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어요]

수집

취미가 없는 삶은 흡사 환기가 되지 않는 방에서 사는 삶과 같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옛날엔 다들 취미라는 것에 민감했다. 남들 앞에서 자기소개할 때 꺼낼 만한 취미 하나씩은 가지고 있어야 했고, 처음 보는 사람에게 취미를 묻는 게 일반적인 인사였다. “What Is Your Hobby?” 정도는 초등학생도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취미에 진심이었다. 

변변한 취미 하나 없이 살아가는 것이 큰 문제처럼 느껴졌다. 해마다 새 학년이 되면 번호 순서대로 앞에 나가 자기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취미가 없는 것에 대해 문제를 느끼곤 했다. 가나다순으로 만들어진 출석부 안에서 ʻ한’씨인 나는 늘 거의 맨 끝 번호였고, 내 순서가 올 때까지 긴 시간 동안 나의 취미는 무엇인가에 대해 거듭 생각해야만 했다. 도대체 나의 취미는 무엇인가…? 곤충 채집은 너무 유치한 거짓말이고, 음악 감상은 해본 적 없는 것 같다. 독서는… 누구 입에서 처음 나온 말인지 모르겠으나 독서는 생활이지 취미가 될 수 없다는 이상한 말도 떠돌아다녔다. 내 차례는 점점 다가오고 뭐든 지어내야 하는데 좋은 생각이 나지 않았다. 나의 특기라고 하면 남들에게 자랑할 만한 게 참 많았다. 숨을 곳 찾기, 숨 오래 참기, 양손으로 글씨 쓰기, 사람 옆모습 그리기 등…. 특기는 잘하는 것이고 취미는 자주 하는 것이니까 자주 하는 걸 이야기하면 되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나는 잘하는 게 아니면 그 무엇도 자주 하지 않았다. 매일 학교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어느 지점에 다다르면 숨 참고 걷기를 했고 매일 조금씩 기록을 경신해 나가고 있었다. 사람 옆모습은 원래 그리기 어려운데 나는 마치 사인하듯이 종이에 펜을 휘이익 휘갈겨 옆모습을 그릴 줄 알았다. 취미라는 것이 잘하는 것과 연결되어 있으면 그래도 쉬울 것 같았다. 이를테면 곤충의 옆모습을 그린다든지… 숨을 참고 음악 감상을 한다든지…. 그러나 잘하는 일과 좋아하는 일이 따로 있어야 한다는 건 너무나 만족시키기 어려운 조건이었다.

다른 친구들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면 나는 취미쯤이야 앞에 나가서 대강 발표하고 마는 요식행위로 여겼을지도 모른다. 대충 아무거나 지어내서 말했을 것이다. (저의 취미는 하늘 보기입니다!) 그런데 교탁에 서서 자기소개하는 아이들이 말하는 취미는 나를 주눅 들게 만들었다. 아이들은 저마다 하나씩 취미가 있었다. 그들이 나처럼 고민해서 지어낸 것이라고 보기 힘든 게, 정말로 친구들을 둘러보면 그랬다. 문방구에서는 살 수 없는 작은 스프레이와 핀셋을 이용해서 정성껏 프라모델을 만드는 친구가 있었고, 일본어로 된 애니메이션을 보고 진지하게 토론하는 친구들이 있었다. 매일 야구 경기를 보고 시합을 기록하는 두꺼운 노트를 가진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취미가 있는 아이들은 비슷한 취미를 가진 아이들끼리 모여 놀았다. 점심시간에, 쉬는 시간에 다 같이 놀다가도 어느 순간이 되면 아이들은 자기들만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고 곧 자기만의 세계로 떠나가 버렸다. 그 모습을 보며 나는 뻘쭘하게 서서 웃다가 다른 자리로 이동하곤 했다. 세계는 닫혀 있고, 모든 사람에게는 열린 문이 하나씩 있는데 그 문이 나에게만 없는 것 같았다.

