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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 — 재료의 산책
《재료의 산책》 출간으로부터 7년.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가 장장을 나부끼며 우리 곁에 찾아왔다. 우리는 편의상 계절을 네 개로 나누지만 그 누구도 언제부터 언제까지가 봄인지, 여름인지, 가을인지, 겨울인지 확언할 수 없다. 돌고 도는 계절의 고리 안에서 가장 맛있는 때를 찾아 고개 내미는 재료들을 살피는 일, 두 발로 제철 재료를 찾아 나서는 일이 어쩌면 재료의 산책이 아닐까. 책장을 함빡 채운 포토그래퍼 수인이 찍은 사진들에 하고 싶은 말을 모두 담았다는 요나에게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에 깃든 이야기를 청했다. 무언가 벅차오를 것을 예감하면서. (미리 당부하건대, 이 책을 읽기 전엔 공복에 유의할 것!)
오랜만에 재료의 산책에서 만나게 됐어요. 성북구도 한창 겨울이군요. 문 열자마자 맛있는 냄새가 나서 기분이 좋아요.
어서 오세요(웃음). 요리는 인터뷰 마치고 시작하려고 손질만 좀 해두었어요. 채소 육수에 고기도 미리 삶아두고요. 보기에 멋진 음식을 해볼까 하다가, 날이 추우니 육개장으로 해보려고요.
제때 먹으려면 얼른 대화를 시작해야겠네요(웃음). 구례에 집 구하셨다는 소식 들었어요. 여기까지 오기 멀지 않으세요?
아, 최근에 굉장히 많은 오해를 사고 있는데 저 아직 서울에 살고 있어요. 구례를 돌아다니며 집도 구하고 전입 신고도 했지만 아직 이사한 건 아니에요. 구옥이라서 고치는 데만 해도 시간이 꽤 걸릴 거라 당장 이사할 상태는 아니거든요. 지금은 한창 설계하는 단계예요. 리모델링도 하고 창고 크기의 건물도 새로 지어야 해서 올해는 계속 공사가 이어질 것 같아요. 이르면 내년 초쯤 이사하게 되지 않을까 싶어요.
내년엔 구례에서 재료의 산책 새로운 시즌이 펼쳐지겠군요. 팝업 식당은 계속 이어지는 거죠?
그럼요. 조금 더 재미있는 시도를 해보려고요. 서울에서 구례까지 KTX로 두 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구례까지 와주시는 분들께 깊이 있는 경험을 건네 드리고 싶어요. 식사만을 위해 방문하는 것이 아니라 묵고 가실 수 있도록 스테이도 마련해 보려고 해요. 사실 스테이는 제 오랜 꿈이었거든요. 식사 시간만 잠깐 함께하는 게 아니라 구례 풍경도 누리고 잠도 자고 가는 공간을 꿈꾸고 있어요. 조식을 대접하고 싶어서 스테이를 마련하고 싶은 거기도 하고요. 예산이 넉넉한 건 아니어서 겨우 누울 수 있는 수준의 공간이겠지만 차차 만들어 가려고요. 식사를 예약하는 순간부터 찾아오는 길, 일상으로 돌아갔을 때의 여운까지… 아름다운 풍경과 시간 속에 스스로를 먼발치서 바라보는 시간이 되면 좋겠어요. 다음 시즌으로 만나게 될 구례는 풍경이 정말 멋진데요, 구례에 재료의 산책이 완성되고 나면 제가 하는 역할은 훨씬 줄어들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아주 작은 존재고, 광활한 자연이 훨씬 큰 역할을 할 테니까요.
기차를 타고 재료의 산책에 가는 상상만 해도 기대가 돼요. 미리 구례 여행도 계획해 봐야겠는데요(웃음). 지난 《AROUND》 인터뷰가 2020년이었으니 독자들과 5년 만에 인사하는 건데,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
그간 뭘 했더라…. 아, 결혼을 했네요(웃음).
결혼하고 나니 어때요?
확실히 좋아요. 결혼은 제 인생 계획에 없던 일이라 저한텐 큰 이벤트이기도 해요. 남편이랑은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는데, 어느 날 문득 이 사람과 가족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게 사실 결혼이잖아요. 결혼해 보니까 제 선택으로 만든 공동체라는 데서 오는 힘이 굉장히 크더라고요. 되게 단단해요. 포근하고요.
힘을 느낄 만한 변화가 있었나요?
