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리데이 인 더블린

Holiday in Dublin

“현지 문화도 체험하고 돈도 벌면서 여행하라!”는 문구에 누구라도 혹하지 않을 수 있을까? 유럽 여행 한 번 다녀온 후 문화사대주의에 빠져있던 그때의 나는 홀린 듯 아일랜드 워킹 홀리데이 비자를 신청했다. 다만 항공권을 비롯해 초기 정착금이 있어야 했다. 외국인 노동자가 되기 위해 또 아르바이트를 해야 하는 상황이 우스웠지만 어쨌든 출국 일주일 전까지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사람 사는 곳 다 같지 않겠냐며 큰 캐리어 하나에 옷 몇 벌 챙기는 것으로 출국 준비를 마쳤다. 그렇게 정신없이 더블린행 비행기에 올랐다.

‘워홀러’들은 보통 현지에서 일을 구하면 집을 빌리거나 셰어하우스를 통해 본격적으로 정착한다. 그 전까지는 보통 게스트하우스에 장기 투숙하거나 홈스테이를 한다. 나는 우선 더블린 3구역에 홈스테이할 집을 구했고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1월의 어느 목요일, 공항으로 나를 마중 나와준 프랭크를 만났다. 

프랭크는 내가 살던 집의 호스트였다. 백발 탓에 조금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신사였는데 언제나 니트와 남방을 겹쳐 입고 코르덴 바지 안에 넣어 갈색 벨트를 하고 계셨다. 가끔 노란 남방에 초록 니트를 겹쳐 입는 과감한 시도에 내가 엄지를 치켜 세워주면 부끄러워하시는 귀여운 분이기도 했다. 처음 만나 공항에서 집으로 오는 차 안은 조용했다. 차를 두드리는 빗소리와 와이퍼가 왔다 갔다 하는 소리만 들렸다. 그제야 ‘아, 내가 더블린에 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공항에서 20분 정도를 달려 해안가를 지나 앞으로 내가 살게 될 동네에 다다랐다. 
집에 도착하자 프랭크는 내 짐을 방으로 옮겨주었고 그 사이 나는 한국에서부터 계속 연락을 주고받은 조안과 인사를 나누었다. 프랭크의 아내인 조안은 동네 친구와 함께 카페에서 스콘과 밀크티를 즐기길 좋아하는 소녀 같은 사람이었다. 매주 수요일마다 춤을 배우고 와서 나에게 시시콜콜 얘기를 해주는 게 정말 사랑스러웠다. 이 집에 오고 얼마 되지 않았을 무렵 내가 조안에게 한국에서는 집에서 신발을 신지 않기 때문에 그게 적응하기 힘들다고 말한 적이 있었다. 그날 시내에 나갔다가 집에 왔는데 내 방 바닥이 유난히 반짝이는 것 같더라니 이내 조안이 방으로 들어와서 오늘 바닥 청소를 다 하고 데톨까지 뿌려두었다고 했다.
 

아일랜드는 소문대로 비가 정말 자주 오는 나라였다. 더블린도 예외는 아니었다. 하늘이 쨍하다가도 갑자기 비가 내리기 일쑤였고 짧게 스쳐 지나가는 비도 많았기 때문에 비를 맞는 건 예삿일이었다. 이렇게 비를 맞고 들어 오면 프랭크는 꼭 내 외투를 받아 라디에이터 위에 말려주었다. 나는 거실로 들어가 벽난로 앞에서 몸을 말리면서 조안에게 오늘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쫑알쫑알 얘기했는데 내 엉터리 영어 문장에도 조안은 내 눈을 보며 계속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러고는 밀크티 한 잔을 가져와 다 같이 벽난로 앞 소파에 둘러앉아 TV를 보고 있으면 또 그때마다 내가 더블린에 와있다고 느끼게 되는 것이었다. 지금 비 내리던 더블린을 떠올리면 따뜻한 느낌이 드는 것은 마냥 벽난로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운 좋게도 더블린에 온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아 동네에 있는 카페에서 일을 구할 수 있었고, 나는 렌트할 집을 한참 알아보다가 마음에 드는 곳을 한 군데 찾았지만 결국 이사는 하지 않았다.

내가 일한 곳은 집에서 걸어서 15분 거리에 있는 레스토랑 겸 카페였다. 동네 카페였지만 약 열 명 정도가 함께 일하는 제법 큰 규모였다. 최저 시급은9유로, 일주일에 40시간을 일하면 360유로(당시 환율로 50만 원)에 팁이 50유로(7만 원) 정도였으니 이렇게 쏠쏠할 수가 없었다. 게다가 주급으로 계산해서 주었기 때문에 돈 모으는 재미도 있었다. 진짜 재미는 다른 곳에 있었지만 말이다.

