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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한 공감
살을 부대끼며 지구를 이해하기.
우리 집에는 강아지 친구가 두 마리 있었는데 둘 중 ‘새찌(내 강아지 이름임)’는 꼭 사람 같은 구석이 있었다. 말귀를 특별히 잘 알아듣고 유독 영특하게 굴어서 그런 건 아니고 표정이 좀 사람 같았다. 새찌는 그러려고 한 것이 아니겠지만, 늘 진지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마치 차인표나 안성기처럼…. 그런 진지한 표정으로 사람 말을 알아듣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나 웃기고 귀여웠다. 무슨 이야기를 할 때면 진지한 얼굴로 다 알았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단순히 산책 혹은 간식이라는 단어가 나오길 기다릴 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진지함은 얼굴에 국한된 것이었고, 새찌는 잘생긴 외모와는 다르게 짧고 통통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다. 흡사 웰시코기와 비슷한 몸매였다. 진지한 얼굴에 그렇지 않은 몸매를 하고 있었으니 볼 때마다 웃음이 났다.
나는 종종 새찌의 엉덩이를 토닥거렸다. 신기하게도 언제나 소파에 앉거나 누우면 그곳엔 새찌의 엉덩이가 있었다. 티브이를 보면서 늘 쫀쫀하고 토실토실한 엉덩이를 쓰다듬었다. 처음엔 쓰다듬었다가, 토닥거렸다가, 나중엔 푸다닥 소리가 나고 먼지가 흩날릴 정도로 토닥거렸다. 새찌의 얼굴은 처음엔 예쁨받는 강아지처럼 새침한 표정이었다가 언제부턴가 예뻐하는 건지 괴롭히는 건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 새끼 이거 장난치는 거였구나.’ 깨닫게 되면 몸을 돌려 전쟁을 시작했다. 새찌가 고개를 돌려 손등을 물려고 달려들면 누런 이빨이 드러났고 입 냄새가 났다. 입 냄새 나는 잘생긴 사람…. 나는 숨을 참고, 바쁘게 손을 움직이며, 한편으로는 태연하게 티브이를 보는 척하며 엉덩이를 푸닥거렸다. 으르렁거리는 맹수의 소리와 푸닥거리는 소리가 거실을 울리면 강아지 털 날린다고 소리치는 엄마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도 좀 그만하라고 새찌에게도 소리쳤다. 마치 사람들끼리의 싸움을 말리는 목소리 같았다. 사랑은 때때로 격하게 전해진다. 말로 해서는 소용없다고 말하는 폭력가들의 논리와 비슷하다. 너 귀엽다고 너 사랑한다고 말로 해서는 충분히 전달되지 않으니 먼지가 나도록 푸닥거리하는 것이다. 그 과격함은 단순한 에너지의 변환일 수도, 아니면 좋아하는 마음을 쏟은 후에 조금은 편안한 상태로 있고 싶은 것일 수도 있다. 가끔 연인 사이에도 과격함이 오고 간 후에 곧 평온이 찾아오곤 한다. 어디부터 폭력이고 어디까지 사랑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지만 과격함은 대상에 닿는 여러 가지 방법 중 하나임에 틀림이 없다. 때때로 그 반대 과정을 생각해 볼 수도 있다. 그러니까 내가 무언가를 격하게 대할 때 나는 어떤 대상을 사랑하는가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어느 날 친구가 메신저로 사진 몇 장을 보내줬는데, 몇 년 전 여름 방파제에 축 늘어져 쉬고 있는 나와 친구들의 사진이었다. 친구 몇 명과 함께 바닷가에서 격하게 놀던 그해여름, 모든 힘을 다 쏟은 후에 마치 널어놓은 건어물처럼 바닥에 누워 있었다. 특히 어떤 사진에서는 나의 피부가 불긋불긋해 보였는데 그건 다이빙하다가 생긴 자국이었다. 방파제에서 물로 뛰어들 때 능숙하게 하질 못해 배때기로 큰 물보라를 튀기며 들어갔고, 그럴 때마다 몸에는 붉은 자국이 하나씩 늘어났다. 아팠지만 이것이 여름의 기분이 아닌가 생각하면서 연거푸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피부의 붉은 자국을 나는 바다의 손자국이라고 불렀다. 마치 내가 새찌의 궁둥이를 토닥거리던 것처럼 바다가 나를 토닥거린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나는 물속으로 몸을 던지는 활동을 무척 좋아한다. 그것을 다이빙이라고 한다. 문득 이런 상상을 한 적이 있었다. 나중에 죽어서 우주 곳곳에 흩어져 살던 생명체들이 모여 자기가 살던 곳 이야기를 하게 된다면? 그때 무슨 이야기를 해야 서로가 살던 곳을 이해할 수 있을까? 음식도 음악도 기후도 역사도 모두 달라서 뭐 하나 설명하기에 너무 까마득할 텐데….
