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속 가장 찬란한 순간으로의 초대

장-미셸 오토니엘 — 현대미술가

지난여름 많은 이들을 덕수궁 정원으로 모이게 한 작품을 기억하는가? 프랑스 현대미술가 장-미셸 오토니엘Jean-Michel Othoniel의 <정원과 정원> 전시는 덕수궁 작은 연못에 핀 황금 연꽃을 2022년 여름 서울의 풍경으로 기억되게 만들었다. 반짝이는 구슬과 자연의 조화가 일군 동화 속 세계로 빠져들게 한 장본인을 만나기 위해 파리 외곽 몽트뢰유의 작업실을 찾았다. 대형 작품들과 수많은 유리구슬이 모여 있는 탄성이 절로 나오는 공간에서 우리를 따뜻하게 맞아준 그는 촬영을 위해 불편한 내색 하나 없이 카메라 앞에서 붓을 들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림 한 장이 완성되는 짧고도 긴 시간 동안 마법사 같은 손동작에 시선이 고정됐고, 카메라 셔터 음은 마치 햇살이 유리에 닿아 부서지는 소리인 듯 찰칵찰칵 귀에 부드럽게 맴돌았다. ‘오토니엘’이라는 마법의 세계로 여행이 시작된 순간이다.

인터뷰 첫 질문으로 꼭 묻고 싶었던 것이 있어요. 지난여름 덕수궁에서 열린 전시에 관한 소감 말이에요. 올해 한국에서 대중적으로 가장 큰 성공을 거둔 전시 중 하나이자 ‘장-미셸 오토니엘’이라는 이름을 전 국민에게 알리는 기회가 되었으니까요. 

맞아요. 국제갤러리와의 오랜 인연으로 한국의 컬렉터들에게는 작품이 제법 알려지기는 했지만 미술계 내부로만 국한되던 인지도가 이번 기회로 넓어진 것은 사실이에요. <정원과 정원> 전시는 코로나19 이후 처음으로 열린 해외 작가의 대형 전시라는 점, 그리고 서울시립미술관의 관람료가 무료인데다가 덕수궁이라는 특별한 공공 장소를 활용한 덕에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되었다고 생각해요. 뮤지엄이나 갤러리 전시도 좋지만 그곳을 직접 찾는 사람들의 범위는 한정될 수밖에 없거든요. 미술계는 아직 지극히 ‘그들만의 리그’니까요. 그래서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에 개인적으로 애착이 많아요. 시민과 대중을 염두에 두고 예술에 대한 비전을 훨씬 넓게 펼칠 기회이기 때문이죠. 미술계 밖의 사람들에게도 작업을 소개하고 관심을 받는 기회는 흔치 않거든요. 특히 이번 한국 전시는 기존 컬렉터들과 미술계 관계자들이 SNS에 사진을 적극적으로 찍어 올리면서 관심이 급증된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는데 개인적으로도 너무 행복한 경험이었어요. 한국인들의 친절함과 예술에 대한 관심과 존중은 대단하더군요. 그래서 수천 장의 사진 요청이 있었지만 전혀 불편하거나 피곤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그 순간을 즐겼지요.

 

한국에서 찍고 찍힌 사진들을 저도 SNS에서 많이 봤어요. 즐겼다는 말은 정말 사실이죠? 

정말이에요! 한국인들의 작품을 대하는 태도는 훌륭했고 긍정의 기운이 늘 느껴졌거든요. 그 긍정적 에너지에 보답하고 싶었어요. 

 

전시 기획과 마케팅의 도움도 물론 중요했지만 작업이 가진 타고난 외적인 아름다움 역시 성공을 이끈 요소라고 생각해요. 전시를 본 누구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사진을 찍을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내 작품은 관람객을 반겨주는 역할을 해요. 반기고, 애지중지하고, 그리고 다른 문화나 종교 또한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통로를 만들기도 하죠. 코로나19로 힘든 시간을 겪은 다음이라 작품이 전달하는 이런 따뜻한 메시지가 시기적으로 잘 맞았던 것이 아닐까요? 덕수궁 정원에 설치된 작품들을 통해 한국 전통 문화와 작품 간의 연결 고리가 만들어졌고, 사람들은 장소가 가진 한국의 역사와 현재의 풍경을 연결 지으면서 애정을 느끼게 되고, 그런 이유가 사람들을 이끌어 모은 것 같아요. 

