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하고 싶어요]

모든 편지는 잊혀야 한다

이 편지는 5분 뒤에 폭발한다.

최근 재수 때 친구들을 만나 옛날이야기를 하다가 더 많은 추억을 발굴하고 싶어졌다. 문득 우리의 많은 이야기가 다음 카페에 저장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고 우리는 그 시절 사용하던 다음 아이디를 찾기 시작했다. 고등학생 때부터 대학교 신입생 시절까지 다음 카페는 모든 이들의 공식 커뮤니티 공간이었다. 우리는 무척 귀찮지만 어렵지 않게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찾아냈고, 곧 사진과 함께 낄낄거리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생각했다.

‘집에 가면 다 지워버려야지….’ 

술이 많이 취했음에도 난 집에 도착하자마자 다음 카페에 들어가 내가 쓴 글만 골라 찾아보았다. 독서실 다니는 친구들과 함께 만든 카페에는 허세 가득한 내가 있었다. 군대에 갓 입대한 신병 시절의 나는 겁나게 힘든 주제에 ‘우리 부대는 인터넷도 되고 침대도 있어 너무 편하다.’고 허세를 떨고 있었다. 그리고 힙합에 대해 이야기하며 남들은 모르는 대단한 취향을 가진 사람인 척 행동하고 있었다. 대학교 합격자들끼리 만든 카페엔 50문 50답을 적는 게시판이 있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마치 억지로 적는 것처럼 쉬크하게 50문 50답을 적은 이상한 애들이 무려 20여 명이나 있었고, 그 사이엔 나도 껴 있었다. 난 깜짝 놀라 실제 육성으로 소리 질렀다. “이 미친 새끼야!” 

Q: 한 달 용돈은 얼마인가요?
A: 50만 원. 

거짓말이었다. 그것은 15만 원가량의 용돈과 아르바이트로 번 돈을 합친 금액이었다. 나는 조금 중요한 취미가 있어서 그 돈을 다른 곳에 많이 쓴다는 그런 되지도 않는 컨셉을 가지고 있었다. (아 때리고 싶다….) 나는 모두에게 추억이 될 만한 글들을 제외하고 나의 과거를 지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며칠 뒤 내가 쓴 댓글은 전혀 확인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근데 내가 쓴 댓글만 확인할 수 있나?’, ‘별거 없겠지….’ 그러다 잊힌 다른 글들에까지 생각이 미치고 말았는데 바로 내가 쏘아 보낸 편지들이었다. 이걸 어쩌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과장된 감상과 불편하도록 진취적인 모습, 마음을 전달하기보다는 나의 정성을 보여주기 위한 긴 글들…. 다행히 뚜렷이 기억나는 문장이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불편한 기분은 아니었지만, 아무쪼록 그것들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기만을 바랐다. 제발 편지를 받은 사람들이 찢어버렸거나 태워버렸기만을 바랐다.

난 편지를 받으면 모두 신발 상자에 모아둔다. 그것이 얼마나 소중한 편지인지와는 상관없이 일단 모두 신발 상자에 넣어 보관해 놓는다. 신발 상자가 다 차면 또 다른 신발 상자에 채워 넣는다. 그렇게 가득 채워진 신발 상자 두 개가 거실 수납장에 소중하게 보관되어 있다. 상자를 열어 편지를 다시 읽어본 일은 많지 않다. 소중한 편지는 책상 위나 침대맡에서 뒹굴다가 소중한 마음으로 상자에 들어가는데, 내가 기억하기로는 상자에 들어가면 끝이다. 상자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편지는 과거가 되어버린다. 그것을 다시 읽어보는 일이 없는 이유는 아마도 그것들이 과거의 나를 투영하기 때문일 것이다. 내가 기억하는 과거는 늘 지나치다. 지나치게 쿨하고,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지나치게 연극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나치도록 솔직하지 않았다. 내가 그랬기 때문에 나에게 도착한 편지들도 그랬다. 비장한 포부를 늘어놓고, 자신의 마음을 전달하기 위해 여러 장에 걸쳐 같은 이야기를 썼는데, 자기에게 쓴 말인지 나에게 쓴 말인지 모르겠고, 어떤 편지에서는 마음보다는 노동력이 먼저 전해지기도 한다.