결혼하기 전에는 모든 작업을 체력적으로 좀 힘들게 했어요. 혼자 일하다 보니까 규칙적이지 않았거든요. 일이 들어오면 에너지 되는 한 다 받아서 몰아치듯 했어요. 밤새워서 할 때도 많았고요. 몰아서 일하고, 몰아서 쉬는 식이었죠. 근데 같이 지내는 사람이 있으니 그렇게 하긴 힘들더라고요. 지금은 남편이랑 재료의 산책 작업을 함께하고 있지만, 결혼 초 남편은 회사원이었으니까 평일 저녁이랑 주말에만 같이 있을 수 있었어요. 자연스럽게 제 스케줄도 그에 맞춰 짜다 보니 퇴근도 없이 작업하던 패턴이 규칙적으로 바뀌었어요. 제 컨디션뿐 아니라 상대방 컨디션도 조절해야 하니까 서로 맞춰가게 된 건데, 그런 배려가 저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었어요.
요나가 결혼하고 건강한 삶을 꾸리는 사이 《AROUND》는 10주년도 지나왔고, 어느덧 99호를 맞이하게 됐어요. 다음 호가 곧… 100호.
아, 징그럽다(웃음). 《AROUND》는 저한테 고향 같은 느낌이에요. 같이 성장한 동네 친구처럼 느껴지거든요. “우리 커서 이런 거 하자!” 하고 이야기 나누던 아이들이 어른이 되어 만난 느낌도 들고요. ‘재료의 산책’이라는 이름으로 연재를 시작한 게 《AROUND》 5호부터인데요. 그땐 사람들한테 매거진에 연재하게 됐다고 하면 궁금해하다가도 《AROUND》라고 하면 “그게 뭐야?” 하는 반응이었어요. 초반엔 지금만큼 정체성이 확고하진 않았고 캠핑, 라이프스타일 등 다양하게 다루던 잡지였으니까요. 이런 분위기와 장르의 잡지는 없었어요. 명확하지 않은 포지션이라 금세 사라질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지금은 적어도 제 주변에선 《AROUND》 모르는 사람이 없어요. 그런 시절을 지나 벌써 100호라니…. 재료의 산책이 탄생한 잡지여서 뿌듯하고 애틋한 마음이 커요.
시간이 흘러 재료의 산책은 어느덧 요나의 또 다른 정체성이 되었죠. 재료의 산책은 그동안 어떤 변화를 거쳐왔나요?
처음엔 작은 코너명일 뿐이었고, 이렇게 사용될 거라곤 생각도 못 했어요. 사실 연재 끝낼 당시엔 가게를 하고 있을 때여서 이 이름으로 뭔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은 크게 없었어요. 그러다 가게를 정리하고 작업실 형태로 시작하게 됐을 때에야 이름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새로운 이름이 잘 안 떠오르더라고요. 재료의 산책이란 이름에도 미련이 좀 남았고요. 《AROUND》에서 연재하던 것들이 제가 앞으로 해나가고 싶은 것이기도 했기 때문에 그 이름을 그대로 쓰는 게 낫지 않을까 싶었어요. 그래서 작업실에서 식당을 오픈할 때 재료의 산책이란 이름을 사용했는데, 이렇게 오래 쓰게 될 줄은 몰랐죠. 저하고 조금 더 딱 달라붙는 이름이 된 계기는 첫 단행본을 내면서부터예요. 단행본 이름도 재료의 산책이었잖아요. 《재료의 산책》을 통해 저를 알게 되는 분들이 하나둘 생기다 보니까 꼬리표처럼 따라붙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저도 익숙해지고 마음에 들어서 어느 순간부터 재료의 산책을 내세워 지금까지 오게 됐어요. 지금은 하나의 브랜드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재료의 산책》이 나온 게 2018년인데, 2025년 2월 초에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 출간을 앞두고 있어요. 첫 책으로부터 7년의 세월을 지나온 감회가 어때요?
