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마시는 쉼이 필요한 날에

장은진 — 프로덕트 매니저

집 마당 한쪽에 섬처럼 놓인 이곳은 ‘작은 기윤재’라 이름 붙인 차실이다. 은진이 자신의
차 생활을 위해 마련한 독립된 공간이지만, 그 고요한 시간은 가족에게도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 우리가 이야기 나누는 동안 아이는 문 사이로 얼굴을 내밀며, 찻잔 사이로 오가는 대화에 호기심 어린 시선을 보냈다. 은진은 자신이 그랬듯, 아이 역시 언젠가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는 날이면, 두 손에 머물던 온기를 이정표 삼아 언제든 다시 이 자리로 돌아올 수 있기를 바란다.

집에 ‘기윤재’라는 이름을 붙이셨죠. 아이와 남편의 이름에서 한 자씩 따왔다고 들었어요 .

맞아요. 기특할 기奇, 윤택할 윤潤을 한 자씩 가져왔어요. ‘윤’에는 집 안의 생활이 풍요롭고 넉넉하게 이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어요. 집이 밝고 반짝반짝 빛나는 곳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있었고요. ‘기’는 조금 특별하고 기발한 느낌을 담고 싶어서 골랐어요. 그래서 집 안에도 이름에 어울리는 독특한 요소가 많은데요. 이 차실은 주로 제 취향을 반영해 만든 공간이라면, 본채에 있는 재미있는 시설은 대부분 남편 취향이에요. 미끄럼틀이나 소방 봉, 그물침대 같은 것들이죠. 아이를 위해서라기보다 남편 본인이 재미있을 것 같다고 해서 만든 건데, 덕분에 조금 특별한 집이 되었죠.

 

이 차실은 본채와 떨어진 별채로 지으셨어요. 설계 단계부터 따로 두고 싶었던 건가요?

네, 제가 건축가에게 그렇게 요청했어요. 사실 공간 효율만 따지면 집 안에 두는 게 훨씬 낫죠. 별채로 지으면 외벽 두께를 따로 계산해야 하는 등 구조적인 손해를 감수해야 하거든요. 처음에는 집 안에 차실을 두자는 제안도 있었지만, 제가 따로 지어 달라고 고집을 부렸어요.

 

이유가 있어요?

몇 가지 이유가 있어요. 집을 설계하는 동안 친정에서 지냈는데, 어린아이와 함께 있다 보니 물리적으로 밖으로 나가기 어려운 상황이었거든요. 그때 ‘엄마’라는 역할에서 잠시나마 분리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예전에는 당연하게 누리던 것들이 아이를 낳고 나서는 쉽지 않다고 느껴졌거든요. 실제로 공간을 자주 사용하느냐와 상관없이 ‘내 공간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위안을 받을 것 같았어요. 또 하나는 취향의 문제였어요. 가족과 함께 살다 보면 아이와 남편의 취향이 한 공간에 섞이게 되고, 어느 순간 시각적으로 복잡하게 느껴지더라고요. 그래서 오직 제 취향으로만 채워진 공간을 두고 싶었어요. 차가 향이나 습기에 굉장히 민감하고, 주변 냄새를 쉽게 흡수하기에 보관 환경도 중요하기도 하고요. 그런 이유까지 더해져 차를 위한 공간을 만들게 됐죠. (차가 담긴 다관을 건네며) 따라 드셔보시겠어요? ‘동장윤다’라는 차예요. 저는 매일 아침 한 잔씩 마실 정도로 속이 편안해져요. 지금 앞에 놓인 찻그릇과도 잘 어울리고요.

 

이 잔은 일반 찻잔보다 조금 커 보여요. 혹시 이름이 따로 있나요?