그런데도 편지를 모으는 이유는 단순히 버리지 못해서다. 버리지 못하는 이유는 글쎄 뭘까…. 인형을 버리지 못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일 것이다. 동글동글하고 까만 눈동자를 저렇게 또렷이 뜨고 있는 인형을 어떻게 버려…. 그래서 나는 인형도 꽤 많이 가지고 있다. 대략 열 마리 정도의 작은 인형이 내방 구석구석을 차지하고 있다. 인형들은 대부분 선물로 받은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두 나름의 추억이 담겨 있다. 나는 인형들을 마치 생명이라도 가진 것처럼 조심스럽게 대한다. 발로 차지도 않고 던지지 않는 것은 물론이다. 혹시 인형들이 내가 없을 땐 돌아다닐지도 모른다고 생각해서 인형이 내가 놓은 위치와 다른 곳에 놓인 경우에도 모른 척해 준다. 근데 인형들은 늙지도 썩지도 않는다. ‘앞으로 인형이 더 쌓이진 않겠지?’, ‘이것들은 언제까지 돌봐줘야 하는 걸까?’ 종종 침대맡에 행복한 표정으로 누워 있는 인형들을 보며 이런 생각을 한다.

어릴 때 티브이에서 방영하던 <가제트>라는 만화 시리즈가 있다. (난 그것이 언제 몇 시에 하는지도 모른 채, 매번 티브이를 틀 때마다 우연히 <가제트>가 방영 중이기를 바랐다.) 가제트는 로봇 형사인데 모든 것이 엉망이다. 항상 어리바리한데 운이 좋은 편이다. 가제트의 조카와 강아지가 모든 사건을 처리해 주는데 거기에 가제트의 운이 더해져서 사건 해결의 공은 가제트 것이 된다. 가제트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가제트가 지령을 전달받는 방식이다.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 높은 분으로부터 지령을 전달하는 편지가 도착하고 편지의 마지막 부분은 꼭 이렇게 마무리된다.

“이 편지는 5분 뒤에 폭발한다.”

모든 편지는 이렇게 사라져 버려야 한다. 없어지지 않는 것이 너무나 익숙한 시대에 살아서 그런지 없어지지 않는 것에 한참 무뎌 있었다. 기억은 변질되고 흐릿해지고, 사람은 기억하려고 노력하거나 지워 버리려고 노력하는데 그것에 비해 너무도 아무렇지 않게 존재하는 사물들을 보면 그것을 마주하는 마음이 괴로울 수밖에 없다. 

5년 전에 사고로 죽은 친구의 사진이 인스타그램에 그대로 방치되어 있고 사람들의 댓글은 점점 줄어들었다. 1년마다 정기적으로 댓글을 다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것을 보는 마음이 조마조마하다. 작년에 추모의 댓글을 달았던 사람이 올해는 댓글을 달지 않았을까 봐 그렇다. 모두 이 사람을 잊지 말자고 말하지만 사실 인스타그램은 이 사람이 얼마큼 잊혔는지를 보여주는 잔인한 그래프다. 박제된 기억들은 홀대받으면서 미안한 마음을 갖게 한다. 먹으면 소화되는 음식들처럼 편지도 소화돼서 사라져 버렸으면 좋겠다. 아니면 편지들을 모아 둔 기억의 섬이 있어 그곳으로 편지들을 모두 모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얼마 전 헤어진 연인한테 받은 한 장의 편지는 너무나도 마음이 아팠다. “나의 지난 몇 년은 승재를 기쁘게 할 꿍꿍이로 가득 차 있었어.” 나는 못 볼 것이라도 본 사람처럼 허겁지겁 편지를 접어 나무로 만든 수납함에 보관해 두었다. 종이 상자에 두면 다른 편지들처럼 시들고 무뎌질 것 같았다. 추가로 공기조차 통하지 않도록 본드로 밀봉해 두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나는 한편으로 염려했다. 그렇다면 편지는 이제 세월을 무사히 견딜 수 있을 것인지, 아님 효율이 안 좋은 나무 상자로 남아 훗날 더 무거운 마음의 짐이 될 것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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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그림 한승재 ― 푸하하하프렌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