나는 그때 다이빙을 떠올렸다. 다이빙의 기분은 행성의 무게에 따라 다르다. 그리고 행성을 구성하는 물질에 따라 다르다. 그래서 각자 다른 행성에서 온 생명체들이 자신의 다이빙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 각자 다른 기분을 말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에서 떨어지는 속도도 다를 테고 물속에 빠져 들어가는 속도도 다른 것이다. 그럼 물에 빠질 때 물이 튀기는 모양과 따가운 정도도 다를 테니, 몸에 남는 붉은 자국도 다를 것이다. 그렇게 다이빙 이야기를 하면 각자가 살던 행성이 어떤 곳인지 이해하고 궁금해할 수 있을 것이다. 다이빙은 겨우 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닌 지구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을 깨닫고, 나는 물에 뛰어들며 바다가 아닌 지구와 놀기 시작했다.
몇 년 전 지구와 더 격하게 놀기 위해서 다이빙을 전문적으로 배워보려고 한 적이 있다. 주말마다 잠실 올림픽 경기장에 있는 수영장에 가서 다이빙 선수에게 다이빙을 배웠다. 공중에서 앞으로 돌고 뒤로 돌고 그런 건 별로 관심 없었다. 오직 안전이 보장된 곳에서, 최대한 높은 높이에서 뛰고 싶었다. 지구는 날 얼마나 격하게 반겨줄지 궁금했다. 생각보다 진도는 빠르게 진행됐다. 처음엔 1미터, 다음엔 3미터, 5미터… 뛰어내리는 높이가 빠르게 높아졌다. 7미터에서 뛰었을 때는 떨어지면서 몸이 점점 기우는 것을 경험했고, 몸이 사선으로 기울었다는 것을 알면서도 뭘 어떻게 해볼 수 없는 무력감을 느꼈다. 그대로 물속에 박혀버렸다. 10미터 다이빙대에 올랐을 때는 아래서 올려다보이던 높은 천장이 바로 머리 위에 있는 걸 볼 수 있었다. 아래서 올려다볼 때는 가늘어 보이던 원형 철제 구조물이 내 몸보다 두꺼웠다. 한 발은 다이빙대 밖에 두고 한 발로 서서 뛸 준비를 했다. 저 아래 사람들이 나를 올려다보고 있었는데 그 광경이 무섭고 어질했다. 그냥 한 다리 들고 서 있을 뿐인데 몸이 좌우로 휘청거렸다. 아래서 누군가가 목소리를 내면 그 소리가 곧바로 들리지 않고 천장을 울린 후 내 귓속으로 들어왔다. “멈 멈 춰 춰!! !!” 뛰어내리지 말고 그냥 내려오라는 소리가 천장에 튕겨 들려왔다. 높은 곳에 서서 휘청거리는 내 모습이 불안해 보였던 것이다. 나는 한편으로 안도하며 들고 있던 한쪽 다리를 내렸다. 그리고 다리를 후들거리며 계단을 걸어 내려왔다. 난간을 꽉 붙잡고 내려오며 지구는 이런 곳이구나, 깨달았다. 그 위에서 나는 사랑과 폭력의 경계를 보았다. 지구가 물로 찰싹 때리는 건 7미터까지구나….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건 몸을 비비면서 노는 것. 격하게 아끼는 것과 격하게 사랑하는 것 그리고 두려워지는 것, 이 모든 것이 몸을 비비는 일에서부터 시작한다. 그것은 때로 지나칠 수도 있겠으나 그 지나친 모습까지도 알아버리면 그제야 사랑하는 대상을 이해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지구를 더 잘 알게 되었다고 생각하며 다이빙 수업에 더 이상 나가지 않았다. 무서워서 나가지 않은 것도 있지만, 그 두려움을 극복할 만한 갈증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