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닥터 베로 김형규의 코믹 프리즘
0.00821918년 동안의 고독
닥터 베로 김형규의 코믹 프리즘
오랜만에 혼자가 되었습니다. 이 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하다가, 만화책 속의 주인공들을 집으로 초대하기로 했습니다. ‘혼자’라는 이야기를 둔 하나의 프리즘Prism을 이야기합니다.
오늘 아내와 아들이 친구들과 함께 여행을 떠났습니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지만 결혼 후 이렇게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경우는 처음이라 얼떨떨하네요. 촘촘히 어떤 계획을 세우고 무슨 일을 하겠다는 것 없이 ‘그냥 뭐 자유를 느껴볼까?’ 하는 기분으로 하루를 보냈어요. 우리 집 강아지 앙드레와 고양이 몽실이가 있기에 완벽히 혼자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지만, 그래도 저쪽 침실에서 넷플릭스를 보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는 아내가 나를 부르며 “여보 잠깐만 와봐요!” 내지는 아들이 자기 방 이층침대에 쏙 올라가 만화책을 보면서 “아빠 물 좀 가져다주세요!”라는 소리가 환청처럼 들리는 듯합니다. 이렇게 혼자 거실 소파에 앉아서 빈둥거리고 과자도 와삭와삭 먹으며 부스러기를 주변에 흘리거나, 게임을 하다 옆에 툭 던져 놓아도, 아무도 저에게 뭐라고 하지 않으니 뭔가 평소와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사이사이 앙드레는 응가를 하고, 몽실이는 쉬야를 하고, 물고기들은 밥을 달라고 뻐끔거리기에 완전히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렇게 혼자 집을 지키고 있자니 조금 쓸쓸하고 외로워집니다. 그래서 아주 오랜만에 몇 명의 친구를 집에 초대했습니다. 이 친구들이 내 초대를 받고 집에 놀러 올지는 미지수지만, 그래도 이렇게 혼자 집을 지킬 때는 이 친구들이 가장 적격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가장 처음 집 초인종을 누른 친구는 후루야 미노루 작가의 《두더지》에 나오는 스미다입니다. 앗, 스미다 군이 가장 먼저 오다니! 저도 놀랐네요. 스미다 군은 혼자 보트 가게를 운영하는 자퇴한 중3으로, 현재 자살했습니다. 만날 때마다 “저는요, 평생 누구에게도 피해를 주지 않겠다고 맹세해요. 그러니 제발 누구도 나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으면 좋겠어요.”라고 쓸쓸하게 웃으며 말하곤 합니다. “그럼 외롭지 않아?”라고 물어봐도 그는 이제 제발 상처받지 않고 철저히 혼자가 되고 싶다고 말하곤 하죠. 이 친구는 제목 그대로 땅속 두더지처럼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평범한 삶을 원하는 듯합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그의 절망적인 상태를. 그가 절대로 평범하게 살지 못한다는 것을요. 사랑하는 애인과 눈이 맞아 도망가 버린 어머니와, 돈이 떨어지면 어슬렁거리며 나타나는 무기력한 채무자 아버지. 절대로 스미다는 평범하게 살 수 없습니다. 타인의 의지에 의해 혼자가 되었지만, 그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은 자발적인 ‘혼자’가 되어 어느 누구에게도 상처받지 않는 것이죠. 매번 만날 때마다 “스미다! 너도 평범한 어른이 될 수 있어! 정말이야.”라고 말을 건넵니다. 하지만 제 이야기가 그의 귀에 전달되지는 않는 듯합니다. 자신의 아버지를 살해한 후, 그는 인생의 목표를 바꾸었습니다. 1년 동안 덤으로 살아간다고 생각하고 그 사이에 진짜 나쁜 악인을 찾아 죽이겠다고요. 악인을 죽이고 자기도 자살하겠다는 목표를 세웁니다. 신발을 벗으며 집으로 들어오는 스미다의 몸에서 피곤에 찌든 땀내가 납니다. 아마도 악인을 찾아 계속 동네를 순찰하고 있나 보군요. “어때 나쁜 놈을 좀 찾았어?”라고 물어보면 이 친구는 “아니요, 아직 진짜 나쁜 놈을 찾지는 못했어요.”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듭니다. “괜찮아, 괜찮아. 이제 나쁜 놈들을 그만 찾아다녀. 날이 추워졌으니 따뜻한 코코아라도 마시고 샤워나 좀 하고 가라. 혼자 목욕을 하면 기분이 좋아질 거야.” 말 없이 스미다는 피곤한 발을 질질 끌며 욕실로 들어갑니다. 휴우, 친구 한 명을 불렀는데 오히려 마음이 더 무거워지네요.