‘보듬이’라고 불러요. 말 그대로 두 손으로 보듬어 안듯이 들고 마시면 돼요. 손바닥 전체로 온기를 느끼며 차를 마시는 방식이죠. 부드럽고 풍성한 곡선의 형태라 손으로 안으면 가득 차는 느낌이 들어요. ‘보듬어 안는다’는 의미에는 살아 있는 것들, 주변의 이웃, 더 나아가 지구의 모든 것을 함께 안는 마음이 담겨 있고요. 보통 작은 잔으로 마실 때는 한 손은 잔을 들고, 한 손은 다른 일을 하기도 하잖아요. 그런데 보듬이는 반드시 두 손을 써야 하기에 시선이 자연스럽게 차에 머물게 돼요. 또 하나 특징은 굽이 없다는 점이에요. 굽은 보통 잔 밑에 달린 받침을 말하는데, 역사적으로 보면 제기는 점점 높게 만들어 권위나 위계를 상징하기도 했거든요. 보듬이는 그런 구조적 권위를 덜어냈어요. 그리고 오목한 형태 덕분에 비교적 천천히 식어서 차를 마시는 동안 향과 온기를 조금 더 오래 느낄 수 있어요.

두 손으로 차를 마주하는 정성스러운 마음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었는지 궁금해져요. 차를 처음 만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어요?

스물두 살쯤이었어요. 그해 초에 인도에 한 40일 정도 머물렀는데, 거기서 마주한 거대한 자연과 삶과 죽음이 뒤섞인 풍경이 어린 저에게는 꽤 큰 충격이었어요. 생에 대한 사람들의 강렬한 의지도 느껴졌고요. 당시 저는 의류 디자인을 전공하며 밤낮없이 과제에 매달리는 바쁜 일상을 살고 있었거든요. 그런데 인도에서 돌아오니 제가 하던 일들이 갑자기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느껴지더라고요. 졸업 이후의 진로에 대한 막연한 압박도 컸어요. 패션 회사에 들어갈지, 유학을 갈지, 디자이너 데뷔를 준비해야 할지 여러 선택지가 있었지만, 정작 제 안에서는 답이 나오지 않았죠. 그래서 그 시기가 굉장히 답답하게 느껴졌어요. 잠시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조용한 곳에 가 있고 싶었고, 그래서 절에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는 불교 신자는 아니었지만 당시 어떤 커뮤니티에 글을 하나 올렸어요. 학생이라 돈은 내기 어렵지만 혹시 머물 수 있는 절이 있으면 가보고 싶다고요. 그랬더니 경남 사천에 있는 다솔사라는 절에서 오라는 답을 주셨어요. 봉명산시립공원 안에 자리한 고찰이었죠.

 

어린 나이에 혼자 절로 들어간다는 게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텐데요. 꽤 담담하게 결정하신 것 같기도 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대단했던 건 부모님이 보내주셨다는 거예요. 별다른 말 없이 “그래, 가라.” 하셨거든요. 생판 모르는 곳인데도 허락해 주신 거니까요. 다만 갈 때는 아버지가 같이 내려가 주셨어요. 실제로 있는 곳인지, 어떤 곳인지 눈으로 한번 확인하고 싶으셨던 거죠. 그렇게 절에 저를 데려다주시고 아버지는 다시 올라가셨고, 저는 거기에 남아 지내게 됐어요.

 

은진 씨의 선택을 부모님도 믿어주셨나 봐요. 다솔사에서는 어떤 시간을 보내셨어요?

절에서는 매일 새벽 예불을 드리고 나면 스님이 차를 우려 주셨어요. 그때 스님의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요. 승복을 입고 혼자 조용히 앉아서 차를 우려 주시는데 그 모습이 참 멋있게 보이더라고요. 거기서 한 달 정도 지냈는데요. 나중에 알고 보니 다솔사가 차로 굉장히 유명한 절이었고, 실제로 차를 만들어 판매도 하는 곳이더라고요. 그때 차를 처음 접하면서 자연스럽게 흥미를 가지게 됐죠.

 

절에서 내려온 뒤 본격적인 차 공부가 시작되었겠네요.

네. 절에서 나와 처음 차를 배운 분은 이연자 선생님이었어요. 우리나라 종갓집의 전통 생활 방식을 연구하시는 분인데, 당시에는 차를 제대로 배울 만한 곳이 많지 않아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선생님 수업을 찾아 들었어요. 그때는 차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이나 형식적인 부분을 배웠어요. 이후 영국으로 유학을 떠나며 서양의 차 문화도 자연스럽게 경험하게 됐고요. 머그잔에 티백을 넣어 편하게 마시는 일상적인 차부터, 애프터눈티 같은 격식 있는 문화까지 두루 접해볼 수 있었죠. 한국으로 돌아온 뒤에는 자격증 과정도 시작했는데요. 티 인스트럭터, 티 소믈리에, 전통차와 다례 지도 과정 등을 배우면서 차를 지식적으로 깊게 공부한 시기였어요. 그러다 지금의 스승이신 정동주 선생님을 만나면서 차를 바라보는 방식이 크게 달라졌어요. 그전까지는 새로운 기물이나 차의 맛과 향에 집중했다면, 이제는 차를 하나의 지혜나 정신문화의 관점에서 바라보게 됐거든요.

