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어요]

여러분 부산을 좋아하세요!

불편한 곳이 얼마나 편안한지, 편안한 곳이 얼마나 불편한지.

공사 현장에 돌아다니는 나무 판때기를 주워다가 식탁을 만들고 여기저기 흩어져서 일하고 있는 사장님들을 불러 모았다.
“사장님 짜장면 왔어요!” “사장님 식사하세요!!”
사장님들은 장갑을 벗어 탈탈 털고서 뒷주머니에 꽂아 넣었다.
“사장님 저쪽에 자리 만들어 놨어요!”
손끝으로 햇빛이 잘 드는 쪽에 나름 그럴듯하게 놓인 식탁을 가리켰다. 오전의 깨끗한 햇빛이 합판으로 만든 식탁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었다. 그러나 현장의 우두머리 격인 설비 사장님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됐어! 후딱 길에서 먹어! 타 죽을 일 있어?!”
오래전 여름과 가까워 오던 봄날 연희동에 위치한 작은 주택을 리모델링하는 현장이었다. 현장에서 공사하던 사람 서너 명과 그리고 나 이렇게 연희동 길바닥에 나란히 앉아서 짜장면을 먹었다. 짜장면 그릇은 들고 단무지는 나와 옆 사람 사이에 놓고, 대화 없이 쩝쩝 소리만 내며 먹었다. 궁둥산 나무 그늘 아래로 쏟아지는 서늘한 꽃바람이 땀을 식혀주었다. 단정한 차림의 대학생과 나이 든 주민 몇몇이 눈앞을 지나갔지만 길에서 짜장면을 먹는 걸 이상하게 바라보지 않았다. 이 이상한 해방감은 뭘까…? 옷만 꼬질꼬질하게 입고 길바닥에 앉아 있을 뿐인데 나는 솔직한 말로 어느 곳에서도 느껴보지 못한 해방감을 느꼈다. 이 느낌은 바닷가에서도 해외 어느 여행지에서도 느낄 수 없는 자유였다. 길에 앉을 자유, 옷이 더러워질 자유 그리고 입가에 짜장면을 묻힐 자유였다. 길을 지나는 모두는 단정함과 깨끗함을 유지해야만 하는데 우린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이상한 특권 의식마저 느껴졌다. 그곳이 길바닥이라도 먹고 싶은 곳에서 밥 먹고, 다 먹은 뒤엔 바닥에 석고 보드 깔고 낮잠 자고… 이건 정말이지 찐 행복이라고 생각했다. 다만 근처에 사는 엄마가 이 광경을 보지 않길 바라며 불안해했다.

서울에선 현장 일을 할 때가 아니면 길에 눕기는커녕 길에 앉아 있을 자유가 없다. 길가에 내놓은 벤치에도 잘 앉지 않게 된다. 보통 벤치는 차들이 쌩쌩 다니는 길가에 있기 때문이다. 어딘가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 위해선 카페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고 그래서 옷이 더러워질 기회도 없다. 옷이 더러워지는 건 자연스러운 일인데 서울에선 그럴 기회가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자연스러움은 서울에서 태어나 줄곧 서울에서 자라오면서 키워온 갈증이었다. 

바닷가에서 살았다면 몸에 물을 묻히고 살았을 텐데…. 시골에서 자랐다면 온몸에 흙을 묻히고 살았을 텐데…. 서울에서 살면서 몸을 뒹구는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다. 종종 도시 아이들은 옷이 더러워진다며 꾸중을 듣는다.

나는 서울을 좋아하지 않는다. 사실은 서울을 아주 좋아하기도 하는데 서울을 좋아하는 만큼 싫어하기도 한다. 서울을 싫어하는 백만 가지 이유 중에 가장 으뜸으로 꼽는 것은 바로 이곳의 부자연스러움이다. 서울이 어릴 때부터 그런 곳이었는지 기억나진 않지만 언젠가부터길에서 보이는 서울 사람들은 모두 곱고 단정하다. 마치 리얼리티 연애 프로그램에 나올 법한 사람들처럼…. 깔끔한 티셔츠 위에 오버 핏 조끼, 사이즈는 크지만 바닥에 끌리지 않는 바지, 코팅된 머리, 하얀 피부…. 이렇게 섬세하게 신경 쓴 사람들을 현실에서 볼 수 있다는 건 서울의 신기한 볼거리다. 하지만 서울엔 좀처럼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신체불구자가 친구와 신나게 대화 나누는 모습, 여자 복장을 입은 남자의 수줍은 표정, 길에서 키스하는 노인들 같은 어떤 장면들은 서울에서 쉽게 목격되지 않는다.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그들은 지금 모두 어디에 있을까 싶은 섬뜩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원래 도시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모여 살아야 하는데 서울에는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그것이 바로 부자연스러움이다. 부산을 처음 방문하게 된 건 몇 년 전 거제도에 건축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면서부터였다. 전에도 부산을 몇 번 들른 적은 있지만 해운대를 방문하거나 친구를 만나는 등 잠시 도시를 접촉하는 경험이 전부였다. 일주일 혹은 이 주일에 한 번 그곳에 들르며 종종 며칠간 머무르기도 하며 부산이라는 도시를 제대로 겪는 기간이 되었다. 

언뜻 거칠고 정돈되어 보이지 않는 이곳에서 뭔지 모를 이 편안함은 어디서 오는 걸까? 부산에서는 두꺼운 쇠뭉치가 자주 보였다. 도시 한가운데에는 높이 솟은 굴뚝이 있었고, 부둣가에는 높은 천장이 있는 버려진 창고가 있었다. 버려졌다가 다시 사용되는 창고도 있었다. 건물처럼 큰 기계, 혹은 기계처럼 보이는 건물이 있었고, 바다가 있었다. 서울에서는 어떤 시설들을 쉽게 발견할 수 없다. 공장도 발전소도 무덤도 쉽게 발견할 수 없다. 대체로 해롭고 위험해 보이는 것들이다. 그런 시설들은 인적이 드문 외곽으로 보내졌거나,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지거나, 예쁜 외벽으로 감싸져 마치 보통의 오피스텔 건물인 듯 위장해 두었다. 거리에 드러나는 것은 단정한 건물, 소비자를 유혹하는 가게, 소비할 준비가 된 사람들이다. 시끄러운 기계나 위험한 물건, 일하는 사람, 불편한 사람, 특이한 사람들은 모두 소비자의 눈을 피해 어딘가에 숨어들어 있다. 나는 서울을 싫어한다고 했으나 사실은 서울을 안쓰러워한다. 내가 부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서울에서는 가려져 있던 도시의 모습을 볼 수 있어서다. 우리 서울이 부산처럼 당당하길 바라는 마음이다. 공장도, 일하는 사람들도, 기계도 모두 밖으로 나와 자기 모습을 드러내는 도시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것이 부산을 좋아해야 하는 이유다. 거칠고 다듬어지지 않은 그곳을 좋아하는 이유는 편안하기 때문이고, 익숙하지 않은 도시의 풍경에서 내가 느낀 편안함이란 동네에 앉아 더러운 옷을 입고 짜장면을 먹을 때와 같은 마음이었다. 아무 데나 앉아도 되겠다는 안심, 아무렇게나 하고 있어도 누가 이상하게 보지 않을 것 같다는 안도감이었다. 물론 가끔 들려오는 거센 말투가 안도감을 흔들어 놓긴 했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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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