 

전시 준비를 하면서 따로 한국사를 공부하기도 했나요? 

한국의 건축과 정원에 대해 공부했어요. 특히 정원은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인데 한국의 전통 정원에서 전시를 열게 되어 무척 행복했죠. 

 

덕수궁이라는 장소를 직접 고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전시는 2021년 파리의 프티 팔레Petit Palais를 시작으로 전 세계를 순회하는 트레블링 쇼로 기획됐어요. 프티 팔레의 전시가 동화처럼 아름답게 연출된 이유는 뮤지엄 내부에 위치한 아름다운 정원 덕분이었죠. 그래서 아시아에서 진행되는 다음 전시 장소 조건에도 정원이 포함되어 있어야 했어요. 그런데 서울시립미술관은 내부에 정원이 없기 때문에 거리상 아주 가까운 덕수궁 정원을 이용하는 것이 실현 가능한 아이디어로 떠올랐죠. 물론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장소에 현대미술을 들이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기 때문에 궁 측을 설득하기 위해 미술관과 갤러리 측에서 많이 수고해 주셨어요. 감사하게도 우리 제안을 아름답게 봐주고 적극적으로 협업에 동참해 준 덕분에 전통과 현대의 아름다운 만남이 전시로 성사될 수 있었어요. 

 

수련이 가득한 전통 정원에 놓인 구슬 연꽃 작품은 환상적이었어요. 연꽃이라는 모티프 또한 우리 정서와 잘 어울렸고요. 

방대한 사이즈의 정원을 둘러보며 어디를 전시장으로 활용할지 정해야 할 때 이 연못 자리가 마치 작은 연극 무대 같아 보였어요. 머릿속에서 구상한 이야기를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장소라는 걸 한 번에 알아차렸죠. 세상이 바쁘고 여유가 없는 요즘 현대인에게 정원 산책이란 큰 노력이 필요한 일이잖아요. 그래서 전시를 위해 잠시 짬을 내어 방문한 사람들에게는 부담스럽지 않게 느껴지는 사이즈여야 했고, 평소 자주 정원을 찾는 사람들에게는 이전에 보지 못했던 광경을 발견하는 즐거움과 더불어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를 느끼며 평소보다 길게 머물 수 있도록 하고 싶었어요. 실제로 사람들은 연못을 천천히 돌며 빛의 반사와 변화를 느끼고 정원에서 일어나는 작은 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경험을 하게 되었는데, 작지만 이런 다양한 상호작용이 일어난다는 게 감동적이었어요.

맞아요. 여러 번 와봤지만 황금 연꽃이 핀 장면을 마주하는 순간 새로운 시선으로 정원을 바라보게 돼요. 마치 처음 이곳에 와본 것처럼요. 

작품을 직접 보지 않고도 SNS의 수많은 이미지들로 전시를 경험할 수 있어요. 하지만 실제 장면을 목격하는 순간 눈앞의 이미지는 추상에서 현실로 바뀌게 되죠. 자연에 문화가 접목되면 우리는 현실의 눈으로 그것을 바라보게 돼요. 단순히 아름답다는 표현을 넘어 다양한 심경의 변화도 느끼는데 그래서 예술이 세상을 바꾼다는 말을 믿어요. 왜냐면 작품을 통해 느긋해지고 결국 자연의 진가를 인정하게 되거든요. 관람객과 작품 간의 교류가 일어나는 것, 그 순간을 기억하게 되는 것, 이것은 간접 경험으로 취득할 수 없는 부분이에요. 그런 이유 때문에 실제로 와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심지어 여러 번 방문하는 관람객도 많았다고 전해 들었어요. 

 

전시와 관련된 활동 외에 한국에서 보낸 시간들이 궁금해요. 