첫 책은 2018년에 나왔지만 연재를 시작한 건 2013년, 마친 건 2016년이다 보니 더 오래된 기분이 들어요. 《재료의 산책》은 어라운드 사옥을 지을 때 기념하는 의미에서 내게 된 책이었어요. 작가의 꿈을 안고 쓴 글도 아니고, 책을 내겠다는 생각도 없었던 터라 얼떨떨한 느낌이었죠. 그땐 책 만드는 과정을 지금보다 더 몰랐으니까 눈앞에 주어진 것들을 해나가는 데 바빠서 책임감을 느끼거나 엄청난 포부가 있던 건 아니었어요. 오히려 놀이처럼 느껴지기도 했죠. 《재료의 산책》이 인기 있을 거란 생각은 더더욱 못 했어요. 잡지로 이미 나왔던 글을 묶어 내는 거니까 잘 정리된 일기장을 선물 받는 느낌이었는데, 예상외로 이 책이 제게 큰 전환점이 되어 주었어요. 《재료의 산책》으로 엄청 많은 연결이 생겨났거든요. 이걸 평생의 프로젝트로 가져가야 되나 싶은 생각이 들면서 취미로 하던 요리가 생업이 되었어요. 제 마음속에 작게 자리 잡고 있던 것이 이렇게 커진 거죠. 지금은 저와 제 가족의 뿌리처럼 느껴져요.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를 준비하는 과정도 참 길었죠. 첫 미팅이 언제였나 찾아보니 2021년 11월이더라고요. 요나, 장수인 포토그래퍼, 오혜진 디자이너 그리고 편집장과 편집자가 처음 한자리에 모인 날이었어요. 그날 어떻게 기억하고 있어요?
엄청 추운 날이었죠. 에디터님이 양손에 음료 들고 오신 기억이 나요(웃음). 저한텐 무척 설레는 자리였어요. 첫 책은 연재할 때 저 혼자 구상하고, 원고 쓰고, 사진 찍으면서 준비한 콘텐츠여서 스스로 해내는 게 벅찬 만큼 힘든 점도 많았어요. 열심히 쓰면서도 ‘이걸 누가 보긴 볼까.’ 싶은 마음도 컸죠. 근데 두 번째 책은 연재 글을 묶는 게 아니라 처음부터 책을 위한 구상을 해야만 해서 그 출발이 무척 달랐어요. 사진 콘텐츠를 함께 만들어 갈 포토그래퍼도 있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디자이너와 소통하는 점도 새로웠어요. 게다가 워낙 쟁쟁한 분들이라 ‘되게 멋있는 게 나올 것 같다.’ 하는 기대감에 부풀었죠. 그날 미팅은 상상만 하던 게 진짜 시작되려는 자리여서 그저 설레기만 했어요.
연재를 위한 원고가 단기전이라면 책을 위한 원고는 장기전에 가까워서 마음가짐이 달랐을 것 같아요.
맞아요. 연재는 매거진 한 호를 채우기 위한 원고였고, 책으로 엮일 걸 염두에 두지 않았기 때문에 제 몫을 다하기 위해 힘을 꽉 준 것들의 집합체였어요. 반면, 이번 원고들은 책 한 권을 위한 원고였기 때문에 가볍게 쓰려고 노력했어요. 사실 글은 없어도 그만이라는 생각으로 작업하기도 했고요. 사람들한테 전달하고 싶은 것들은 사진이 충분히 전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거든요. 사진의 역할이 굉장히 컸기 때문에 글의 역할은 한 20퍼센트 정도여도 충분하지 않을까 생각한 거죠.
“사람들한테 전달하고 싶은 것”이 뭐였어요?
재료는… 정말 예뻐요. 그 아름다운 걸 기록하고 싶었어요. 사실 일상을 살아가며 한 가지 재료를 빤히 들여다볼 일은 잘 없잖아요. 보통은 바로 손질해서 요리하기 바쁜데, 마주 앉아서 가만히 보고 있으면 참 예쁘다는 느낌이 들어요. 강아지나 고양이를 보면 기분이 맑아지듯이 채소 역시 그런 힘을 지니고 있어요. 채소가 가진 여러 형태와 향에서 받을 수 있는 에너지가 분명히 있거든요. 그걸 잘 기록해서 누군가의 집에 놓아 드리고 싶다는 생각이 컸어요. 매일 보는 책은 아니더라도 어느 순간 손을 뻗어 펼쳤을 때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길 바랐죠. 그런 감각이 여러 방향으로 본인의 삶에 연결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로 제철 재료를 알게 되면서 계절을 인식하거나, 밥을 먹다가 책에서 본 채소 사진이 떠올라서 ‘나 지금 예쁜 거 먹고 있네.’ 생각하게 되는 것처럼요.
