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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이 지나쓰 — 요리 연구가
내가 나일 수 있도록
흐드러진 허브밭을 뒤로 하고 한 여인이 해사하게 웃는다. 요리연구가 도이 씨를 미소 짓게 하는 건 화려하거나 거창하지 않다. 잎에 달린 맑은 이슬, 매끈한 돌에 내려앉은 햇살 같은 것들이라면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몽글거린다. 서울에서 그녀에게 편지했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곧 끄덕이는 그다. 도이 씨가 작업실에 펼쳐 놓은 안온한 일상에는 소소한 기쁨이 빈틈없이 수놓아져 있었다.
서울에서 인사를 전해요. 도이 씨를 소개해 주실래요?
반가워요. 요리를 가르치는 도이 지나쓰どいちなつ라고 해요. 일본 아와지 섬에 살면서 사계절 내내 요리 교실을 열고 있어요. 농장에서 허브를 키우고, 허브 소금 같은 여러 제품을 만들며 지내요.
최근엔 서울에 다녀갔었죠? 한국에 온 건 이번이 처음이었나요?
작년 가을에 요리 수업과 식물 정제법 수업을 하러 처음으로 한국을 찾았어요. 박물관, 시장도 가보면서 서울을 둘러봤어요. 서울은 트렌디한 가게도 많고, 상점으로 가득한 시장도 있어서 굉장히 활기차더라고요. 사람들이 모두 힘차게 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서울이 바쁜 도시인지라 그렇게 느낀 걸지도 몰라요. 아와지 섬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들어보고 싶어요.
아와지 섬은 고요한 바다와 드넓은 하늘로 유명해요. 먹거리가 풍성해서 관광업도 활발하죠. 제가 사는 작은 마을은 조용한 곳인데요, 가게 하나 없고 사람도 거의 없어요. 하지만 아름다운 풍경을 계절마다 볼 수 있답니다. 봄에는 야생 벚꽃, 여름에는 짙푸른 바다, 가을엔 철새들…. 이 풍경들은 아름답고 고요해요. 환한 태양, 바람이 주는 평온함 같은 것들로 저는 매일 들떠 있어요.
평화로운 섬의 모습이 그려져요. 도이 씨도 원래부터 전원생활을 한 건 아니었다죠. 도쿄에서 요리연구가 생활을 오래 했잖아요.
도쿄에 살 때는 일하고 아이들도 키우느라 바빴어요. 하지만 점차 시간을 내서 시골로 도예와 허브를 공부하러 다녔어요. 자연의 곁에서 보낸 시간이 생각과 마음을 다스리도록 도와줬죠. 자연은 제가 아이 같아질 수 있는 소중한 공간이에요.
다른 한적한 곳도 많았는데, 왜 아와지 섬의 시골에 자리를 잡았어요?
아와지 섬은 제 고향인데요, 제가 태어난 곳에서 산다면 우리 가족의 마음이 평화를 찾는 데 큰 도움이 될 것 같았거든요. 원래는 아이들이 독립한 후에 시골로 가려고 했는데, 2011년 동일본 대지진 이후 조금 앞당겨 시골에 왔어요.
그렇게 돌아온 고향에서 쉼을 찾았나요? 지금은 시골 생활에서 큰 행복을 느끼며 사는 것 같아요.
이곳에 돌아와서 기뻐요. 가까이에 사시는 부모님을 대하며 조금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 이상으로 큰 평화를 느껴요. 발이 땅에 단단히 내려앉은 것처럼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해요. 무엇보다도 아와지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깨닫고 있어요. 앞으로 이곳에 더 뿌리를 깊게 내릴 생각이에요.
도이 씨에게 딱 맞는 곳으로 돌아왔군요. 그곳에 작업실이자 부엌도 만들었죠. 아담한 오두막이 꼭 영화에 나올 것처럼 예뻐요.
그렇게 말해주어 고마워요. 우리 농장으로 가는 길목에서 남편이 발견한 곳이에요. 시골길 한쪽에 서 있는 사랑스러운 오두막을 보자마자 좋아하게 됐어요. 마침 농장 주인이 그 오두막도 갖고 있다는 걸 알게 되어서, 운 좋게 살 수 있었어요.