다양한 건축물과 정원을 관찰하는 시간을 보냈어요. 그리고 이미 여러 번 방문한 경험 덕에 이제는 제법 다양한 음식을 접했다고 자신할 수 있는데 점점 한국 음식에 매료되고 있어요. 계절마다 특정 식재료를 사용하는 음식이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죠. 파리에서 일 년 내내 거의 같은 음식을 먹는다는 게 슬프게 느껴질 정도로요. 계절이 변할 때마다 꼭 먹어야 하는 음식이 따로 정해져 있다는 건 계절과 자연의 습성을 따라가는 전통이 아직 남아 있다는 증명이라 인상적이었어요. 

 

그렇다면 가장 좋아하는 한국 음식을 안 물어볼 수가 없는데요. 

서울보다 지방의 소박한 밥상을 좋아해요. 지난번 시골에서 먹은 버섯 요리가 건강에도 좋고 맛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대부분의 유럽인들처럼 매운 음식들은 아직 어렵네요. 

 

미술 시장에 관한 질문을 해볼게요. 최근 한국 미술 시장이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어요. 아티스트로서 바라보는 한국은 어떤 시장인가요? 

아시아에서 해외 아티스트에게 가장 열려 있는 시장이요. 작가로서의 의견을 떠나 미술계의 전반적인 시선이 그래요. 한국의 갤러리와 컬렉터들의 관심은 국내를 넘어 전 세계로 뻗어 나가고 있고 그 점이 자국의 작가들에 더욱 집중하는 일본이나 중국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에요. 홍콩의 갤러리들이 서울로 이전하고 유럽 갤러리들이 한국에 지점을 내려고 하는 현상은 어찌 보면 당연해요. 거기에 전반적인 한국 사람들의 예술에 대한 높은 호기심도 중요한 요소 중 하나죠. 한국이 아시아 미술 시장의 중심으로 자리 잡으려는 시기에 맞춰 전시를 치른 것은 행운이 아닐까요. 전시 이후 바로 <FRIEZE SEOUL>이 열렸고 지금 유럽 미술계가 한 입으로 한국 이야기를 하고 있으니까요. 아시아의 ‘새로운 엘도라도’라고 하면서요. 

 

엘도라도요? 내년의 상황이 그 기대심리를 떨어뜨리지 않았음 좋겠네요. 

다양한 해외 작가들과 작품, 국제 미술 시장을 향해 열려 있는 한국 컬렉터 특유의 특성과 시장 분위기 때문에 열기가 순식간에 사그라지지는 않을 거라 기대해요. 한국 미술 시장만이 가진 특수한 가치로 보이거든요. 

 

한국과 다른 아시아 컬렉터 간의 차이점이라면 해외 시장에 열려 있는 관심과 태도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생각을 말하자면 전쟁 이후 빠른 사회적·경제적 발전과 함께 해외 문화를 신속하게 받아들이고 습득하려는 습관이 미술 시장에까지 적용된 걸로 느껴져요. 한국인 특유의 호기심과 빠른 움직임이요. 최근 들어 발견한 한국 컬렉터들만의 새로운 특징이라면 전 세계 아트 페어를 직접 발로 뛴다는 점이에요. 한국에 처음으로 작품을 선보였던 10년 전만 하더라도 해외 페어에서 한국인들을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어요. 하지만 10년 뒤인 지금은 관광을 위한 해외여행이 아닌 아트 페어 관람을 위해 전 세계를 누비는 한국인들을 쉽게 만날 수 있으니까요. 컬렉터라서가 아니라 정말 미술 자체가 좋아서 멀리까지 찾아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건 놀라운 일이에요.

작품 활동 외에 오늘처럼 인터뷰 스케줄도 있고, 하루 일정이 무척 바쁠 것 같아요. 보통 몇 시에 일어나세요? 

