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루피짜리 짜이 한 잔

에디터 K의 아무렇게나 살아보는 여행

2007년 즈음 배낭여행자들 사이에서 ‘5불 생활자’라는 도전이 유행했다. 하루에 딱 5달러만 쓰면서 여행을 이어간다는 의미였다. 특히 인도는 물가가 저렴하고 문명사회와 동떨어진 신비로움이 있어, 배낭여행자의 성지로 불렸다. 전역한 지 채 한 달이 되지 않은 시점에 인도 콜카타로 떠나는 여행을 계획했다. 육체와 정신이 잔뜩 무장된 상태라 세상 두려운 게 없었다. 그렇게 떠난 콜카타에서 나는 평생 잊을 수 없는 짜이 한 잔을 마셨다.

인도 콜카타 공항의 입국 수속을 마치자 어느덧 새벽 2시였다. 이 시간에 공항 밖을 돌아다니는 건 자해 행위나 다름없으므로, 날이 밝을 때까지 공항에 머물기로 했다. 대합실에 자리 잡고 앉아 여행 가이드북을 펼쳤다. 인도와 네팔을 묶어 소개한 가이드북은 1,100여 페이지에 달했고, 호신용 벽돌을 대신해도 될 만큼 무거웠다. 가이드북에는 여행자가 머물 만한 숙소 몇 개와 추천 식당 리스트가 수록되어 있었는데, 스마트폰이 없었기에 책에 적힌 정보가 절대적이었다. 공항에서 여행자의 거리 ‘서더 스트리트Sudder Street’까지는 버스를 이용해야 했는데, 그 말은 버스가 운행하기 전까지는 꼼짝도 할 수 없다는 의미였다. 

맨바닥에 침낭을 깔고 들어가 동태를 살폈다. 조도가 낮은 콜카타 공항은 음산하고 축축했다. 공항 곳곳 어깨에 장총을 멘 군인들이 어슬렁거렸다. 나는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눈을 깔았다. 세 보이는 상대를 만나면 시선을 피하는 것이 최선이기 때문이었다. 

밤을 새우고 동트자마자 배낭을 챙겨 공항을 나섰다. 뜨겁고 희뿌연 공기가 얼굴을 덮쳤다. 강황과 미세먼지가 한데 섞인 듯한 느낌. ‘미세 커리의 맛이로군!’ 일본식 3분 카레에 익숙한 내게 원조의 향은 강렬했다. 정신을 못 차리는 여행자에게 택시 기사들이 몰려들었다. 그들은 알아듣기 힘든 인도식 억양으로 소리쳤다. “자판? 꼬레아? 탁시?(일본인인지 한국인인지 모르겠지만 일단 제 택시를 타시겠어요?)” 괜찮다고 손사래를 쳐도 막무가내였다. 급기야 내 가방을 잡아당기는 통에 다잡았던 인내심이 무너졌다. 

“아, 쫌!” 참지 못한 내가 크게 소리치자 일순 정적이 일었다. ‘조금 심했나?’ 싶어 미안한 마음이 들려는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그들은 다시 소리치기 시작했다. “탁시? 원 따우전 루피! 유 해피? 암 해피!(네 목적지가 어딘지는 모르지만, 나는 1,000루피를 받을 거야. 그럼 누이 좋고 매부 좋은 거지!)”

나는 최대한 빠르게 도망치듯 인파를 빠져나와 벌판을 걸었다. 그때 어디선가 나타난 털 빠진 큰 개들이 컹컹 짖으며 따라오기 시작했다. 어째서 국제공항 주변에 들개 무리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들은 배가 고픈 듯 보였다. 군대에선 굶주린 개와 대화하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었기에 나는 두려워졌다. 그러나 조금이라도 도망칠 기색을 보이면 내 엉덩이를 물기 위해 달려들 것이 분명했다. 오줌을 참으며 길을 걷는데 멀리 사람이 보였고, 도움을 청할 요량으로 빠르게 걸었다. 그곳엔 비쩍 마른 노파와 발가벗은 아기가 쭈그려 앉아 쓰레기 더미를 뒤지고 있었다. 얼마나 오래도록 맨발이었을까? 노파의 뒤꿈치가 단단한 나무껍질 같았다. 노파는 내 눈을 바라보며 불쌍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녀는 손가락을 입으로 가져가는 시늉을 했는데, 배가 고프다는 의미 같았다. 나는 주머니를 뒤져 100루피 지폐를 건넸다. 노파는 냉큼 지폐를 받아 들고는 신에게 절하듯 양손을 이마에 갖다 붙인 채 연거푸 고개를 숙였다. 그러더니 바닥에 놓인 부지깽이를 들어 들개 무리에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노파의 저주에 찬 일갈에 개들이 꼬리를 말고 도망쳤다. 

노파는 버스 정류장까지 30여 분은 더 가야 한다고 했다. 나는 길을 잃지 않기 위해 도로에 바짝 붙어 걸었는데, 택시와 트럭, 오토 릭샤와 사이클 릭샤, 소와 개, 사람이 한데 엉켜 있는 차도는 그야말로 엉망진창이었다. 그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으면 병에 걸리는 사람들처럼 미친 듯이 빵빵거렸다. 그런 가운데, 등 뒤에서 무언가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신호 대기 중이던 고급 승용차의 꽁무니를 사이클 릭샤가 들이받은 모양이었다. 다행히 큰 사고는 아닌 듯 보였다. 잠시 후 승용차에서 뚱보 남자가 내렸다. 그는 잔뜩 화가 난 듯 씩씩거리더니 두꺼운 손바닥을 활짝 펴 릭샤꾼의 뺨을 내려쳤다. 한 대, 두 대, 세 대, 일방적인 폭력이 가해지는 동안 릭샤꾼은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고, 주위의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 그 광경을 목격한 경찰이 느릿한 걸음으로 현장에 오고 나서야 상황이 일단락됐다. 경찰이 둘을 떼어놓는 와중에도 뚱보 남자의 분은 풀리지 않은 듯 씩씩거렸다. 문득 ‘카스트 제도’가 떠올랐다. 법적으로 신분 제도가 폐지된 지 60년이 지났지만, 코끼리 발목의 족쇄처럼 그들을 옭아매는 유령이 있다는 사실이 새삼 절망스러웠다.

