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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은 중요한가?
“패션에서 가장 중요한 건 무엇인가요?”
패션 디자이너 마크 제이콥스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다큐멘터리 <Marc Jacobs & Louis Vuitton>(2007)에서 제작진이 마크에게 물었다.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패션’과 ‘중요’라는 단어가 함께 사용될 수 있는지 모르겠어요.”
이 다큐멘터리는 2007년 제작된 것으로, 당시 열혈 건축학과 학생이던 나는 그의 대답이 멋있지 않다고 생각했다. 그 대답은 진심이 아닌 것처럼 들렸다. 패션이 중요하지 않다니…. 단지 쿨해 보이려고 자신이 하는 일을 가볍게 치부하는 것처럼 보였고 그래서 멋지지 않았다. 만약 누군가가 나에게 건축이 중요하냐고 물어봤다면 나는 힘주어 건축은 무척 중요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계단도 중요하고 손잡이도 중요하고 난간도 중요하고 밖에서 보는 것도 중요하고 안에서 보는 것도 중요하고….
정말 패션은 중요하지 않은 걸까? 패션 전문가가 아닌 내가 생각하기에도 패션은 정말 중요한 문제인데 말이다. 사람들은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강력한 욕구가 있고, 조금만 틈을 줘도 자신에 대해 마구마구 이야기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럼에도 모든 사람들이 길 가는 사람들을 불러 세워 자신에 대해 설명하지 않는 이유는 패션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복장은 그냥 보기만 해도 어떤 사람인지 대충 알게끔 하는 것이다. 그래서 패션은 중요하다. 패션은 그들이 누구인지 보여주는 것이고, 그들이 지향하는 바를 보여준다.
10여 년 전 처음 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을 무렵, 함께 일하는 동료가 ‘우리 이제부터 의사 가운을 입고 일해보는 게 어떠냐.’는 신박한 제안을 했다.
“우리도 전문가니까 전문가처럼 보이는 복장을….”
너무나 신박해서 좋은지 나쁜지 금방 판단할 수 없었다. 내가 생각하기로 동료의 의도는 남들에게 전문성 있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하는 것이었고, 조금 더 나아가자면 영리하지 못한 사람, 뚝심 있게 자기 일에 몰두하는 사람처럼 보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의도는 알겠지만 의사도 아닌데 가운을 입고 일한다는 게 너무 유난 떠는 모양이라서 나는 좋지 않은 표정을 지었다. 말을 꺼낸 친구는 이내 부끄러워했다.
“꼭 의사 가운을 입자는 게 아니고, 예를 들자면 그렇다는 거지….”
의사 가운을 입자는 이야기는 곧바로 쏙 들어갔고 동료는 이후로 의사 가운을 입고 있는 사람을 볼 때마다 놀림을 당해야 했다. 종종 의사도 약사도 연구원도 아닌데 정말로 가운을 입고 영업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일종의 영업 전략인 것 같았다. 그런 사람들을 길에서 마주칠 때마다 나는 친구에게 아무 맥락도 없이 물어보곤 했다.
“니가 말했던 게 저런 거였지?”
동료는 고통스러워하기도, 그만하라며 화를 내기도 했다. 의사 가운을 입자는 친구의 제안을 매몰차게 거절하긴 했지만, 사실 나는 의사 가운을 입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방식으로 패션을 이용하고 있다. 아무도 궁금해하지 않는 나의 패션엔 아주 복잡한 셈이 숨어 있다. 건축가로서 책상에 앉아 편하게 일하는 사람으로 보이고 싶지 않기 때문에 때론 더러운 작업복을 입는다. 망치와 줄자와 드라이버 등 많은 공구가 들어갈 수 있도록 주머니가 많이 달린 바지와 이미 더러워진 티셔츠를 입는다. 그것은 언제든 바닥에 앉아 작업할 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때로는 지나치게 눈에 잘 띄는 옷, 알록달록한 옷을 입고 다니며 사람들 눈에 띄기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검은 옷만 입는다고 조롱받는 다른 건축가들과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내가 원하는 대로 나를 이해해 준다. 가끔 직접 현장에서 나사를 조이기도 하는 독특한 건축가로, 행동력 있고 재미있는 사람으로. 내가 서 있는 위치를 전달하기 위해 패션을 이용하는 것이다.