이상하게 점점 일찍 일어나게 돼요(웃음). 상황에 따라 불가능할 때도 있지만 오전에는 아틀리에에서 그림을 그리고 오후에는 사무실에서 팀들과 함께 일을 해요. 많은 인원으로 구성된 팀과 작업의 비전을 공유하고, 작품 설치부터 전시 홍보, 이벤트 준비 등 여러 가지에 대해 커뮤니케이션하면서 서로 에너지를 나눠요. 그리고 프랑스 미술 아카데미Académie des Beaux-Arts 활동으로 매주 수요일 모임에 나가기 때문에 그 외의 날들은 무조건 작업에 집중하고 있죠. 그렇다고 밤늦게까지 시간을 늘려가면서 일하는 것은 저한테는 물론 팀원들에게도 안 좋기 때문에 저녁 6시가 되면 작업을 멈추고 밖으로 나가 전시나 영화 또는 공연을 보면서 외부에서 일어나는 문화계 일들에 대해 알아가죠. 현재 작업실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고 있는 것도 오늘날의 아티스트에겐 중요하거든요. 

 

여행하며 얻는 경험도 중요하지 않나요? 여행도 많이 다니는 편이지요? 

출장으로 다니는 여행이 전부고 따로 휴식을 위한 휴가는 가져본 적이 없어요. 남프랑스에 있는 작은 집에 내려가 작업하는 시간이 나에겐 바캉스나 마찬가지예요. 

 

남프랑스의 별장이 매우 아름답다고 들었어요. 

세트Sète라는 지중해를 끼고 있는 작은 마을의 아담한 집이에요. 여기 거대한 작업실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작은 작업실이 있어요. 그림 그리기에 딱 좋은 사이즈예요. 그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휴식 시간만큼 행복해요. 아, 이 이야기를 해야겠네요. 프랑스 정부와 세트시 공동으로 제안을 받아 조만간 마을에 분수 설치 프로젝트가 착수될 예정이에요. 내가 머무는 지역 사회에 보답할 수 있는 의미 있는 작업인 만큼 개인적으로 고취되어 있어요. 무척 아름다운 결과물이 기대되거든요. 

 

방금 대답에서 공공미술에 대한 애정이 느껴지네요. 갤러리 전시보다 다양한 시도가 가능한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를 더 선호하는 것처럼 들렸어요. 

둘을 완전히 다르게 나누지는 않아요. 어떤 프로젝트이든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펼칠 수 있는 작업이 가능한 환경 조성이 가장 중요하고, 갤러리에서 이 요구를 받아들인다면 작가는 어디서든 행복하게 작업할 수 있죠. 늘 똑같은 전개의 전시는 개인적으로 원치 않기 때문에 갤러리 전시 또한 공공미술과 마찬가지로 매번 새롭게 기획하고 다른 스토리를 전달하려고 고민해요. 다만 덕수궁 전시 때처럼 불특정 다수의 관람객과 소통할 수 있다는 점이 공공미술 프로젝트만의 특수함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다양한 이들의 시선 속에서 작품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에 대한 위험 요소를 고려해야 하지만 그들을 현대미술의 세계로 끌어들일 수 있는 모험은 오히려 매력적이고 흥분되는 과제예요. 

 

도전을 위해 작품과 안성맞춤인 장소를 고르는 특별한 안목을 짚고 넘어가고 싶어요! 우체부 슈발의 꿈의 궁전Palais Idéal du Facteur Cheval에서 열린 전시 <물의 꿈Le rêve de l’eau>은 지난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열 개의 전시에 포함됐을 만큼 멋졌으니까요. 

예술 전시에서는 공간과 작품, 그리고 관객 간 다양한 감각을 통해 서서히 터득하는 삼투현상 과정 같은 상호작용이 일어나야 해요. 그래서 작품 규모와 상관없이 서정적인 분위기 조성을 점점 중요하게 여기고 있는데 그동안 적합한 장소들과 협력적으로 전시를 진행했던 건 행운이었어요. 물론 아름다운 장소에서 먼저 불러주신 경우도 있지만 콩쿠르 당선으로 참여하게 된 사례도 많아요. 베르사유 궁 정원 분수에 설치한 ‘아름다운 춤Les Belles Danses’과 카타르 국립 박물관의 대형 설치작 ‘ALFA’도 그런 경우죠.

