실인지 궁금해서 한국사 데이터베이스를 뒤져보니, 이봉창 선생님이 재판장에서 그 내용을 말씀하신 걸 발견할 수 있었어요. 저는 이런 내용과 건물을 엮는 거죠. 건물 정보만 읊는 것보다는 건물을 통해 인물, 사건, 시대를 읽을 때 건물도 더 생생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관련 분야를 전공하지 않았는데 왜 오래된 건축물에 마음이 갔을까요?

글쎄요. 내가 어떤 도시에 살고 있는지, 어떤 환경에서 살고 있는지 알고 싶은 마음 때문이었을까요. 제가 특별히 애국심이 깊다기보다, 누구나 다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고 생각해요. 물론 영화 연출과 국문학을 전공한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공간에 담긴 이야기를 따라다니는 일이 너무 재밌거든요. 역사의 실제 로케이션이 내 앞에 있다는 사실도 신기했고요. 사실 근대 건축물은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아 사라지기도 하고, 여전히 생활 공간으로 사용되기도 하잖아요. 그런 모습들이 안타까우면서도 생생하게 느껴졌고, 복합적인 감정이 궁금증으로 이어지더라고요.

 

책에는 일반인은 쉽게 알 수 없는 정보가 많은데, 이런 내용은 어떻게 수집하는지 궁금했어요.

국가나 지역 단위에서 공개한 신뢰할 만한 정보를 시작점으로 삼고, ‘LP 디깅’하듯 여러 자료를 뒤져보면서 의외의 만남을 기대해요.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분과 대화하기도 하고, 궁금한 것에 대해 자료를 많이 찾아 봐요. 사라진 건축물에 관해 알아보고 싶을 때는 로드뷰 시간대를 돌려보기도 하죠. 이런 과정까지 저는 여행의 일부로 느껴져요.

 

건물에 담긴 일화를 이토록 깊이 들여다보는 건 어떤 마음에서일까요?

아픈 시대의 기록일지라도 그 시간을 조금 더 입체적으로 마주하고 싶기 때문이에요. 근대를 낭만적이고 아름답게 그리려는 건 아니에요. 그때 살았던 사람들의 시선이나 감정을 온전히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 크죠. 저에게 건축 여행은 내가 사는 세상을 사랑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도시에 대한 애정은 매일 마주치는 건물들이 과거에 어떻게 쓰였고, 그 안에 누가 머물렀는지 궁금해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과정을 거치며 이 도시에 사는 나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어요. 이런 마음에서 건축 여행을 지속하게 돼요.

 

이러한 과정을 ‘여행’이라고 이름 붙인 점이 인상적이에요. 예슬 씨가 말하는 ‘여행’의 정의도 궁금해요.

익숙한 장소를 새로운 시선으로 보고 궁금해하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될 수 있어요. 예를 들어 오래된 빌라 방범창에서 한옥 창살을 닮은 무늬를 만나기도 하고, 1970-80년대에 지어진 건물에서 한옥의 특징을 발견하기도 해요. 예전에는 ‘진짜 미감 없다.’고 생각했는데(웃음), 이제는 그런 장면이 전통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처럼 느껴져요. 새로운 시선을 가지면 익숙한 것도 다 재밌어 보일 거예요.

건축 여행 시리즈 두 번째 책은 대전과 인근 지역을 다루고 있어요. 대전은 오래전부터 애정을 둔 곳이었다고요.

건축 여행 목적으로 대전을 찾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였어요. 처음 갔을 때 근대 건축물인 ‘오정동선교사촌’ 등을 둘러보고, ‘우분투북스’, ‘삼요소’ 같은 독립서점을 구경하던 기억이 나요. 당시만 해도 제가 대전에 간다고 하면 주변에서 결혼식 있냐고 물어볼 정도로 대전은 여행지로는 생소한 도시였어요. 하지만 저는 잔잔한 도시 분위기가 좋았어요.

 

서울과는 사뭇 다른 지역인데, 집필하시면서 전작과 변화를 주려고 했던 부분이 있나요?

서울 편에서는 이미 잘 알려진 곳보다는 서울을 잘 아는 분들도 궁금해할 만한 장소들을 소개했어요. 반면 대전 편은 조금 달랐죠. 대전이라는 근대 신도시 탄생 과정과 성장이 인접 도시들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담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범위를 넓혀 공주, 청주, 옥천까지 다루게 되었어요. 공주는 충남도청이 대전으로 이전하기 전 도청 소재지였고, 청주는 충북도청 소재지이자 전통 도시로서 대전과 비슷하지만 다른 도시예요. 그리고 옥천은 대전과 생활권을 함께하고 있고요. 제 주변에는 세 지역을 여행지로 떠올리는 분은 많지 않아요. ‘대전 간 김에 여기도 가보세요.’라고 권하는 마음으로 목차를 구성했어요.

