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어요]

배부른 작업실

카페의 문턱에서 발길을 돌리며 인생을 누리고 사는 나 같은 사람들의 문제를 발견한다.

원래는 조용한 카페에 앉아서 글을 쓰려고 생각 중이었는데, 카페에 들어서려던 순간 가게 주인과 눈이 마주치며 계획이 틀어져 버렸다. 카페에서 작업하려던 생각이 갑작스럽게 그러지 않는 편이 좋겠다는 쪽으로 바뀌게 되었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부끄러움 때문이었다. 고개를 돌려 정면을 바라보고 가게 앞을 지나는 행인처럼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주춤하던 찰나의 모습과 미세하게 꺾인 동선을 통해 카페에 들어가려다 방향을 바꾼 나의 속내가 모두 드러났을 것이라 생각하니 한층 더 부끄러워졌다. 실제로는 나의 속마음 따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말이다.

원래는 카페에서 글을 쓰는 것에 대한 로망이 있었다. 어디서 그런 로망을 얻게 되었는지 정확히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많이 모인 장소에서 자신의 작업에 몰두하는 사람을 보면 늘 멋있다고 생각하곤 했다. 카페에서 얇은 키보드를 두드리는 사람이나, 지하철역 앞 낮은 턱에 쪼그려 앉아 그림 그리는 사람, 지하철에서 급하게 노트를 꺼내 메모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들을 가만두지 못하고 힐끔힐끔 쳐다보고는 했었다.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작업에 깊이 몰두한 사람들은 모두 진지해 보였고 그 순간에 보이는 긴장감이 눈길을 끌었다. 분초를 다투는 시간 속에서 자꾸만 흘러내리는 야속한 앞머리, 생각에 몰두해 무의식적으로 깨물게 되는 아랫입술, 바쁜 팔목에 내려앉아 솜털을 빛나게 만드는, 세상 물정 모르는 따스한 햇살 등…. 그들을 둘러싼 모든 것들이 아름다워 보였다.

허영과 동경심은 조금도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지만, 한편으로 삶에 있어 꼭 필요한 것들이라는 사실을 안다. 어릴 적의 허영과 동경은 삶의 방향을 결정지어 버리기도 한다. 나는 줄곧 카페, 혹은 공공장소에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는 나의 모습을 상상하곤 했다. 그것은 긴 머리와 가늘게 깨문 아랫입술, 팔목에 내려앉은 솜털 같은 햇살까지도 모두 포함하는 모습이었다. 공공장소에서 긴박하게 일하기 위해선 타당한 이유가 있어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공공장소에서 작업하는 사람들에 대한 동경과 허영이 지금 나의 직업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나는 건축가로서 때로 글 쓰는 사람으로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릴 필요가 있는 직업을 가지게 되었고, 그것은 나에게 비밀스러운 자격을 의미했다. 카페에서 작업할 권리를 획득한 사람인 양 나는 당당하게 카페로 향하곤 했다. 오늘이 처음은 아니다. 나는 늘 카페를 눈앞에 두고 늘 발길을 돌리곤 했다.
곧장 집으로 향하지 않고 이 골목 저 골목을 따라 걷다가 집으로 향하는 버스 정류장을 만나게 되었다. 골목에서 여러 개의 카페를 마주쳤지만 역시 들어갈 수는 없었다. 카페는 모두 한적한 척 평온한 분위기를 가지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바글거렸다. 여가와 휴식을 위한 공간이라기엔 너무나도 분명한 목적성이 엿보였다. 사람들은 절박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있었고 무언가로부터의 피난처 혹은 도피처인 듯 보였다. ‘이제는 별수 없구나….’ 생각하며 버스를 기다렸다.

카페는 쫓겨난 사람들을 위한 장소다. 어머니, 아버지 혹은 오빠 혹은 누나, 남동생 혹은 거실의 티브이 소리, 옆집의 소음, 외투를 입고 있어야 할 만큼 쌀쌀한 집, 더운 날씨, “너 여기서 뭐 하냐?”며 마치 꼴값 떤다는 듯 묻는 사람…. 사람들은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가방을 싸고 카페로 향한다. 그리고 마치 단단한 땅을 만난 비행선처럼 좁은 테이블에 도킹한다. 눈치를 주는 동거인도, 집을 떠나야 할 마땅한 이유도 없는, 그래서 아무 곳에서도 쫓겨나지 않은 나는 카페에 갈 만한 타당한 이유가 없다. 커피를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나는 카페에 들어갈 수 없나 보다. 버스를 기다리는 도중에 좀더 중요한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동경하던 것은 카페에 앉아 작업에 몰두하는 “모습”보다는, 좀더 구체적으로, 그런데도 나의 것을 해보려는 절박한 ‘마음’이 아닐까 하는 것이다. 남들에게 작업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카페에 들어가려니 아무리 생각해도 낯 뜨거운 일이다.

내 집은 빌딩 숲 한복판에 위치해 있다. 단단한 책상과 편안한 의자와 차와 커피가 집에서 작업할 상황에 대비해 이미 완벽히 구비되어 있다. 커튼을 걷으면 등장하는 창밖 풍경까지 감히 ‘잡지에 나올 만한 집’이라고 자부할 수 있을 만한 정도다. 이런 것들 역시 내가 동경하던 것들의 리스트에 있는 것들이었다. 책상에 앉아 무언가를 하려니 소파에 누워 다른 것을 하고 싶어진다. 커피를 내려 마시기 위해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물이 끓기를 기다린다. 기다리는 동안 밤늦은 시간에 잠든 아이들과 가족들을 피해 자동차 운전석에 앉아 소설을 완성했다는 어느 소설가의 이야기를 떠올려본다. 달리기와 위스키로 대변되는, 사치스러운 글쓰기를 하기로 유명한 무라카미 하루키도 처음엔 초라한 식탁 테이블에 앉아 무작정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 들어도 얼마나 가슴 떨리는 이야기들인가? 카페의 문턱에서 발길을 돌리며, 인생을 누리고 사는 나 같은 사람들의 문제를 발견한다. 인생을 누리고 사는 이들의 모든 문제는 ‘겨우’라는 가시 같은 단어에 집결한다. 배부른 고민이라고 해야 할지, 아니면 굶주림이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무튼, 아무 곳에서도 쫓겨나지 않는 사람의 비애는 겨우 이런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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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