 

파리 지하철 개통 100주년을 기념하여 팔레-루아얄 메트로 역Station de métro des Palais-Royal 입구에 무라노 유리와 알루미늄으로 작업한 ‘야행자들의 키오스크Le Kiosque des Noctambules’ 작품 역시 경쟁을 통해 당선된 결과물이었죠? 

첫 콩쿠르 당선작이었어요. 그때부터 경쟁에 꾸준히 도전해 오는 이유는 새로운 모험에 모든 에너지를 다 쏟아붓는 경험을 이어 가고 싶기 때문이에요. 나의 제안이 최고라고 설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긴장되는 프로세스와 몰랐던 공간에 대해 꿈꾸고 장소가 가진 역사를 새롭게 공부해야 하는 학문적 접근이 필요한 것도 좋아하는 점이에요. 예를 들어 파리 지하철 입구와 1킬로미터가 넘는 규모의 설치물을 완성해야 했던 카타르 국립 박물관 프로젝트는 완전히 다른 성격과 다른 역사를 가지고 있어 각각 새로운 역사에 대해 공부하고 몰랐던 문화를 배우기도 하죠. 어떤 경우는 긴 여행을 해야 할 만큼 시간을 들여야 하기도 하고요. 그런데 이런 과정을 거치는 걸 좋아해요. 난 아직도 배우고 싶은 게 많은 사람이거든요. 퍼블릭 아트는 이런 배우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해 주고요. 

갤러리, 뮤지엄, 공공미술을 모두 아우를 만한 아티스트는 많지 않아요. 그런 점에서 오토니엘이라는 아티스트는 더 특별해 보이고요. 

함께 일하는 팀이 존재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에요. 퍼블릭 아트 프로젝트와 대형 커미션 작업들을 진행하기 위해 팀을 꾸리기 시작했는데 이들의 존재 때문에 뮤지엄 전시를 기획할 때 대형 사이즈 작업들도 쉽게 구상할 수 있게 되었어요. 콩쿠르 지원도 팀의 역량이 뒷받침되니 가능했던 일이죠. 모든 구현이 문제없이 가능한 인적 인프라가 있으니 어떤 아이디어든 자유롭게 낼 수 있으니까요. 

 

팀워크를 얘기하니 함께 일하는 장인들 이야기도 듣고 싶어요. 장인정신과 그들과의 협업 또한 작품에서 매우 중요한 요소니까요. 

유리 공예가는 세 팀이 있고, 그러니 유리 공예가만 모두 스무 명 남짓이네요. 그 외에도 철강 주조 전문가와 자수 전문가하고도 협업하고 있어요. 아티스트를 혼자 묵묵히 그림을 그리는 로맨틱한 비전으로 바라보는 대중에게 얘기하고 싶은 부분이기도 한데, 오늘날의 아티스트는 혼자 일하는 사람이 아니고 여러 전문가와 협업하는, 경제적 매개체 역할을 하고 있어요. 지금 작업실의 팀과 국내외 장인들 수를 모두 합치면 백 명 정도 인원이 나와 함께 일할 거예요. 여기 백 명이 하는 작업의 과정을 전부 상세히 알고 제대로 컨트롤하는 게 내 역할이에요. 디자이너처럼 드로잉을 보내고 프로토타입을 받아서 체크하는 식의 프로세스는 절대 존재하지 않아요. 직접 작업실을 찾아가 장인 옆에서 과정을 전부 지켜보죠. 저도 유리 공예 기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소재를 어떤 방식으로 최대한 상세히 다룰지 진지한 토론이 가능해요. 나만큼 기술에 대해 많은 정보와 테크닉을 습득하고 있는 아티스트 또한 흔치 않을 거예요. 

 

어떻게 유리라는 소재를 발견하고 작업에 적극적으로 사용하게 됐나요? 