여러 방식으로 차를 경험하시면서, 우리나라 차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도 조금 달라졌을 것 같아요.

차만 오래 하다 보면 그 세계에만 매몰되기 쉬워요. 사실 차뿐만 아니라 어떤 분야든 비슷하겠지만요. 요즘은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에는 차를 마시는 행위 자체에 어떤 자부심이나 권위가 섞여 있다고 느껴질 때가 많았어요. 제가 처음 만난 어른 중에도 그런 태도를 지닌 분들이 있었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배타적인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죠. 겉으로는 열려 있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완전히 개방되지 않은, 미묘한 장벽 같은 게 존재했거든요. 사실 차도 커피처럼 충분히 대중적인 문화가 될 수 있었을 텐데 ‘차는 반드시 이렇게 마셔야 한다’는 엄격한 예절과 형식이 오히려 저변이 넓어지는 걸 막았던 건 아닐까 생각하곤 해요. 물론 저 역시 전통적인 차 문화를 배운 사람이기 때문에 그 가치를 부정하려는 건 아니에요. 다만 전통이라는 바탕 위에서 새로운 해석이 가능해야 현대적인 차 문화도 만들어질 수 있다고 보거든요. 제가 차를 배워온 시간도 결국 그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고요. 그렇지만 처음 차를 접하는 분들에게는 꼭 그렇게 먼 길을 다 거칠 필요는 없다고도 말씀드려요. 저는 여러 과정을 지나 여기까지 왔지만 지금 시작하는 분들은 훨씬 더 편안한 지점에서 차를 만나도 충분하니까요.

 

그런 수많은 과정을 거쳐 은진 씨가 도달한 차의 본질은 무엇일까요?

개인적으로 차의 진수는 ‘혼자 마시는 차’라고 생각해요. 둘이 마시면 자연스럽게 대화가 오가고, 시선이 차보다는 사람한테 더 집중되기 마련이거든요. 그런데 홀로 마실 때는 조금 달라요. 차를 우리는 시간과 향, 그 순간에 몰입하게 되죠. 그때 비로소 나를 깊게 들여다보는 시간이 생겨요. 머리는 깨어 있지만 마음은 차분히 가라앉는, 일종의 명상과도 같은 상태죠. 저는 그 시간이 차가 가진 중요한 가치라고 생각해요. 그때 마시는 차가 꼭 귀하고 특정한 차일 필요는 없어요. 녹차든 홍차든 보이차든 상관없죠. 찻잎의 성분이 사람을 지나치게 들뜨게 만들지 않고 차분하게 깨어 있게 하는 특징이 있어요. 그래서 처음 차를 접하는 분들에게도 맛이나 향보다 먼저 이런 시간을 경험해 보라고 권하는 편이에요.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자신이 좋아하는 차의 취향도 찾아가게 되거든요.

아까부터 아이가 저희의 찻자리를 궁금해하며 기웃거리는 모습이 귀여웠어요(웃음). 하윤이와는 언제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나요?

처음부터 차를 마시게 한 건 아니었어요. 아이가 아주 어릴 때 플라스틱 주전자로 소꿉놀이하듯 시작했어요. 차를 우려보시면 알겠지만, 물을 따르는 행위에는 꽤 높은 집중력이 필요하거든요. 조금만 시선을 놓쳐도 물이 사방으로 흘러버리니까요. 그래서 아이에게도 이런 경험이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부엌 의자에 아이를 앉혀두고 물 따르는 법을 알려줬어요. 굉장히 집중해서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물론 다 흘리지만, 점점 정확하게 따르려고 애쓰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절 능력이나 집중력이 길러지는 것 같았어요. 지금도 차를 마실 때 차에 대해 장황하게 설명하지는 않아요. 한때는 학습 효과를 기대하고 세계 국기 카드와 홍차 산지를 연결해 설명해 본 적도 있는데, 아이가 금세 지루해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지금은 그저 ‘함께 앉아 있는 시간’ 자체에 의미를 둬요. 차를 마시는 동안만큼은 휴대폰에서 벗어나 셋이 온전히 마주 보게 되거든요. 모두가 화면만 응시하는 이 시대에, 이런 시간은 무엇보다 귀하다고 생각해요.

