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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N-FICTION HOME
1제곱미터,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말자
NON-FICTION HOME
가구는 목적에 의해 탄생한다. 앉기 위한 의자, 눕기 위한 침대, 음식을 먹기 위한 식탁. 가구는 그렇게 써야만 할까? 두고 보기만 하면 안될까? 어떤 공간 디자이너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스탠드를 하나 만들어 두고 말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
플랏엠flat.m
플랏엠은 다섯 명의 디자이너(선정현, 박서현, 조규엽, 이동훈, 조현석)가 공간을 위주로 한 디자인 전반을 다루는 회사다. 2005년부터 시작해 비아인 키노Wie ein kino, 제로퍼제로Zero per zero, 에이랜드Aland, 메종 키티버니포니Maison kitty bunny pony, 루밍Rooming, 바 노네임Bar no-name, 카페 와이엠Café ym 등의 공간 디자인을 맡았다.논픽션홈NON-FICTION HOME은 그들이 시작한 가구 프로젝트다.
스툴STOOL
16/03
조명LIGHTING
16/06
우드 박스WOOD BOX
16/11
일종의
가구 운동
논픽션홈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선정현 사람들이 물어봐요. “논픽션홈은 가구 브랜드가 아닌가요?” 그런 질문을 들으면 저는 브랜드가 아니라 일종의 ‘운동’이라고 얘기하고 있어요. 플랏엠은 10년 정도 된 회사에요. 한국 가구 시장이 협소하다 보니 공간을 만들면서 동시에 가구를 만드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어요. 가구 제작을 중점적으로 한 건 아니고요. 그래서 종종 저희가 만든 가구를 사고 싶다는 전화나 문의가 많았어요. 주변에서는 가구 장사를 해보라고 권하기도 했고요. 하지만 ‘진짜 할까?’ 하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죠.
개인적으로는 플랏엠이 계속해온 공간 디자인에 대한 새로운 제안처럼 보이는데요.
박서연 플랏엠 구성원들 각자 생활하면서, 공간을 만들면서 자각하게 된 결핍에 대한 실험 과정이기도 하죠.
선정현 플랏엠은 의뢰인의 공간을 만드는 일을 하기 때문에 경계를 넘으면 안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게 공간 작업을 할 때의 한계이기도 하죠. 하지만 논픽션홈은 의뢰인이 있는 게 아니라 저희가 자체적으로 하는 프로젝트라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기 위해 시도하고 있죠. 다만 경계를 넘나들되, 도덕성을 어기면 안 된다는 규칙은 있었어요.
도덕성이요?
선정현 예를 들어 스툴 16/03을 이런 형태로 만든 이유에는 앉았을 때 넘어지기 않기 위함도 있어요. 그런 기본적인 도덕성은 가지고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아직 프로젝트에 대한 정확한 정의는 내리지 못한 것 같아요.
그렇다면 가구 브랜드가 아닌 ‘운동’의 일환으로 논픽션홈에서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선정현 어떤 가구 제시했을 때, 쓰이는 방식과 보이는 방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전시라는 방법을 택했어요. 첫 번째 전시를 남산에서 했고 그 다음엔 플랏엠이 좋아하는 공간, 작업했던 공간에 두었죠. 바빠서 홍보를 전혀 못 하긴 했지만 술집, 카페 등 다양한 공간에 논픽션홈의 가구들이 있었고 그게 일종의 전시였어요.
전시라는, 그것도 일반 갤러리에서 하는 전시가 아닌 특이한 형태의 전시로 대중을 만나는 거네요. 프린트 베이커리에서 열린 ‘1㎡’ 전시도 그렇게 기획된 건가요?
선정현 논픽션홈에서 전시는 중요한 창구에요. 사실 1제곱미터 크기의 공간이 생활 속에 많잖아요. 따로 떨어진 공간으로 있는 경우는 별로 없지만, 다용도실, 현관, 통로, 문 앞, 베란다 구석 등이 그런 공간이죠. 하지만 ‘어떤 공간이 있다’고 인지하기 쉽지는 않아요. 그래서 그 크기의 공간을 제시해보자고 생각했어요.
‘1㎡’ 전시의 시작엔 그 크기의 공간과 조명이 있었다고요.