지금만 기록할 수 있는 계절도 남겨놓고 싶었어요. 훗날엔 제가 기록해 놓은 것들이 과거의 산물이 될지도 몰라요. 여러 이유로 ‘옛날에나 먹던 채소’가 될 수도 있는 거고요. 재료의 모습을 기록하고 싶다는 생각은 늘 있었지만 좀처럼 시도하지 못했고, 막상 시작해도 목표가 없으면 소홀해질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는데요. 책으로 낸다고 생각하니까 의지가 생기더라고요. 무엇보다 포토그래퍼 수인이와 한 달에 한 번 만난다는 게 큰 원동력이 됐어요. 약간 채찍질 같은 느낌(웃음). ‘아, 맞다. 곧 수인이 오는 날이지.’ 하면서 무엇을 기록해 볼까 생각하는 게 즐거웠어요. 원고를 쓰는 것도 재미있었고요. 요리 과정이 아닌 요리할 때 감각을 전하고 싶던 거라 눈 감고 쓸 때가 많았어요. 수인이 사진을 보면서 떠올리는 거예요. ‘그 요리할 때 어땠더라….’ 중요한 역할은 사진이 하고, 글은 독자들이 제가 느낀 감각을 알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덧붙이듯 써나갔죠.
수인 씨는 《AROUND》와도 연이 있는 포토그래퍼지만 단행본 협업자로서는 요나가 제안해 왔어요. 수인 씨와 함께하고 싶던 이유가 있었나요?
책 작업 들어가기 전에 다른 촬영으로 만난 적이 있어요. 스쳐 가듯 반나절 정도 함께했는데, 영상팀도 있고 또 다른 스태프와 참여자도 많아서 둘이 긴밀하게 작업한 건 아니었거든요. 대화한 기억도 없는데 이상하게 수인이한테 호기심이 생기더라고요. 수인이는 현장에 없는 것처럼 조용히 촬영하는 포토그래퍼였어요. 저는 사진 촬영이라는 건 특히 서로 의식하게 되는 순간 모든 게 흐트러진다고 생각하거든요. 근데 수인이는 현장에서 아무것도 안 찍은 것처럼 조용히 있다가 갔는데, 나중에 결과물을 보니까 너무 멋있는 거예요. ‘저 사람 뭐지?’ 싶었죠. 친구가 돼보고 싶다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어요. 사진을 보고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했다기보다는 수인이를 알고 싶다는 느낌이 컸죠. 무엇보다 요리 사진을 전문적으로 찍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 좋았어요. 요리 사진과는 거리가 멀고 사물을 아름답게 바라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면 좋겠다 싶었거든요. 수인이랑 함께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내내 궁금했어요. ‘내가 재료를 펼쳐놓고 찍어달라고 했을 때 과연 어떻게 찍을까?’
작업해 보니 어떠셨어요?
확실히 시각이 달라요. 저라면 찍지 않았을 사진만 찍더라고요. 채소가 채소처럼 안 보일 때도 많았어요. 제품 사진처럼 보이기도 하고, 뭔지 모르겠는 형태로 담기기도 했죠. 그걸 보면서 제가 말하고 싶던 아름다움이 이거였다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 이거야! 이거였어!’ 매달 작업 사진을 받을 때마다 감탄하고, 감동하곤 했죠.
특히 기억에 남는 사진 있으세요?
진짜 많은데…, 음… 냄비에서 갓 꺼낸 양배추 사진이요. 잎맥이 너무 아름다워요. 보자마자 이건 크게 뽑아서 걸어두고 싶더라고요.
아, 저 오늘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 가제본 가지고 왔어요. 교정용으로 일반 종이에 무선 제본으로 만든 거라 실물과는 거리가 있지만, 직접 손에 쥐니까 느낌이 다르더라고요.
(가제본을 만지며) 아, 기분이 정말 이상하고… 얼른 실물을 만나고 싶네요. 요리책이 아닌 요리책이라는 점이 정말 좋아요. (뒤표지 고양이 사진을 보며) 근데 이 사진은 왜 넣으신 거예요(웃음)? PDF로 표지 받아보곤 울컥했어요. 나중에 우리 집 고양이가 사라지고 나서 이 책을 보면 너무 슬플 것 같아서요. 제가 그러리란 걸 스스로 잘 알아서 기분이 묘하더라고요. 요즘은 우리 고양이들 사진만 봐도 눈물이 날 것 같아요.