직접 몰딩을 해서 만들 수 있는 소재, 자유롭게 형태가 변하는 소재를 찾던 중 유리에 대해 알게 됐고 마르세유에 있는 유리 리서치 센터 C.I.R.V.A(International Center Of Glass And Plastic Arts)에서 장인들을 만나 아티스트 초기 시절부터 유리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어요. 유리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경지에 이르기까지는 너무 많은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직접 기술을 연마해 장인의 길을 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렸고, 대신 장인들과 한 팀이 되어 한 몸으로 작업하기 시작했어요. 초기부터 작지만 팀워크를 다지며 일하게 된 계기가 현재 큰 규모의 팀을 거뜬히 이끌게 된 기반이 되어 주었지요. 유리 공예 장인들하고는 현재 20년째 협업하고 있고, 철강 장인 역시 20년, 자수 장인들도 2004년부터 함께했으니 18년이나 되었네요. 이렇게 오랜 시간 협업해 오면서 끈끈한 유대관계가 형성되었고 이들을 통해 마치 내 신체와 정신이 점점 확장되어 간다고 느끼고 있어요. 

 

오토니엘의 예술가적 성장과 동시에 장인들의 작업실도 성장하고 있는 셈이네요. 

맞아요. 나와 협업을 시작으로 현재 다른 아티스트들과도 작업하고 있고 그렇게 장인의 작업실 또한 확장되었어요. 물론 나와 일하던 장인이 다른 아티스트와 일하는 걸 보면 가끔 질투가 나기도 하지만(웃음) 한 명이 아닌 여러 작가와의 작업은 공예가에게 기술적 시야를 넓힐 기회가 되어 주기 때문에 필요한 동시에 긍정적인 발전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좀 어려운 질문 두 가지만 할게요. 스스로 아름다움에 대한 정의를 내린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아름다움이란 밝고, 늘 에너지와 움직임을 가지고 있고, 보는 사람의 시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열려 있는 것. 거기에 서정적인 세계를 창조하기 위한 우아함을 담고 있어야 하고요. 이런 요소들이 다 합쳐졌을 때 아름다움이 창조된다고 봐요.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은데, 정원에 비유해 얘기하고 싶네요. 내가 정원을 좋아하는 이유는 닫힌 세상이기 때문이에요. 안으로 들어오는 순간 현실에서 탈출하고 그 덕에 오히려 현실을 더 정직하게 바라보게 되죠. 정원 안으로 들어오면 보호를 받는 것 같지만 그 안에서 정원을 사실적으로 바라보고 아름다움에 도취하게 돼요. 예술 또한 같은 이치라고 생각해요. 아름다운 작품을 마주했을 때 작품의 수호를 받는 느낌과 동시에 현실 속 몸의 반응을 느낄 수 있어요. 유리라는 소재를 좋아하는 이유가 이거예요. 빛에 의해 색이 변하고, 빛이 없는 밤에는 오히려 자신만의 반짝임으로 묘한 아름다움을 뽐내기도 하니 우리는 그 모습에 실컷 반응하게 돼요.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는 최상의 재료는 유리라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예술에 대한 정의는 어떨까요? 

하… 예술과 예술가들이 특별한 이유는 모두가 다 다르기 때문이에요. 하나만의 비전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비전으로 활짝 열려 있지요. 그 덕에 예술은 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요. 모두가 같은 그림을 그리던 과거와 달리 다름을 보여줘야 하는 오늘날의 미술 시장은 정말 환상적이지 않나요. 반면 이 시대의 예술가로서 민감하게 생각하는 점 중 하나는 세계화에 발맞춰 여러 나라의 문화와 잘 호환될 만한 작품 활동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에요. 지극히 프랑스적인 사람인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게 부끄럽지만(웃음) 그런 이유에서 오늘날 내 작품들이 전 세계인과 소통한다는 점이 자랑스러워요.

예술과 삶의 간극이 좁아진 오늘날, 우리는 예술적 삶을 꿈꾸고 예술가는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대중의 삶에 깊숙이 들어왔다. 그래서 현재를 사는 아티스트는 아름다움을 볼 줄 아는 안목과 표현하는 능력을 넘어 그것을 실현시킬 수 있는 인프라, 그리고 팀을 이끄는 리더십까지 필요한 덕목으로 요구되는 것이 아닐까.

AROUND 온라인 구독

어라운드의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으로 읽어보세요.

구독 시작하기

에디터 양윤정

포토그래퍼 Jean L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