흘러 모여든 순간에게

사진작가 구본창

흘러 모여든 순간에게
사진작가 구본창

영상이 소설이라면, 사진은 시라고 했다. 말이 없는 사진 속으로 비유와 함축과 질문이 있다. 답을 찾는 것은 감상하는 사람의 몫이 된다. 사진을 들여다보는 일, 피사체와 말 없는 대화를 나누는 일, 눈을 감아 여운을 감추는 일. 모든 것이 아직 낯설지만 그의 사진 속은 조용하고 평안해 보였다.

INTERVIEW
사진작가 구본창

당신의

요즘 어떻게 지내고 계신가요?
집을 짓느라고 바빴어요. 이제까지 제가 했던 일을 정리하고 있죠. 지하는 스튜디오로 두고, 작업하면서 제가 썼던 소품은 2층에 모아두려 하고 있어요. 이 공간 자체가 아카이빙 갤러리가 되는 거죠. 

꽤 옛날 이야기를 해보고 싶어요. 평범한 무역 회사원에서 사진작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용기의 근원은 무엇이었나요?
한국에서 무역회사를 다닐 적에 이게 나의 길이라는 생각이 안 들더라고요. 원래 관심 있던 건 화가나 디자이너였어요. 사실 사진작가를 떠올린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리고 무작정 떠났죠. 무작정이었지만 무작정은 아니었던 게, 당시 주재원으로 파견 나갈 수 있는 회사를 찾았거든요. 함부르크에 가서, 일상에서 다양하게 시각적인 자극을 받을 수 있었어요. 이런 바탕을 두고, 점점 저의 관심을 능력으로 인정해주는 사람들이 생겨나더라고요. 말은 통하지 않지만 제가 다녔던 학교의 교수님들이 제가 찍은 사진이나 과제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칭찬해주니 마음속에 자긍심이 생긴 거죠.

작가님이 찾아낸 자신만의 시각언어가 있는 것 같아요. 자기만의 언어를 찾아가는 일처럼요.
독일에 간 건 제 인생에서 제가 할 수 있고, 또 하고 싶을 일을 찾는 좋은 계기였어요. 독일식 수업이 도움이 됐어요. 대상을 관찰할 때 본질에 대해 먼저 생각하는 방법을 알려주었거든요. 장식은 최대한 배제하고 기본적인 것을 중시하는 방법이었죠. 그렇게 배우고 익히면서 저만의 스타일이 생겨난 것 같아요. 제 작품이 대부분 미니멀하고 군더더기 없는 게 여기서 영향을 받았어요. 작가의 작품은 생활과 환경에 연관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리 주관을 배제하더라도, 사람의 눈을 통해서 작업하는 일인 만큼 마음이 드러날 수밖에 없거든요. 사진 작업은 셔터를 누르는 순간이 아주 중요해요. 그중에 어떤 것을 고르는 지도 중요하죠. 그게 바로 작가의 눈이에요. 자신을 반영할 수밖에 없어요. 힘들게 주변과 부대끼며 살 때는 어떤 작업이 나오고, 또 편할 때는 어떤 작업이 나오는지 보이기도 하죠.

사진이라고 정확하게 정해진 건 아니었지만 처음부터 그림이나 회화를 하고 싶었던 거라면, 시각적인 것에 오래전부터 관심이 있던 거잖아요. 갑자기 발현한 부분은 아닐 것 같아요.
아주 예전부터 있었죠. 국민학교 때부터 시각적인 것들을 좋아했어요. 그래서 그때부터 모아둔 물건도 많고요. 여기 보면 1964년도, 제가 열한 살에 동경 올림픽 카탈로그를 그대로 간직해둔 게 있어요. 아버지가 갖고 오신 건데 어린 나이에도 어떤 감동을 느끼고 보관해둔 거죠. 

주변에서 그런 관심사를 알아차리고 기운을 불어 넣어주는 환경도 중요할 것 같아요.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제가 사진을 시작한 이유도 한 친구 때문이었어요. 조급한 마음에 학교에 빨리 들어가야겠다는 생각이었는데, 당시에는 정보 공유가 자유롭지 못했어요.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모르다가 야간이라도 좋다는 생각에 한 교육기관에 입학했죠. 그런데 그곳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을 가르치더라고요. 회화나 사진이 아니라 타이포그래픽, 로고디자인 같은 것을 배웠어요. 한 학기를 마치고 나니 제가 배우고 싶은 게 아닌 거예요. 그러던 어느 날, 친구들에게 정식 대학교가 있다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어요. 그리고 그 친구랑 저랑 단 둘이 입학하게 된 거죠. 아무래도 더 친해질 수밖에 없죠. 그런데 이 친구가 사진을 무척 잘 찍었어요. 자기 카메라도 있었고, 카메라 자체에 관한 관심도 깊었고요. 이 친구 덕에 출사도 가고, 파티 열어서 노래 틀고 사진전 슬라이드 쇼도 했거든요. 그 한 학기 동안 저도 모르게 사진 실력이 늘은 거죠.

