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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실이 사라졌다. 공간이 자리하던 곳엔 적막만이 감돈다. 하지만 그곳에 새겨진 기억의 발자국은 분명하고 확실하다. 지워질 수도, 바래질 수도 없는 흔적을 찾아 사라진 작업실에 남은 이야기를 어루만져본다.
예지동 시계골목 1960—2022
서울 종로구 세운상가와 광장시장 사이. 이 오래되고 소박한 동네에 반세기 넘게 시계를 고쳐온 장인들이 모여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을 ‘예지동 시계골목’이라고 불렀다. 시계 수리공들이 이곳에 자리를 잡은 건 1960년대. 한국전쟁 때 폭격으로 예지동에 공터가 생기자, 생계를 위해 시계를 고쳐온 전쟁 피난민과 이주민은 예지동으로 향했다. 손목에 시계는 필수였던 시대, 이곳을 찾는 발걸음은 끊이지 않았다. 결혼 예물을 준비하는 신혼부부들도 반드시 예지동을 찾았다고 하니, 70년대 후반 이곳의 좁은 골목이 얼마나 번잡했을지 그려진다. 전국 어디에서도 고칠 수 없는 시계가 가장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곳이 예지동이기도 했다. 장인들의 손을 거치면 낡고 병든 시계도 다시 힘차게 째깍거렸다.
문전성시를 이뤘던 작업실이 한산해진 건 삐삐와 휴대전화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기술의 발전을 마주하며 예지동 골목을 찾는 발길도 뜸해졌다. 그렇게 이곳은 세월의 흔적을 간직한 공간이 됐다. 오래된 동네 앞에는 항상 재개발이라는 거대한 세 글자가 등장하는 법이던가. 예지동에도 재개발은 모습을 드러냈다. 사업이 시작되면서 장인들은 가게 문을 임시 사업장인 세운스퀘어로 터전을 옮겼다. 거리를 채웠던 그들의 작업실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예지동의 시간은 멈췄지만, 장인들이 고친 시계는 지금도 여전히 흐른다.
네이버 온스테이지 2010—2023
깜깜한 공간에 네모 상자가 놓여 있다. 조명이 켜지자, 음악과 함께 무대가 시작된다. 이 네모난 무대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하다. 인형 옷을 입고 노래를 불러도, 휠체어를 타고 춤을 춰도 된다. 예술가들이 자유롭게 노래할 수 있는 이곳은 ‘네이버 온스테이지’다.
슬로건 “숨은 음악, 세상과 만나다”를 내건 네이버 온스테이지는 네이버문화재단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으로, 인디 뮤지션의 공연 영상을 선보여 왔다. 네모 상자로 상징화된 무대는 어떤 뮤지션, 어떤 음악이든 환영한다. 유튜브가 크게 성장하던 시기와 맞물려 온스테이지에서 제작한 영상의 파급력도 강해졌다. 국악 밴드 ‘이날치’도 이곳에서의 무대로 크게 이름을 알렸다. 현재는 크게 성장한 인디 뮤지션들의 과거도 차곡차곡 쌓여 있다. 인디 뮤지션들의 명함과도 같던 온스테이지는 지난해 페퍼톤스의 ‘행운을 빌어요’ 무대를 마지막으로 서비스를 종료했다. 온스테이지가 시작한 이후 다양한 라이브 영상 플랫폼이 생겼고, 누구나 영상을 공유할 수 있는 시대이기에 온스테이지는 맡은 소임을 다했다는 설명이었다. 하지만 지난 13년 동안 온스테이지가 걸어온 길은 새로 생겨난 영상 속 무대들과는 사뭇 다르다. 온스테이지라는 네모난 공간은 어떠한 상상도 실험도 독려했다. 장르도 연령도 불문하고 세상에 알려져야 하는 음악, 기록할 가치가 있는 음악이면 누구든 환영했다. 꿈의 작업실. 그 자유롭고 독창적인 공간을 이렇게 호명해 본다.
원주 아카데미극장 1963—2023
1960년대 강원도 원주. 원도심에 위치한 평원로에는 극장 네 곳이 차례로 생겨났다. 원주극장(1956년), 시공관(1962년), 아카데미극장(1963년), 문화극장(1967년), 한 영화관 안에 여러 상영관이 있는 지금과는 달리, 모두 스크린 하나만을 둔 단관 극장이다. 소박한 이 공간들은 저마다의 이름과 모습을 갖추고 원주 시민을 반겼다. 텔레비전도 대중화되기 전이었기에, 평화로운 주말 이곳을 찾는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극장들은 원주 시민의 문화생활을 책임졌으나 시대의 변화로 하나둘 스러졌다. 1990년대부터 여러 상영관을 갖춘 멀티플렉스가 등장하면서부터다. 네 극장 중 하나인 아카데미극장으로 향하는 발길도 끊겼지만, 아카데미는 60년 동안 굳건히 평원로를 지켰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남은 단관 극장이었기에 한국 극장사에서 큰 의미가 있는 공간이었다. 원주 시민들은 극장과 함께한 세월을 안고, 극장의 문화적 가치를 마음에 품고 이곳을 보존해 왔다. 그러나 이제 아카데미극장은 없다. 미래에 이곳은 원도심의 주차난을 해소하기 위한 주차장과 야외 공연장 등으로 바뀔 계획이다. 원주시의 결정을 되돌리고자 시민들이 오랫동안 노력해 왔지만, 결국 극장은 부서졌다. 효율과 편리가 고개를 들면, 그 자체로 중요한 것들은 늘 한발 물러나야만 하는 걸까. 아카데미극장이 사라진 자리엔 공간이 남긴 목소리가 맴돈다. 소중한 것은 지켜야만 한다고.
에디터 차의진
자료 제공 로컬플리커, 네이버문화재단, B급사진, 정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