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어요]

달달한 상처들

가까운 것들은 쏜살같이 지나가며 멀리 있는 것들은 우리를 집요하게 쫓아온다.

가족과 차를 타고 먼 길을 갈 때마다 나는 자동차 뒷좌석에 누워서 가곤 했다. 누워서 가면 편했지만 누워서 바라볼 수 있는 경치는 하늘뿐이라서, 누우면 지루했다. 그래서 누웠다, 앉았다를 반복했다. 뒷좌석에 등을 대고 누우면 몸이 흔들거렸기 때문에 천장에 발을 딛었다. 뒷유리를 통해 올려다본 풍경은 구불거리는 전선들이 엉킨 모습이었다. 하늘은 어지러운 전깃줄로 가득 차 있었고, 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전깃줄은 흐르는 강의 어두운 표면처럼 느리게 출렁이기 시작했다. 전봇대가 왼쪽에서, 그리고 오른쪽에서 조금의 시차를 두고 가끔 나타나면 엉켜 있는 전깃줄이 잠시 정리되곤 했다. 어느 지점에 이르면 하늘은 빙글빙글 돌고, 차는 서고 달리기를 반복했다. 어느덧 전깃줄이 모두 사라지고 하늘이 깨끗해지면 자동차는 빠르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고속도로에 진입하면 안전벨트를 매고 똑바로 앉았다. 고개 돌려 바라본 창밖의 풍경은 가로로 지익 그은 선들의 집합이었다. 가드레일, 풀잎, 맞은편의 차들 모두 저 멀리에 있을 땐 형태를 뚜렷이 볼 수 있었지만, 가까이에선 가로로 찌익 그은 선들로 변해버려 그것을 지나는 순간엔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어 버렸다. 표지판이나 나무 같은 것들도 저 멀리선 움직이지 않다가 우리 옆을 지나갈 때면 스르륵 움직이는 사물이 됐다. 그리고 지직 그어져 버렸다.

한편, 산이나 구름처럼 아주 멀리 있는 것들은 옆을 스쳐 지나는 사물들처럼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꽤 오랫동안 우리를 따라다녔다. 멀리 있는 사물일수록 더 오랫동안 우리를 쫓아왔다. 자동차가 아무리 빨리 달려도, 아무리 급하게 방향을 꺾어도, 먼 곳에 있는 동산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 잊을 만하여 돌아보면 옆 유리에서 뒷유리로 살짝 넘어가 있을 뿐이었다. 그리고 어느덧 그것의 존재를 잊고 있을 때쯤 사라졌다.

해가 지고 하늘이 거뭇해질 무렵 나타난 달은 목적지에 도착할 때까지 우리를 놓치지 않았다. 가끔 달이 산 뒤로 숨는 경우도 있었지만, 산이 오랜 시간에 걸쳐 뒤쪽 풍경으로 달아나고 나면 달은 빼꼼히 다시 나타나 함께 달리곤 했다. 달은 조금도 민첩하게 움직이지 않으면서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달리는지 궁금했다. 또래보다 영리했던 어린 시절의 나는 끊임없이 따라붙는 달을 바라보며 위대한 과학적 명제를 하나 정립하게 되었다.

“가까운 것들은 쏜살같이 지나가며 멀리 있는 것들은 우리를 집요하게 쫓아온다.” 

후에 나의 과학적 명제는 원근법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닿을 수 없는 먼 곳의 이야기는 평생을 걸쳐 나를 집요하게 쫓아다녔다. 그것은 원근법에 따르면 저 먼 곳을 응시하는 태도로, 결코 볼 수 없거나 확인할 수 없는 먼 세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었다. 인간이 있기 전의 시간으로, 거짓과 다툼과 복잡함이 현실을 난도질하기 이전으로 시선을 돌리는 것이었다. 과거로, 과거로 끝없이 거슬러 올라가면 순수한 시절의 이야기를 만날 수 있었다. 저 먼 곳의 이야기 속에서 사람은 모두 동물로, 어린아이로, 이야기로 살고 있었다.

