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ROUND
CLUB ONLY
SERIES
MEET AROUND
SUBSCRIBE
SHOP
재미없는 친구들
재미없는 친구들 두두둥장!
동료 건축가 양규의 아이들을 종종 본다. 양규는 근래에도 보기 드문 좋은 아빠로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기 위해 자신의 시간을 쪼개곤 한다. 아침엔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출근하고, 오후엔 일찍 퇴근해 아이들을 데리러 학교에 간다. 저녁엔 동네에서 아이들과 축구를 한다. 그리고 늦은 밤 회사로 다시 돌아와 밀린 일을 처리하기도 한다. 자신의 힘듦을 토로하며 자신의 다정함을 자랑하는 것이 때로 얄밉기도 하지만, 그래도 정말 아이들에게 좋은 아빠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양규의 동업자라는 이유로 나도 가끔 양규의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쪼갠다. 동료들끼리 농구를 하거나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 양규가 아이들을 데리고 오기도 하는 것이다. 농구 코트 저 멀리 불타는 노을을 등지고 세 사람의 실루엣이 나타나면 나는 옆 사람에게 조그마한 목소리로 속삭인다.
“양규가 재미없는 친구들 데려왔다….”
미안하지만 난 너희들을 재미없는 친구들이라고 부른다. 너희하고 놀면 난 재미가 없으니까…. 양규의 손을 꼭 잡은 일곱 살, 아홉 살 두 아이는 세상 두려울 것이 없다는 표정이다. 그들은 여전히 어리고 귀엽지만, 뽀송뽀송한 외모로 예쁨을 받던 시기는 얼마 전에 지나버렸다. 언젠가부터 아이들의 볼은 갸름해지고 몸은 야위기 시작했다. 그래서 난 더 이상 그들을 아기처럼 대하지 않기 시작했다. 서먹한 사이의 친척 동생을 만난 것처럼 건조하게 대했고 그들도 나에게 예쁨 받을 생각을 접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서로 냉랭하기만 하다.
농구 코트에서 아이들은 마치 단 한 번의 출전 기회를 노리는 후보 선수처럼 어른들 눈에 띄려 애쓴다. 슛을 던지기 전에는 나 좀 보라는 말을 꼭 하고,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패스하지 않는다. 위험하게도 시합 중인 코트에 들락날락하기도 한다. 그것이 어른들에게 관심을 받기 위해서라는 것을 모를 리 없는 나는 호락호락하게 굴지 않았다.
“얘드라~ 거기 위험해~ 삼쵸니랑 같이 저기서 슛 연습할까?” 유아기를 지난 아이들에게 이런 낯 뜨거운 목소리는 더 이상 나오지 않는다. “야 거기 서 있다 부딪혀…. 나와.” 난 친구한테 말하듯 건조하게 말했다. 그러자 재미없는 친구 중 작은 친구가 무표정하게 날 바라보며 말했다.
“어쩔티비? 저쩔티비? 어쩔냉장고? 저쩔청소기? 어쩔냉장고? 안물? 안궁? 누가 물어봤음? 여기 물어본 사람?”
…와…열 받아…. 심지어 실수로 어쩔냉장고 두 번 했어…. 난 열 받았지만 아이들에게 화내면 지는 거라서 무표정한 얼굴로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바라보았다. 구름이 제법 빠르게 흘러갔다. 가을이구나….
“친구들아, 이리 와. 삼촌이랑 슛 연습하자!”
종종 삼겹살 먹을 때마다 아이들을 잘 챙겨줘서 고기 삼촌이라고 불리게 된 사람이 손짓하며 아이들을 불렀다. 재미없는 친구들은 천사 같은 모습을 하고 고기 삼촌에게 쪼르르 달려갔다. 뛰어가며 약간 귀여워 보이기 위해 혀를 깨문 모습을 목격한 건 나뿐이었다.
나는 종종 아이들과 마찰을 빚곤 한다. 아이들을 귀여워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건 사실은 아이들과 빚는 마찰이 아니고 아이들을 천진한 상태로 묶어 두려는 어른들의 세상과 빚는 마찰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어른들은 지나버린 시절을 그리워하며 아이들이 그 시절에 오래도록 머무르기를 바라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순수함에 대한 열망일 것이다.