패션에 진심이 아닌 사람도 이렇게나 패션을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정작 패션에 몸담고 있는 사람이 패션이 중요하지 않다고 말하니 그 말을 믿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패션과 중요에 대한 물음은 쉽게 놓아지지 않았다. 패션업계에서 일하는 건 아니지만 디자인과 관련된 여러 일을 해나가며 중요하다는 것에 대해 되묻는 시간이 많아졌다. 패션이 중요하지 않은가? 혹은 디자인은 중요하지 않은가? 정말로 중요하지 않은가? 그런데 조금 생각하다 보면 점차 아리송해지며 정말 그런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정말로 패션은 중요한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스티브 잡스는 같은 스타일의 옷을 여러 벌 구입해 입었던 것으로 유명하다. 청바지와 검은색 터틀넥 셔츠와 뉴발란스 운동화. 그의 심플한 복장은 일 외에 다른 것에는 크게 신경 쓰지 않겠다는 실용적인 면모를 과시하는 것이었고, 그가 하는 군더더기 없는 생각을 대변하는 것이었다. 자신이 즐겨 입는 셔츠가 품절되자 디자이너에게 그 제품을 다시 만들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는데, 그것이 실용성에 반하는 귀찮은 일이더라도 일관된 모습을 유지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패션관을 보여준다. 그에게 패션은 무척 중요했다. 특별하지 않은 그 모습이 그에겐 무척 중요했고, 패션을 통해 자신의 일관된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 무척 중요했다. 그러나 그 모습만 보았을 땐 그가 패션을 중요하게 여겼을지는 몰라도 패션을 사랑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정말 패션을 사랑하는 사람에겐 변함없는 자신의 모습이 없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그들은 시즌마다, 그리고 기분마다 변신을 한다. 패션을 사랑하는 이들은 ‘진짜 나의 모습’이나 ‘내가 추구하는 나의 삶’ 같은 걸 패션에 투영하지 않는다.
비 오는 날은 개구리가 되었다가 화창한 다음 날 무지개로 변신하기도 하는 이들은 변화무쌍한 사람이다. 패션을 사랑하며 패션에 진심인 사람들은 패션에 자신을 맞춰 변화해 나간다. 고유한 자신의 모습을 다듬어 나가기보다는 다양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해 나간다. 괴물처럼 커다란 신발에 발을 넣어볼 생각을 감히 누가 할 수 있었을까? 걸레처럼 찢어진 바지를 입고 걸어 다닐 생각을 누가 감히 할 수 있었을까? 패션을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던 그들이기에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대체 중요하다는 건 무엇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패션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 남들에게 나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었다면, 질문은 이렇게 바꿔볼 수 있다. 내가 그렇게나 중요한가?
과장되지 않은 모습, 변치 않는 자신의 모습을 남들에게 잘 보여줄 수 있다면? 누군가는 패션에게 그런 것을 기대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중요성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내가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패션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내 친구가 맞춰 입자고 말했던 의사 가운과 다르지 않은 패션의 사용법이다. 그러나 패션은 자신을 발견하기 위해 꾸준히 탐구하는 우직함보다는 시즌마다 자신을 갈아 치워야 하는 변덕에 가까운 것이다. 매일 변하는 날씨, 어제 길에서 주운 돌, 길 한가운데 생긴 물웅덩이 같은 것이다. 패션은 변덕이 죽 끓는 듯하여 시즌마다 바뀌는 취향이다. 그러나 이것을 조금 바꿔 생각해 본다면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다. 무언가를 너무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때 우리가 될 수 있는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패션이 그다지 중요한 것이 아니라서 어느 날은 개구리가 되었다가, 어느 날은 무지개가 될 수 있다. 그렇게 되고자 할 때 될 수 있는 것이 패션이기 때문이다. 마크 제이콥스의 말대로 패션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그것에 몸을 맞추는 것은 그것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중요하지 않은 것이 얼마나 멋있는가?
글·그림 한승재―푸하하하프렌즈