팥도, 나스(요나의 고양이 이름)는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를 기록할 때 함께해 준 소중한 존재잖아요. 표지만큼의 역할을 해준 친구들이죠. 말씀하신 것처럼 저도 데이터 받아볼 때마다 요리 재료인데 재료 같지 않다는 느낌이 드는 게 참 좋았어요. 저는 노랑 주키니 단면 사진 정말 좋아해요.
아, 그거 정말 멋있죠. 수인의 사진으로 독자들에게 상상력을 건네고 싶었어요. 첫 미팅 때도 했던 이야기인데,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에는 일반적인 요리책이 가지고 있는 걸 다 빼고 싶었어요. 재료 사진은 이렇게 들어가야 하고, 과정은 이렇게 촬영해야 하고, 완성 컷은 이래야 하고….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질서를 없애고 싶다고 생각했죠. 요리책을 기대하신 분들은 난해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근데 저는 그래서 좋아요.
제철 재료가 자연스러운 존재이듯 요나의 요리도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것 같아요.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조리법을 조금 더 많이 택할 것 같은데, 특히 좋아하는 조리 방식 있어요?
예전에는 오븐에 굽는 걸 특히 좋아했고, 튀기는 건 쭉 좋아해서 이것저것 자주 튀겨 먹었어요. 그러다 최근엔 점점 기름기 없는 쪽을 좋아하게 돼서 많이 쪄 먹고 있고요. 저온에 두고 익혀 먹는 방식으로요. 최근엔 요리할 시간이 많지 않아서 슬로우쿠커에 채소랑 남은 재료들 넣고 며칠 내내 먹곤 했어요. 요새 나오는 것들은 오래 익혀야 맛있는 애들이어서 찌는 것과 더 잘 어울려요. 무, 당근, 연근 같은 애들이요.
겨울에 어울리는 조리법이네요.
맞아요. 봄이나 여름에 나는 애들은 빠르게 익혀 먹는 게 좋은데 겨울에는 천천히 오래 그대로 두는 게 맛이 좋거든요.
지금은 1월이니까 겨울의 한중간일 텐데요. 요즘 제일 맛있는 재료 중 하나를 추천해 주실래요?
무!
작년에 유튜브 〈재료의 산책〉에 무 샐러드 영상 올리셨잖아요. 따라 해봤는데, 엄마가 무척 좋아하셔서 자주 해 먹었어요. 바로 엊그제도요(웃음).
첫 책을 내고 DM으로 요리한 사진을 많이 받았는데요, 지금 딱 그때 기분이에요. 이런 말 들으면 저는 참 기뻐요. 누군가가 제 레시피를 보고 따라 한다는 이야기가 응원이 돼요. 게다가 어머니께 해드렸다고 하니까 더 힘이 나고요(웃음).
《AROUND》 72호 ‘건강한 식탁(Green Table)’ 인터뷰에서 “제철 음식의 첫걸음은 제철 재료가 제때 나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이 계절엔 뭐가 나는지 알려고 하는 마음 같아요. 물론 제철 재료가 제때 난다면 좋겠지만, 당장 바꿀 수는 없으니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하는 게 중요한 거죠. ‘호박은 이맘때가 제일 맛있는 것 같아.’ 하고 내가 먹는 재료를 의식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셨죠. 지금 이 시점에서 제철 재료를 정의해 본다면요?
결국에는 나를 돌보고 사랑하는 비결 같아요. 제철 재료를 찾았다고 어디에 홍보하거나 남을 위해 쓸 건 아니잖아요. 어쨌든 내가 먹을 걸 찾아 나선다는 점에서 나를 위하는 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물론 지금은 제철이라는 의미가 퇴색되고 있고 계절 상관없이 구할 수 있는 재료도 많지만, 어쨌든 그들이 가진 본성이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때가 중요하거든요. 시금치를 예로 들면, 어디서든 잘 자라고 언제든지 먹을 수 있는 작물이 됐지만 결국에는 추울 때 맛있을 수밖에 없어요. 일부러 춥게 해서 단맛을 끌어올리는 일은 없으니까 겨울이야말로 시금치의 힘이 커져 있을 때라고 생각해요. 그걸 직접 찾아 나서는 사람에겐 분명히 여러 가지가 보일 거예요.