조현석 공사 전 철거를 하는데, 예상치 못한 공간 하나가 나왔어요. 벽이랑 기둥으로 이루어진, 협소한 공간이었어요. 특징 있는 공간도 아니고 자투리처럼, 애매하게 남겨져 있었죠. 그 공간에 조명 계획이 없었기 때문에 급하게 설치해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런데 그 공간에는 특이한 디자인보다 공간이랑 서로 조화를 이루는 단순한 형태의 조명을 쓰고 싶었어요.
조명 16/06은 모양이 단단해요. 조명등 자체의 집 같기도 하고요.
조현석 조명은 애매한 공간, 자투리 공간에 있는 경우가 많잖아요. 이런 조명이 다양한 자투리 공간 속에서 어디에서나 제동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재료, 빛 그리고 그 공간 세 개만 보이면 충분하지 않을까, 굳이 조명처럼 보이지 않아도 되겠다, 빛만 보여도 충분하겠다. 만약 그런 생각을 하지 않았으면 좀 더 화려하고 형태도 돋보이는 디자인을 했을 수도 있겠죠. 아, 만들기 쉬웠으면 좋을 것 같아 그 점도 고려했어요.
혹시 일이 아닌 생활 속에서도 이런 공간을 확보해두고 있나요?
선정현 제 생각이긴 하지만(웃음), 제가 사는 집에는 거의 아무것도 없어요. 어떤 물건을 보고 “예쁘다.” 말하면 주변에서 그럼 사라고 하는데, 우리 집엔 둘 데가 없다고 하죠. 실평수가 11평 정도인 작은 주택에 살거든요. 이 집으로 이사 오면서 많이 버렸어요. 그러니 물건을 살 때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물건이 많이 없는 편이에요. 다 차있으면 옴짝달싹할 수가 없잖아요. 여지도 없고요. 그런데 공간에 어떤 여지가 있고, 그 공간 안에서 가볍게 움직일 수 있다는 점이 좋아요.
불특정한 행위를 위한
넓은 그릇 만들기
가구를 만들 때, 무엇을 상상하는지 묻고 싶어요. 공간을 상상하는지, 사람을 생각하는지, 거기서 벌어질 일을 상상하는지, 그것도 아닌 다른 것인지요?
조규엽 스툴을 예로 들면, 16/03은 공간에서 벌어질 일을 생각하며 형태가 결정된 경우에요. 킥더빗Kick the beat에 들어간 스툴은 오히려 공간과 전혀 관계없는 디자인이 필요했어요. 카카오톡 사내 카페에 들어간 스툴은, 그 스툴이 공간의 성격을 결정하는 중요한 역할이지만 막상 그 스툴 각각의 형태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죠. 무엇을 먼저 생각하는지가 때에 따라 다르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는데, 결국은 다 공간을 먼저 생각한다는 얘기가 됐네요. 하지만 보다 우선으로, 제작하는 사람이 최대한 쉽게 만들 수 있게 하자고 생각해요.
스툴 16/03이 특이한 외형을 가지진 않았지만 계속 시선을 잡아 끄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선정현 사실 만든 그 해, 해외의 디자인 비엔날레에서 거의 형태가 똑같이 생긴 의자가, 심지어 다른 디자이너들에게 몇몇 개 있었다는 걸 늦게 알게 됐어요. 물론 치수나 재료는 조금씩 다르지만 원형은 비슷했거든요. 그래서 이 형태가 어떤 강한 트렌트 속에 있다는 건 거부할 수 없다고 인정했죠. 사실 처음엔 접을까, 생각도 했지만 ‘형태적인 면이 중요했던 걸까? 중요한 건가?’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것보다 기존의 스툴보다 높은 55센티미터라는 높이, 앉아있다가 서기 편안한 의자를 만들었다는 게 더 의미가 있거든요.
앉아있다가 서기 편한 의자라….
선정현 논픽션홈 프로젝트를 도와주는 워크룸에서, 가구를 이해를 못 하겠다는 거에요(웃음). 이 가구는 인체공학적으로 만들어진 것인지, 판재만 사용해 오려 붙여서 만들겠다는 가구인 건지, 형태적인 건지 이론적인 건지, 많이 물어보셨어요. 그런데 사실 그런 거랑은 전혀 상관이 없죠.