어른들은 때때로 아이들이 애교 부리고 재롱떨기를 바라고, 그것을 사람들 앞에서 보여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그래서 아이들은 어른들 기대에 부응하며 순진한 표정으로 나풀나풀 귀여운 춤을 추기도 하는데, 그럴 때 나는 기뻐하기를 주저하며 손뼉 치지 않는다. 철딱서니 없는 문제아 삼촌처럼 양말이나 만지작거리며 딴청을 피운다. 장기자랑을 끝마치면 아이들은 부끄러운 표정으로 뒤돌아선다. 용돈을 주면 아이들은 “고맙습니다.” 인사하고 다시 숨는다.
난 그런 게 정말 불편하다. 아이들의 재롱은 아이들을 평가받고 칭찬받는 대상으로 자리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난 아이들에게 용돈을 주지도 않는다. 정말로 아까워서 주지 않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이 천진한 척하지 않아도 되도록, 가끔은 힘 빼고 사람 대 사람으로 느낄 수 있도록 그냥 두는 것이다.
나에게 순수함에 대한 열망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순수를 사랑한다. 누구보다도 순도 높은 순수를 열망하며 누구보다도 순수를 그리워하기 때문에 이토록 심도 있는 고집을 가지게 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그것을 아이들에게서 찾으려 하지 않을 뿐이다. 지금까지 내가 만난 순수한 사람들은 어릴 적 순백의 상태를 고이 간직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오히려 오랜 세월을 거치며 모든 것에 물들고 모든 것에 찌든 어른들이었다. 많은 것을 경험하고 많은 것을 알아버린 후에 자기 생각과 경험을 빨고 빨고 또 빨아 하얀 상태로 되돌아가고자 하는 사람, 그렇게 누더기가 된 사람들을 보았을 뿐이다. 난 그나마 깨끗한 그들의 영혼을 사랑하며 그들이 순수하다고 말한다. 순수한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천진한 눈으로 세상에 질문을 던진 사람들이 아니었다. 알고 있는 것들을 모두 비워 낸 후에야 당연한 것들에 대해 질문할 수 있게 된 사람들이었다. “그건 꿈일 뿐이야.”라고 말했던 의식 저편의 세계를 자세히 들여다보았던 프로이트, 집착과 같은 마음의 상태를 고통이라고 생각하고 사람은 왜 고통받는가 궁금해했던 석가모니, 눈에 보이는 것을 보이는 대로 믿지 않았던 화가들, 언어로는 거의 아무것도 전달할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 문학가들, 과학이 모든 것을 명료하게 기술할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의심한 과학자들. 그들이 어떤 직업을 가지고 무엇을 하는가에 상관없이 나는 그들을 예술가라고 부른다.
농구를 마치고 망원동에 있는 허름한 삼겹살집에서 식사를 하는데 재미없는 친구들이 다시 등장했다. 집에서 샤워하고 돌아온 것이다. 양규는 아이들이 성가시게 굴 테니 자기만 아이들과 따로 앉아 먹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미안해할 것을 알고 따로 먹겠다고 그러는 것이다. 양육하는 아빠는 늘 보이지 않는 적에 맞서 두뇌 싸움을 펼친다. 일행은 아이들이 하나도 성가시지 않으니 같이 앉자고 말했고, 가장 끝에 앉아 있던 내가 아이들과 마주 앉게 되었다. ‘어쩔티비? 저쩔티비? 어쩔냉장고?…’ 오전에 받은 타격이 귓가를 떠나지 않은 상태였다.
나는 고기를 구우며 아이들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왜 맨날 나만 고기 굽고 고기 잘라주고…. 늬들은 나 예뻐해 주지도 않는데 나만 너희들 예뻐해 줘야 하느냐고…. 재미없는 친구들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고기를 젓가락으로 뒤적거린 후 가장 먼저 익은 고기를 입에 넣었다. 하필이면 내가 먹으려고 속으로 찜해 둔 고기였다. 재미없는 친구 중 작은 아이가 우걱우걱 고기를 먹으며 대답했다.
“삼촌은 어른이잖아요!”
아 그렇구나! 나는… 뜻하지 않은 깨달음이었다. 아이들은 순수하지는 않을지라도 가끔 어른들보다 지혜롭기는 하다. 어른은 아이를 아껴줘야 하고 보호해 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사실이 너무 당연해서, 내가 잠시 잊고 있었다. 뒤이어 큰아이가 말했다.
“그러니까 억울해도 좀 견뎌요.”
“그래….”
우리 사이에 제법 어른스러운 대화가 오갔다. 난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이 먹기 편하도록 고기를 잘라주었다.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