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에 도착했다. 이것저것 부산스럽게 가방을 뒤적인다. 작업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책상 위에 올려둔다. 노트북, 아이패드, 이것저것 끼적일 작은 노트, 여러 가지 펜이 들어 있는 투명하고 긴 사각 필통…. 그렇게 큰 책상 위는 금세 작업자의 도구들로 가득 채워진다. 그다음엔? ‘자,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가 아니다. 역시나 오랜 시간 책상에 앉혀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건 ‘커피’다. 이상하게도 커피가 옆에 없으면 작업을 시작할 수 없는 희한한 병에 걸렸다. 그렇게 나는 책상을 떠나 주방이 있는 1층으로 자리를 옮긴다. 어떤 커피를 마실까? 찬찬히 둘러본다. 지방에 일이 있어 갔던 날 선물 받은 원두를 아직 먹어보지 않았는데, 돌돌 갈아서 드립 커피를 해 먹어볼까? 아니야 오늘은 시간이 촉박하니까 전에 친구랑 먹은 맛있는 콜드브루 액상 커피를 타 먹을까? 고민하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원두가 계속 궁금할 것 같아 마음을 천천히 먹고 그라인더에 사각사각 곱게 갈아낸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까? 라테? 아니면 그냥 따뜻하게 내려 먹어볼까? 그라인더를 사각사각 갈며 잠시 고민하다, 역시 나는 라테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우유가 없다. 아차차! 근데 이미 내 마음은 라테로 기울어져 버린걸? 조금은 귀찮기도 하고, 이럴 시간에 작업 하나 더 해야지 싶은 마음도 들던 차, ‘우유 사 오는데 뭐 얼마나 걸리나.’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잠깐 작업실 앞 편의점 다녀오는 것뿐인데.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잠시 작업실 앞 편의점에 나가 작은 우유 하나를 사 왔다. 이제 원두도 다 갈았고, 먹고 싶은 라테를 위해 우유도 사 왔으니 드립용 전기 포트에 적당히 물을 맞춰 올리고 끓어오를 동안 갈아둔 원두의 향이 좋아 킁킁 맡아본다. 그렇게 전기 포트의 스위치가 ‘탁!’ 하고 소리를 내며 뜨거운 김을 뿜어내면, 향이 좋은 원두 위에 돌돌돌 조심스럽게 속도를 맞춰 드립 커피를 내려준다. 먹기도 전 드립을 내리며 온통 느끼는 커피 향 때문에, 더욱더 빨리 커피 맛을 보고 싶어진다. 잠시 차갑게 넣어둔 우유에 얼음을 적당히 컵에 넣고 진하게 내린 드립 커피를 쪼로록 따라준다. 우유랑 커피가 만들어낸 색감이 너무 예쁜 라테. 그렇게 나는 이것저것 고민하고 생각해 만들어낸 차가운 라테를 쟁반에 담아 조심스럽게 2층 작업실로 가지고 올라간다. ‘탁!’ 책상 위에 드디어 커피가 올라왔다. 작업 전 나의 사소한 세리머니가 끝이 났고, 드디어 나는 한동안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이제 작업을 시작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