그렇다면 ‘앉았을 때의 편안함’은 논픽션홈 가구의 고려 대상이 아닌가요?
이동훈 저는 스툴이 서기 쉬운 높이라고 생각해요. 보통 스툴은 45~47센티미터 정도의 높이가 일반적이거든요. 그런데 이 스툴은 앉았다 서기도 쉽고, 내가 서있다가 다시 앉기도 쉽고요. 사실 스툴이라는 것 자체가 쉬기 위해 만들어졌다기보다 생활 속에서 잠깐 동안의 필요 때문에 쓰이는 거잖아요. 그런 점으로 미뤄 생각했을 때 저는 오히려 편하다고 느껴져요.
선정현 예전에는 바를 디자인할 때, 한국 사람들에 바에 잘 앉지 않아서 4인석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많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바 스툴에도 자연스럽게 앉고 굳이 아일랜드 식탁용이 아니더라도 집에서 스툴을 많이 쓰죠. 그렇게 변화한 생활이나 다른 생활을 보여주고 싶은 게 더 커요. 가구에 대한 형태나 제작 방법을 얘기하고 싶은 건 아니에요.
막상 질문을 하고 나니 가구에서의 편안함이라는 게 도대체 뭘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선정현 제가 늘 하는 말이 있어요. “나는 등받이가 높은 소파가 제일 좋아.” 하지만 그걸 만들고 싶다, 제시하고 싶다는 건 아니에요. 실제로 그런 소파에 앉으면 너무 편하지만 제가 맨날 그 편한 의자에 앉아서 생활하는 모습은 상상도 하고 싶지 않거든요. 편한 건 맞지만 거기 앉아있는 내 모습은 좋지가 않달까요. 누워서 텔레비전 리모컨만 움켜쥐고 그렇게 살 순 없다(웃음).
옷장엔 옷을 두고, 책장엔 책을 두고, 의자에 앉는 등 가구에는 특정한 목적이 있잖아요. 하지만 논픽션 홈의 스툴이나 조명, 수납장은 각자 한 가지 이상의 용도를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이러한 가구들이 꼭 그 목적만을 수행하지 않아도 되게끔 만드는 건가요?
이동훈 우드박스 16/11은 원래 단상이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세워서 책을 꽂는 용도로 쓰기도 해요. 그런 식으로 가능성을 열어주는 거죠. 디자이너가 오히려 명확하게 이건 이렇게 해야만 해, 라는 건 폭력적인 것 같아요. 어떤 가구들은 의도에 의해 전개되고, 앉으라는 목적, 누우라는 목적이 명확하다고 한다면 논픽션홈은 그 이후의 생활에 집중했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저희는 특정인을 간주하고 그 특정인이 불특정하게 어떤 행위를 할 수 있게 넓은 그릇으로 만들어주는 것 같아요.
공간에
여백이 생기면
새로움은 태도에 달려있다고 쓴 글을 봤어요. 디자이너 각자가 새로움을 위해 노력하는 게 있다면요?
선정현 저는 계속 새로울 필요가 있는가? 그런 생각을 요즘은 더 많이 해요. 새로운 게 계속 좋은가? 하는 의심도 들고요. 새로운 건 좋지만, 계속 그래야 할까요? 며칠 전에도 회식하며 인생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어요. 그 영화들 대부분이 10대 후반~20대에 봤던 건데, 지금 보면 다르게 보이는 거에요. 싫다는 게 아니라 못 봤던 게 보이고, 다르게 보이는 거죠. 그게 새로운 게 아닐까 싶어요. 새로운 게 아니라 여기 있었던 것, 그걸 발견하는 것, 저는 그게 태도인 것 같아요.
어떤 공간을 보면 ‘인테리어’ 자체가 눈에 들어오지 않지만 편안한 공간이 있잖아요. 언뜻 보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 공간이요. 사실 인테리어 자체가 화려하면 오히려 압도당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생활과 가까운 공간은 그럴 필요가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그 맥락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겠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데.’라는 논픽션홈의 에세이를 이해할 수 있을까요?
조규엽 철거 직후 공간(건물)의 구조나 본래의 재료가 드러났을 때 가장 아름답고 좋다는 의미였어요. 그렇게 둘 수는 없지만 최대한 공간의 성격을 유지하고 인위적이고 강제적인 방식을 배제하고 싶다는 얘기이기도 해요.