제철 재료를 어디서 구하는지 알게 되고, 지금이 어떤 계절인지도 확실히 인지하게 되겠죠. 창밖으로 계절을 느끼면서 마땅히 나야 할 게 나지 않으면 ‘제철이 없어지고 있네.’ 생각해 보기도 할 거고요. 기후 위기라는 건 사실 말로만 들어서는 실감이 잘 안 나요. 그런데 생활과 연결되면 확 와닿거든요. 내가 관심을 가져온 재료가 사라진다고 하면 느껴지게 될 테니까요. 생활에서 당연하게 갖추고 있던 것들을 빼앗기기 시작하면 경각심이 생길 테니 그런 의미에서도 좀더 관심을 가지면 좋겠어요.
요새 안 보이게 된 재료로 지금 막 떠오르는 게 있나요?
일단 사과요. 조금만 더 지나면 사과 재배도 어렵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요. 기온은 물론이고 폭우, 그로 인한 병충해도 영향을 크게 미치거든요. 그래서 노지 재배만 하시는 분들은 이제 진짜 못 하겠다는 이야기를 자주 하세요. 그런 걸 생각하면 단순히 ‘겨울 작물이 안 된다.’ 수준이 아니라 앞으로 제때 무언가를 먹고 사는 것이 어려워지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이 생겨요.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는 ‘계절이란 봄·여름·가을·겨울 네 개로 무 자르듯 자를 수 없다.’는 데 뿌리를 두고 있어요. 원고와 사진뿐 아니라 편집과 디자인에도 녹아 있는 기저인데요. 《재료의 산책》은 사계절로 분권할 정도로 확실히 나뉘어 있었잖아요, 어떤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때도 콘텐츠 분류를 위해 네 권으로 나눈 건 아니었어요. 《재료의 산책》 디자인은 부엌에 두고 요리할 때 가볍게 한 손에 쥐고 볼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나온 거였어요. 그래서 주방 아무 데나 놓을 수 있게 얇고 가볍게 만들었죠. 디자인에 맞춰 원고를 분류하게 됐는데 애초에 계절을 염두에 두고 쓴 글이 아니어서 ‘이건 겨울이 아닌 것 같은데 겨울에 있어도 되나?’ 싶은 원고도 많았어요. 그때도 어느 정도 경계를 지우고 싶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에 계절로 구분될 수 없는 원고를 구분 지어 넣는 것으로 경계를 지워나갔는데요.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는 그 경계를 더 없애고 싶어서 아예 계절을 구분하지 않는 쪽으로 작업하게 됐어요. 디자이너도 기획 단계부터 함께했기 때문에 디자인에도 그 의미가 잘 담길 수 있었고요. 후루룩 넘기며 보는 책, 그러면서 ‘계절이 이렇게 흘러갔네.’ 하고 느끼길 바랐죠.
그래서 시작하는 달과 끝나는 달이 중요하지 않았죠. 계절은 순환하는 거여서 마땅히 시작과 끝이 없으니까요. 고민 끝에 출발은 3월이 맡게 됐는데, 이유가 있나요?
3월엔 경칩이 있어요. 개구리가 깨어나는 날. 개구리뿐 아니라 만물이 깨어나는 시기라고 생각해요. 농사도 슬슬 시동 거는 때이기도 하고요. 3월에는 땅에 불붙이지 말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풀도 자라나고 벌레도 깨어나는 시기이기 때문인데요. 얼어 있던 땅이 녹으면서 모든 게 생동하는 시기니까 세상이 시작되는 달이라는 생각으로 3월에서 출발하면 좋겠다 싶었어요.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는 ‘오래 읽히는 책이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만든 책이기도 하죠. 그 이야기를 해볼까요?
누군가의 삶에 오랜 친구처럼 줄곧 있어주면 좋겠어요. 《재료의 산책》을 냈을 때 “이 책 자주 꺼내 봐요.” 하는 피드백이 정말 좋았거든요. 사람이 사는 공간은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책도 한 번씩 정리될 텐데, 그때 안 보는 책들은 버려지잖아요. 책은 자원을 써서 생산하는 거니까 되도록 오랫동안 곁에 머물 수 있는 책이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매일 보는 건 아니더라도 5년 뒤에도, 10년 뒤에도 펼쳐보고 싶은 책이면 좋겠어요. 독자들에게도, 그리고 저에게도요.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 프롤로그에 “나에게 요리란 흙과 인간의 연결을 관찰하고 잇는 작업”이라는 문장을 적어주셨죠. 참 인상 깊은 이야기예요.