하지만 진짜 절망은 따로 있었다. 노파가 알려준 방향으로 30분 넘게 걸었지만, 버스 정류장은 보이지 않았다. 행인을 붙잡고 물으니 반대 방향으로 가라는 대답이 들려왔다. ‘미치고 팔짝 뛰겠네….’ 작열하는 태양 아래서 왔던 길을 거슬러 가는데, 허허벌판만 이어지는 게 아무래도 이상했다. 가판대 상인에게 다시 길을 물었더니 전혀 다른 길을 알려줬다. 그는 자기 말이 확실하다며 직접 지도까지 그려줬다. 처음 길을 알려준 노파도, 반대편을 알려준 행인도, 모두 진심이었던 표정으로 보아 누구를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왔던 길을 거슬러 버스 정류장을 찾았고, 문짝도 없이 달리는 로컬 버스에 매달리듯 운반되었고, 우여곡절 끝에 서더 스트리트에 도착했다. 그리고 여행자 거리에서 처음 나를 반긴 건 다름 아닌 한 무리의 독수리 떼였다. 건물 옥상에서 하강한 독수리들은 족히 2미터가 넘는 날개를 펄럭거리며 길거리 토사물을 먹어치우고 있었다. 상식을 흔드는 비현실적인 풍경. 그리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독수리 떼를 가로질러 한 사내가 나타났다. 그는 30년은 기른 듯한 머리와 수염을 드리우고 있었는데, 그게 그가 가진 전부였다. 몸에 걸친 것이 하나도 없었던 거다. 

인도에서 세 번째로 큰 도시, 길거리 한복판에서 히피의 나체를 목격한 것이다. 그는 검붉은 이를 드러내며 소리쳤다. “세상은 더러운 양말이야!” 무슨 의미인지 궁금했지만, 도저히 물어볼 용기가 나지 않았다. 나는 최대한 눈을 피하며 길 가장자리로 걸었고, 몇 번이나 길을 잃고 난 뒤에야 가이드북에 나온 숙소에 도착했다. 서울을 떠난 지 꼬박 26시간 만이었다.

가이드북에 따르면 ‘파라곤 호텔’은 배낭여행자들이 유독 사랑하는 호텔이라고 했다. 1박에 80루피(약 2,000원)인 가격이 한몫하는 듯했다. 낯선 이와 함께 사용하는 도미토리는 자신이 없었기에 1인용 객실을 잡았다. 그곳은 내가 아는 ‘호텔’의 개념이 단번에 무너지는 장소였다. 문이 잠기지 않는 방, 얼룩이 잔뜩 묻은 1인용 침대, 훅훅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천장의 팬, 두 평 남짓한 공간에서 나는 실신하듯 잠이 들었고, 회전 팬에 맞아 몸이 두 동강 나는 꿈을 꿨다. 뭔가 몸을 기어다니는 느낌이 나는 것이, 아무래도 베드버그의 먹잇감이 되고 있는 듯했다.

나는 영혼을 몸 밖으로 빼내어 침대에 누운 김건태를 내려다봤다. 공항에서 노숙을 하고, 택시 빌런을 물리치고, 들개에 쫓기고, 맨발의 노파와 아이를 만났으며, 뿌리 깊은 폭력을 목격하고, 길을 잃고, 독수리와 나체주의자를 피해, 싸구려 호텔에 도착했다. 그리고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회전 팬 아래서 실시간으로 벌레에 물리고 있는 가여운 인간. 그는 콜카타에 도착한 지 하루 만에 죽어가고 있었다. 

울고 싶었다. 여행이고 나발이고 당장 이곳을 떠나고 싶었다. 차라리 그때 개에 물렸다면 어땠을까? 한국으로 돌아갔더라면 어땠을까? 식은땀으로 온몸이 다 젖고 정신이 몽롱했다. 창밖은 이미 어둑해져 있었다. 그때 누군가 방문을 두드렸다. “비명을 듣고 왔어. 괜찮은 거야?” 카운터를 지키던 종업원 인드라였다. 그의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유리잔이 들려 있었다. 100시간을 끓인 ‘짜이Chai’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덧붙였다. “이걸 마시고 네가 살아나면, 너는 나한테 10,000루피를 줘야 해. 그러니 꼭 살아줬으면 좋겠다.” 허풍쟁이 인도인의 말에 나는 왜 뭉클했을까. 인드라가 돌아간 후, 그가 가지고 온 짜이를 단숨에 들이켰다. “엇뜨, 시발!” 너무 뜨거워서 나도 모르게 욕을 해버렸다. 눈물이 고이고 입천장이 다 녹아버리는 느낌이 났지만, 진정 살아남고 싶었기에 뜨거운 차를 단숨에 다 마셨다. 그러곤 스스로 듣기 위해 혼잣말로 말했다. “아, 맛은 없지만, 진짜 좋다. 진짜 진짜 좋다.”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글·사진 김건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