선정현 좋은 것엔 이유가 없는 것 같아요. 좋은 게 좋은 건데, 예쁜 게 예쁜 건데 무슨 이유가 있겠어요. 그런데 다들 이유를 찾죠. 저도 그렇고요. 그래서 굳이 이유가 있다고 하면, 거기 들어간 애정 같은 게 아닐까요. 좀 느끼하지만, 분명히 그게 영향이 있다고 봐요.
이동훈 저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항상 시각적인 것보다는 오히려 공기의 느낌이나 분위기, 그 흐름에 집착하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노멀사이클코페에 가면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은데도 분위기가 되게 좋거든요.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엔 어떤 점들이 작용하는 걸까요?
이동훈 공간에 여백이 항상 존재하는 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디자이너가 이것저것 다 신경 쓴 척하는 그런 공간 자체는 부담스럽거든요. 흔히 학교에서 인테리어 디자이너들은 가구에서부터 티슈 하나까지 디자인을 해야 한다고 많이 말하는데요. 저는 그런 게 과한 것 같아요. 어쨌든 프로젝트마다 제약 조건은 있으니 거기서 어떻게 비워내고, 채우고, 힘을 빼는 걸 고민해요.
사람들이 공간에 왔을 때 그 상황 속에서 만들어질 수 있는 여백을 줘야 한다는 말이죠?
이동훈 네, 그걸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조현석 상황에 따라 다른데, 큰 틀에서 보면 뭔가 억지로 더 덧대거나, 실제 구조 역할을 하지 못하는데 벽돌로 치장하는 류의 작업은 피하려고 해요. 철거했을 때 남아있는 그 상태로도 너무 좋으니, 최대한 그걸 유지할 수 있는 방향에서 최소한의 작업으로 공간을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주어진 걸 잘 활용하면 되는데 불필요한 걸 만들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서울처럼 변화가 많은 도시에 사는 공간 디자이너로서의 어려움도 있을 것 같아요.
박서연 결국 공간을 완성하는 것은 시간과 사람이라, 사용하는 사람과 어울리는 모습을 찾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그래서 건물의 민얼굴을 드러내고, 정체성을 표현할 수 있는 요소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매번 그 요소에 대한 답을 찾는 게 큰 과제고요. 주변 환경과 건물, 건물과 사용자, 사용자와 주변환경, 사용자와 소재, 소재와 소재, 소재와 디테일간의 균형을 고민하죠. 비단 서울의 문제만은 아니겠지만, 어떤 공간이 오랫동안 유지 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고, 대부분의 클라이언트는 임대 공간에 들어가게 되니, 공간을 마련하면서 되도록 엉뚱한 곳에 소비하지 않도록 안내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플랏엠의 디자인은 과하지 않은 하나의 맥락이 있어요. 그런 점 때문에 미니멀리즘 디자인이라는 이야기를 듣기도 하죠.
이동훈 요즘에는 유행처럼 물건 버리기나 미니멀리즘을 말하는데 저는 오히려 좋아하는 걸 어떻게 적재적소에 사용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아요. 마음을 비워내는 것도 중요하고요.
조현석 그렇게 보여서 사람들이 그렇게 불러주면 어쩔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플랏엠의 작업이 미니멀리즘이라고 생각해본 적은 한 번도 없는 것 같아요. 그걸 지향에 두고 작업한다고 말하고 싶진 않아요. 예전에 봉준호 감독 인터뷰에서 ‘잔재주부리지 않고 건조하게 만들지만, 시간이 지나면 발휘하게 되는 강력한 힘을 믿는다’라는 맥락의 말이 있었어요. 그런 태도를 유지하려고 해요.
생활을 고려한다.
한계일 수도 있지만 우리는 생활을 벗어나지 않는다.
불편하진 않지만, 불만족스러운 부분을 흥미롭게 하고,
낯설지만 누군가는 꼭 가지고 싶어 할 것을 만든다. 그래서 이상하더라도, 아름답게.
어떤 생활인지는 아무도 모른다.
– 조규엽, 디자이너, 플랏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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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현아
자료 제공 플랏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