선물처럼 다가온 공간이네요. 집 내부가 아닌, 별도의 공간에 작업실을 만들었던 이유가 있나요?
예전엔 작업실이 없어서 요리 수업을 하려면 고베와 교토에 있는 레스토랑에 가야 했어요. 그런데 마침 발견한 오두막이 집, 농장과 가까워서 요리 교실을 열 수 있도록 부엌으로 바꾸면 좋겠다 싶었어요. 남편과 제가 구체적인 용도를 정한 뒤 수리했던 거예요.
남편과 공간을 개조했던 이야기를 좀더 해줄래요?
오두막을 개조하기 전에, 먼저 대대적으로 청소했어요. 기와를 수리하고, 공간의 기울기를 바로잡기 위해서 보를 세우고, 빛이 들어오게 창문을 냈어요. 시간이 많이 걸렸지만, 그렇게 했기에 이곳이 참 좋아요. 친구 한 명이 개조를 도와주기도 했어요.
고되지만 뿌듯한 작업이었겠어요. 내부는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히 들어볼 수 있을까요?
부엌은 단순하고 소박해요. 안에는 요리하는 공간과 먹는 공간, 판매대와 탁자가 있어요. 도구를 편리한 위치에 보관할 수도 있답니다. 부엌에서 혼자 시간을 보낼 때, 사람들과 생기 넘치는 식사를 할 때…. 모두 다 행복해요.
듣기만 해도 미소 지어지는 공간이에요. 가까운 곳에 농장이 있던데, 농장에서는 무얼 하며 지내요?
다양한 종류의 허브를 키우고, 3년 전에 심은 레몬 나무도 가꿔요. 레몬 나무가 이번 겨울에 처음으로 열매를 많이 맺었어요.
뿌듯한 순간이었겠어요. 농장에서 일하는 게 고되진 않아요?
밭을 가꾸고, 씨앗을 심고, 작물을 수확하는 일은 끝이 없어요. 많은 실패도 겪는 힘든 일이지만 매일 흥미로운 것들을 발견해요. 일 년에 며칠만 피어나는 꽃 위에 곤충들이 모여드는 장면은 그야말로 사랑스러워요. 잡초나 죽어가는 식물까지도 아름답죠. 흙에는 다양한 생물이 있는데, 좋은 향이 나요. 생물들이 탈피하며 남긴 껍질을 발견하기도 하고, 작은 새들의 둥지도 봐요. 가끔 야생 토끼도 만나고요. 허브를 기르는 사람은 전데, 오히려 제가 밭에서 치유를 받아요.
그런 장면을 매일 만나다니 부러워요(웃음). 손수 허브를 기를 때 어려움은 없었어요?
심은 씨앗이 싹트지 않거나, 잎이 나면 곤충들이 먹어버렸죠. 하지만 저희가 원하는 만큼 허브가 자라지 않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오늘날까지 오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어요. 직접 기른 야채, 과일, 허브를 먹거나 일상에서 쓰는 건 참 좋아요. 자연과 함께하는 경험도 좋고요.
작업실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작업실에서 열리는 요리 수업은 어떻게 시작했어요?
12년 전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이런 시골에서 어떻게 요리를 할 수 있을까 싶었어요. 경험도 작업실도 없던 때라, 친구 부엌을 빌려서 요리 수업을 열었죠. 그때마다 계절별 야생 꽃 장식 수업을 하거나 현지에서 재배한 재료로 간단한 요리를 했어요. 점점 수업 횟수가 늘고 학생들도 많아지더라고요. 그런 다음 오두막을 개조한 거예요. 이제는 우리 오두막에서 학생들을 반기고 있어요.
전국 각지에서 찾아올 정도로 유명해 매번 일찍 수강 신청이 마감된다죠. 도시 사람들이 도이 씨의 요리 교실을 찾는 이유는 무얼까요?