 

지식적인 배움 이전에 차를 즐기는 환경을 자연스럽게 만들어주시는 거네요.

그렇죠. 일종의 세뇌이기도 하죠(웃음). 저는 아이가 어릴 때부터 어떤 차를 마셔야 한다고 강요하지 않아요. 차도 결국 개인의 취향이니까요. 재미있는 건 아이가 친구들에게 가끔 “우리 집에서는 차도 마셔.”라고 은근히 자랑을 한다는 거예요. 하윤이는 요즘은 정작 예전처럼 자주 차를 마시지는 않거든요. 제가 권하면 한 잔 정도 마시고 가는 정도예요. 그런데도 그런 이야기를 하는 걸 보면 본인이 차를 마시는 사람이라는 걸 은연중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있나 봐요. 얼마 전에도 어라운드에서 인터뷰하러 온다고 하니까 아들이 괜히 이것저것 보여줄 게 있어야 하지 않냐고 고민하더라고요. 그래서 “그럴 필요 없어. 네가 좋아하는 차 우려줄 테니까 마시면 돼.”라고 했는데도 차에 관해 무엇을 보여주어야 할지 한참 고심하는 모습이 웃기기도 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면 제가 아이의 마음속에 심어주고 싶었던 씨앗이 조금씩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흐뭇해지곤 해요.

 

차를 통해 하윤이에게 어떤 씨앗이 남기를 바라세요?

지금 당장 차를 많이 마시지 않더라도, ‘차를 마시는 건 참 좋은 것’이라는 감각만큼은 이미 아이 안에 스며든 것 같아요. 저는 그 기억을 언젠가는 다시 찾게 될 거라 믿어요. 하윤이가 바둑을 4년 정도 꽤 오래 했거든요. 여러 대회에 나가면서 승부의 세계를 경험했는데, 사실 아이들에게 그런 긴장과 스트레스는 감당하기 벅찬 것이기도 하잖아요.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모를 나이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바둑 대회 전에 항상 “숨을 세 번만 쉬어 봐.”라고 말해줘요. 물의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천천히 호흡해 보라고요. 이제는 시키지 않아도 스스로 하더라고요. 그런 작은 습관들이 아이 안에 조금씩 쌓이고 있어요. 나중에 아이가 커서 바둑이 아니더라도 인생의 수많은 경쟁과 고민 앞에 서는 날이 오겠죠. 그때 차 한 잔이 완벽한 해결책은 아닐지 몰라요. 어떤 날은 밖에 나가 뛰는 게 더 도움이 될 수도 있고요. 그래도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차를 떠올리면서 “그럼 차 한번 마셔볼까?” 하고 스스로 다독일 수 있다면 좋겠어요.

아이가 차를 가까이하며 자연스럽게 자리한 습관도 있나요?

우선 단 음료를 그리 좋아하지 않아요. 과일 주스도 거의 마시지 않는 편이고요. 차를 오래 마시다 보니 단맛이 강한 음료에 노출될 기회가 적었거든요. 겨울에는 학교 갈 때 차를 한 김 식혀서 텀블러에 싸 주기도 하는데요. 따뜻한 차에 익숙해서인지 얼음이 들어간 음료나 아이스크림도 잘 못 먹더라고요. 몇 년 전에는 유치원에서 전화가 온 적도 있어요. 아이들에게 아이스크림을 나눠 줬는데 하윤이만 먹지 않겠다고 해서 혹시 부모님이 건강 때문에 못 먹게 하시는 건지 물어보시더라고요. 그저 아이스크림이 너무 차갑고 달아서 아이가 잘 못 먹는 거였어요. 저는 아이들이 너무 자극적인 맛에 굳이 빨리 익숙해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 차를 권하고 싶다면 부모가 좋아하는 차를 함께 마셔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아이를 위해 따로 준비하는 것도 좋지만 아이들은 부모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궁금해하고, 또 자연스럽게 따라 하거든요. 저희 아이도 그렇게 여러 차를 한 번씩 경험하고 있어요. 그러다 보면 언젠가 자신의 취향을 만나게 되겠죠.