당신과
당신의 사이

유학 시절에서 안드레 겔프케Andre Gelpke의 이야기를 빠트릴 수 없어요.
사진 공부를 하면서 뭔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기분인데, 도저히 성이 안 찼어요. 그래서 당시 유명한 사진작가인 안드레 겔프케에게 무작정 전화를 걸어서 비평을 해달라고 부탁했죠. 그리고 뒤셀도르프에서 만나 사진을 보여주었어요. 그때 겔프케가 말하더라고요. “사진이 무척 좋지만 유럽 사람이 찍은 건지, 한국에서 온 유학생이 찍은 건지 잘 모르겠다. 네 자신을 찾아라.” 그래서 그때 한 번 더 사진이 바뀌었죠. 사진의 조형적인 부분과 기본적인 감각은 배웠지만 그 안에 담긴 내 이야기가 없던 거예요. 

주변 가까이에 감사한 사람들이 또 있었을 것 같아요.
교수님들이죠. 학교에서 사진뿐만 아니라 그림에 관한 수업도 들었어요. 대상을 겉핥기 식으로 무조건 아름답다고 하는 게 아니라, 물건의 본질을 꿰뚫는 방식을 가르치던 교수님이 있었어요. 맥락이나 중요한 순간을 잘 읽어내는 게 가장 중요하거든요. 

독일 유학 이후의 이야기도 궁금해요.
사실 한국에 와서 올림픽 때까지는 일거리가 많지 않았어요. 사진작가에 대한 인식도 잘 없었고요. 그러던 와중 겔프케의 지인이 제 사진을 보고 일본 사진 포럼에 초청했어요. 사람들이 둘러 모여 각자 자기가 가지고 온 작품을 보며 비평을 하는 게 숙제였어요. 로비에서 자기 작품을 슬라이드로 보여주는데 제 것을 걸었죠. 그러니 한 미국 작가가 농담 삼아, “당신이 미국에 오면 우리는 모두 굶어 죽겠군.”이라고 말하더라고요. 농담이었겠지만 한국에서 저는 일이 없어서 독일로 다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었는데, 그 말이 얼마나 힘이 되었겠어요. 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견디고 버틸 수 있는 힘이 되어주었죠. 그렇게 88서울올림픽을 기점으로 패션에 대한 관심이나 다양한 매체가 생겨나면서 문화적으로 부흥했어요. 그러면서 일이 점차 들어오기 시작했죠.

작가님이 연출 사진을 적극적으로 찍은 90년대 후반에, 당시 사진학과 학생들도 대부분 졸업 작품으로 연출 사진을 냈다고 들었어요. 전환기 중심에 서있었던 거네요.
독일에서 유학을 하면서 프랑스에 가서 전시도 보고, 상대적으로 사진에 대한 다양한 표현 방법을 접할 기회가 있었죠. 사회보도나 리얼리즘만 담아내는 게 아니라 카메라 자체를 작가마다 어떻게 활용할 수 있는지를 고민한 거예요. 그즈음에 유학을 마친 작가들이 한국으로 돌아오기 시작했어요. 당시 워커힐 미술관에서 그 작가들과 함께 전시를 하게 되었죠. 사진 크기도 자유롭게 인쇄하고, 입체물을 만들기도 했어요. 당시 사진계가 깜짝 놀랐죠. 이런 큰 사진 전시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아주 많은 학생들이 왔어요. 대구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올라오기도 했고요. 

당시 학생들에게 꽤 충격적인 광경이었을 것 같아요.
학생들이 꿈꾸던 무언가를 저희가 발현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잖아요. 그러니 파장이 좀 컸죠. 그 다음 학기부터는 졸업전이 많이 달라졌고요. 그리고 백남준 씨가 1992년에 과천현대미술관에서 회고전을 열고, 1993년 서울에서 휘트니비엔날레를 기획하면서 큐레이터들의 사진에 대한 시각이 달라졌죠. 옛날에는 사진을 한다고 하면 공부를 못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1990년대부터 2000년 중반에 사진이 많이 발전했죠.