카페에서 일하는 첫날부터 손님들이 내 이름을 물어봤다. 동네 카페다 보니 단골손님도 많은 편이었는데 그들은 직원들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이제 그중에 내 이름인 ‘윤’도 포함된 것이다. 간단하게 내가 여기에 왜 왔는지 언제까지 있을 건지를 이야기하고 나면 환영한다는 악수를 해주고 자신의 이름도 알려줬다. 프랭크, 케빈, 존, 메리, 아이린, 브리짓, 마티니……. 가장 기억에 남는 손님은 마티니다.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와 함께 우리 카페에 와서 좋아하는 재료를 잔뜩 넣어 음식을 시키곤 했다. 마티니는 주문하기 전에 항상 내 안부를 먼저 물었다. 한국 이야기가 뉴스에 나온 날에는 그걸 기억했다가 나한테 얘기하며 공감대를 만들어주기도 했다. 나중에는 마티니가 오면 뭐라고 얘기할지 준비를 했을 정도로 기다리게 되었다. 내가 일하는 마지막 주에 마티니가 오지 않아 인사하지 못하고 온 것이 아쉬웠는데 그녀도 아쉬워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같이 일하던 친구 카멜을 통해서 들었다.

다년간의 아르바이트 경험으로 웬만한 일은 하루 만에 적응할 수 있었지만 영어만큼은 그렇지 못했다. 까만 머리에 까만 눈동자의 동양 여자애가 Rasher(얇게 저민 베이컨 요리)가 뭔지도 모르고 말귀도 못 알아들으니 손님들이 화를 내도 할 말이 없었다. 놀라운 것은 그 누구도 화를 내거나 재촉하지 않았다. 나를 기다려주었고 믿어주었다. 취향이 다른 가족 손님이라도 오면 주문 시간이 몇 분이 걸릴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오히려 나에게 오늘 너무 고마웠다고 하며 팁을 두고 갔다. 같이 일한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특히 카멜은 내가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주문을 받아오면 잘 했다고 격려해주고, 실수했을 때는 그럴 수도 있다며 웃으면서 위로해주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데 나는 삼바 댄스라도 추고 싶은 심정이었다.

더블린 사람들은 언제나 긍정의 단어를 가지고 있었다. 고맙다는 말은 거의 모든 문장의 끝에 따라왔다. 내가 고맙다는 말을 하루에 몇 번이나 듣는지 세어보려고도 했는데 100번까지인가 세고 무의미하다고 느껴 그만둔 적도 있었다. 누가 아일랜드가 우울한 나라라고 했을까. 적어도 내가 있던 더블린은 비현실적으로 행복한 도시였다.

아일랜드는 한국에 비해서 해가 늦게 지는 편이라 6시에 퇴근하고 산책을 나서면 집에 돌아올 때까지 제법 밝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내가 거의 매일 산책을 한 이유는 공원을 걷는 것도 좋지만 산책하다 눈을 마주치면 언제나 인사를 해주는 사람들이 신기해서였다. 가끔 카페 단골손님을 만나면 가던 길을 멈추고 가벼운 안부도 주고받았는데 나중에는 누군가를 안 마주치면 아쉬울 정도였다. 그 짧은 순간의 눈빛이 하루를 행복하게 마무리할 수 있게 해주는 따뜻한 차 한 잔 같았다. 이 동네 사람들에겐 그런 여유가 있었다. 언제 하루는 출근하려고 1층에 내려갔다가 거실로 들어가는 프랭크와 마주쳤는데 잘 다녀오겠다는 나의 인사에 프랭크는 “Don’t work too hard, Yoon.(너무 무리하지마, 윤.)”이라고 답해주었다.

며칠 전에 큰 짐 나를 일이 있어 유럽에 다녀온 후 꺼낼 일이 없던 커다란 캐리어를 꺼냈다. 지퍼를 크게 한 바퀴, 지이익 돌려 뚜껑을 열자 짧은 탄성을 뱉게 하는 냄새가 났다. 오래된 벽돌집에서 나던 집 냄새, 프랭크가 세탁기에 넣던 섬유유연제 냄새, 그리고 카페에서 나던 고소한 버터 냄새가 오묘하게 섞인 그때 그 냄새였다. 잠깐의 순간에 만감이 교차했다. 포옹이라도 크게 해주고 올 걸, 그제야 아쉬움이 왈칵 쏟아졌다.

나의 워킹 홀리데이는 더블린에서의 4개월 이후 3개월의 유럽 여행으로 이어졌다. 외교부의 홍보 문구처럼 현지 문화도 체험했고, 돈도 벌었고, 여행도 한 셈이다. 하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것은 내가 전혀 목표하지 않았던 그 사람들의 눈빛과 마음들이다. 세상은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하지만 생각대로 되지 않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멋진 일이기도 하다. 더블린에서의 홀리데이는 나에게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되었다.

사는 게 이렇게나 즐겁다.

 

틸리스 카페

Tillie’s Cafe

18 St Gabriel’s Rd, Dublin 3

매일 아침 온 동네에 퍼지던 빵 냄새는 이 카페 덕분이다. 틸리스 스콘은 인기가 좋아서 점심쯤이면 전부 다 팔리곤 한다. 가로로 잘라서 딸기잼과 생크림을 발라 먹어야 제맛이다. 카페에서 직접 만드는 케이크는 아이리시 입맛에 맞춰 대부분 엄청나게 달지만, 개인적으로 ‘Chocolate Biscuit Cake’는 하루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 먹을 정도로 좋아했다. 아이리시 요리를 먹어보고 싶다면 ‘Shepherd’s pie’를 추천한다. 다진 고기를 그릇에 담고 그 위에 으깬 감자를 올려 오븐에 굽는 요리로 아일랜드에서도 가족들과 특별한 저녁을 보낼 때 먹는 음식이다. 더블린 시내 Abbey St.에서 130번 버스를 타고 20분 거리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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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사진 최윤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