 

곧 본채로 넘어가서 하윤이와 함께 차를 마셔볼 텐데요. 그 전에 이 차실이 은진 씨에게 어떤 의미인지 묻고 싶어요.

저에게 이 차실은 일종의 ‘미래’ 같은 공간이에요. 나중에 하고 싶은 일들이 계속 떠오르는 곳이거든요. 제가 결국 하고 싶은 건 차에 담긴 이야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이에요. 한때는 이곳을 1인 차실로 개방해 보듬이를 직접 써보게 하거나, 외국인에게 한국의 차 문화를 인문학적으로 소개하는 공간을 꿈꾸기도 했죠. 단순히 차 마시는 것뿐 아니라 한국 사람들이 차를 대하는 태도도 인문학적으로 함께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어요. 물론 현실에서는 아이를 키우고 일하느라 늘 바빠요. 본채에서 바쁘게 지내다가 이 공간이 눈에 들어오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어요. ‘아, 맞다. 내가 아직 하고 싶은 일이 있었지.’ 하고 되새기는 거죠. 꼭 여기에서 차를 마시지 않더라도 이 공간이 보는 것만으로도 다시 차를 떠올리게 되더라고요.

 

잠시 잊고 지내던 마음을 다시 꺼내 보게 하는 공간이네요. 늘 눈앞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클 것 같고요.

맞아요. 그래서 저는 이 공간을 ‘별세계’라고 부르기도 해요. 아직 현실로 완전히 이루어진 건 아니지만, 앞으로 펼쳐질 가능성이 계속해서 머물러 있는 느낌이거든요. 언젠가는 꼭 현실이 될 거라 믿는 저만의 미래 같은 거죠. 요즘 많은 분이 비전 보드를 만들곤 하잖아요? 저에게는 이 차실이 바로 그런 역할을 해요. 제가 꿈꾸는 것들이 눈앞에 실재하고 있다는 감각을 주니까요.

 

만약 이런 독립된 차실이 없었다면, 차 마시는 일상은 지금과 달라졌을까요?

아마 저만의 방식을 또 찾아냈을 거예요. 저는 운 좋게 별도의 공간을 마련했지만, 사실 그런 여건을 갖추기가 쉽지는 않잖아요. 저 역시 이 집을 짓기 전에는 아이가 잠든 침대 곁에 작은 찻상을 펴놓고 차를 마시곤 했거든요. 꼭 거창한 공간이 아니더라도 방법은 어떻게든 찾게 되더라고요. 제가 공간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긴 하지만,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건 그 시간을 기꺼이 내어주는 ‘마음의 여유’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꼭 근사한 다실이 아니어도 괜찮다는 말씀을 꼭 드리고 싶어요.

하윤이와 함께 즐기는 차

“이 홍차는 향이 좋고, 마시면 마음이
따뜻해지고 기분이 좋아져요.”

하윤이는 스리랑카 누와라엘리야 지역의 홍차를 즐겨요. 전통 제다 방식으로 만들어 찻잎 형태가 그대로 살아 있는 것이 특징이에요. 은은한 꽃향기가 나고 맛이 가벼워 떫은맛이 강하지 않고요. 하윤이가 여러 차를 마셔본 뒤 가장 좋아한다고 말한 차이기도 해요. 아이가 차에 관심을 갖게 하고 싶다면 꽃차를 권해 보세요. 꽃에 뜨거운 물을 부으면 꽃이 다시 천천히 피어나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 그 장면을 아이들이 굉장히 신기해해요. 향도 부드럽고 맛도 비교적 순한 편이라 편하게 마실 수 있습니다. 아이와 마실 차를 하나로 정해 두기보다는 여러 차를 함께 시도해 보면서 취향을 찾아가는 과정이 더 좋다고 생각해요. 아이에게도 자연스럽게 선택권을 줄 수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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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황진아

포토그래퍼 강현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