수많은 매개 중 왜 사진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나요?
카메라가 주는 맛이 있어요. 순간을 포착하는 거죠. 틀에 박힌 말처럼 들릴지 모르겠지만, 딱 그때 포착하는 에너지가 있어요. 그걸 기록하는 힘은 변함이 없거든요. 매력적이에요. 사람의 모습이나 풍경, 지나가다 발견한 어떤 오브제라도 그 카메라가 아니면 담을 수 없어요. 그림의 경우, 작업을 마치고 몇 날 며칠이 지나도 수정하고 덧그릴 수 있지만 카메라는 바로 그 자리에서 결과가 나오잖아요. 그게 매력적이기도 하고요.

예술이라는
두 음절

누군가 “예술가는 철이 들면 안 된다.”고 했어요. 철이 들면서 도전하지 않고, 무언가를 가지고 놀 줄 아는 속성을 잃게 된다고요. 이 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세요?
글쎄요, 철이 안 들면 그것도 안 돼요. 이성과 감성을 왔다 갔다 할 줄 알아야죠. 작품은 기분만으로 하는 게 아니거든요. 모든 세기의 작가들을 봐도 냉철한 판단 하에 자기 작업을 어떻게 잘 보여줄까, 그런 생각으로 이어왔어요. 다방면의 관심사야 철없이 자유롭게 호기심을 갖고 있을 수 있겠죠. 그런 건 열어둬야죠. 하지만 작품을 정리하고, 내가 찍은 이미지 중에 어떤 것을 어떻게 보여줄까 선정하는 것은 이성 없이는 잘 수행할 수 없어요. 재주는 있지만 그런 게 부족한 사람은 작가 되기가 어려워요. 무조건 철이 들면 안 된다는 한 면만 부각할 순 없어요. 용광로 속에서 끄집어내는 것은 이지적으로 행동할 수 있어야 해요. 잡지만 해도 무엇을 대상으로 어떤 이야기를 할지를 정하고 쓰잖아요?

아버지의 죽음과 ‘숨’ 연작은 나에게는 일종의 터닝포인트였다. ‘생각의 바다’와 ‘태초’ 전시를 거치며 방황을 벗어나 작가답게 작품을 하기 시작한 것이 ‘굿바이 파라다이스’였고, 그것은 ‘숨’으로 연결되었다. 자신을 알려고 애쓰던 낙담하고 소외된 젊은이의 초상을 넘어 나를 포함한 모든 생명체와 대상들로 관심과 시야를 넓히게 된 것이다. 육친의 죽음을 겪으면서 역설적이게도, 한 존재에 국한되었던 관심이 세상의 모든 존재로 확장되고 있었다.

– 구본창, 《공명의 시간을 담다》 중에서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는 게 자신을 사랑하는 일과 비슷한 맥락일까요?
사랑은 아닐 것 같아요. 어릴 때라던가 저만의 세계를 탈피하지 못했을 때는 제 안에 꽁꽁 갇혀 있었어요. 객관적으로 내가 어떤 사람인지 볼 수 없었죠. 점점 커가고 성숙해지면서 내가 내성적이고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구나, 깨달으며 저를 인정했어요. 《데미안》에서처럼 알에서 깨어날 수 있었던 거죠. 내가 그렇다는 것을 인정하기 전에는 자기애에 빠질 수 있어요. ‘나는 내가 좋아, 내가 왜 사회에 부대껴야 해? 나는 난데.’ 하는 고집을 피울 수 있지만 어느 순간 ‘그래, 내가 이런 게 흠이지.’ 하고, 이런 모양의 나도 받아들이는 사람이 됐다는 거죠. 

저는 그런 자신에 대한 인정이 잘 안 돼요.
극복할 수 있어요. 확실히 이게 자신을 향한 사랑은 아니에요.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허물과 흠이나 단점을 보고,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건가 보다. 나의 한 부분인가 보다.’ 인정을 하면 돼요. 그러면 마음이 아주 편안해져요. 세상에는 아름다운 사람만 있지 않잖아요.