 

대전과 인근 지역에 근대 건물이 많이 생겨나게 된 배경이 궁금해져요.

일제강점기에 도시가 재구성될 때 두 가지 방식이 있었다고 봐요. 하나는 원래 있던 성곽을 허물어 도시를 확장한 경우죠. 전주나 대구처럼요. 다른 하나는 아무것도 없던 지역에 철도를 놓으면서 신도시로 바뀐 경우인데, 대전이 대표적이에요. 그래서인지 여러 자료를 보면 대전은 일본인들이 살고 싶어 하는 매력적인 지역이었던 것처럼 묘사해놨더라고요. 일본인들이 “우리의 다이덴(대전의 일본식 발음), 우리 도시”라고 표현하는 경우도 많고요.

 

우리의 다이덴… 묘한 기분이 드네요(웃음).

그렇죠? 그래서 대전은 근대 건축물을 둘러싼 흥미로운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아요. 최근에 일본인이 거주하던 ‘대흥동 뾰족집’ 후손들이 조상의 옛집을 보러 대전을 찾기도 했고, ‘보문산 별장’ 복원 과정에서 후손들이 관련 자료를 기증하기도 했거든요. 특히 대전에서 태어나 일곱 살 때 광복을 맞으며 일본으로 이주했던 분이 “우리 집을 복원해 줘서 고맙다.”고 전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신선했어요. 솔직히 처음에는 일본인이 대전을 ‘나의 고향’으로 인식하고 그리워한다는 사실이 낯설게 느껴졌어요. 대전 출생 일본인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생각해 본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근현대 건축물을 따라가다 보니, 이주 일본인에게 대전은자신들이 1세대로 터를 닦은 신도시라는 인식이 있었다는 걸 발견하게 됐어요. 물론 이런 사실을 마주하면 불편한 감정이 들기도 하지만, 저는 대전만이 품은 독특한 서사라고 생각해요. 대전은 수탈의 목적보다 교통 거점으로 일본인이 모여들며 형성된 도시니까요. 우리가 이런 복합적인 사실을 피하지 않고 선명하게 마주할 때, 대전만의 고유한 의미를 만들고 활용해 갈 수 있다고 생각해요.

 

식민 지배의 잔재를 마주할 수밖에 없는 여행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분들도 있을 거라 조심스레 생각해 봤어요. 그런 분들을 위해 들려주시고 싶은 말이 있나요?

도시가 풍성해지려면 그 안에 깃든 다양한 이야기가 그대로 놓여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근현대 건축물이 불편한 마음을 불러일으킬 수밖에 없다는 걸 인정하는 태도가 필요하죠. 저는 아픈 역사는 지워야 한다는 단일한 시각보다, 그곳을 지금 누가 어떻게 사용하는지 조명하는 일이 더 의미 있다고 봐요. 예를 들어 서울 후암동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형성된 일본인 마을의 가옥이 여전히 남아 있어요. 흥미로운 건 우리나라 사람들이 해방 이후 그곳을 변화시킨 모습이에요. 일본식 벽장이나 도코노마(방 안에서 예술 작품이나 꽃을 장식하는 공간)를 이불장으로 개조하거나, 다다미는 뜯어서 온돌을 깔아버렸죠. 이처럼 근현대 건축물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면서 바라볼 때 우리가 지나온 시간을 다채롭게 해석할 수 있어요. 저는 우리 도시가 삶의 흔적과 이야기가 쌓인 공간이길 바라요.

그런 점에서 건축물에 담긴 의미와 이야기를 포착하는 활동이 의미 있게 다가와요.

기록을 이어오면서 처음에 없던 사명감이 조금씩 생겼어요. 도시의 모든 걸 보존하기는 힘들지만, 기록만큼은 우리가 해볼 수 있는 일이거든요. 우연히 찍은 사진 한 장이 훗날 도시사적으로 의미 있는 사료가 될 수도 있겠죠. 저는 보존의 의미와 기준을 도시민들이 적극적으로 나누고 고민해 보자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아까 말씀하신 후암동 일본인 주거 단지처럼 근대 건축물은 다양한 문화의 흔적이 보이죠. 예슬 씨가 생각하는 ‘한국적 건축’이란 무엇인가요?