흙 묻은 걸 더럽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물론 흙을 먹거나 더럽게 쓴 흙이라면 더럽겠지만, 사실 모든 재료는 다 흙에서 와요. 모든 작물은 흙에 있는 미생물들이 키워준 거라고 생각하면 참 고마운 존재죠. 먹고 남은 것들이 다시 흙으로 돌아가 순환을 만든다는 것도 멋진 일이고요. 그런 동그라미 안에서 요리를 하면서 채소를 다루다 보니 흙이란 인간에게 가까이 있어야 하는 거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저는 요즘 좋은 흙을 잘 관리해서 뭔가를 키워 먹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그래서 구례로 이사하는 거기도 해요. 서울에서 재료를 구하다 보면 아이러니할 때가 많거든요. 구매자가 서울에 있다는 이유로 작물이 영차 영차 옮겨 오잖아요. 그걸 우리는 비싼 값으로 사서 먹고, 필요한 재료가 없다고 투덜거리기도 하고요. 그러는 중에도 예쁜 것만 남기고 못생긴 건 버리는 삶을 살아가는데, 이건 좀 이상하지 않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직접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것 역시 흙과 인간을 잇는 과정이겠죠.
와! 구례에서 뭘 키워볼지 정하셨나요?
농사는 해본 적이 없어서 아무것도 몰라요(웃음). 그렇지만 농부님들이 하는 일들을 종종 지켜보면서 재밌겠다는 생각은 자주 했어요. 재료의 제철을 알면 더 소중하게 먹을 수 있다는 생각의 연장선인데, 스스로 키운 작물을 먹으면 감회가 훨씬 남다를 것 같아요. ‘이거 진짜 열심히 키운 건데!’ 하면서 먹게 되겠죠. 어떤 채소를 먹든 그 존재 하나하나에 감사해질 것 같아요. 어떤 식사든 내 땀과 눈물이 들어갔다고 생각하면 한 끼가 훨씬 소중해질 거고요. 지금은 음식을 쉽게 배달해 먹고, 사 먹을 수 있는 시대여서 그런 감각이 희미해져 있는 것 같아요. 오히려 너무 쉬운 일이 되어 버려서 과영양이 오기도 하니까 살찔까 봐 걱정하며 적게 먹는 사람도 많고요. 이런 불균형을 다시 원점으로 돌려놓으면 어떻게 바뀔까 스스로 실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또 다른 도전이 될 수도 있겠네요. 제철 재료를 다루는 요나의 시선 덕에 익숙한 것을 다시 보게 돼요.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 출간에 앞서 텀블벅 후원을 진행했는데, 1천 퍼센트를 넘어섰잖아요. 저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걸 실감하기도 했어요.
아(웃음), 그건 아마 책의 힘일 거예요. 저는 식당, 유튜브, SNS 등 다양한 방식으로 재료의 산책을 기록하고 있는데요. 책을 소장하고, 책으로 뭔가를 보는 걸 좋아하는 분들이 많다는 걸 자주 느껴요. 사실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 콘텐츠는 책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도 되는 거잖아요. 그런데 책이어서 좋아하는 분들이 분명히 있는 것 같아요. 그게 안심이 돼요. 요리를 따라 만들고 싶어서 구입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책을 갖고 싶고, 만지고 싶고, 곁에 두고 싶다는 의미에서 선택했다는 게 너무 좋아요.
《AROUND》 99호와 함께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도 비슷한 시기에 출간될 것 같아요. 눈여겨보길 바라는 부분이 있나요?
사진이요(웃음). 한 장 한 장 다 아름다워서 무엇 하나 고르기가 쉽지 않아요. 펼쳐 보다 보면 좋아하는 컷이 생길 텐데, 그걸 꼭 찾으셨으면 좋겠어요. 사람마다 좋다고 생각하는 이미지가 다를 테니까 언젠가 그런 이야기도 함께 나눠보고 싶어요.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난다.) 제 배가 신호를 보내는데요….
육개장은 한참 끓여야 하니까 이제 슬슬 준비해 볼까요(웃음)?
사진에 장수인, 디자인에 오혜진
책 소개
수인‧먹는 일은 종종 너무 당연하게 여겨져 그 소중함을 잊을 때가 많죠. 《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를 만난다면 의식적으로 먹는 일에 집중하고 그 과정을 즐기며 더 나은 요리 습관을 가질 수 있게 될 거예요.
혜진‧한마디로 표현해 볼게요. 빨주노초파남보.
첫 느낌
수인‧재료와 요리를 통해 일상 속 작은 변화와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사진을 담고 싶었어요. 담백하고 차분한 느낌이길 바랐고, 시간이 지나도 계속 바라보고 싶은,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매력을 지닌 사진들을 상상했죠.