작가님의 작품을 보면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애틋함이 큰 것 같아요. ‘비누’, ‘굿바이 파라다이스’ 등등이요. 그래서 오래된 것들을 수집하는 것 같기도 하고요.
사라지는 것이라기보다는 시간의 흔적을 좋아해요. 역사죠. 시간이 축적되어서 쌓여있는 것들. 사라져서 없어지는 연민보다는, 시간이 만든 두꺼운 층, 먼지의 층 같은 걸 좋아해요. 사람의 얼굴에 쓰인 인생 같은 거예요. 비누가 쓰임과 동시에 사라지기는 해요. 하지만 사람의 손때가 묻고, 어떤 방식으로 얇아지고, 그 위에 사람 살결에 따라 주름이 생기는 그런 시간의 흔적에 관심이 많아요. 또 누군가의 애정을 받았던 물건들도 좋아요. 숨겨진 애정을 찾고 그 역사를 사진으로 담아내는 게 늘 흥미롭거든요. 한눈에는 안 보이죠. 더러운 때로 보일 수도 있고, 지저분하게 느껴질 순 있겠죠. 하지만 안에 보이지 않는 이야기를 찾는 게 좋아요.

백자를 수없이 촬영해도 아무런 감흥이 없을 때가 있고, 어느 순간 그 백자가 내게 말을 건넬 때가 있다. 스튜디오에 꽃이 담긴 화병을 갖다 놨을 때에도 항상 촬영하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은 아니다. 몇 날 며칠 그냥 지나치다가 어느 날 해가 이만큼 기울었을 때, 꽃이 시들고 잎이 떨어졌을 때 내게 교감의 ‘순간’이 온다. 나는 그 ‘순간’을 기다린다.

– 구본창, 《공명의 시간을 담다》 중에서

교감의 순간이 ‘온다’고 했어요. 그것을 알아차리는 눈은 어떻게 키우죠?
해답이 있으면 다들 똑같이 찍겠죠(웃음)? 그게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도 있겠지만 본인의 준비도 되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내 마음도 그 꽃병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낄 만큼 성숙, 공부, 인지가 준비되어야 하죠. 같은 꽃병이더라도 조금 더 관찰력을 가지고 천천히 본다면, 더 아름답게 보일 수가 있겠죠. 동시에 일어나야 돼요. 내 마음의 작용과 더불어 그게 아름다워 보이는 순간이. 화학반응처럼요. 항상 그 자리에 그게 있더라도 읽어낼 줄 알아야 하거든요. 

작업을 하면서 많은 대상을 접하다 보면 개별적으로 마주하는 방식이 다를 것 같아요. 모두 각자 다양한 페르소나를 갖고 있는 것처럼요.
어느 정도는 그렇죠. 기본은 안 변하더라도요. 일종의 그 사람에 대한 예의일 수 있어요. 저도 그 관심사를 열어주어야 대화가 되고 호흡이 되니까요. 그런 거에 대해서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열려있는 편이라고 생각해요. 사진 촬영을 할 때 피사체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고 그 사람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호흡을 맞출 이야기를 전해요. 관심 있을 것 같은 것들도 예상해서 준비하고요. 그 사람의 능력이나 아름다움을 인정해주고 싶은 마음이 커요. 포즈를 취하는 부분이나 얼굴 표정이 굳은 기업 CEO들을 예로 들면, 입고 있는 양복이 멋지다고 말을 건넸을 때 한결 부담감이 누그러지죠. 자기 할 것만 딱 하고 끝내는 작가들도 많아요. 그 덕분에 자기 세계를 지킬 수 있겠지만, 저는 다양한 것에 관심이 많아요. 그로 인해서 제가 모르던 그 사람들의 에너지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도 있고요. 타인의 애환도 나의 또 다른 테마가 될 수 있으니까요. 그들에 대한 관심이 없으면 어떻게 찍겠어요? 그거야말로 진짜 거짓말이지.

사진은
기억한다

그렇다면 ‘소년 구본창’, ‘청년 구본창’, 그리고 ‘지금의 구본창’이라는 사람에게 변하지 않는 부분은 무얼까요?
나의 변함없음을 이야기한다면, 발표도 많이 하고 특강도 하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지만 그래도 어려서부터 내성적인 건 어쩔 수가 없어요. 아무리 바꾸려고 해도 남 앞에서 제 자신을 내보이는 일은 쉽지가 않아요. 포장이 됐지만, 기본적으로는 굉장히 낯설고 새로운 곳에 가면 힘들죠. 제 자신에 대해 자신감이 없었던 게 강했거든요. 누군가 재주가 있다, 잘했다는 칭찬을 듣기 전에는 내가 무언가를 할 수 있는지, 이 사회에 쓸모가 있을지 고민 많이 하잖아요. 그게 지금은 해소가 되었다 하더라도 인생에 그림자가 남아있어요. 백 퍼센트 벗어났다고 할 수는 없거든요. 나 자신을 스스로 인정하면서 조금씩 나아졌지요. 

