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ffee May Be A Habit, Not A Taste

커피는 취향이 아니라 습관일지도 몰라

처음 아메리카노가 세상에 나타났을 때, 그 특유의 쌉쌀함은 사랑의 아픔이나 인생의 쓴맛과 비교되곤 했다. 그만큼 그 쓴맛은 익숙하지 않은 맛이었고 우리에겐 신문물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군가를 만나거나 혼자서 시간을 보낼 때, 자신의 취향을 말하고 즐길 때 자연스럽게 커피가 떠오르고 커피를 말하게 된다. 아주 가까워졌단 이야기다. 나에게도 그렇다. 언젠가부터, 내 일상에서 커피는 아주 익숙한 형태로 자리 잡았다. 손님을 만나고 작업을 할 때 이제는 커피 없이는 해낼 수 없는 부분들도 생겼으니 말이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스며든 커피가 나에게 주었던 사소한 행복감을 그렸다.

“커피 드실래요?”


예전부터 나만의 공간이 갖고 싶었다. 집이든 작업실이든 오로지 나만의 취향을 드러낼 수 있는 개인적인 공간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드디어 나만의 공간을 가지게 되었다. 40년이나 된 작은 땅콩주택으로, 2층의 아담한 집을 통째로 나 혼자 사용할 수 있는 특색 있는 공간이었다. 그때 처음으로 알게 되었다. 나만의 공간이 생겼으니 나는 주인으로서 손님을 맞이하게 된다는 걸. 작업실을 얻고 난 이후 수많은 손님이 오갔다. 나는 그들을 위해 여러 가지 차를 내어주었고 그중 가장 인기가 좋은 것은 단연 커피. 사실 나도 손님들에게 1순위로 커피를 권한다. 이유는 잘 모르겠지만, 괜스레 커피를 권하게 된다. 아마 갈아둔 원두를 사용하고 싶은 것도 있겠고, 전에 선물 받아 먹어본 드립백 커피가 맛이 좋아 권하고 싶던 적도 있었고, 어제 점심에 나 혼자 먹은 라테가 생각나 한 번 더 권했던 적도 있는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손님이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찬장으로 향한다. 오늘 뭘 준비해볼까? 그렇게 두리번거리다 보면 어김없이 커피에 손이 간다. 어쩌다 이토록 커피를 권하는 사람이 되었을까. 이 글을 쓰고, 이 그림을 그리며 생각해본다. 손님이 사 온 달콤한 간식에 따뜻한 아메리카노가 무척 잘 어울리던 일, 무더운 여름날 놀러 온 그들의 더위를 식혀준 차가운 아이스 라테…. 그런 기억이 내 머릿속에 가지런히 박혀 있어서 습관처럼 커피를 떠올렸나 보다. 그런 나는 그들에게 습관처럼 커피를 권하고, 그럴 때마다 손님들은 언제나처럼 자신의 취향을 말해준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차가운 라테…. 그 이상은 조금 무리가 있는 주인장이라 미안할 때도 많고, 솜씨 좋은 커피 맛은 아니더라도, 정성껏 내린 커피를 그들이 사 온 자그마한 간식과 나눠 먹는 시간은 참으로 맛있고 달다. 그리고 나는 그 시간을 너무 사랑한다. 이제는 아쉽게도 이층집의 아담한 땅콩주택을 떠나게 됐지만, 또다시 새로운 보금자리에서 나는 변함없이 그들을 맞이하며 여전히 커피를 권하게 되겠지. “커피 드실래요?”

작업 전 세리머니


작업실에 도착했다. 이것저것 부산스럽게 가방을 뒤적인다. 작업에 필요한 물건들을 하나씩 차곡차곡 책상 위에 올려둔다. 노트북, 아이패드, 이것저것 끼적일 작은 노트, 여러 가지 펜이 들어 있는 투명하고 긴 사각 필통…. 그렇게 큰 책상 위는 금세 작업자의 도구들로 가득 채워진다. 그다음엔? ‘자, 그럼 이제 시작해볼까?’가 아니다. 역시나 오랜 시간 책상에 앉혀줄 무언가가 필요하다. 그건 ‘커피’다. 이상하게도 커피가 옆에 없으면 작업을 시작할 수 없는 희한한 병에 걸렸다. 그렇게 나는 책상을 떠나 주방이 있는 1층으로 자리를 옮긴다. 어떤 커피를 마실까? 찬찬히 둘러본다. 지방에 일이 있어 갔던 날 선물 받은 원두를 아직 먹어보지 않았는데, 돌돌 갈아서 드립 커피를 해 먹어볼까? 아니야 오늘은 시간이 촉박하니까 전에 친구랑 먹은 맛있는 콜드브루 액상 커피를 타 먹을까? 고민하다 아직 먹어보지 못한 원두가 계속 궁금할 것 같아 마음을 천천히 먹고 그라인더에 사각사각 곱게 갈아낸다.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먹을까? 라테? 아니면 그냥 따뜻하게 내려 먹어볼까? 그라인더를 사각사각 갈며 잠시 고민하다, 역시 나는 라테가 좋다고 생각한다. 그러고 나서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우유가 없다. 아차차! 근데 이미 내 마음은 라테로 기울어져 버린걸? 조금은 귀찮기도 하고, 이럴 시간에 작업 하나 더 해야지 싶은 마음도 들던 차, ‘우유 사 오는데 뭐 얼마나 걸리나.’ 하는 마음의 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잠깐 작업실 앞 편의점 다녀오는 것뿐인데. 마음이 시키는 대로 잠시 작업실 앞 편의점에 나가 작은 우유 하나를 사 왔다. 이제 원두도 다 갈았고, 먹고 싶은 라테를 위해 우유도 사 왔으니 드립용 전기 포트에 적당히 물을 맞춰 올리고 끓어오를 동안 갈아둔 원두의 향이 좋아 킁킁 맡아본다. 그렇게 전기 포트의 스위치가 ‘탁!’ 하고 소리를 내며 뜨거운 김을 뿜어내면, 향이 좋은 원두 위에 돌돌돌 조심스럽게 속도를 맞춰 드립 커피를 내려준다. 먹기도 전 드립을 내리며 온통 느끼는 커피 향 때문에, 더욱더 빨리 커피 맛을 보고 싶어진다. 잠시 차갑게 넣어둔 우유에 얼음을 적당히 컵에 넣고 진하게 내린 드립 커피를 쪼로록 따라준다. 우유랑 커피가 만들어낸 색감이 너무 예쁜 라테. 그렇게 나는 이것저것 고민하고 생각해 만들어낸 차가운 라테를 쟁반에 담아 조심스럽게 2층 작업실로 가지고 올라간다. ‘탁!’ 책상 위에 드디어 커피가 올라왔다. 작업 전 나의 사소한 세리머니가 끝이 났고, 드디어 나는 한동안 책상에 앉아 작업을 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럼 이제 작업을 시작해볼까?

《저 청소일 하는데요?》

김예지 | 21세기북스

글·그림 코피루왁(일러스트레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