매일 밤 두 개의 달이 뜨는 네버랜드, 그곳에서는 평생 나이 들지 않는 피터팬과 친구들이 밤늦도록 아이들의 축제를 펼치고 있었다. 보노보노와 너부리, 포로리처럼 천천히 산책하는 동물들의 세계가 있었다. 모순과 다툼이 없었기에, 그 세계는 조심하거나 두려워할 필요가 전혀 없는 곳이었다. 제리가 톰의 대가리를 10톤짜리 망치로 내려치더라도 해를 가할 수 없는 안전한 세계였다. 사람들이 없을 땐 몰래 돌아다니다가 인기척이 느껴지면 원래 있던 자리로 돌아가 털썩 힘을 빼고 드러눕는 인형과 장난감들의 세계…. 그런 장난 같은 세계를 동경했고, 심지어 그것이 눈앞의 현실보다 더 진실한 세상이라고 믿기도 했다. 현실은 그에 비해 너무나 복잡하고 잔인한 곳이었다. 여러 말 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명백히 그런 곳이었다. 그래서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지금의 세계에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똑바로 마주하려 할 때 가까운 풍경은 쓱 그어지는 선이 되고 말았으니, 가까운 곳의 이야기는 저 먼 곳의 이야기보다 오히려 더 비현실적인 이야기인 것으로 치부했다.

아주 오랫동안 먼 곳에 시선을 둔 채로 눈을 떼지 않았다. 그 아름다운 세계의 이야기는 지금쯤 저 먼 곳에서 반짝이는 별에 도달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다면 우주가 이렇게까지 을 필요가 없었을 테지, 확신하며… 저 별 어딘가에서 산책하고 있을 동물 친구들을 생각하면 마치 잃어버린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처럼 마음이 조여오고 그리워지기까지 했다.

성인이 되어서도 남들보다 오랫동안 그 세계를 놓지 못했다. 이야기를 쓸 때마다 습관적으로 먼 곳의 이야기로 시작하곤 했다. 기억할 수 있는 가장 먼 곳의 이야기로 시작해 그곳에 시선을 고정하고 글을 써 내려갔다. 그건 꽤 효과적인 방법이었다.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시절은 모두에게나 존재하는 시절이므로 누구나 쉽게 공감할 수 있으며, 지나치게 순진하거나 멍청하게 굴어도 미움을 받지 않을 안전함이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어쩔 수 없는 인간 공통의 상처를 건드리는 일이기도 했기에 무척 효과적이었다. 인간은 누구나 회복될 수 없는 달달한 상처를 가지고 있는데 그것은 절대로 시간을 거스를 수 없다는 무력감이었다. 나는 그 무력감을 사랑했다. 내가 사랑하는 것은 반드시 먼 곳에 있어야만 했다. 사랑하는 것들은 이미 지나간 것이어야 했다. 손에 잡히지 않는 세계여야만 했다. 그렇게 모든 것으로부터 거리를 두는 달달한 상처가 꽤 오랫동안 문학적 심상을 지배했다.

어른이 되어 세상을 사랑하기 시작했을 때, 더 이상 아이인 척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혼돈에 발 딛고 명확하지 않은 풍경에 몸을 내던졌을 때, 나는 더 이상 먼 곳의 세상을 바라보지 않을 수 있게 되었다. 사랑하기 위해선 가까이 다가가야 한다는 점에서 저 먼 곳의 세계는 거짓임이 증명되었다. 어른이 되어 새로운 과학적 명제를 정립하게 되었다.

“먼 곳을 그리워할 수는 있지만 사랑할 수는 없다.”

반드시 거리를 두어야만 존재하는 그 달콤한 세계는 노스탤지어였다.

노스탤지어Nostalgia 또는 향수鄕愁는 타향에서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 또는 지나간 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을 말한다. 향수를 병에 견주어 향수병鄕愁病이라고 일컫는다. —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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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