독일에서 갓 한국으로 돌아오셨을 때, 독일만큼 사진작가 활동이 많지 않아서 어려우셨다고요. 지금은 어떤가요?
예전보다는 기본적으로 나아진 것은 사실이에요. 사회적인 인식이 많이 달라졌죠. 제가 독일에 갔다 올 때만 해도 사진학과에 대한 인식이 아주 부정적이었어요. 지금은 자기가 하고 싶어서 자진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부모님들도 예전 같으면 왜 공부 안 하고 사진학과 가느냐 하겠지만, 지금은 너도 해봐라, 응원도 해주고 이런 유명한 작가가 있다더라, 소개도 해주죠. 그것만으로도 큰 인식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해요. 또 경제적인 부분을 떠나서 예술의 한 전문분야로 인정해주고 있죠. 하지만 사진의 활용도가 많아졌다 하더라도, 디지털이 대중화가 되어서 프로의 개념이 애매해진 부분이 있어요. 프로를 필요로 하는 일들이 줄어들기도 했죠. 그런 점에서 경제적인 부분의 문제가 있지 않은가 싶어요. 예술의 많은 분야에 사진과 영상이 섞이잖아요. 이미지의 수요는 그 자체만 봤을 때 많이 늘었죠. 자신의 색깔을 지닌 사람으로 어떻게 탄생할 것인가가 중요한 문제예요. 어려운 건 똑같아요. 그땐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적었고, 지금은 사진작가가 너무 많아서 내가 어떻게 특별한 사람이 될지가 어려운 것 같아요.

많은 사람이 사진을 찍는 만큼 촬영에도 윤리의식이 중요할 것 같아요.
특히 요즘에는 초상권 의식도 보편화되었죠. 사진작가의 입장에서는 이제 길에서 멋있는 사진을 찍는 것도 어려워지긴 했어요. 작품을 통해서 경제적 이득을 보는 경우라면 당연히 초상권에 대한 보상을 지불해야죠. 찍기 전에 정중히 묻기도 하지만 가끔 표정이 바뀌기 전에, 딱 그 순간에 찍어야 하는 것들도 있잖아요. 그러면 일단 찍고 물어봐요. 이 사진이 이렇게 멋있는데 써도 되겠느냐고, 연락처를 주면 사진을 꼭 주겠다고 하면서요. 싫다고 하면 포기도 하고요. 

사진이 돈을 지불해서 사야 한다는 소비 대상으로 인식되지 않는 측면도 어려움의 하나일 것 같아요.
사진 작품을 돈 주고 사야 한다는 인식보다는 ‘나도 찍을 만한데?’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게 문제인 것 같아요. 한국에선 사진 콜렉터도 갤러리만큼 정착하지 못했잖아요. 정착할 것처럼 보이다가 안 되었거든요. 미술 전시하면서 사진 전시를 끼는 경우는 있어도 사진만을 위한 전용 갤러리는 거의 없어요. 파리나 뉴욕은 그래도 잘 되어 있거든요. 작품 거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지는 않죠. 역사가 짧거든요. 

사진을 하는 사람들이 조금 더 이 분야에서 오랫동안 활동할 수 있도록, 지속을 위한 조언 부탁드려요.
제일 중요한 건 보는 눈이에요. 순간을 읽는 눈이요. 자신의 감성을 키우려면 교양과 상식이 있어야 해요. 삶에 대한 통찰력을 키우기 위한 밑바탕이니까요. 이런 것에 관심 없이 카메라만 잡아서는 안 되죠. 카메라와 세상을 바라보는 지혜가 함께 있어야 해요. 기술만 습득해서는 사진작가가 될 수 없어요. 세상을 깨우치는 능력이 필요해요. 그게 반이에요. 그 다음에 인간관계가 중요해요. 남을 배려하는 생각이 필요합니다. 그런 것 없이 자기가 하는 일들만 생각해선 안 되고요. 모든 것을 지속하는 기반이 신용이잖아요. 마지막으로 호기심과 열정. 무언가를 보고 호기심이 들지 않으면, 흥미를 느끼지 못하면 그건 죽은 거나 마찬가지죠. 항상 그게 끓고 있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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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이자연

포토그래퍼 Hae R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