내 순서에 다다라 나는 거짓으로 우표 수집이 취미라고 말했고, 누군가 그것에 대해서 자세히 물어보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나 관심도 없는데 질문 한 개씩 하지 않으면 견디지 못하는 맨 앞자리 애가 내가 가진 가장 진귀한 우표가 무엇이냐고 물어봤고, 나는 머리가 하얘져 거의 울 듯한 표정으로… 뭐라고 말했는데 뭐라고 말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집으로 돌아와서 마치 알리바이를 만들기라도 하듯 급하게 취미를 만들기 시작했다. 우표를 촉촉하게 물에 적시면 조금 후에 떼어낼 수 있게 된다고, 당시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 난 어떻게 그런 걸 알게 되었을까? 편지를 모아 놓은 엄마의 추억 상자를 열어 편지 봉투에 붙은 우표를 떼어내고, 문방구에 가서 흔해 빠진 우표를 사고, 연말에 다들 사니까 나도 샀던 크리스마스실을 책상 서랍 깊숙한 곳에서 꺼냈다. 우표 수집을 하려면 반드시 스크랩북이 있어야 하는데, 그건 문방구에서 이천 원에 팔고 있었다. 나는 언제나 돈이 없었다. 어느 날 아침 엄마가 빵집에서 빵을 사 오라고 했는데 나는 대범하게도 그 돈으로 스크랩북을 샀다. 빵집이 문 닫아서 대신 스크랩북을 샀다는 정신 나간 사람이나 댈 법한 핑계를 댔다. 어렵게 산 스크랩북에 어렵사리 끌어모은 우표들을 채워 놓는 데는 몇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난 대략 ʻ이런 게 취미라는 것인가?’ 생각하고는 스크랩북을 덮었고 다시 스크랩북을 열어보지 않았다. 별로 재미없었다

사실 아직도 취미가 뭔지는 모르겠다. 자주 하는 거라면 씻는 거랑, 냉장고 여는 거랑, 청소기 돌리는 거랑, 책 읽는 건데 독서는 아직도 취미라고 해선 안 되는지 모르겠다. 취미는 뭔지 모르니까 흥미라고 말해보자면, 사람들은 무언가에 흥미를 느끼고 그것을 모으는데 난 그런 점이 여전히 부럽다. 다른 세계로 향하는 문이 있다면 잠시 자신을 피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신의 취미는 무엇인가요? 요즘은 누구도 그렇게 물어보진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무언가에 흥미를 느끼고 있고, 취미를 가진 사람을 많이 보았다. 오래된 음반을 사 모으는 사람들도 보았고, 끊임없이 자전거를 개조하는 사람도 보았고, 스피커를 사 모으다가 결국 만드는 사람도 보았다. 대학교 때는 다 큰 어른들이 피겨를 수집하는 걸 가까이서 지켜보았다. 친한 친구들이 귀엽다 귀엽다를 연발하며 피겨를 예뻐하는 걸 지켜보았고, 그것이 고가에 매매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도 같이 살래?”라며 나에게 물어보기도 했다. 

저런 걸 왜 좋아하나… 저런 게 왜 갖고 싶나… 싶다가도 나도 저런 게 갖고 싶은 마음이 들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아무리 물을 부어도 풀이 자라지 않는 바위산처럼 작은 물건에 의미를 두는 마음은 잘 돋아나지 않았다. 그런 점이 불행하게 느껴진다거나 하는 건 아니지만 다소 피로감이 드는 건 사실이다. 그들이 무언가에 애정을 쏟는 사이에 나는 모든 애정을 나에게 쏟고 있었으니…. 지금은 취미라는 것이 어릴 때보다 더 큰 문제로 다가온다. 누군가에게 취미가 무언지에 대해 선전포고할 일은 없지만, 취미가 없어 피로하기 때문이다. 취미가 없는 삶은 흡사 환기가 되지 않는 방에서 사는 삶과 같다. 나는 너무나 나랑 오래 붙어 있어서 좀 피곤하다. 나만 갈 수 있는 작은 문이 있어 그곳을 드나들며 잠시 나를 떠나고 싶기도 하다. 좋아하는 누군가가 공연을 한다고 하면 줄 서서 오래도록 기다려보고 싶고, 소중한 티켓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기도 하다. 나무 사이에서 버섯을 캐듯 내가 좋아하는 무언가를 찾아 돌아다녀 보고 싶기도 하다. 40년 동안 지긋지긋하게 붙어 지낸 나와 잠시 떨어져 다른 것에 흥미를 느껴보고 싶은 생각이 종종 들곤 한다. 그래서 나도 흥미로운 무언가를 찾아볼까 싶은데,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자신을 발견한다. ʻ배고프지 않아?’ ʻ오 이걸로 글 써보는 게 어때?’ 나는 무척 생산적인 나와 함께 살고 있다. 

그럼에도 취미를 갖기 위한 시도를 멈추지는 않을 예정이다. 턴테이블은 없지만 가끔씩 엘피판을 사 모은다. 가끔 눈에 띄는 이상한 것들을 사기도 하는 둥 여전히 이것저것 기웃거려 보기도 한다. 어느 정도 이상의 관심이 생기지는 않지만 아무튼 열심히 흥밋거리를 찾아보고 있다. 그래서 무언가를 좋아하게 된다면? 운이 좋아 무언가를 수집하게 된다면? 그렇게만 된다면 즐거운 일이 줄줄이 이어질 것이라 기대하며. 그렇게만 된다면, 수집한 것들을 손질하기 위한 장비를 구입해야 할 것이고, 그것들을 넣어 놓을 가구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가구를 놓기 위해 배치를 바꿔야 하고, 그것을 위해 집을 바꿔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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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