혜진‧쌓여가는 시간의 겹을 떠올렸어요.
숨은 이야기
수인‧《재료의 산책, 두 번째 이야기》에는 요나의 이전 작업실, 이전 집, 현재 작업실, 그리고 현재 집까지, 네 곳의 장소가 모두 담겨 있어요. 사진만으로는 분주한 움직임이 잘 안 보이겠지만 1년 동안 참 많은 이동이 있었죠.
혜진‧‘엄청나게 많은 이 사진들을 어떻게 나열하고 보여줄 것인지!’ 줄곧 생각했어요.
만족한 지점
수인‧사소하고 분주한 일상 속에서 미처 느끼지 못한 시간의 흐름과 계절의 변화를 식재료를 통해 깊이 느낀 1년이었어요. 향긋한 봄 내음 가득한 재료들, 생동감 넘치는 여름의 다채로운 재료들, 짙은 색으로 물들어가는 가을의 풍성함, 그리고 따스함이 가득한 겨울 재료까지, 열두 달 내내 계절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었답니다.
혜진‧레인보우 책등!
어려웠던 점
수인‧요나는 아주 조용하고 빠르게 요리를 하는데요, 어떤 과정을 시작하는지 미리 말해주지 않아서 요나의 손에서 시선을 뗄 수가 없었어요. 잠깐이라도 한눈을 팔면 벌써 그다음 재료를 손질하고 있거든요. 자연스럽고 빠르게 요리가 진행되는 과정은 정말 놀라웠어요.
혜진‧모두 음식 사진이었기 때문에 배고플 때 작업하면 매우 곤란했어요. 항상 든든히 밥을 먹고 작업하려 했죠.
시도
수인‧레시피에 자주 등장하는 레몬 소금을 직접 만들어 보았어요. 레몬을 소금에 절이면 짠맛과 함께 상큼한 향과 감칠맛이 어우러진 독특한 풍미를 즐길 수 있답니다. 만드는 방법도 간단해요. 깨끗이 씻은 레몬을 얇게 썰어 소금과 번갈아 가며 병에 차곡차곡 쌓기만 하면 됩니다. 제가 시도해본 레시피 중에서도 활용도가 가장 높았어요!
혜진‧아직은 없지만 작년부터 요리가 취미가 된 터라 책을 보며 찬찬히, 하나씩 모두 시도해 보려고 해요.
좋아하는 제철 재료
수인‧저는 여름의 재료들 가장 좋아하는데요, 여름의 과일과 재료들은 1년 중 가장 화려하고 아름다운 색채를 뽐내기 때문이에요. 태양의 따사로운 햇볕을 받아 더욱 선명하게 빛나는 과일의 색은 그 자체로 자연이 선물한 아름다움이죠. 마치 태양의 에너지를 그대로 담아낸 듯, 보는 것만으로도 기쁨을 줘요. 풍미를 느낄 때마다 여름의 활기와 생명력이 그대로 전달되는 것 같죠.
혜진‧아직 초보라서 제철 재료가 무엇인지에 관한 지식까지는 부족합니다만 계절로는 곧 다가올 봄을 가장 좋아해요. 따듯해지면 시장에 나가봐야겠네요.
이 책의 핵심
수인‧우리가 아직 모르고 있는, 이 땅에서 나는 재료가 얼마나 많은지 발견할 수 있다면 그 자체로 큰 변화일 거예요. 새로운 재료를 발견하고 활용함으로써 선택의 폭은 더욱 넓어지고, 식탁은 훨씬 풍성해지지 않을까요?
혜진‧이 책은 어딘가를 눈여겨보기보단 멍하니, 나도 모르게 페이지를 넘겨가며 보는 게 어울리는 느낌이에요.
10년 뒤
수인‧이 책이 당신의 매일의 식탁에 따듯함을 더할 수 있기를 바라요. 바쁜 일상 속에서도 음식을 준비하고 나누는 순간들이 더 소중하게 느껴지고, 그 과정에서 마음까지 다정하게 어루만져지는 책으로 기억되면 좋겠어요.
혜진‧음… 늘 과거에 예상한 것과 현재가 다르기 때문에, 저는 미래를 예측하지 않아요. 하핫! 10년 뒤에 이야기해 볼게요.
에디터 이주연(산책방)
포토그래퍼 최모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