사람들이 요리와 계절에 맞는 생활을 즐길 방법을 찾으려고 이 수업에 온다고 봐요. 하지만 그걸 넘어 사람들이 일상으로부터 벗어나 휴식을 취하고, 자기 자신과 대화하면서 마음을 돌보는 걸 느껴요. 전 모두에게 그런 장소와 시간이 필요하다고 믿어요.
그렇게 이 부엌에 당도한 사람들과 어떻게 시간을 보내요?
요리와 더불어 농장 일, 식물 증류 등을 하는데, 매달 활동은 바뀌어요. 때로는 해가 내리쬐고, 때로는 비가 오죠. 하지만 비가 온다고 실망스럽진 않아요. 빗소리에 귀 기울여보고 떨어지는 빗방울의 아름다움을 알아갈 수 있으니까요.
날씨에 상관없이 낭만적인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아름답게 느껴져요.
바람이 부는 추운 날씨에도 우린 새들이 하늘 높은 곳에서 날개를 펴는 걸 관찰해요. 학생 한 명 한 명이 현재를 마주하죠. 그런 일상적인 ‘현재의 순간’을 알아챌 수 있다는 건 축복이에요. 아마도 저희는 레시피나 요리 기법만이 아니라, 작은 행복을 발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지도 몰라요.
도이 씨는 작은 행복으로 삶을 풍요롭게 채우는 것 같아요. 도이 씨가 생각하는 풍요로움은 무얼까요?
풍요로움에는 다양한 형태가 있는 것 같아요. 시내에서 근사한 음식을 먹거나 마음에 드는 옷을 사 입는 것도 좋은 일이에요. 마음을 설레게 하잖아요. 산에서 발견한 새 깃털이나 바다에서 주운 돌도 소중한 보물이에요. 저는 그 모두가 마음을 기쁘게 하는 풍요로움이라고 느껴요. 사람들과 열심히 일하고, 함께 기쁨이나 슬픔을 느끼고, 편안한 침대에서 잠을 자고…. 아마도 풍요로움은 안온하게 보내는 평범한 하루인 것 같아요.
일상의 소중함은 어떻게 느낄 수 있을까요?
작은 아름다움과 작은 기쁨을 계속해서 알아채는 거예요. 도이 씨에게 요리는 단순한 ‘일’이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것 같아요.
도이 씨에게 일, 요리는 어떤 의미인가요? 일을 정의하기가 쉽진 않아요.
일은 제가 좋아하는 것이자 저를 계속 흥미롭게 만드는 것이니까요. 항상 가족, 친구들과 식사를 하고 그 시간을 소중히 여기길 늘 원해왔어요. 특별한 음식일 필요는 없어요. 그렇게 함께 보내는 시간은 우리 마음을 풍요롭게 하고 음식을 더 맛있게 만든다고 믿어요.
도이 씨가 생각하는 좋은 공간, 좋은 작업실이란 어떤 곳인지도 말해줄래요?
경계를 넘어 모두가 평화롭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곳. 그런 곳이요.
제철 재료로 요리를 만들고 있죠. 이맘때 먹으면 좋은 일본의 제철 요리를 알려주세요.
2월은 여전히 추워요. 우리가 봄의 몇 가지 신호를 끌어들이고 싶어 하는 시기이기도 하고요. 테카 미소てっかみそ가 좋겠어요. 뿌리채소를 한 해 전 만들어 놓은 미소와 천천히 볶아 만들어요. 갓 지은 밥과 딱 어울리는 음식이에요. 만약 머위가 있다면, 튀겨도 좋아요. 머위의 쌉싸름함은 봄의 맛이죠. 레몬과 우뭇가사리로 만든 젤리는 보기도 좋고 맛있어요.
도이 씨의 오두막에서 요리를 먹어보고 싶어져요. 아와지 섬에서 어떤 새로운 날들을 꿈꾸고 있어요?
서로의 하루를 묻고 편안하게 일상을 보내는 식당을 만들고 싶어요. 아직 상상일 뿐이지만요. 거기서 많은 직원들과 일하고 최선을 다하고 싶어요.
에디터 차의진
사진 카토 케니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