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라는 단어를 가장 선명하게 인식했던 때는 아마 고등학생 시절일 것이다. 그 겨울 가장 추웠던 아침 8시 40분, 그리고 감상보다는 감추어진 의미를 찾기에 급급했던 80분. 언어영역이라는 이름 아래, 시험과 성적이라는 틀에 갇혀 보지 못했던 무수히 많은 언어가 있다. 언어영역은 더 이상 언어영역이 아니게 되었지만(2013년 치러진 2014년도 대학수학능력시험부터 언어영역 대신 국어영역이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어쨌든 어떤 이들에게는 언제까지고 언어영역일 수밖에 없는 그 시험지에 담긴 이야기들을 다시 봤다.
《광장》, 최인훈
“중립국.” 처음 이 표현을 보고 놀랐던 기억이 난다. 《광장》은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배웠던 현대소설 중 마음에 남은 몇 안 되는 작품이다. 문득 이상하다. 소설을 현대소설이라 다시 분류하며, 읽은 게 아니고 배웠다고 표현하는 것이. 근래에는 《광장》을 떠올릴 일이 많았다. 그러면서 “인간은 광장에 나서지 않고는 살지 못한다.”고 했던 최인훈의 말도 생각났다. 그러다 작가처럼 명준에게 묻고 싶었다. 명준은 그가 살았던 고장의 모습이 70년 후 이러리라고 생각했을까?
〈권태〉, 이상
이상은 이름처럼 살기로 작정한 사람 같았다. “13인의아해兒孩가도로로질주하오.” 시 〈오감도〉를 먼저 본 탓이다. 저런 글을 쓰는 사람의 머릿속에서는 이상하고도 즐거운 생각이 늘 핑퐁게임처럼 오가지 않을까 했다. 시험지에 〈오감도〉가 아니라 〈권태〉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상은 뛰어난 수필가다. “암흑은 암흑인 이상 이 좁은 방 것이나 우주에 꽉 찬 것이나 분량상 차이가 없으리라. 나는 이 대소 없는 암흑 가운데 누워서 숨 쉴 것도 어루만질 것도 또 욕심나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 게다가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시간이 필요하다.
〈시집살이 노래〉, 작자 미상
작자 미상의 고전 시가가 지금까지 전해질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떠올려보자. 구구절절 공감하는 이들의 입에서 입으로, 손에서 손으로? 아마 그럴 테다. 시집살이에 관해 물어보는 사촌 동생에게 언니는 이렇게 답한다. “그 말 마라 시집살이 개집살이” 시집 식구들은 또 어쩜 이렇게 소름 끼치게 묘사했는지. 시아버지는 호랑새, 시어머니는 꾸중새, 동서는 할림새, 시누는 뾰족새, 시아주버니는 뾰중새, 남편은 미련새다. 고전 시가는 개화기 이전의 한국의 시와 노래를 통칭하는 말이다. 어림잡아도 150년 전에 쓰인 글이라는 게, 그리고 여전히 공감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
〈병원〉, 윤동주
특히 시를 읽을 때면 그랬다. ‘흰옷’, ‘하얀 다리’는 색채 이미지. ‘나비’, ‘살구나무’, ‘금잔화’는 자연물. 마음속에 떠오르지도 않은 영상을 그려보려 무던히 애썼다. 그래서 한동안 시를 읽는 게 어려웠다. 찾던 버릇은 계속 무언가를 찾아 헤맸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시를 읽는다. 이 시도 읽었다. “나도 모를 아픔을 오래 참다 처음으로 이곳에 찾아왔다. 그러나 나의 늙은 의사는 젊은이의 병을 모른다. 나한테는 병이 없다고 한다. 이 지나친 시련, 이 지나친 피로, 나는 성내서는 안 된다.” 시인 대신 성내기도 하며, 보이는 대로, 읽히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나도 “그가 누웠던 자리에 누워 본다.”
〈옛우물〉, 오정희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서 사십오 년이란 무엇일까. 부자도 가난뱅이도 될 수 있고 대통령도 마술사도 될 수 있는 시간일뿐더러 이미 죽어서 물과 불과 먼지와 바람으로 흩어져 산하에 분분히 내리기에도 충분한 시간이다.” 오정희의 문장은 연필로 꾹꾹 눌러쓴 것 같다. 입술을 오물쪼물 움직이며 문장을 되뇌게 한다.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오래 마음에 남는다. 주인공은 마흔다섯 번째 생일날 아침 자신이 태어난 날을 떠올려보려 한다. 한 사람의 생애에 있어 45년이란 무엇일까, 그렇다면 30년이란 무엇일까, 19년이란 무엇일까. 결국 삶이란 무엇일까 생각하게 한다.
〈원고지〉, 이근삼
절묘하게도 〈원고지〉의 주인공은 언어를 번역하는 사람이다. 그는 교수이지만 박봉이기 때문에 가족의 생계를 위해 쉬지 않고, 마치 기계처럼 번역 원고를 쓴다. 늘 돈과 시간에 쫓기고, 죄수처럼 일상에 얽매어 있다. 이근삼이 1960년 1월 《사상계》에 발표한 〈원고지〉는 한국 서사극의 효시로 평가되는 희곡이다. 서사극은 현대사회를 드러내기에 효과적인 그릇이다. 지식인으로 평가되는 교수조차 물질에 투신해야 하는 사회. 당장 돈으로 치환할 수 없는 많은 것들을 쓸모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요즘과 다르지 않다. 등장인물들이 나누는 대화는 웃기지만, 너무 아프다.
《시장과 전장》, 박경리
《토지》는 알지만 이 책을 아는 사람은 드물지 않을까? 《시장과 전장》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소설이다. 소설에는 전쟁을 겪는 여러 인물이 등장하는데, 그중 가장 마음이 쓰이는 건 지영이다. 그리고 지문에는 등장하지 않은 대목을, 지영이 6월 24일 밤에 남편에게 보낸 편지의 일부를 지금 함께 보고 싶다. “다음은 당신의 그 소박한 허영에 대해서 말씀 드리겠어요. 그렇습니다. 참 소박한 허영이에요. 당신은 대학 나온 아내를 갖고 싶었을 거예요. 언젠가 기차 통학하는 저를 두고 친구에게 누이동생이라 했더니 그 친구가 처남 하자 하더라면서 당신은 유쾌한 표정으로 저에게 말하신 일이 있죠? 또 한번은 어떤 대학생 둘이 저의 뒤를 따라오다가 희가 나오면서 엄마 하고 부르는 바람에 그들이 막 웃으면서 돌아서더라는 건넛집 평양댁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당신은 역시 유쾌하게 웃었습니다. 사소한 일이죠. 지극히. 그러나 도대체 저는 무엇일까요? 당신에게 있어서, 아내입니까? 어쨌든 저는 그렇게 싫어한 사람들 속으로, 밖으로 몰려나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