두 번째로 현관문을 두드린 친구는 《안녕이란 말도 없이》의 우에노 켄타로 작가님이시네요. 빈손으로 오셔도 되는데 음료수를 사가지고 오셨어요. 뭘 이런 걸 다 사 오시고. 우에노 켄타로 선생님의 아내분은 천식과 우울증을 앓고 있었는데 2011년 책 제목처럼 안녕이란 말도 없이 어느 날 거실에 엎드린 채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아내를 하늘나라로 보내고 세상의 의미를 잃어버린 한 남편. 장례식을 치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려고 발버둥 치는 그를, 나는 먼 거리에서 그저 바라보았습니다. 그가 공원의 한가운데에서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는 모습이나, 집에 돌아와서 아무도 대답하지 않아도 “다녀왔어.”라고 말하며 아내에게 말하는 모습이나, 남겨진 동영상 속의 아내의 모습을 반복적으로 돌려보는 모습을 말이죠. 그때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습니다. 제 위로가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어요. 큰 아픔을 겪은 것을 알기에 처음 그를 만나고 제 마음이 너무 무거워졌습니다. 한동안 다시 그를 만나기가 두려웠습니다. 그렇게 마음속 깊은 바다의 바닥에 깊게 묻어놓았었습니다. 그의 존재를요. 그러다가 아주 잠깐이지만 혼자 시간을 보내다 보니 문득 그가 생각나서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궁금증이 모락모락 피어올랐던 겁니다. 꽤 오랜만에 만나기에 조심스럽게 “잘 지내셨…죠?”라고 물어보았습니다. 그의 얼굴에서 일상에 지친 느낌이 역력하네요. 이분 그 사이에 많이 늙었네요…. 사랑하는 사람과 이별을 하거나, 사별을 한 후에 느끼는 외로움과 고독을 온몸으로 느끼고 표현한 작가님. 이별의 아픔 이후에도 계속 일상을 헤쳐 나가야 하기에 야키니쿠를 먹으며 힘을 내겠다는 한 남편이자 아빠를 다시 만난 것이죠. 오늘 혼자 있어 조금 쓸쓸했다고 하소연하기에는 너무 미안하네요. 여행을 간 아내와 아들이 보고 싶습니다. 우에노 켄타로 작가님에게는 몸의 피곤을 풀 수 있도록 안마의자를 내드렸습니다. 허어, 친구를 두 명이나 불렀는데 왠지 더 혼자인 느낌입니다.
세 번째로 문을 부수고 들어온 주인공은 지상 최강의 남자 《원펀치맨》의 사이타마입니다. 아… 이 인간을 부를까 말까 고민했는데요, 문 열어주는 그 새를 못 기다리고 문을 부수고 들어왔네요. 스스로의 의지로 신의 힘을 가진 남자. 신이 깃들어 있는 육체를 가진 남자. 사이타마. 그에게 적수는 없습니다. 우주의 어떤 적이던 그에게 공포를 주는 라이벌은 없는 것이죠. 한 번의 주먹질이면 그는 승리합니다. 그는 항상 “취미로 히어로를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합니다. 그에게 절실함은 사라졌습니다. 그야말로 모든 것이 취미. 그가 느끼는 것은 고고한 천재가 느끼는 고독, 외로움일까요. 평범한 우리들이 느끼는 가슴 떨리는 흥분, 두려움, 공포, 용기를 그는 망각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우주 생태계의 정점에 섰습니다. 그래서 외롭죠.
“나는 최강의 남자. 그래서 어쨌는데? 허무해. 압도적인 힘이란 건 재미없는 법이야.” 그래서 말이죠 그와 함께 플레이스테이션 게임을 하기로 했습니다. 제가 이길 수 있는 것은 몸을 직접 움직이는 현실 속의 싸움이 아니라, 게임 속 가상현실에서의 싸움인 것이죠! 사이타마 한 판 붙어볼까? 으핫핫핫, 너에게 두려움을 주겠다. 어라라라라? 내가 졌네요? 이런….