제가 생각하는 한국적 건축은 근대의 여러 요구가 뒤섞여 있는 모습이에요. 일본식으로 지어진 공간이라도 우리 삶에 맞게 한국식으로 고치면서 새로운 건축 요소가 되기도 하잖아요. 서양식 요소가 섞인 한옥은 전통의 것이면서도 옛날과 현대를 연결하는 신선한 중간 장르가 되기도 하고요. 그런 건축물을 완전히 조선의 것처럼 복원한다거나 혼종으로 여기는 건 잘못된 것 같아요. ‘한국적’이라는 표현은 무엇이든 담을 수 있는 엄청난 크기의 말이자 어떤 기반 위에서도 꽃필 수 있는 언어예요.

 

한 인터뷰에서 대전을 “꿈과 사랑의 도시”라고 표현하셨어요. 그 이야기를 좀 더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대전은 다양한 지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의 터전이자, 낯선 사람에게 호의를 베푸는 도시예요. 실제로 지금 대전에는 일 때문에 경기권부터 충북, 전북, 전국 각지에서 온 분들이 많이 살고 있죠. 포용적인 분위기는 도시 역사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어요. ‘성심당’만 해도 피난민이던 창업주가 성당에서 받은 밀가루 두 포대로 찐빵 장사를 시작하면서 생겨났잖아요. 대전은 과거를 지우는 것이 아니라, 과거를 딛고 앞으로 나아가는 도시이기도 해요. 일제강점기 개발로 조선인들은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지만, 터전을 이뤄 삶을 이어 나갔고요. 억울한 간첩 혐의로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셨던 이응노 화백의 작품은 이제 ‘이응노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어요. 저는 이 모든 것을 단어로 정리하자면 ‘꿈과 사랑, 희망’이라 말하고 싶어요. 이건 오직 대전이라는 도시만 들려줄 수 있는 이야기예요.

통째로 옮겨진 집

©김예슬

“집은 일본인을 위해 지어져서 군인 중역 관사로 쓰이다가 1959년 한국인 가족을 맞았다. 이들은 뾰족집에서 가장 오래 산 사람들이자 마지막으로 살던 사람들이다. 2010년대에 주변 재개발이 진행되면서 집은 홀로 남겨져 있다가 뿌리째 뽑혀 길 건너편 낯선 골목으로 옮겨졌다. 어쩌면 생존한 것만으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ㅡ P49, 〈대흥동 뾰족집〉 중에서

A. 대전 중구 문창로 119-15

성심당과의 연결고리

©김예슬

“성심당 창업주 임길순은 통일호를 타고 서울로 올라오던 중 기차가 고장으로 멈춰 서는 바람에 대전에 정착했다. 독실한 천주교 신자인 임길순 창업주는 대전에 오자마자 대흥동성당부터 찾았다고 한다. 그때 만난 신부님이 안타까운 사연을 듣고 밀가루 두 포대를 전해준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신부님은 현재 대흥동성당을 신축할 때 총괄을 맡았던 오기선 신부다.”

ㅡ P65, 〈대흥동성당〉 중에서

A. 대전 중구 대종로 471

선교사가 한국에 지은 주택

©김예슬

“선교사 주택이 재미있는 건 자신들에게 익숙한 재료와 형태로 집을 지으면서도, 기와 지붕처럼 한옥적인 요소를 가미한다는 점이다. 식민 지배 없이 자연스럽게 근대를 겪었다면 한옥의 형태는 어떻게 변했을까. (중략) 오정동 선교사 주택을 잘 구경하다가도 지붕 아래 세모난 합각 부분을 벽돌로 단순하게 쌓은 걸 보며 ‘우리 조상들이었다면 안 그랬을 텐데’라는 뾰로통한 마음이 돋아나기도 한다.”

ㅡ P125, 〈오정동 선교사촌〉 중에서 

A. 대전 대덕구 한남로 70 (오정동)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복싱체육관

©김예슬

“한밭복싱체육관은 군사 정권 시절인 1961년에 개관했다. 한밭복싱체육관 박찬규 초대 관장은 당시 대령 계급 군인이던 충남도지사와 친분이 있었는데, 가난하던 시절 거리를 떠도는 아이들을 모아 운동을 시켜보자고 의견을 모아 시청 부속 건물에서 체육관을 시작했다.”

ㅡ P149, 〈한밭복싱체육관〉 중에서

A. 대전 중구 중앙로 156번길 10

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박은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