온다고 한 네 번째 주인공은 《고독한 미식가》의 이노가시라 고로 아저씨입니다. 혼밥의 달인. 시간과 사회에 얽매이지 않고 행복하게 배를 채울 때 잠시 동안 제멋대로가 되고 자유로워진다는 고로 아저씨.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누구도 신경 쓰지 않으며, 음식을 먹는 고독한 행위. 캬! 이 행위야말로 현대인들에게 평등하게 주어진 최고의 치유 활동이라고 항상 말하는 그의 당당함이 멋지고 부럽습니다. 자발적인 고독한 즐거움. 물론 독신주의자이기에 더더군다나 고독하게 식사를 즐기시는 듯한데 말이죠. 오늘도 오라고 오라고 전화를 드렸더니 근처에 볼일이 있는데 일찍 끝나면 들르겠다고 해놓고 답이 없습니다. 하시는 일이 수입물품 유통업이기에 주문받은 일감이 어떠냐에 따라 변동이 많은 것은 알겠지만. 맨날 같이 밥 먹자고 전화해도 바쁘니까 다음에 먹자고 하고, 술 한잔 같이 하자고 해도 자기는 술 못한다고 우롱차를 드시면서 다음에 만나자고 하는데. 음. 고로 형님, 제가 형님 좋아하는 거 아시죠? 밥 먹을 때 제가 괴롭히지 않을 테니까 저랑 식사 한번 하시죠. 지금 전화를 해보니 받지 않으시는 걸 보니까 결국 형님은 안 오시려나 봅니다. 이 형은 맨날 안 와…. 역시 고독한 미식가이십니다.
오늘 저는 한 번 더 군중 속의 고독을 경험합니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친구들을 불렀지만, 왠지 더 혼자임을 느끼게 되었네요. 욕조 옆에 두었던 만화책과 안마의자 사이에 들어간 만화책, 게임기 옆의 만화책, 식탁 위의 만화책을 주섬주섬 정리합니다. 혼자 만화책을 펼치며 만났던 혼자인 주인공들. 그들과 함께 제가 느낀 혼자라는 시간은 비참한 고독이 아니라 감사함을 느끼는 혼자만의 시간이었습니다. 결국 우리는 모두 혼자이면서 혼자가 아닙니다. 외롭거나, 쓸쓸하거나, 고독하거나, 심심하거나,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을 때 저는 제 방으로 달려가 책장에서 만화책을 뽑아 듭니다. 페이지가 열리면, 그곳이 어느 곳일지라도, 언제나 그 자리에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래서 만화책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니까요. 아내와 아들이 돌아오면 그 사이에 읽은 만화책 이야기를 해주면서 꼭 안아주어야겠어요. 여러분도 가족 누구든지 좋습니다. 1분만 꼭 안아주세요. 와락. 따뜻한 무언가가 마음속을 채울 겁니다. 한번 해보세요. LOVE & PEACE, COMIC & PEACE.
닥터 베로를 찾아온
손님 목록
두더지
후루야 미노루ㅣ코믹스투데이
스미다는 타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또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는 것을 바라는 중3 소년이다. 가업인 보트 대여업을 하며 선하고 조용하게 살고 싶어하지만, 세상은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는다. 학교에 갔다 와보니 홀어머니는 사랑의 도피를 떠났고, 홀로의 시간을 견뎌야만 한다. 내게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일의 발생, 그것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안녕이란 말도 없이
우에노 켄타로ㅣ미우 출판사
《안녕이란 말도 없이》는 일본 개그 만화가 ‘우에노 켄타로’ 작가가 아내의 죽음을 계기로 그린 작품이다. 갑작스러운 슬픔과 예기치 못한 슬픔의 수문이 열리고 그를 그만 잠식시키고 만다. 작고 소소하지만 매일의 빈틈을 메우는 가족의 행복을 들여다보며, 우리 곁으로 스쳐 간 수만 가지의 마지막들을 떠올리게 된다. 그게 마지막인 줄도 몰랐던, 진짜 마지막들을.
원펀맨
원작 ONEㅣ그림 뮤라타 유수케ㅣ대원씨아이
괴수들이 출몰하는 도시, 취미로 영웅의 일을 즐기는 사나이가 있다. 반짝이는 대머리에 맹한 얼굴, 조금 촌스러운 복장을 갖춘 ‘사이타마’는 좀처럼 소시민으로밖에 보이지 않지만 사실은 혹독하고 험난한 훈련을 거쳐 엄청난 힘을 손에 넣은 사람이다. 그 힘만 있다면 어떤 괴물이나 로봇도, 심지어 외계인까지도 주먹 한 방이면 거뜬하다.
고독한 미식가
다니구치 지로, 구스미 마사유키ㅣ이숲
도쿄와 오사카의 소박하고 오래된 식당을 돌아다니며 일본 고유의 음식을 맛보는 사내가 한 명 있다. 그는 언제나 홀로 자신의 식사 시간을 누리는 것을 사랑한다. 지극히 단순하고 일상적인 음식을 맛보며, 깊은 맛을 집중적으로 나타내어 많은 사람에게 사랑을 받았다. 모두의 평범한 일상의 맛있는 고독이 깃들기 시작한다.
글 김형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